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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Comment ' 8

  • 작성자
    Lv.11 게르의주인
    작성일
    19.02.02 20:39
    No. 1

    조선시대에 성씨는 양반만 가지는 특권이 아니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성씨가 귀족들만 가지는 특권이었지만 조선 이후로는 성씨가 서서히 보편화가 되었습니다. 물론 조선 전기에는 성씨가 보편적이지 않았습니다. 양반 평민 천민 모두 골고루 성씨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여전히 성씨가 없었던 사람도 있었지만 조선말기에 이르러서는 어지간하면 다들 성씨 정도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양반이라도 3대가 과거 급제 못하면 평민으로 떨어지고 사화를 당하거나 역적급 범죄에 연루되면 짤없이 노비로 강등되기도 했기에 성씨를 가진 노비들도 많았습니다.
    참고로 명문가 중에 하나인 안동 김씨의 예를 들면 영의정을 하는 안동 김씨도 있었고 나주 관아에 공노비로 사는 안동 김씨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아버지가 양반이라도 어머니가 천민이면 그 자식은 역시 짤없이 천민이라서 성씨을 가진 천민도 생기게 됩니다.
    같은 안동 김씨라도 신분은 극과 극인 셈이죠.
    조선은 신분제도에 대해 매우 보수적이면서도 시시때때로 격동적인 나라여서 한쪽만 보아서는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경신대기근 등등 나라의 큰일이 있을 때마다 공신첩을 마구 남발해서 재정을 보충했는데 이러다보니 뒷산을 개간해서 밭농사를 지어 재산이 좀 있었던 솔거노비 돌쇠가 쌀 다섯 가마를 관아에 바치고 정3품 벼슬<물론 명예직>을 받기도 했는데 성씨가 없으면 이름을 기록하기 힘드니 근처에 살던 양반 성씨를 따와서 이름을 관아에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성씨를 가진 이들도 꽤 있었구요.

    찬성: 5 | 반대: 1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보고의원칙
    작성일
    19.02.03 00:58
    No. 2

    제가 궁금한건 그냥 양반성씨를 따왔다 하기엔 대부분 꽤 상세한 설정을 갖고 있어서요.
    종친회가 있고 항렬이 있고 몇대손인지. 돌림자에 심지어 족보까지 있구요.

    만약 저것이 거짓이라면 왜 다른사람의 핏줄을 사칭하면 사는건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조상도 아닌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람도 많을테구요.

    찬성: 2 | 반대: 1

  • 답글
    작성자
    Lv.11 게르의주인
    작성일
    19.02.03 01:39
    No. 3

    음 길게 작성한 답글이 날라가 버렸네염..쩝...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1 게르의주인
    작성일
    19.02.03 01:56
    No. 4

    다시 작성합니다.

    우선 이 말씀부터 드려야겠네요.

    족보는 사료로서 신빙성의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학자들은 족보를 참고자료로 볼 뿐이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즉 아무리 정밀해보여도 헛점이 많고 날조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시조를 날조한다거나 공이 큰 다른 가문의 인물을 억지로 족보에 넣는다거나 공이 작은 데 엄청나게 크게 부풀려서 환타지 소설 주인공으로 만들어서 써넣은 경우도 있어서 정사의 기록과 다른 점이 많아서 대부분의 사학자들은 그냥 참고로만 삼지 절대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조선 후기에 상공업이 발달하자 돈을 많이 버는 상민 천민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그 돈으로 몰락한 양반<주로 과거 시험에 몰빵하다가 가산을 탕진한 자들>의 족보를 담보로 잡고 대부를 해주면서 족보를 손에 넣습니다.

    이렇게 손에 넣은 족보를 가지고 종친회도 돈으로 구워 삶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죠.

    위에서 말했듯이 종친회는 가문의 영광<돈이 있어야 영광도 있는 법이죠..에헴..>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하거든요.

    게다가 지방의 종친회와 한양의 양반가는 오래 떨어지다 보니 거의 다른 가문처럼 변한 곳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집안이 안동 김씨입니다. 한양에서 세도 정치로 떵떵거리던 김 조순 가문은 오래 안동과 왕래를 안하다보니 거의 다른 집안처럼 변해 버린 경우입니다. 친척의 덕 좀 보겠다고 안동에서 한양까지 찾아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한 뒤에 이를 박박 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이런 가문의 족보라면 끼어들기도 참 쉽겠죠?

    다른 조상의 제사 또한 못지낼 게 있겠습니까?
    군역 면제에 세금 면제....이거 두가지면 남의 조상이 아니라 원수의 조상도 제사 지낼 겁니다.

    찬성: 5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1 게르의주인
    작성일
    19.02.03 02:10
    No. 5

    그리고 족보 끼어들기는 의외로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징기스칸의 경우도 찌질이 부족장 시절에는 은근히 중국 쪽 혈통임네 행세를 한 적이 있고 금나라로부터 받은 관직을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그 관직이란 게 지금으로치면 동사무소장 정도였지만요...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송나라를 가지고 놀던 금나라를 세운 건주여진의 경우도 찌질이 시절에는 고려인 조상을 들먹이면서 세를 불리기도 했습니다.
    약소 세력일 때는 이웃한 강대국의 혈통이라고 주장하는 게 흔했습니다.
    자기하고는 피가 한방울도 안 섞인게 뻔한대도 자기 조상이 주나라 무왕이니 뭐니 떠들면서 가오 잡는 거죠.
    베트남의 경우도 족보에서 중국인 시조로 날조하기도 했고요.
    태국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도 동로마제국 족보에 어거지로 끼어들었구요.
    티무르의 경우도 아무도 안믿는 "징기스칸 후손"이란 말을 해댔고요.

    아무튼 족보란 게 웃기기도 하고 어떤 때는 섬짓하기도 합니다.

    찬성: 5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OJO
    작성일
    19.02.03 01:45
    No. 6

    제가 알기로 우리가 모두 성과 본을 가지게 된 직접적인 사건은 1909년 일제가 시행한 ‘민적법’입니다.
    조선을 한눈에 파악하여 식민통치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정책이었는데요,
    문제는 저마다 ‘원하는’ 성을 사용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이전까지 양반이 아니었던 이들도 양반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당연히 대부분 기존 양반의 성을 따라서 쓰는 일이 많았고, 천출이었던 이들의 거짓말이 갈수록 정교해진 거죠.
    돈으로 족보를 사는 일이야 뭐 비일비재 한 일이었고, 일단 족보를 사고 나면 무슨 파에 몇 대손이니 하는 것들이야 그 안에 다 적혀있는 거고.....

    대강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만,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찬성: 5 | 반대: 4

  • 답글
    작성자
    Lv.96 묘한인연
    작성일
    19.02.03 02:13
    No. 7

    제가 아는 것이랑 비슷하시네요.
    김씨 이씨가 많은 이유가 있죠.

    찬성: 2 | 반대: 6

  • 작성자
    Lv.45 죽복
    작성일
    19.02.03 21:23
    No. 8

    왜란과 일제치하 6.25때문에 외국같은신분제도는 자연스럽게 없어짐
    사실상 무으미해짐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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