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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마당

각종 토론을 위한 곳. 상대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외에 의제에 대한 제한은 없습니다.



작성자
Lv.6 sunpawor..
작성
18.07.06 20:38
조회
40

친일파들이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지도자는 누구일까요???

이승만 입니다..

왜???...... 무엇 때문일까요????

 

이승만은 오랜 망명생활로 국내 정치기반이 취약하였고, 해방 직후 가졌던 좌익과의 협상이 결렬되자 우익, 친일파를 기반으로 권력을 유지하였다...

 

즉 귀국 초기 대동단결론을 주장하며, "선통일, 후 친일파 정산" 을 주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권력 유지를 위해 대한민국 수립 후 친일관리를 대거 등용하였다..

 

친일파에겐 이승만은, 친일파를 구원해 주는 구세주 였다...

 

반민족행위처벌법은 948년 9월 22일 법률 제3호로 제정된 법률로 반민족행위자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반민특위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특별담화를 발표하거나, 특위 위원들에게 직접 압력을 가하는 등 반민특위의 활동을 노골적으로 방해하였다...

 

* 정부와 국회의 위신을 보존하여, 반민 법안을 단속한 시일내에 끝마치도록 할 것이다...

(중략).... 지금 반란 분자와 파괴 분자와 각처에서 살인, 방화를 하며 인명이 위태하고 지하공작이 긴밀한 이때, '경관의 기술과 성격(즉 친일파 경찰을 뜻함)' 이 아니며, 사태가 어려울 것인데, 기왕에 "범죄가 있는 것(즉 친일행위) 을 들춰내서 함부로 잡아들이는 것은 치안 확보상 온당치 못한 일이다...

 

--1949년 2월 2일, 득별 담화문 '반민족 실시에 대하여' --

 

반민족행위 처벌법안이 발의되자, 친일파들은 국회와 서울 시내에 협박장을 뿌렸다..

그 내용은 -- "민족 처벌을 주장하는 놈은 공산당의 주구다" --

이승만도 이에 동조하여 -- "친일파에 대해서 말을 많이 한 것은 공산당이다" -- 라고 말했다...

(놀라운 사실이지요???)

 

결국 반민특위는 국회 프락치 사건과 , 6.6 특경대 습격 사건등이 결정타가 되어 해산하고 만다..

각 사건의 주모자는 내무차관 "장경근" 이며, 그의 지시로 이루어 졌다..

그러나, 특경대 해산에 결정적인 역활을 한 사람은 이승만 이었다...

 

-- "내가 특별경찰대를 해산시키라고 경찰에게 명령한 것이다...

(중략).... 특별 경찰대는 국립 경찰의 노련한 경찰관이자 반공투사 최운하(실제로 일본 치하 , 독립군의 고문을 담당한, 가장 악질적인 친일형사)" 등을 체포하였는데.... (중략)..... 현재, 특위에 의한 체포의 위협은 국립경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즉 , 악질 고문형사 "최운하" 를 반민특위서 처벌하면 , 경찰 활동에 심각한 위해가 된다는 뜻입니다..)

 

--- "1949년 6월 8일 AP통신사와의 회견 중 ' ----

 

이때문에 반민특위 특경대는 "친일파들과 결탁한 이승만 정권의 탄압" 에 의해 해산 되었다...

이러한 이승만의 친일파 포용은 "민족문화의 정상적 발전을 저해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약화시키는 요인" 으로 남게 되었다...

(즉 이러한 이유로 '자유민주 진영'은, 대대로 '공산주의 진영' 으로 부터 "반도덕적, 반윤리적" 이란 비난과 비방을 받게 되었다... )

 

뿐만 아니라, "제주 4.3사건, 여순반란사건" (즉 친일파 경찰이 양민을 자극해 반란이 일어 났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장면 부통령 암살사건 등의 배후에는 친일 경찰이 있었다고 한다..

 

"노덕술, 이구범, 최운하 " (이 분들의 이름을 잊지 마십시요..) 등은 일제 강점기 부터 고문을 잘해서 출세한 사람들 이다...

