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그건 엿장수가 가위질을 몇번하느냐와 같이 작가 마음대로라고 봅니다만 지금까지 펼쳐놓은 면적으로 봐서 순전히 제 생각인데 한 60권 정도가 되어야 전체적인 균형이 잡힐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딱 반 정도로 보는 것이지요 ^^ 작품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이끌려 가기 때문에 작가 마음대로도 안될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무협을 넘어 세계적으로 가장 긴 소설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음악에도 대표적인 예가 있죠.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제14번, C#단조.
이렇게 말하면 아무도 모릅니다.
평소 베토벤의 음악을 즐겨 듣거나 접해보지 못하면요.
독일의 평론가 렐슈타프가 달빛에 비친 로페른 호수같다 라는 평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월광 소나타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습니다.
즉, 음악이 여러 사람들에게 들리는 게 다른 만큼 글도 같다고 봅니다. 무리한 이야기나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는 게 아니라면 충분히 이렇게도 평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오히려 무협이야말로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장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협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지난날 명멸했던 무협대가들이 사라져버린 오늘날의 처연한 현실을 볼 때 군림천하의 의미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고 봅니다. 게다가 지난 15년간 군림천하를 보았거나 보고있는 독자들이 엄청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 사회적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요?
과연 협은 지난날의 이야기일까요? 자본만능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부조리한 현상들과 비극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미 분노할 힘조차 없을 뿐만 아니라 설득당해있습니다. 국내기업의 선진국 소비자에 대한 AS 는 얼마나 깍듯합니까? 원유값이 내렸을 때 처리 속도가 올랐을 때와 동일합니까? 그것이 알고싶다에 나왔던 스폰서 이야기는 사실일까요? 이 모든 것들 앞에서 우리는 협의 부재를 느끼게 됩니다. 정말 돈보다 더 중요한게 없을까요? 협에 목말라 있는 우리에게 무협은 하나의 위안이고 희망이 아닐까요?
요즘 유행하는 단어가 '헬조선'과 '죽창'입니다. 부조리한 사회를 '헬조선'으로 풍자하고, 그 해결책으로서 '죽창'을 제시하는 거죠. 여기서 '죽창'은 '협'과 일맥상통한 개념이에요. 부조리한 사회를 타파하는 방법으로서 초법적인 수단을 강구하는 것. 이게 바로 '협'이죠. 그런 면에서 군림천하는 '협'이 없어요. 어차피 군림천하의 세계는 '무력'이 곧 '법'이 되는데, 진산월은 '무력'으로 자신을 적을 무찌르니, '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같습니다.
98년도에 일간지에 연재되어 19년째를 달리네요.
군림천하 내용을 파고들면 그동안 용대운의 기존작품을 몽땅 믹서에 쓸어담아
분쇄해서 다시 나열한것으로 보여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글은 아닌듯해서
매우 실망입니다.
규염객님의 글에 동감합니다.
30권이 넘는 글에 협에관한 진지한 부분이 하나도 없죠.
그냥 꿈에 대한 소설이랄까?
도대체 30권이 넘는 무협지에 협이 없다는게 진정한 무협지가 맞나 싶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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