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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인것 같지만 삐딱선을 가져도 되지만 솔직히 그렇다고 로마인이야기와 은하영웅전설은 군국주의 찬성글이다!!! 라고 예기하는 것도 어패가 있지요. 뭐 관점을 차이일수도 있겠습니다만. 로마인이야기에서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예찬은 오로지 초기 로마공화정이였고 후기로 갈수록 이로마는 허례허식과 보편주의적 일신교가 지배하는 로마를 이로마는 옛날의 로마가 아니야!! 라고 외치고 은하영웅전설 또한 찌질이 종교! 찌질이 민주주의! 라고 외칩니다. 즉 이들의 예기하고 있는 것을 과거의 군국주의 예찬이라고 살펴보기 보다는 오히려 현재 일본의 답답한 현실에 대한 의식으로 볼수 있는 측면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지금 88세대로 대표되는 여러가지 문제의식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죠. 그것이 문화로 어떻게 표현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말이죠. 그리고 로마인이야기나 은하영웅전설을 읽어보면 조금씩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의식도 찾아볼수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삐딱하게 읽으실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작품 초반부터 루돌프가 퇴폐한 은하연방에서 민주주의의 이원집정제를 이용 권력을 장악해 은하제국을 건국하는 것부터 시작해
부패한 민주주의의 문제점들이 두드러집니다.
헌데도 실질적 주인공인 초인 라인하르트보다
그의 적수 양 웬리를 비롯 뷔고크 원수나 7권에서 잠시 자신의 책무를
관철하는 중견이하의 관료들의 민주주의의 대한 자긍심이
더욱 빛을 발하게 만든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는...
"카이저 라인하르트 폐하,나는 당신의 재능과 기량을 높게 평가하고
있소.(중략)
'민주주의란 대등한 친구를 만드는 사상이지 주종 관계를 만드는 사상은
아니기 때문이오.나는 좋은 벗을 원하고 누군가의 좋은 벗이고 싶소.
하지만 좋은 주군이나 좋은 신하는 원하지 않소.그렇기에 당신과 나는
같은 깃발을 받들 수가 없는 것이오.(중략)"
소설속 메세지 자체가 군국주의를 옹호한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작가는 군국주의에 찬성하는 의견을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작가가 살았던 시대와 환경이 그에게 부여한 어떤 것이 있고. 이 점은 잘 살펴야 합니다.
이 소설에서 다른 정치체제 사이의 전쟁과 공존이 중요한 화두였던 것은 그가 살았던 시기가 냉전시대이기 때문이고, 정치사와 전쟁사를 중심으로 역사의 조류 전체를 설명하고 있는 관점은 그가 6.8운동 이전의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파피용이나 듄과 비교해서 이 소설은 훨씬 정치적입니다. 전쟁소설인 점을 고려해도 그러하지요. 선동이나 정치적, 외교적 유인외에 전쟁에 대한 경제적, 사회적 동인에 대한 설명을 찾기 힘든 것은 그가 그러한 설명들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기 시작한 이전의 시기에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바람직한 공동체의 가치가 무엇일까? 이 논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우리는 박정희 개발독재에 대한 설명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지식인들은 군국주의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겠지요.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군국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서도 군국주의의 흔적이 발견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소설속에서도 이런 점들이 보인다는 것이구요.
군인과 관료가 일치하는 기강잡히고 효율적인 제국의 모습과 부패한 민주정의 모습은 극적으로 대비됩니다. 작가는 아마 가장 좋은 독재의 경우에도 전제의 위험을 내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본독자들에게 이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은 그들에게 익숙한 어떤 역사적 경험을 보여주는 것이었겠죠. 문제는 어떤 사람은 작가의 글을 이렇게 읽게되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방편으로 삼은 제국의 이미지를 가지고 위험한 생각을 하게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생각하며 읽기를 바라는 것은 그러한 이유입니다.
부패한 연방의 모습을 보며 저걸 어디서 보았더라? 하는 생각을 몇번이나 하게 되었습니다. 영락없이 우리 근현대사의 축소판입니다. 작가가 우리에게 주로 정치의 장에 대한 고민을 들려줬지만 우리는 다른 것들에 까지 그 고민을 확대해 보아야 합니다. 그가 확대된 국가역할 속에서 독재와 자유사이에서 고민하는 시대의 사람이었다면, 우리는 국가에 사적영역에 개입할 것을 요구해야 하는 시대의 사람입니다, 다양한 힘을 가진 주체들이 그 힘을 그릇되게 사용하지 못하도록 국가가 강제하도록 하여야 하고, 약한 구성원들을 지켜주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가 너무나 확대된 국가와 정치의 영역에 대하여 고민하던 시대의 사람이라면 우리는 실종된 정치의 장을 다시 찾아야 하는 시대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시대에 맞는 그러한 재해석이야말로 제가 여러분이 가졌으면 하는 삐딱한 시선이고, 취급주의는 이런 맥락을 무시한 채 좋아보이는 말이라는 이유로 그의 말들을 받아들이고, 군국주의의 분위기에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지 말았으면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특히 양이나 그의 동료들이 목표로하고 싸운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이상이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님을 명확히 인식 하셨으면 합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개인으로써 싸운 것이지 연방에 대한 애국심의 발로로 싸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전쟁소설이라서 불가피했겠지만 종종 두가지를 혼동하게 되고는 했습니다. 두가지는 정말 극과극으로 다른 겁니다. 애국심과 개인의 자유의 이상은 공존할 수 있지만 항상 같이 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둘은 서로 반대되는 입장에 서지요. 호떡맨님의 리플은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시는 것 같아 첨언합니다.
제가 본 바로는 은영전에서 체제에 대한 생각이나 그리고 인류가 가치를 어디에 둬야 된다는 생각을 표현한 부분은 대부분 얀웬리의 생각이나 대화에서(나중에는 양자에 의해서) 나타났습니다. 글에 나타난(쓰여진) 내용만 본다면 작가는 외부의 큰 위협(제국)과 돈에(폐잔?)의한 민주주의의 타락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민주주의가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회복되기를 바라죠 하지만 얀웬리와 양자(이름이 생각이 안나네요) 둘의 대화에서 보면 알수 있듯이 한 두사람에 의해 역사가 변하지 않는 다고 믿고 있었으며, 국민대다수가 한사람을 의지하여 수동적인 사람으로 되는 사회는 올바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은영전을 처음부터 봤지만 체제니 사상이니 이런거에 대한 고찰은 대부분 얀웬리와 그의 양자에 의해서 나타났습니다. 제가 봤을때는 작가의 생각은 이 두사람에 의해서 표현된게 아닌가 합니다. 그러므로 이 책의 중심내용이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옹호글과는 너무 먼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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