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팬픽의 최고봉이라는 ‘같은 꿈을 꾸다’를 2부까지 읽었습니다. 무지무지 기네요. 삼국지 팬픽물이 양산되었으나 대부분 조잡하기 그지없는데 같은 꿈을 꾸다는 교당출려와 더불어 제대로 된 작품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교당출려에서 모티브를 딴 건지(?) 싸움은 전혀 못하는 문사를 주인공으로 했는데 이점도 흥미로운 요소입니다.
글을 읽는 내내 작가분의 역사에 대한 지식의 방대함에 감탄하게 되더군요. 삼국지 시대를 넘어 중국역사와 서양사에 대한 해박함은 경이로웠습니다. 대부분 삼국지 팬픽물이 조루에 그치는건 주인공이 활약을 하면 역사가 뒤틀려 그후엔 새로운 구도로 진행되는데 대부분 작가들이 거기서 어떻게 스토리를 진행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역사의 뒤틀림과 같아짐을 절묘히 배치하여 비슷하면서도 다른 스토리와 세계가 흥미롭게 이어집니다. 세력구도도 조조,원소와 같은 군벌들만이 아니라 낙양의 구신들, 각 지역의 호족들-명문가 그리고 이민족으로 다채롭게 묘사하여 내용도 풍성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들의 은원관계와 역사에 미치는 영향은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역사적인 인물의 연의와 다른 재해석도 괜찮았고, 사료를 근거로 인물들의 성격에 대한 묘사도 잘 되었습니다. 다른 주인공을 내세워 삼국지 팬픽을 하나 더 써도 충분하겠더군요.
일독을 권할만한 좋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지적을 하고 싶습니다.
주인공이 문사라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하게 길고 현학적인 표현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어떤 역사 드라마, 소설에도 이처럼 현학적인 말들이 많이 나온건 본적이 없습니다. 작가의 해박함에 경탄하면서도 때론 머리가 아프고 글에 집중을 하기 힘듭니다. 문인들의 지식 자랑은 대부분 평화시대에 있는 일입니다. 전시엔 장수들이 정국을 주도하며 죽느냐 사느냐의 급박한 상황에서 고사성어 읋어대며 중언부언하며 길게 떠들다간 욕처먹기 딱 알맞죠. 한고조가 유학자들을 싫어하고, 고조의 부하인 주발이 글게 말하는 유학자들만 보면 중간에 끓어가며 ‘빨랑 빨랑 본론이나 말하쇼’라고 한 건 유명한 일이죠. 삼국지연의에서도 고급스럽고 긴 문장은 제갈량의 출사표처럼 국정의 전환점이 될 중요한 장계에서나 나옵니다. 일상적인 의사전달에서 일일이 그런식으로 말을 길게 늘어놓다간 쓸모없는 인간 취급당할 겁니다. 더군다나 주인공은 학자라기 보다는 ‘실사구시’를 목표로 하는 관료인데 마치 예송논쟁이나 벌이며 정쟁을 벌이던 사림들처럼 말하더군요. 등장인물들이 중언부언하고 쓸데없는 말만 늘어놓는건 심지어 극중에 작가조차도 지적하는데 왜 본인이 스스로 지적할 정도로 말을 꼬는지 납득이 안갑니다. 물론 논쟁이 흥미로웠던 부분도 있습니다. 월족과 외교문제에 대한 논쟁이나, 낙양에서 황제에 대한 입장에 대한 각 세력 책사들의 배틀은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할수 있죠.
