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마이클 샌델
작품명 : 정의란 무엇인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출판사 : 김영사, 와이즈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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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란 무엇인가
뒤 늦게 이 책을 읽고 가장 놀란 것은, 이 책이 한창 유행할 당시 각종 기사나 칼럼, 혹은 다른 책을 내면서까지 이 책의 내용에 대하여 이야기 하던 많은 사람들이, 정작 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을 말해주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마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일 두 문답이다. 하나는 조난당한 선원들이 젊은 소년을 죽여 먹은 실제 사례, 또 하나는 선로 위의 인부들을 구하기 위해 뚱뚱한 남자를 밀어야 하는가의 사고 실험이다. 이 두 대목은 책의 초입에 배치되어 기존의 정의나 도덕 이론을 적용 했을 때의 딜레마, 혹은 그러한 이론들이 이러한 상황을 판단하는 기준을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즉, 이 두 문답은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기존의 인식을 돌아보게 하는 역할이며, 그러한 ‘기존의 인식’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공격 혹은 설명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당시 보았던 일반적인 반응은 이러한 문답을 “어떠한 답을 내려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선에서 멈추고, 거기에서 “과연 정의란 어렵군.”이라는 단순한 답을 내는 선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면 상황 자체의 오류나 미비를 이야기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책이 그러한 ‘기존의 이론’에 대한 개설을 전개한 후 샌델 자신이 어떠한 입장인가(공동체주의자)를 밝히는 부분이 후미에 있다는 것이다. 즉, 도입부의 문답은 샌델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할 만한 지점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 부분이 샌델이 공리주의와 같은 기존 이론에 대하여 한 비판과 논증에 대하여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도 않다. 그저 ‘딜레마’ 자체에서 좀 더 높고 심도 있는 인식 혹은 고민을 하라는 ‘각성’으로서의 질문인 것이다.
사실 이 도입부를 지나면 그 이후 오는 것은 ‘정의’에 대한 철학적 개론 설명이다. 즉, 현대인과 시장에서의 가장 흔한 논리인 ‘공리주의’가 도덕에 주는 의문을 각성시킨 후, 그 성립 배경을 잡아간다. 그리고 거기에서의 허점과 보완을 지속적으로 밟아가는 것이다. 이는 딱히 사상의 성립 시기를 따지지 않는다. 심지어 고대의 철학자인 플라톤은 후반부에서야 등장한다.
이는 단순하게 시기에 따른 철학자의 나열로 끝나곤 하는 ‘철학 개론’과는 명백히 다른 점이다. 책에서 다루는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사유를 통해, 그 근원을 종합적으로 파악해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샌델은 정의가 무엇이다라고 정의 내려 주지 않는다.”라는 문장에도 살짝 의아한 생각이 든다.
이 경우, 샌델이 정의내리지 않은 것은 ‘정의’라기 보다는 ‘형벌’에 가까운 것 아닐까.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한다, 라는 말은 하지 않지만, ‘정의’라는 것에 대한 고민은 결국 그것의 실천 방안을 고민하려는 의지, 더 나아가 그러한 것이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생각 자체가 있기에 나오는 것 아닌가.
굳이 샌델이 알려주는 정의를 찾자면, 그는 그가 밝혔든 미국식 공동체주의자다. 그가 책 전체에 걸쳐 여러 ‘정의론’들의 허점을 어떻게 공격하고 그것을 위해 어떠한 이론을 끌어다 이야기를 하는지를 가만히 들었다면, 그것을 명확하게 언어화 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떻게 사안을 보고 있는지 정도는 파악 가능하다. 그걸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샌델은 무엇이 확실한 정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의 기반과, 그것이 도출된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정의’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사유를 보여준 것이다. 그가 공동체주의자이고 그에 따라 정의를 본다고 해도, 다른 사유의 정의에 대하여 부정하지도 않는다. 샌델은 자신의 생각 구조를 논술했는데, 마지막에 = 이후가 빠졌다고 해서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잖은가.
2.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로 읽은 마이클 샌델의 책. 이 책의 직접적인 계기는 역시 미국과 전 세계를 휩쓴 금융 위기다. 욕망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는 신자유주의 혹은 물질주의 속에서 사람들은 ‘무엇’에 분노했는지를 다루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은 자연스레 관심을 끈다.
미국인들은 월가의 ‘부패’에 대하여 분노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무능’ 혹은 ‘실패’에 분노했다는 말은 꽤나 명쾌한 풀이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왜 월가의 금융 자본들은 ‘책임’을 회피했을까에 대한 이야기는 책 속에서 말하듯 “우린 나름 열심히 했다”란 말에서 찾아보자.
자유주의에 모토는 한 마디로 “타인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개인은 자유롭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욕심(혹은 그것의 대상이 되는 ’돈‘이나 ’물질‘)’은 이러한 자유의 방향을 이끄는 동기로서 당연한 감정으로 취급된다.
