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우리 집안은 생존력이 탑우주급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무사히 돌아 오셨습니다.
어렸을 때 명절 때마다 그분께서 그때 이야기를 참 재밌게 말씀해주시던 게 생각납니다.
어른이 되고나서 생각해보면 참 끔찍하고 참담했던 이야기인데 그걸 그렇게 아이들에게 재밌게 풀어서 말씀해주셨던 그분은 아마도 소설가의 자질이 충분하셨던 것 같군요.
그분께서 해주신 말씀 중에 가장 덜 잔인하고 재밌었던 이야기 하나를 해볼까 합니다.
때는 일본이 원폭 두방 때려맞고 항복한 직후입니다.
미군정이 들어서고 강제 징용 왔던 조선인과 중국인들을 귀국 시키려고 여러군데 모아 놓았다고 합니다. 친척 분께서는 학교 건물 안에 수용되었다고 하셨지요. 참 웃긴 게 그렇게 살기 등등하던 일본인들이 패망하자마자 젖은 빨래처럼 흐느적거리더랍니다.
일본인들이 그렇게 잘 웃는 사람들인지 그때 알았다고 합니다. 중국인 노동자가 일본인 감시의 뺨을 때려도 실실 웃으면서 잘못했다고 하더군요...때린 이유는 그냥 담배 피우는데 지나갔다는 것인데....
그리고 밤이되면 그렇게 젊은 여자들이 담장을 넘어와서 조선인들과 중국인들을 꼬셨다고 합니다. 자기랑 같이 살자고 그렇게 꼬셔댔다고 합니다. 거기에 넘어가서 달아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전쟁 통에 남자들이 죄다 죽어나가서 여자들만 흘러넘치니 이 여자들이 시집이라도 한번 가고 죽으려면 조선인이든 중국인이든 가리지 않고 마구 구미호 총각 꼬시듯이 홀린다고 하더군요.
대만에서 온 한 친구랑 패전 후에 수용소로 와서 친해졌는데 이 친구가 그만 거기에 넘어가서 담을 넘어 도망쳤다고 하더군요. 70년대 즈음에 그 친구 대만 고향에서 편지가 와서 알았는데 오사카에서 장사를 시작해서 꽤 부자가 되었다가 아내가 죽자 대만으로 돌아가 예전 편지들을 정리하다가 그 친척분 편지를 보고서 답장했다고 하더군요.
한번은 제가 그 분께 여쭤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할아버지는 왜 일본여자 안만나셨어요?”
그 친척 분은 웃음기 싹 사라지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못생겼어...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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