불필요한 꼬아대기는 언쟁뿐 아니라 전투책략에서도 보입니다. 전쟁사를 보면 하나의 전투에서 기책은 그리 많이 쓰이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한두개죠. 책사의 계책이 복잡하면 장수와 병사들이 그걸 실행하기 힘들고, 중첩된 기책은 구상대로 진행되기 보다는 아군을 위험에 빠뜨릴 공산이 크기 때문입니다. 소설에서 전투가 흥미롭게 하기 위해선 한두개의 기책은 반드시 들어가야 하고 3,4개 까지는 머리싸움이 대단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문관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니 그정도는 나와야 겠죠. 그러나 전투마다 5,6,7,8,9, 의 책략이 나오며 끊없이 꼬아대는데 이해하기 힘들뿐 아니라 현실감 마저 사라집니다. 또 한가지 이해하기 힘든건 그토록 복잡하게 책략을 쓰는 주인공이 왜 정보수집에는 열을 올리지 않느냐 하는겁니다. 여러 세력에 간자를 두어 정황을 파악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데 막상 그런건 하지 않고 정보는 매번 상황 닥쳐서 획득하곤 합니다.
유비를 위선자로 끌어내리고 진정한 정의를 추구하는 인물로 주인공을 내세웠습니다. 백성을 편안하게 하자는 대의를 내세워 절차상의 옳바름마저도 추구하는 어려운 길이죠. 하지만 작가분도 등장인물들의 표현을 빌어 까지만 ‘송양지인’ 으로 여겨질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현실정치가가 인정과 바름을 추구하는데도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주인공의 착한척은 오히려 위선에 가깝게 느껴질때가 있죠. (연의상 유비랑 뭐가 바른데?)
편협한 주군을 모시고 정책을 잘 펴가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주군을 어질게 만드는 책사라?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소하조차도 (비교적 배포가 큰 군주인) 한고조의 의심병 때문에 일부러 자기명성을 떨어뜨리는 행위를 해서 살아남으려 했던건 뭘까요? 극중에도 나오지만 진소왕을 왕위에 올리고 엄청난 공적을 세운 양후는 그 존재감이 지나치게 강하다 보니 왕의 질시와 견제를 받아 권력을 내려놔야 했습니다.
역사상 인재들과 백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때론 어리석을 정도로 어진 인물이 난세에 전쟁과 행정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둔다라? 공자는 왜 현실정치에 실패했겠습니까? 세종대왕은 태종의 위협이 될만한 공신-외척들을 숙청했기에 인의를 내세웠음에도 뜻대로 정사를 펼치며 성과를 낼수 있었죠.
지나친 선행은 주인공을 간간이 곤궁에 빠뜨리나 그때마다 쌓아둔 인덕으로 주변의 도움을 얻어 최상의 결과가 나온다는 권선징악 스토리가 매번 반복됩니다. 세상만사가 이런식이면 착하게 살 사람이 한둘이겠습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한두번이라면 모를까 매번 평소쌓아둔 공덕에 의한 기적적인 도움이 나오면 아무리 소설이라 해도 작가가 현실감을 상실했구나라고 밖에 볼수 없습니다. 더 웃기는건 이런 주인공의 인(어짐)을 민망할정도 추켜세우는 말들이 계속나옵니다. 주인공의 객관적인 공적이야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주인공만의 비현실적인 정의와 어짐을 찬양하는 걸 볼때마다 자화자찬도 적당히 했으면 싶더군요. 주인공은 때때로 성인군자 행세를 하거나 현학적이고 이상론에 사로잡힌 조선중기의 사대부들과 비슷한 언행을 합니다. 그럼에도 극중에서 현실 인정못하는 고집쟁이로 까인 공융이나 위선자로 취급받는 유비와 (작가가 주장하는) 차별화는 지나친 주인공 버프가 아닐까요?
이 작품이 좀더 현실감 있으려면, 작가가 처음 언급했던대로 소하와 비슷한 주인공을 만들어야 합니다. 목민관으로서 고뇌, 행정가로서 업무, 전투에서는 기책보다는 보급문제를 보다 상세히 그려갈 필요가 있죠. 행정/경제적인 문제는 노숙과 같은 인물들 영입으로 해결해 놓고, 뜬구름 잡는 현학적 논쟁과 주인공의 재능(범재)을 벗어난 기책*기책은 이 작품의 한계이자 교당출려에 비해 부족한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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