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사이 공모전에 관한 얘기들로 한담과 정담이 수군수군했습니다. 개중에 '대세인 장르가 아니면 역시 주목을 못 받는구나'하는 말이 종종 보이더군요. 그러다 엊저녁, 비평란에 어떤 분이 장르문학시장을 맹비난하는 몸쪽 핵직구(?)를 던지고 가셨습니다. 덕분에 비평란이 모처럼 다시 달아올랐고, 얼마 후에는 비슷한 얘기가 정담과 토론마당까지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해당 비평글 자체에 대해서는 다소 과도한 일반화와 지나치게 공격적인 어조 때문에 추천을 누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비추를 누르지도 않았는데, 불쾌하지만 글쓴이가 언급한 내용에 어느정도 공감이 갔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실제로 저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제 눈으로 확인했으니까요.
비평글 작성자분의 말씀마따나, 오늘날의 현실에 1차적인 책임이 있는 것은 작가들일것입니다. 스스로 역량을 갈고 닦아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독자들에게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당장의 현실에 안주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니까요. 프로 작가로의 등단 허들이 좀 지나치게 낮은 이유도 있고 말이지요.
그런데 과연 작가들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여기에 대해서 전 생각이 좀 다릅니다.
문피아의 비평란을 기웃거리다 보면, 이따금 유료연재나 투데이 베스트 TOP 랭크를 차지하는 작품들이 비평의 대상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인기작이라고 하지만, 까일 때는 그야말로 사정없이 까입니다. 추천과 비추천의 비율도 추천 쪽이 압도적이고, 비평글에 달리는 댓글들도 '정말 그러하다', '이 작품 왜 이렇게 인기있는지 모르겠다'하는 내용으로 으레 점철되곤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혹평을 듣고 나서 그 작품의 순위가 내려가느냐? 아닙니다. 거의 항상 떨어지기는 커녕 순위 그대로 유지합니다. 심지어 비평 후에 순위가 오히려 더 상승(!!!)하는 경우까지 본 적 있습니다. 이후로도 해당 글의 작품성 결여가 지속되고 있음을 비판하는 얘기가 군데군데서 터져나오지만, 변하는 것은 없고 언제나처럼 베스트 상위권에서 승승장구합니다.
문피아뿐만이 아닙니다. 온라인 상의 다른 커뮤니티에서든, 오프라인에서 지인들과 나누는 대화에서든 꼭 나오는 얘기가 '요새 웹소설 왜 이리 똑같은 글들만 나오냐?' 입니다. 거기서 한술 더 뜨면 '글수준 왜 이렇게 낮냐? 시놉시스는 제대로 짜놓고 글쓰는거냐?' 등 글쟁이로서 듣기 훈훈한(...) 말들까지 자주 나옵니다(실은 저것보다 훨씬 험악한 말이지만, 제 선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순화시켰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소위 '대세물'에 비판일색인 것과는 별개로, 유료 웹연재는 그 '대세물'들이 독식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뭐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그 정도로 다들 싫어하고 수준낮다고 보는 글이라면 진작에 혹평에 파묻혀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하는게 순리인데, 작금의 상황은 그와 정반대의 상황이니까요. 그렇다는 것은, 실제 구매수요를 담당하는 독자층의 관심이 이런 '대세물'에 편중되어 있다고 해석하는게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전업작가는커녕 아마추어 작가도 못되는 제가 다른 작가분들의 입장을 대변한다는게 우습지만, 최대한 할 수 있는 선에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저처럼 안정적인 생활을 기본적으로 보장하는 본업을 가진 상태에서 취미활동이나 부업으로 글을 쓰는 경우, 조회수와 같은 연재성적에 목을 맬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편이고, 덕분에 장르의 트렌드에 상관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글을 마음껏 집필할 수 있습니다(더욱이 저처럼 그 '대세'에 해당하는 장르에 별 관심이 없는데다 그런 글을 잘 쓰지도 못한다면 더더욱...). 덧붙여 이번 공모전도 입상은 시쳇말로 '아오안'일뿐 '내 글이 어느 정도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한번 보자'라는 생각에서 참여한 것이고, 때문에 조회수 공개 후 한담이 반쯤 초상집(...) 분위기였을때도 혼자서 '생각보다 선방했네?'하고 끝이었습니다(애초에 기대치가 0을 넘어 마이너스의 극한을 향하고 있었으니까요ㅎㅎ).
