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악한 늑대
작가 : 넬레 노이하우스
출판사 : 북로드
원제 - Boser Wolf, 2012
작가 - 넬레 노이하우스
그림 형제의 동화집에 나오는 '빨간 망토 이야기'라는 동화가 있다. 할머니 댁에 심부름 가던 어린 소녀가 늑대의 꾀에 넘어가 목숨을 잃는 내용이다. 길가다가 한눈팔지 말고 남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는 교훈을 주는 동화인데, '남자=늑대'라는 이상한 공식과 어린 소녀의 조합 때문에 은근히 야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무래도 늑대가 소녀의 할머니 분장을 하고 침대로 소녀를 끌어들이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또한 사람들은 '먹는다'라는 말에 중의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니까.
'빨간 망토 이야기'의 버전이 워낙에 많아서 순서가 다르기도 하지만, 할머니로 변장한 늑대와 빨간 망토의 대화는 대략 이렇다. 처음에는 눈이 왜 그리 크냐는 소녀의 질문에 늑대는 널 잘 보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그 다음에 귀는 왜 크냐는 말에 널 잘 듣기 위해서, 큰 손에 대한 물음에는 널 잘 잡기 위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은 왜 크냐는 소녀의 말에 늑대는 널 잘 먹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늑대는 소녀를 한 입에 삼켜버린다.
뜬금없이 왜 갑자기 동화 얘기를 하냐면, 이 책의 표지 때문이다. 표지에는 빨간 두건을 쓴 어린 소녀가 바구니를 들고 서 있다. 그런데 헐? 자세히 보면 소녀가 아니라 늑대다. 게다가 방 안의 물건들은 깨져있거나 비뚤어져있다. 한바탕 바람이 휘몰아친 것 같은 느낌이다. 이미 소녀는 늑대에게 먹혔고, 이제 늑대가 또 다른 소녀들을 유혹하기 위해 변장을 한 것 같다. 표지는 너무도 적절하고 확실하게 책 내용을 얘기하고 있다.
작가는 ‘빨간 망토’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살아남거나 죽은 소녀들 그리고 늑대에게 잡아먹히며 비명을 지르는 소녀까지. 그 와중에 늑대는 동화의 할머니처럼 친절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소녀에게 다가간다. 처음에는 모습을 보는 것에 만족하다가, 목소리를 듣고, 만지고 결국엔 그들을 먹어버린다.
그렇다. 이 책은 벼락 맞아 똥통에 빠져 죽어도 시원찮은 소아성애자들이 득실대는 소설이었다. 아, 진짜 읽으면서 화가 났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어쩌면 이리도 딱 맞아떨어지는 지……. 어떤 식으로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어린 소녀들을 공격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은밀히 자기들의 욕망을 즐기고 꼬리를 숨길 수 있는지 늑대들은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아는 게 힘이라는 말을 이런 식으로 써먹다니, 쓸데없이 부지런한 놈들이다.
그 때문에 상처 입은 사람만 부지기수로 늘어났다. 그들은 그 누구에게서도 위로받지 못하고 고통을 드러내지도 못한 채 죽거나, 모든 것을 혼자 떠안고 평생을 괴로워하며 살아야했다. 아, 요즘은 성폭행 피해자가 아닌 ‘성폭행 생존자’라고 부른다. 늑대의 이빨과 발톱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도 늑대의 공격에도 물러서지 않고 진실을 밝히려는 용기 있는 생존자와 조력자들이 등장한다. 조직적인 늑대 사회를 파고 들어가 생명의 위협을 받지만, 절대로 굽히지 않았다. 신체적으로는 늑대에게 굴복했을지라도, 정신만은 지키겠다는 다짐 같았다.
동화의 어떤 버전에서는 사냥꾼이 늑대에게 공격받던 빨간 망토를 구해준다. 작가 역시 사냥꾼을 등장시켰다. 바로 주인공인 경찰 피아와 그녀의 동료들이었다. 동화에서는 후반부에 등장하지만, 책에서는 초반부터 거의 그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여기저기 숲에 흩뿌려져있는 증거를 모으면서, 그들은 늑대와 생존자와 조력자를 구별하고 찾아 나선다.
그 과정을 따라가는데, 참 힘들었다. 빨간 망토가 겪은 일들이 하나둘 밝혀질 때마다 책에서 잠시 눈을 떼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그냥 책꽂이에 넣어두고 다른 책을 읽을까? 왜 하필이면 이런 끔찍한 일들로 가득한 책을 골랐을까? 표지를 보는 순간 이런 내용일 것이라고 알았잖아? 굳이 다시 한 번 인간에 대한 불신감과 회의를 느끼게 하는 책을 고를 필요는 없었잖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에서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빨간 망토가 살아남는 과정을 보는 것이, 늑대를 쫓는 사냥꾼의 뒤를 따르는 것이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습성을 알아야 더 이상 늑대가 숲에서 발붙이지 못하게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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