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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그녀의 마지막 숨소리.

작성자
Lv.23 안녕99
작성
19.02.23 13:05
조회
482


 뜨거운 피가 흩뿌려진다. 


 적의 목에서 뿜어진 피가, 달리는 나의 안면에 쏟아졌다. 내 창에 죽은 자의 마지막 호흡이 내 귓가를 스친다. 난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어깨를 스치는 일본도를 빗겨 피하며 다시 창을 휘둘렀다. 난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갑옷과 함께 벗겨진 적의 뱃가죽이 찢겨 흩어졌다. 


 앞을 막아선 창들을 일격에 치워냈다. 드디어 멈춰 설 수 있었다. 내 창에 꿰인 적장의 마지막 시선이 내게 닿았다.


 마지막 눈빛.


 복부를 뚫린 적장의 입에선 피거품이 올라오고 있었다. 뭔가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다는 간절한 호흡. 조금 더 세상에 머물고 싶다는 그 눈빛.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죽여 달라고 했다.



 “죽여줘!”


 “살 수 있습니다!”


 “놈의 아이가 뱃속에 있다! 죽여줘!”



 난 그녀의 명령에 망설였다. 그녀는 어깨에 화살이 박혔고 허벅지를 베였지만, 달아나면 살 수 있었다. 그 상태로 달아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우리의 도주를 늦어지게 했고, 이제 우리를 쫓는 놈들의 발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가슴에 검이 솟았다. 절도사가 그녀의 등에 검을 박아 넣었다. 평양절도사의 애첩은 절도사의 검에 마지막 호흡을 내쉬었다. 그녀는 만족스러워 보였다. 


 절도사는 울고 있었다. 그의 붉어진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절도사가 눈물을 삼키며 내게 말했다. 



 “길을 열어라. 어서!”



 달렸다. 앞을 가로막는 모든 적을 베고 찌르며 길을 열었다. 난 적장의 목을 베고 달아나는 절도사를 구출하려 했다.


-------


 난 착호갑사다. 호랑이를 잡으러 다니는 게 내 일이다. 그 전에는 백정의 자식이었다. 난 아무것도 아니었다. 죽이는 게 내 일이었으며, 이름은 저마다 부르고 싶은 방식으로 나를 불렀다.


 착호갑사가 되는 게 처음엔 좋았다.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긴 했어도 호랑이를 잡는 백정이 된다는 건 좋았다. 사람대접을 받기 시작했고, 언문도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그뿐이었다. 차라리 글을 몰랐으면 좋았겠다. 세상을 알기 시작하며 내가 얼마나 빌어먹을 신분인지 알게 되었다. 그저 배불리 먹고 잠들면 행복했던 내가 꿈을 꾸기 시작했고, 내 신분에 꿈은 고통이 되었다.


 우리는 호랑이를 잡으러 팔도를 다녔다. 세상이 눈에 들어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난 호랑이의 밥이 될 때까지 호랑이를 잡으러 다닐 것이다. 



 “넌 이름이 뭐니?”


 “어디~ 아낙이 남정네의 이름을 물으시오.”


 “어려 보이는데~ 너도 남자니?”


 “나. 착호갑사요!”


 “어머~ 너도 호랑이 잡으러 다녀? 난 또 몸종인 줄 알았지.”



 그녀의 그런 모습들이 기억이 난다. 절도사의 종들을 도와 쌀가마를 옮겨달라고 했다. 착호갑사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 아낙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녀처럼 아름다운 처자는 없었다. 


 우리는 존중받는 편이었지만, 때론 무시도 받았다. 호랑이를 잡으러 다니지 않을 때는 기거하는 양반 댁의 경호원이 되기도 했고, 때론 종노릇을 하기도 했다. 애초에 우리들이 천민 출신이었던 것도 있겠고, 보통의 장정들보다 훨씬 힘이 좋기도 했다. 


 평양절도사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이미 호랑이 한 마리를 잡아오는데 성공했기에 좋은 대접을 받고 있었다. 다시 일을 나서기 전에 배를 채우고 충분히 쉬어두는 게 중요했다.



 “이건 뭐요?”


 “곶감이야.”


 “착호갑사가 곶감을 모르겠소? 그걸 왜 내게 주는 것이오?”


 “어머. 호랑이가 정말 곶감을 무서워하니?”



 그녀는 내게 스스럼없이 대했다. 내가 착호갑사들 중에 어린편이라 어렵지 않았던 모양이다. 가끔 그녀의 새로운 장신구를 자랑하기도 했고, 어떤 날은 우울하다며 묵묵히 내 곁에 앉아만 있다가 떠나기도 했다. 


 평양절도사의 애첩인 그녀와 사랑에 빠질 수는 없었다. 그저 가끔 그녀가 내 곁에 다가오는 걸로 충분했다. 그녀에게서는 좋은 향기가 났다. 그녀가 곁에 있으면 그녀의 향기에 취해 잠들고 싶었다. 



 “그렇게 좋니?”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괜찮아. 쉿~”



 나도 모르게 그녀의 어깨에 기댔던 모양이다.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렸다. 그녀의 그런 것들이 지금도 기억난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 준 그녀가.......