그런데 오로지 작품을 통한 수익에 의존해 생계를 부담해야 하는 전업작가나 그런 전업작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작가 지망생이라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당장 글만 갖고 입에 풀칠하면서 먹고 살아야 하는데, 돈 안되는 작품을 억지로 붙들고 있다가는 거리에 나앉아 풍찬노숙을 경험해야 합니다. 때문에 조회수나 선작, 추천수치의 사소한 변화 하나하나에 굉장히 민감하고, 자신들의 고객인 독자층이 주로 관심을 갖는 분야에 전력을 집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출판사들도 소위 '팔릴만한 글'이 아니면 거들떠봐주지도 않으니... 이 상황에서 독자들이 선호하는 장르가 특정한 장르로 편중되어 있을경우,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장르로 입문하여 글을 쓰고 독자들의 기호에 맞춘 스타일로 글을 써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저같은 경우도 지금처럼 글쓰기가 취미생활이 아니라 본업이었다고 하면 그 즉시 지금 쓰는 글은 폐기(...)하고 트렌드를 차지하는 장르로 눈을 돌렸을 것입니다. 안그러면 앞에서 말했다시피 굶어죽으니까요;;;
무릇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특정한 곳에 몰려들 때는 항상 분명한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작가들도 어지간히 바보가 아닌이상, 웹소설이 특정 장르에 편중되는 현상으로 주위에서 들려오는 비판의 목소리를 자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부분의 장르문학 작가들은 '대세물'에 집중합니다. 비록 안좋은 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그 길이 가장 안정적으로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길이기에 그렇습니다. 저는 이것을 나쁜 행위라 비난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는 대단히 자연스러운 행위입니다. 글을 통해 실제로 돈을 벌어야하는 유료연재나 출판이라면 당연한 선택이지요. 이것도 어떻게 보면 서비스 업종인데, 망할려고 서비스업에 뛰어드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또한 '대세물'을 선호하는 독자분들의 성향이 저급하다고 매도할 생각도 없습니다. 어찌 되었건 자기가 돈내고 보고싶은 글을 자유롭게 고르는 행위에 대해 '그러면 안된다'라고 강제할 수는 없으니까요. 일부 독자분들이 장르문학 소설 자체를 너무 가볍게 보고 작품의 완성도에 관심이 없다라고 말씀하시는 경우를 볼 때도 심기가 다소 불편해지기는 하지만 '당신은 틀렸습니다'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장르문학 시장의 문제로 지적받는 소위 '대세물의 범람'을 완화시킬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아주 간단한 해결책이 있습니다.
안보면 됩니다.
갑자기 웬 뻘소리냐고 하실지도 모르겠는데, 사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해결책입니다. 전업작가와 독자의 관계에서는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독자가 명백한 '갑'입니다. 특히 상업성을 전제로 하는 대중문학 작품에서 독자가 작가를 외면한다는 것은 격투게임에 비유하자면 가드 뚫고 들어오는 일격필살기 정도의 직격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순수하게 자신의 문학세계에 집중하는 작가들이야 '안볼려면 보지 말든지'하고 꼿꼿하게 자기 작품에 몰두할 수 있겠지만, 전적으로 독자에게 수입을 의존하는 작가나 출판사에게는 글자그대로 효과 직빵이지요. 팔리라고 내놓은 글인데 팔리지 않으면 그날부로 그 글 내리고 다른 작품 집필 들어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문학시장의 최종 수요층이 바로 독자들입니다. 독자들이 출판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면 그 효과는 가히 무시무시합니다. 돈주고 글을 구매하는 독자들이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면 출판사나 작가나 그저 깨갱하고 따라갈 수 밖에 없지요. '욕하면서도 구매 계속 해주는 것'과 '욕하면서 구매 끊어버리는 것'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변화를 원하시는 독자들께서 직접 실력행사에 나서 구태의연한 장르시장에 경각심을 일깨우실 필요가 있다고 저는 봅니다.
