시간 관계상 한줄로써 모든 걸 표현하자면,
미궁의 극치다.
이것으로 부족하면 두 줄로써 모든...(퍽퍽퍽)
김훈의 소설은 두개밖에 못 읽었습니다. 칼노와 화장.
두 작품은 사실 같은 작가가 썼다고 보기에는 소재가 판이하게
다르죠. 하지만 좌백님과 진산님의 공동저서인 '무혼'에서도 많
은 사람들이 "움, 이거 설정은 마님이 짰고 글은 돌쇠님이 쓰셨
어."하게 만든 비결이 뭔가요. 문체입니다.
문체라는것은 글의 내재적 형태이고, 따라서 문체가 극단적으
로 치닫는다면 문체자체가 설정으로 못박힐수도 있음을 가장
잘 증명하는 것이 김훈의 위 두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어째서 김훈의 문체가 미궁의 극치냐...생각나는 한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내적의 적일수밖에 없었다." 칼의 노래
에서 이순신장군이 대충 이렇게 독백하신걸로 나오죠. 내적의 적
이라는 말은 적이라는 개념을 두번 쓰게 만들어서 간단한 사실조
차도 받아들이는데에 힘들게 만들죠. 그냥 간단하게 그런 사실자
체를 잊어버리고 그냥 <나 VS 적>식으로 세계를 이해했다면, 그
렇게 난감하지는 않았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식으로 간단하게
이해되지는 못했죠. 그리고 화장을 보셨으면 기억나시겠지만, 주
인공이 은근히 좋아했던 젊은 여자가 아이에게 음식을 먹였을때
보여지던 입속의 구조가 혀에서 목구멍까지 설명이 되는데 어느
새 거기까지의 구분이 없어지고, 마침내 아이의 목구멍은 젊은여
자의 목구멍과 동일시 되죠. 여기에서 우리는 모든 것이 절대적
으로 추상화되게 만든다며 찬사를 받는 김훈님의 문체가 가지는
매력을 알게 됩니다.
잊고 있었는데, 덤으로 두 작품에서는 죽음이 주요 테마라는것
아시죠? 개인적으로 김훈씨의 작품에 힘을 주는 테마가 바로 이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긴 곤란하지만, 칼노
에서 이순신장군은 늘 편히 죽을 수 있는 사지를 찾아서 싸움을
했고, 화장에서 주인공은 곧 죽을 늙은 아내를 두고서 역시나 죽
음이 멀지않은 자신의 늙은 육체에 대해서 실감합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는 거기에서 비롯된다...는 설명이면 되겠죠?
그냥 어느 분이 칼의 노래에 대해 감상문 쓰신게 눈에 띄였는데,
흥이 나서 써봤습니다.
여담이지만 연재한담란에 글만 쓰면 모두가 작가?식의 제목으
로 올라왔던 글이 참 재미있더군요. 연담지기님의 리플에 압박
과 폭소를 함께 느낍니다. 우리 모두 까페에 가서 "리플 달아주
세요~"라고 외치죠.(맞는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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