이들은 --"반공" -- 을 이용해, 국민들에게 공포를 심어 줬다..

당시에 , 친일행위 청산을 주장하는 애국인사는 "뻘갱이" 로 몰리기 쉬웠다고 한다...

(이러한 "뻘갱이" 주장은, 요즘도 친일파들이 가장 잘 써 먹는 수법이다..)

 

이승만도 친일파 청산 주장은 공산당과 연관성이 긴밀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럼, 이승만은 뛰어난 업적(" 이승만, 그는 누구인가???" 참조) 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애국지사들은 이승만을 비판할까???

 

1. 인격적 비판

이승만은 자만심이 강하고 독선적인 독불장군이었다고 한다...

측근이었던, 허정에 의하면, 이승만은 자신을 대단히 높게 평가 하였으며, 한국인 중(즉 애국지사 포함한 모든 한국 국민을 뜻함.) 자신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사람이 없고, 모두 자기 아래로 봤다고 한다...

 

즉 , 누구든지 자신에게 복종하고, 따르기만 하면, 그는 그 사람을 동지로 간주하였으나, 그 반대로 그 외의 사람은 모두 그의 "적" 이었다고 평가 하였다...

 

또한, 허정은 " 그가 대단히 성격이 급하고 남들과 쉽게 싸웠으며, 주요 정치 문제에 대해 , 타협이 없는, 대단히 완고했다" 고 평하였다...

 

이러한 이승만의 인격적 결함은 정치 면에서, 정적을 용서 않고, 때때로 고도의 술책과 잔인성을 주저 않고 드러내, 독재의 전형적인 감을 주었다...

 

초기에 그의 신임을 받았던 장면에 의하면 , "그 분의 성격 소치인지, 자존심이 너무 지나쳐, '나' 외에 이 나라를 다스릴 사람이 안중에 보이지 않다" 는 듯 행동해 , 독재의 전형적인 감을 주었다고 진술했다..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도 비위에 맞지 않으면, 공포 안하기가 일쑤이며, 그의 유시나, 담화가 법률 이상의 위력을 휘둘렸다..

 

구속된 국회 의원에 대한 석방 결의도 아랑곳 없고, 헌법 기관인 참의원, 헌법위원회, 탄핵 재판소 등도 필요 없다고, 구성해 주지 않았다...

 

2. 위임통치 청원 사건에 대한 비판

1919년 미국 월슨 대통령에게 국제연맹의 감시하에 한국의 독립을 청원하는 청원서를 올리고, 후에 다시 국제연맹의 위임통치(즉 신탁통치를 뜻함...) 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

 

이 때문에 이승만은 신채호, 신성모 등 임시정부의 무장투장파와 갈등 하였고, 박은식 일파의 공격을 받았으며, 결국 임시정부 요인들에 의해 탄핵까지 받게 되었다...

이때, 임정에서 이승만의 편을 들던 인물은 내무부총장 김구, 의정원 의장 최창식 등 소수 였다...

 

단재 신채호는 ---"이완용은 있는 나라 (조선) 을 팔아 먹었지만, 이승만은 없는 나라를 팔아 먹었다" ---- 라고, 성토를 했다...

 

또한, 이승만은 임시정부 대통령 직을 임하면서도 임시정부 청사가 있는 상하이에서는 거의 활동 하지 않아, 1925년, 탄핵을 당한다...

 

이에, 이승만은 그 보복으로, 미국내 재미 한인 동포들에게 , 임시 정부로의 송금(헌금)을 못하게 중단 시켰다..

 

3. 국민회 자금 유용 의혹

박용만과 의 갈등 중 하와이 대한인 국민회 활동에서 자금을 유용(즉 돈을 횡령했다는 뜻) 했다는 의혹을 끊임 없이 받았다...

 

이승만은 하와이에 온 초기부터 하와이 실력자이며 군사양성에 열중하는 박용만을 맹렬하게 비난했고, 박용만 반대 세력을 규합했다...

