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소음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다가 누수 문제로 터진것 같아요. 아버지 입장에서는 관리사무실을 통해 항의해도 스트레스는 남아있죠. 반대로 윗집은 관리사무실을 통하니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거고요.
윗층과 대면해서 해결하지 못했다면 스트레스가 더 쌓였을 거예요. 관리사무실이 아버지의 짜증과 원념을 전해주지 못하니 그런 감정이 오롯이 가정과 일상에 풀릴 수도 있었어요.
층간소음은 처음엔 귀로 들리고, 나중엔 심장을 조여오고, 마지막엔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어요. 층간소음과 비슷한 방식의 고문도 있어요. 가끔 층간소음이 극단적인 사건으로 끝나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직접 윗층 사람과 대면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받은 스트레스를 가해자와 나누어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이에요. 아버지가 자신과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 가해자에게 경고하는 것은 정당한 거예요.
이웃간의 문제는 잘 해결 된 것 같습니다.
저 본문에 쓰인 아버님은 그냥 내친김에 누수문제를 해결하고 싶었고, 해결되었다고 하니 전략적 후퇴를 하신걸로 보입니다. 설령 화가 났더라도 그것보다 더 화가 난 척 하고 싶으셧던 것 같고요.
본문에 보시면 이게 나오는데요.
1. 큰소리 내서 미안하다.
이건 끝내고 싶다. 나의 진정성을 보여주마. 이런 말이고요.
2. 근데 젊은 사람이 그러면 안돼 하면서 <- 또 위에말 반복하려 하시길래 제가 집에 들여 보내고
이건 언쟁을 다시하고 싶다는게 아닙니다.
'나는 당신과 좋게 이야기를 끝내고 싶다.'
'내가 발끈한 것은 젊은 사람에게 무시당하는 듯하여서 그런 것일 뿐,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이해해 다오'
이거 말할려고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보통 옛날에는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 쪽에서 '내가 말투가 좀 그렇다.' 며 물러서면서 서로 합의하는 쪽으로 갑니다. 같이 술을 먹거나 과일을 접대하면서 끝내기도 했고요.
아예 '큰소리친 내가 미안해서 그렇다.' 면서 초대해서 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옛날식은 이런 식으로 좋게 끝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아버님은 그걸 원하는 건데 상대방쪽에서 몰라준거고요.
정말 진짜로 엄청나게 분노해서 윗집에 찾아가서 따질정도면 자식이 집에 돌려보낸다고 해도 안돌아갑니다. 돌아갈 수가 없죠. 자식한테 전쟁터(?)를 맞기고 못돌아가죠. 내가 해결해야지.
그래서 해결은 잘 되었다고 봐야합니다.
다만 자식에게 체면을 구겼다고 여겨지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가 되거든요.
그래서 집에서 아버님을 달래드려야 할 것 같네요.
옛날 방식은 보통 어머님이 이렇게 합니다.
'윗층이 싸가지가 없네. 어른이 말을 하면 이러저러 하다고 말하는게 경우지. 어디서..'
이렇게 울화통을 터뜨리며 화를 내면 아버님이 내심 자기편(?)인 어머니에게 흡족해 하면서도 '그래도 이젠 끝난 일이니까 우리가 이해해줘야지.' 하며 끝이 나고는 했던게 옛날 방식입니다.
어머님은 '내가 당신을 이렇게 소중히 생각한다.' 라고 하고, 아버님은 '내가 이렇게 멋진 아버지다.' 라고 결론내서 끝내는 훈훈한 방식이었습니다.
요즘 사람은 잘 모르는 어두운 시절의 인정방식이죠.
글만 보고 너무 아버님을 경직된 시야로만 보는 듯 하여 글 남깁니다.
Comment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