허나 이러한 ‘자신의 자유가 미치는 범위 안에서’의 행동으로 자신의 욕심 혹은 부를 키우던 과정에서, 자신의 ‘부’ 자체가 넘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냥 가만히 있던 많은 사람들(혹은 그들에게 소극, 적극적으로 의지하던 사람들)의 ‘부’까지 함께 무너트렸다.
이는 ‘내가 인지하던 자유의 범위’에 한정된 책임 범위를 초월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고, ‘책임’이 아닌 ‘자유’로 인해 움직이던 주역들은 자신의 자유의 원 위에 쌓여 있던 것이 넘어지며 타인의 원에 피해를 주었다는 인식이 없는 것이다. 즉, 이들은‘자신이 행함’ 자체에 대한 책임만을 인식하고 ‘자신이 행한 것’이라는 결과(즉, ‘쌓인 높이’) 자체가 가지는 책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원’이 아닌 ‘높이’에서 기존에 꾸준히 이득을 봐 왔었다는 것이다).
본문의 이야기로 넘어가자. 책의 주제는 “시장 논리가 기존의 비 시장적 논리의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경제학자들의 ‘잘못되게’ 일관된 논리에 의해 긍정되고, 아니 애초의 고민의 꺼리 자체가 되지 못하는 것인 양 취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는 ‘비시장가치의 시장가치화’라기 보다는 ‘비시장가치의 무효화’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내놓는 사례는 간단하다. 물질적 인센티브가 기존의 미덕에 대한 호소를 이기거나 대체하지 못하는 경우, 혹은 그 자체를 파괴하는 경우의 여러 사례들이다. 흔히들 철학에 대하여 생각하는 식의 추상적인 접근을 하지 않는다. 샌델 교수는 어디까지나 실제 사례와 ‘경제학자들의 실험’을 통해 접근하고, 그 결과에 대한 인식을 돌이킨다.
샌델 교수는 굳이 윤리나 미덕이 절대적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비시장적인 가치보다는 인센티브를 통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경우, 그것일 시행할 수도 있다”고 명확하게 말하면서, 거기에 대하여 선행 되어야 하는 “그것으로 인하여 시장화 되는, 혹은 파괴되는 비 시장적인 가치가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거기에 대하여 고민할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일단 책으로 보자면, ‘정의란 무엇인가’가 보여주던 자연스러운 구조는 중반까지만 이어진다. 사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으로 봤을 때 마지막 장인 ‘명명권’은 사례의 나열로 이루어진 사족에 가깝다. 미국인들이야 실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매우 평범한 일이 내용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보는 것으로 책을 마무리 할 수 있겠으나, 한국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공감가는 내용이 아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읽으면서 든 생각중 하나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에 대한 것이다. “인간 활동의 모든 것은 인센티브다”라고 말할 정도로 인간 사회의 모든 ‘흐름’을 연구한다는 이 학자들은, 결국 그러한 흐름에서 오가는 가치가 단일화폐(딱히 ‘달러’가 아니더라도)로 치환이 가능하다는 입장인 것 같다. 특히 이 부분이 잘 들어나는 것은 ‘별 것 아닌 동정심으로 낭비되는 시민의 미덕을 아껴, 그것이 정말로 필요할 때에 쓰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모든 것은 교환의 대상이기에 쓰면 없어지고, 얻으면 생긴다는 동일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학자들의 ‘단일화폐적인 논리’가 세계를 움직이는 주요한 인식으로 작용했다는 것은, ‘현상을 설명한다’기 보다는 차라리 경제학으로 ‘계산하기 쉽게끔’ 주변을 잘라내 왔다는 것에 가깝다. 모든 것이 시장논리화 된다면 확실히 경제학은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있을 것이지만, 경제학은 애초에 ‘해석’이 아니라 ‘변화’로 그것을 실현하고자 했던가? 그렇다면 경제학은 도덕을 말하지 않는다는 전제 자체가 무너지지 않나.
샌델 교수의 두 책을 읽고 가장 궁금해 진 것은, 신자유주의 혹은 경제학적인 편에서 이러한 “시장논리의 확장”에 대한 ‘도덕적 변론’이 있는가이다. 신자유주의자라면 ‘일반적인 도덕’에 대하여 '천박해' 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거나, 혹은 ‘그것이 결국 사회를 더 좋게 만들 것’이라는 허망한 이상론만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아직까지 공리주의적 변호를 하고 있지는 않을 것 아닌가.
추신 )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답하는 책이, 알라딘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로 검색하면 두 권이 나온다. 어느쪽이든 정의란 무엇인가의 발톱 만큼도 팔리지 않은 것 같다(그냥 일반적인 도서 수준으로 팔렸다).
추신 2 ) 알라딘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로 검색하니까 나오는 1억원짜리 책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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