이승만은 대한인 국민회의 운영권, 곧 회비관리권(즉 돈을 거둬 들이는 권리, 수금권리를 뜻함) 을 움켜 쥐려고 온갖 공작을 벌였으나 쉽게 실현되지 않았다..

 

이에 박용만은 이승만을 피해 다른 농장으로 군영을 옮겨 가면서 군사 훈련을 거듭했으나, 두 사람의 대립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되었다...

 

1910년 대 중반, 일제는 밀정을 통해 박용만의 군사 훈련 사실을 캐내어 , 이 사실을 주미 일본대사관을 통해, 미 국무장관에게 항의했고, 국무장관은 하와이 총독에게 그 사실을 알아 보게 했다..

 

결국, 1918년 박용만이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을 받자, 이승만은 이때다, 하고 다음과 같이 증언(진술) 했다...

 

----"박용만은 미국 영토에 조선국민군단을 설립하고 , 배일 활동을 하면서 일본군함 "출운호" 가 호놀룰루에 도착하며 파괴하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이는 미국과 일본 사이에 중대 사건을 일으켜 평화를 방해 하려는 짓이다.."----

 

(진짜 안 믿어 지는 사실일죠???... 이승만이가 한국 사람인 지, 미국 사람인 지, 분간이 안가는 발언이죠???)

 

박용만은 온갖 음모에 시달리면서 주도권을 잃어 갔다...

이승만은 자금횡령 혐의로 대한인국민회 간부들을 고소했고, 대한인국민회 간부들은 법정에서 온갖 수모와 고통을 받아야 했다...

이승만과 대한인국민회 사이에,서로 벌인 소송 사건이 10 차례나 있었다..

 

대한인국민회와 이승만파(동지회)가 서로 테러를 가하기도 하고, 대한인국민회 대표회의장에 총격이 가해지는 일도 벌어졌다..

 

이런 분쟁 속에서도 재미한인 동포는 극도로 애국심을 발휘해 "자기는 굶어 가면서도" 돈( 즉, 독립기부금)을,열성적으로 헌금했다..

얼마나 많았나 하면, 1915년 1,523달러에서 해마다 늘어, 1918년도에는 3,775달러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이승만은 '임시정부 대통령' 에 선임돼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를 가지 않고, 계속 미국에 거주한 이유다...)

 

대한인국민회 계열 재미한국인들은 이승만을 두고 "협잡배" 라 매도했고, 돈을 너무 밝힌다고 비난을 가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이승만과 대한인국민회가 독립자금 문제로 분란을 겪어 끊임 없이 의혹을 받고 있다..

(참고로,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공식적으로 발족되자, 국내외에 걸쳐 많은 독립자금이 들어 왔는데, 1919년 미주의 대한인국민회의에서 임시정부에 공식적으로 송금한 돈이 3만 6000 달러 였다고 한다..

1920년 이승만이 미주에서 모금한 돈, 200만 달러를 가지고 상하이에 왔는데, 오늘날 가치로 보면. 무려 2억달러가 된다..)

 

이승만이 '구미위원부'를 발족한 뒤, 미주 동포들이 낸 독립자금을 구미위원부에서 독점적으로 사용하고, 임시정부로 독립자금을 보내주지 않아, 독립자금 모금을 두고 다시 주도권 분쟁이 야기되기도 했다..

 

4. 박요안, 안창호 계열의 비판

박용만 계열 인사들은 이승만이 교포사회에서 잔악한 "위험인물" 이라는걸 서슴 없이 증언하고 있다..

 

'재미한인 50년 사' 를 저술한 김원용에 의하면,

' 이승만은 미주 한인사회에서 파쟁과 모함과 비난과 재판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마침내, "대한인국민회" 와 별도로, 자기를 지지하는 "동지회" 라는 단체를 따로 조직해서 대한인국민회와 적대관계를 지속하여 '대한인사회를 분열' 시켰다"

고 비판 하였다..

 

5. 사법살인에 대한 비판

이승만은 '진보당 사건' 을 빌미로 정적 조봉암을 숙청하기 위해 사법살인을 자행했다...