 다시 호랑이를 잡으러 산으로 들어갔을 때, 난리가 났다. 왜놈들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산에서 내려와 평양으로 향했지만, 우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평양이 함락되었다.


 그녀가 죽은 줄 알았다. 나라가 망하는 것보다 그녀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게 괴로웠다. 우리는 다시 산속으로 숨어들었고, 깊은 산속 암자에 모여든 스님들과 합류했다. 몇몇 양반들이 모여들며 왜놈들에 대항할 준비를 했다. 병과를 거친 어르신이 주도하여 우리도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네. 계월향을 아나?”


 “예?”



 그녀는 살아 있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절도사께서도 생존해계셨다. 스님이 내게 온 편지를 읽어주려고 했다. 



 “언문은 나도 읽을 수 있소”



 스님이 편지를 내게 건넸다. 그녀가 살아 있을 뿐 아니라, 내게 편지까지 쓸 수 있었다. 그녀는 적장의 기생이 되어 목숨을 부지하고 있으나, 적장을 죽일 계획을 준비했단다. 그러니 간청하건데, 절도사와 함께 잠입하여 적장을 죽이고 달아날 계획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가겠소.”


 “계월향은 절도사의 애첩이네.”


 “내가 가겠소.”


 “소문에 의하면 이미 왜놈들에게 몸이 더럽혀졌다더군.”


 “내가 가겠소.”


 “.......그럼 절도사와 만나게 해주겠네.”



 평양에서 절도사의 집에 기거했으나, 이렇게 가까이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절도사께서 내게 말했다.



 “계월향이 자네를 추천하더군.”


 “........”


 “많은 인원들이 잠입할 수는 없으니, 위험해 보이지 않을 사람이 필요했겠지. 확실히 자네가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군.”


 “내 몸은 챙길 수 있소이다.”


 “아니, 자네는 나와 계월향을 안전하게 탈출시켜야 하네. 자네의 목숨이 중한 것이 아니야.”


 “이 마당에도 내 목숨은 중하지 않소?”


 “자네는 이미 계월향의 마음을 가졌네. 이 일이 아니라면 자네의 목을 쳐야 마땅해.”


 “어르신.”


 “그 비천한 목숨. 의로운 곳에 쓰게나.”



 절도사를 따라 평양의 잠입에 성공했다. 편지로 전한 계획대로, 그녀가 정확한 시각에 왜장과 함께 관가의 뒤뜰에 나와 있었다. 술에 취한 왜장은 속곳차람의 그녀를 안고 뜰을 거닐고 있었다.


 그녀의 편지대로라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 게 맞겠다. 뒷간과 장독들의 사이에 머물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었으나, 절도사가 먼저 담을 넘었다. 소리를 죽이기에 거리가 충분하지 못했고, 우리가 왜장에게 다가가기 전에 들켰다. 


 왜장의 목을 벨 수는 있었지만, 외침을 막지는 못했다. 왜놈들이 길을 막아섰다. 내가 창을 휘둘러 놈들을 쓰러뜨렸으나, 그녀의 허벅지가 왜놈들에게 베였다. 다친 그녀를 부축하며 달아나긴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녀가 활에 맞아 다시 쓰러졌고, 절도사는 그녀의 목숨을 끊어줬다. 


 내가 길을 뚫었다. 앞을 막아서는 모든 왜놈들이 내 창에 쓰러졌다.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뒤에선 화살이 날아들고 앞에선 일본도들이 춤을 췄지만, 착호갑사인 내 무력을 막아서진 못했다. 


 우리는 계속 달렸다. 절도사는 평양의 지리를 잘 알았고, 어둠이 우릴 도왔다. 마지막 담을 넘어 숲으로 숨어들기 직전에 화살들이 하늘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활솜씨가 비루한 왜놈들이었지만, 너무 많은 화살들이 한 번에 쏟아져 내렸다. 우리가 피하긴 어려울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창을 휘둘러 날아오는 화살들을 튕겨내 보려고 했다. 


 절도사가 나를 덮쳤다. 


 나를 쓰러뜨리고 선 절도사의 등에 화살들이 박혔다. 절도사가 신음을 흘리며 말했다.



 “달아나게.”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절도사는 계월향의 곁으로 가는 게 만족스러워 보였다. 그가 내게 웃어보였던 것 같다.


 난 숲으로 숨어들어 목숨을 부지했다. 우리 착호갑사들은 스님들과 함께 의병이 되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매일매일 왜놈들을 사냥해 계월향과 절도사께 바쳤다.



 왜놈들의 목을 베는 모든 순간에도 그녀를 잊은 적이 없다. 모든 순간들에 그녀를 떠올릴 수 있었다.


 별 볼일 없던 내가 그녀 덕분에, 가진 게 없던 내가 그녀가 준 이별 덕분에 사람이 되었다.



 나는 이제 의병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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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누군가 기다리며 남는 시간에 글쓰기 연습. 언젠가 이런 퓨전사극소설도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두서없이 두드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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