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에 관련된 감상을 쓰는 곳입니다.
강간이든 살인이든 사건만 두고 논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사건이란 현상이 벌어진 다음의 문제죠.
재작년에 있었던 색사괴사=괴사록 논쟁에서도 한번 언급되었던 이야긴데, 무협은 기본적으로 폭력과 폭력에 의한 살인이라는 현상에 대해 작가와 독자 간의 상당한 동의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이유로 1) 무협 자체가 폭력에 대한 주제의식을 담고 있고, 2) 무협은 폭력과 살인에 대한 여러가지 문학적 장치를 가지고 있고, 3) 지금까지 씌어온 다수의 작품들 속에서 살인에 대한 도덕적 평가가 빈번하게 이루어져 왔다는 겁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독자는 작가가 그려내는 폭력과 살인에 대해 일정 수준의 방어기제를 가지고 소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협에서 강간이라는 테마는 살인과는 전혀 다르게 취급되죠. 기존 무협의 클리셰 정도로 볼 수 있는, 색마에 의한 강간이라는 소재면 모르되, 주요 인물에 대해 갈등을 발생시키는 기제로서 다루어지는 강간에 대해 독자는 전혀 면역되어 있지 않습니다. 무협문학이 폭력과 살인에 대해서는 장르수준의 합의 하에 좀더 가볍게 접근할 수 있다면, 강간이나 성적 폭력에 대해서는 개별 작품의 수준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말이죠. 더군다나 무협과 폭력이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을 감안하면, 폭력과 성애의 결합은 되도록이면 피해야 할 소재입니다.
그러면 진호전기에서의 강간은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나... 본문에서도 언급되지만 개연성이 없다고 나오죠. 제가 볼 때도 강간이라는 사건 전후의 그 대상, 연지하의 내적 갈등에 대한 묘사가 전혀 없다는 점, 강간이라는 소재가 순전히 주인공에 대한 시련과 고난의 부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 그러면서도 강간이라는 행위가 여성의 행동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인물, 특히 여성의 주체의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지극히 편견섞인 서술입니다. 무협독자들이 진호전기 5권에 거부감을 가지는 건 전 당연하게 봅니다.
물론 제가 쓴 내용에도 두가지 맹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원래 무협은 남성중심적이란 거죠. 삼처사첩이나 하렘같이 남성적 취향의 내용이 자주 써먹히죠. 하지만 이런 내용에 대해 최근의 독자들은 상당히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죠. 거기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나쁘냐고 묻는다면 전 진호전기에서 다루는 강간이라는 소재가 더 나쁘다고 봅니다. 최소한 하렘에선 폭력과 성이 결합하진 않으니까요.
그리고 무협독자들이 폭력과 살인에 대해 면역을 가지고 있으니 아무 문제없이 묘사해도 되는가... 하지만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문피아에서는 희소, 음공의 대가, 복호출동 논쟁에서 살인과 식인에 대한 과도한 묘사, 다수에 대한 쾌락살인, 비인간성에 기초한 살인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살인이라고 그냥 넘어가진 않는다는거죠.
요즘 독자들의 연령층이 좀 낮아짐에 따라 여주인공의 갑작스러운 변고(좀 순화시킨 표현입니다 ^^;)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은것 같네요. 신조협려나 표류공주 등에서는 더 속터지는 장면도 많았는데...
그런데 그보다는 오히려 사건이후 연지하의 어정쩡한 태도가 논란을 불러일으키지않았나 싶습니다. 금모인과의 그 일이 있고나서도 진호를 만나서 아무일이 없었던 양 태연한 모습을 보였죠. 작품상에서 정절을 잃고 고민하는 여주인공의 복잡다난한 심리묘사가 좀 더 드러났다면 좋았을텐데 그런 갈등하는 모습도 없이 너무 갑자기 사건이 진행된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완결까지 애정을 가지고 봐 달라고 하셨는데, 나름 안타까운
맘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저는 작가가 아닌 독자 입장에서도 정말
독자는 냉정하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밤새워 쓴 글도, 한 번 읽은 독자가 쓰레기로 치부해 버리는 게 일상
다반사니 말이죠. 작가님들은 더 심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가를 위한 글이 아닌 독자를 위한 글 쪽으로 나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요. 더욱더 조심성이 많아 지고요.
결국, 독자란 자기 맘에 안드는 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냉혹하게도
책을 보지 않는답니다. 이 작가님이 무엇을 바라고 내용을 그렇게
몰아갔는지 모르겠지만, 충분한 개연성이 없다면(독자를 납득이
가게 만들지 않는다면) 결국 외면받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진호전기를 보진 않았습니다. 근데 솔직히 안보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걸작이라는 표류공주도 한번보고 두번다시 보지 않았던건 물론 작품은 훌륭할지 몰라도 다보고나서 무지하게 찝찝했거든요. 굳이 돈주고 책을 사보든 빌려보든 찝찝한 기분 느껴가며 볼 필요 있나요? 앞으로도 진호전기나 이런류의 책은 안볼 생각이구 저같이 싫어하시는분도 이래저래 분노하지 마시고 그냥 안보셨음 좋겠네요. 받아들이실수 있는 분들만 보심 뭐 문제없을듯. 혹시나 보신 분들은 감상란에 올리셔서 이런이런 내용인데 취향이 아니신분은 보지 맙시다 하고 감상글 쓰심 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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