 

사건 당시 이승만은 직접 국무회의에서 "조봉암 은 아직도 공산당원이 틀림 없다..

이러한 위험분자는 제거 되어야 할 것이다...."

라고 발언 하는 등 본 사건에 깊숙히 관여한 정황이 있다..

 

이후 조봉암은 "평화통일" 을 주장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보안법에 의해 간첩혐의로 사형되었다...

 

2007년 9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조봉암에 대한 사과와 피해구제, 명예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처를 취해 줄 것을 국가에 권고했고,

2008년 8월 조봉암의 유족들이 재심을 청구.

결국 2011년 1월 20일 대법원은 오랜 시간의 토론을 거쳐 조봉암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진보당 사건과 조봉암의 사형 집행은 이승만 정권하에 이루어진 대표적 사법살인으로 남게 되었다..

 

6. 6. 25사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북한의 기습으로 한국전쟁이 반발하자, 이승만은 방송을 통해 '북한군은 곧 격퇴될테니, 피난 가지 말고 안심하라' 고 발표하곤, 진작 이승만 본인은 대전에 내려가 사흘을 보낸 뒤, 다시 7월 1일 새뱍에 열차로 익산(이리)에 피난하였다가, 다시 7월 2일 목포에 도착하여 배편으로 부산에 간 뒤, 7월 9일 대구로 옮겨 갔다...

 

전쟁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 한국 국민들은 북한군이 서울 미아리 고개 까지 쳐들어 오자 , 비로써 피난을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북한군이 한강을 넘어 진격할 것을 우려한 신성모 국방장관의 지시로 '한강철교' 가 폭파되자, 피난 가지 못한 많은 반공투사가 북한군의 인민재판에 의해 사살되었고, 또 수 많은 양민들이 북한군에 의해 강제노역을 당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들의 불운은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인민군에 협력했단 이유로 "뻘갱이" 로 몰려 , 또 수 많은 양민들이 사형 당해야 했다...

 

7 . 보도연맹사건

'대국민 사상통제 목적' 으로 조직된 반공단체 "국민보도연맹" 에 가입한 회원들이 조선인민군의 점령지대에서 부역행위 등 협조한다는 사실을 보고 받은 이승만은 김창룡의 CIC 특무 헌병대에 지시해 , 인민군 치하의 지역외 다른 모든 지역의 보도연맹원을 잡아 처형하도록 명령했고, 실제로 이 명령은 충실히 실행돼,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처형 당했다...

이를 보도연맹 사건이라 한다...

 

당시 보도연맹에 가입자들 가운데, 실제 공산주의자 외에도 많은 무고한 양민들이 공무원의 실적을 위해 문서에 기록되거나, 또 배급 수령을 위해 가입한 순진한 양민들도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진행된 보도연맹원 처형자들의 유해나 유적 발굴 조사는 한 때 계속 진행 돼었다...

 

8. 국민방위군 사건

중공군의 한국전쟁 개입으로 인해 병력이 부족하자, 중공군 및 조선인민군에 대항하고자 제 2국민병을 편성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국민방위군이다...

 

그러나 국민방위군에 보급할 군수보급 물자를 고급 장교와 간부들이 부정 착복, 횡려하여 수 많은 국민방위군들이 굻어 죽었거나, 추위에 얼어 죽었다...

 

이를 국민방위군 사건이라 한다...

 

9. 거창 양민 학살사건

공비 소탕 목적으로 500 여 명을 박산에서 총살 하였다..

이에 조사할 목적으로 국회조사단이 파견되었으나, 경남지국 계엄민사 부장 김종원 대령은 국군 1개 소대로 하여금 공비로 위장, 가장하여 위협 총격을 가함으로써, 사건을 은폐하려 하다가 발각 되었다...

 

국회 조사 결과 사건의 전모가 밝혀져 내무, 법무, 국방 의 3부 장관이 사임하였고, 김종원, 오익경, 한동석, 이종배 등 사건 주모자들이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실형을 선고 받았으나, 실제로 얼마되지 않아 , 모두 특사로 석방되어 아무 죄값도 받지 않고, 풀려 났다...

