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대운(龍大雲) 編著 『섬수혼령탈혼검(閃手魂鈴奪魂劍)』을 읽고…….
"개인적인 감상인지라 다소 반말조로 쓰여 있습니다. 그 점 양해해
주십시오."
우선 이 책은 결코 "용대운의 책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
다. 위의 '편저(編著)'라는 말에서 보이듯이 원작자는 따로 있고 용대
운은 단지 이 글을 개작했을 뿐이다.
그러니 혹시 용대운류 무협의 통쾌함과 사나이다움을 원한다면 조
용히 책장을 덮고 다른 책을 고르도록 하자.
이 말은 즉 본작 섬수혼령탈혼검은 용대운의 무협과는 아주 다르다
는 뜻이다.
원제는 "천수검(千手劍)"이라는 중국무협이라는데 아쉽게도(사실 별
로 안 아쉬웠다) 저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어서 1권을 보면서 제
일 먼저 뭔가 원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각설하고…….
처음 시작 부분은 왠지 용대운의 냄새가 약간 나기도 했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 전혀 달랐다.
가장 근본적인 부분으로 주인공의 성격이 용대운 소설의 주인공들
과는 아주 틀렸다.
냉혹과 비정, 그리고 그 속에 감춰져 있는 사나이의 뜨거운 마음,
그리고 인간적인 부분이 용대운이 그리고 있는 주인공이라면 이 소설
의 주인공인 남환악은 냉혹하다고 작가가 열심히 주장만 하는 남자다.
…… 강호에 위명이 쟁쟁한 우내십절의 일인인 섬수혼령탈혼검 남
환악은 친구라고 믿었던 고소천의 암계에 빠져 삼 년을 절곡의 고동
에 갇혀 죽음보다 못한 삶을 유지하며 복수를 꿈꾼다.
우연히 적수성이라는 늙은 상인의 도움으로 이 고동에서 풀려나게
된 남환악은 마침내 복수의 첫걸음을 강호에 내딛는데…….
어떤가?
도입부 스토리만 보면 피가 끓어오르지 않는가?
"아, 이제 곧 강호는 냉혹한 살성으로 변한 남환악에 의해 피바다로
변하겠구나."라고들 생각하시겠지만 천만의 말씀.
3년이라는 긴 세월을 타의에 의해 갇혀 죽는 것만도 못한 생활을
했다면 어딘가 처절함이 느껴져야 하는데 남환악은 처절함은 고사하
고 풀려나기가 무섭게 전혀 구김살 없는 예전 성격을 보여준다.
인생의 대단히 큰 변환점을 지나고도 성격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아
소설 전체가 어색하다고나 할까.
큰 사건 하나 없이 그때 그때 닥치는 에피소드, 우연한 만남과 이로
인한 위기와 극복이라는 전형적인 패턴을 매권 반복하다가 결국 이야
기는 고소천을 죽이고 끝나버린다.
물론 보는 관점에 따라선 남환악이 피바다를 만들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 피바다가 억지로 짜 맞춘 인과관계에 의해 어설
프게 이루어져 보고 있노라면 하품만 나온다는 점이다.
덕분에 읽으면서 지루함을 참느라 무척 애를 써야 했다.
마지막 권인 4권의 말미에 보면 편저자인 용대운이 직접 이 글에
대해 써놓은 글이 있다.
이 글로서 본작 섬수혼령탈혼검에 대한 평을 마치고자 한다.
"이 작품은 예전에 고등학생 시절 때 읽은 것이다.
벌써 이십오 년 전의 이야기이지만 당시에는 무척 재미있고 흥미진
진하게 읽었었다.
이 작품을 최초의 편역 작품으로 선정한 것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
했기 때문이다.
허나 막상 작업에 들어가고 보니 당시의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너무
나 늘어지고 지루한 사건 전개 때문에 몹시 애를 먹었다.
주위의 작가들은 하필이면 왜 이런 작품을 골랐느냐고 의아해 하기
도 했다.
엉성한 문장과 대책 없이 장황하게 계속되는 의미 없는 대사의 남
발, 그리고 아무런 인상도 주지 못하는 밋밋한 캐릭터들과 별다른 개
요도 없이 벌어지는 사건들…….
그야말로 이십여 년 전의 분위기와는 너무도 판이하게 달랐다.
분명 같은 작품, 같은 글인데 어째서 이렇게 느낌이 다를 수가 있을
까?
이게 바로 중국의 번역작품이 현재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외면당하
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당초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작품을 수정하고 보
완하고, 가다듬었으나 아직도 너무나 많은 미진함이 남는다.
하지만 적어도 예전의 작품처럼 엄청나게 지루하거나 아무런 매력
도 없지는 않을 거라는 위안을 스스로 가져본다."
……섬수혼령탈혼검 278∼279p 중에서
가장 정확한 평이라 생각한다.
편저자 스스로도 이렇게 생각하는 책을 구태여 찍어낼 필요가 있었
을까?
차라리 신인의 작품을 하나 더 찍어주는 게 나은 일일 뻔했다.
별로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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