여기에 또 한가지, 비평 문화가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제가 예전부터 평소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말이 있습니다.
'리뷰는 계속되어야 한다'
어떤 문화 컨텐츠 시장을 막론하고, 리뷰, 또는 비평이 없으면 그 시장은 언젠가 말라죽습니다. 비평이란 것은 모름지기 어떤 작품에 대해 정확하고 객관적이며 엄정한 잣대를 거쳐 평가를 매기는 일인데, 바로 이 비평을 통해 소비자들이 시장에 쏟아져나오는 작품들 가운데 옥석을 가려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자정작용이라 할 수 있지요. 엄격한 비평을 거치면서 수준에 미달하는 작품들은 퇴출되고, 작품성을 갖춘 제대로된 작품들이 시장에 나오게 되는 것이니까요. 이 과정만 거쳐도, 현재 넘쳐나고 있는 '대세물'들 중 절반 이상은 추려낼 수 있을거라 장담합니다. 동시에 정말 제대로 쓴 대세물같은 경우 독보적인 군계일학으로 더 주목을 받는 발판이 될 수 있겠지요.
여기서 잠깐 문피아 얘기를 하자면, 문피아 비평 문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사실 문피아 뿐만이 아니라 장르문학 관련 전반이 다 그렇지만, 일단 문피아를 대표적인 예로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게시판 규정이 좀 아리송한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고, 억지로 분리한 감상란과 비평란 다시 합친다는 얘기 나온지 꽤 지난거 같은데 아직도 변한게 없는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올라오는 감상글이나 비평글의 절대 수치 자체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비평란 대신 자신의 서재에 따로 비평글을 남기시는 분들도 몇분 계시지만, 그것을 포함하더라도 너무 적습니다. 비평란의 객관성이 아직 그런대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지만요(제대로 된 비평은 추천이 두자리 세자리를 찍을 때 비추가 1-2개 찍힐까 말까한 반면, 비평을 가장한 동류 작가 비방글은 비추세례로 떡실신당한다든가). 좀 더 적극적인 리뷰 문화가 정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독자는 좀 더 안전하게 양질의 작품을 고를 수 있고,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되돌아보며 기량을 가다듬을 계기로 삼을 수 있으니 정녕 누이좋고 매부좋은게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무료 웹소설 카테고리 클릭시 나오는 문피아 공식 리뷰에 대해서는... 그 글 쓰신 분들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것은 파이프리뷰가 아닙니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문피아 공식 '추천'이라 부르는게 더 맞을 것입니다. 리뷰라는 것은 시놉시스 요약과 장점만을 늘어놓는게 아닙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게임스팟 리뷰처럼 장점은 확실히 칭찬하고, 단점도 화끈하게 지적하는 내용이어야 합니다. 확실한 기준을 잡아 좋은점과 모자란점을 정확히 언급해야 객관성과 공신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키울 때 잘하면 칭찬해주는 것만큼이나 잘못했을때 따끔하게 야단치는 것 또한 필요한 법입니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웹소설 시장에도 게임스팟같이 분석과 비평을 전문으로 하는 공신력있는 사이트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빅릭스급에 해당하는 글은 그야말로 폭풍같이 까고, 정말 걸작이다 싶은 글은 제대로 인정해주는 비평 웹사이트 말이지요. 물론, 개인적인 바람일 뿐이지만...
일단, 제가 말하고 싶은 바는 여기까지인듯 싶습니다. 요 며칠 집필에 다시 난항을 겪고 있는 와중에 문피아의 분위기가 싱숭생숭한 것에 제 기분도 같이 싱숭생숭해져서(...) 이렇게 장문의 조잡한 글을 정담에 남기게 되었습니다. 다만, 여기서 제가 말씀드린 내용은 순전히 저 혼자만의 견해일 따름입니다. 동의하지 않거나 비판하시는 분도 분명 계실 것입니다. 언제나처럼, 저는 그 분들의 의견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
문피즌 여러분, 모두 좋은 하루 되십시오 (__)
Comment '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