 

이 사건은 국민방위군 사건과 함께 이승만 정권의 평판을 크게 실추 시켰다..

 

10. 이승만의 권력욕(집권욕)

1954년 5월 6일 제네바 정치회의에 참석한 6.25전쟁 참전 16개국 대표들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소련과 중국의 동의를 얻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를 해체하고, 국제연합 감시하에 민주 선거를 통해 한반도 에 "통일정부" 를 수립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설득시키기 위해 방한했던 미국인 로버트 올리버 박사의 의견을 맹렬히 반대하여, 끝내 대한민국 통일정부 선거안을 철회 시켰다..

 

11. 언론탄압에 대한 비판

1955년 '동아일보 괴로 오식 사건', '대구매일신문 피습사건'. 1958년 '경무대 똥통사건', '함석현 필화사건', 1959년 '경향신문 페간사건' 등은 대표적 언론탄압으로 비판 받고 있다...

 

역사학자 박한용, 언론인 김삼웅 등 다수의 인사가 이승만 정권의 언론탄압에 대해 비판하였다..

 

12. 사사오입과 3선개헌

1948년 대한민국 제헌헌법상 대통령을 국회에서 간접선거로 선출하도록 규정.

1952년 대통령 직선제로 개정(발췌개헌), 이승만 중임(2선대통령취임)

1954년 11월 27일 김두한을 제외한 전 자유당 의원과 다수의 무소속의원의 서명 참여로 국회에서 비밀투표를 한 결과 , 재적의원 203명, 참석의원 202명, 찬성이 135표, 반대가 60표, 기권이 7표...

 

당시 개헌안이 가결되기 위해선 136명이 되어야 했다..

(재적의원 2/3는 135.33명 이므로 자연인은 136명임.)

그래서 당시 사회자 였던 부의장 최순주는 부결을 선포했다..

 

그러나 자유당은 수학의 4사5입을 적용해 , 135.33명은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으며, 0.33이란 자연인은 존재할 수 없으므로, 반도 안되는 소수점 이하는 삭제가 이론상 옳다고 주장,,

자유당은 의원총회를 통해 국회에 재론, 이에 반발한 야당의원들이 모두 퇴장한 가운데, 자유당 의원들만 남은 자리에서 125명 중 123면 찬성(반대 2표, 김두한, 민관식의원)으로 개헌안 통과 결정(11월 29일)

이를 정부로 이송, 개헌안 공표,발효하였다..

 

이미 부결선언한 개헌안을 번복 가결 시킨 행위(위헌).

야당이나 국회의장, 사회자의 의견 무시한 행위(국회법 위반)

이론적으로도 필요충분 가결선은 136명이어야 함데도 이치에 맞지 않는 이론을 적용 행위(비법리, 비논리 강제 적용)

 

이 사건은 국민들을 크게 자극했다..

이러한 행위가 가능했던 것은 자유당 정부의 독재적 행태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은 당선되어 3선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는 자유당의 장기 집권과 독재가 연장되는 계기가 됐다..

 

결국 이승만은 4선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부통령 이기붕의 부정선거로 인해 ,독재자란 오명을 쓰고 해외로 망명했다...

외교달인 이승만의 최후의 결단이었다..

 

결국 한국은 큰 혼란이나 큰 댓가 없이,(물론 소수한 피해는 없을 수 없으나..) 민주주의를 꽃 피울 수 있었다..

 

 



Comment ' 2

  • 작성자
    Lv.6 sunpawor..
    작성일
    18.07.06 20:44
    No. 1

    이승만은 한국을 자유민주국가로 선택하게 한 공로자이지만 , 반대로 친일매국노를 극구 옹호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승만의 공과는 반반이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 저격수R
    작성일
    18.07.15 15:17
    No. 2

    이승만 덕분에 현 문재인을 포함한 민주당 친일파들이 잘먹고잘사는거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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