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유택.
Y대 경제학과 교수인 나는 영화계와 경제계의 상호관계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집 근처 구립도서관을 찾았다.
『 씨네 21 』
“흠, 설 합본 특대호인가?”
좌석에 앉아 잡지를 정독했다.
‘…제작비 규모가 올라갈수록 부담을 느낀 투자 배급사가 서사에서 안정적인 선택을 하기 때문에 콘텐츠가 관객의 변화하는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흥미롭군.’
『 퀴즈 풀고 설 선물 받으세요! 』
마지막은 퀴즈의 정답을 엽서에 적어 보내면 추첨으로 선물을 받는 코너였다. 설 합본 특대호라 두 페이지에 걸쳐 다양한 아이템이 망라되어 있었고, 엽서도 제대로 붙어 있었다.
나 유택은 데스크로 향했다.
“실례합니다.”
“무슨 일이시죠?”
“제가 이 잡지의 엽서를 오려도 될까요?”
“예? 뭐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정답을 엽서에 적어 보내면 추첨을 통해 선물을 준다고 하는군요. 응모를 해볼까 합니다.”
사서는 내가 건넨 잡지의 엽서와 독자 선물 코너를 살펴봤다. 그리고 곤란하다는 듯이 웃었다.
“이 잡지는 도서관 자료라서 훼손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군요.”
“죄송합니다.”
찌이익―.
사서는 웃는 얼굴로 잡지에서 엽서를 뜯어내고 내게 돌려줬다.
좌석에 돌아온 나는 팔을 감싸고 생각했다.
‘뭔가? 이 위화감은.’
현재시각 5시 55분.
저녁식사 전에 귀가하기 위해서는 6시 15분 도서관을 나서야 한다.
‘논리로써 설명되지 않는 것은 없다’가 나의 평소 지론이므로 그전까지 이 위화감의 정체를 파헤쳐보기로 했다.
① 잡지는 도서관 자료이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
이는 틀림없는 정론이었다.
하지만 사서는 내 눈앞에서 엽서를 뜯어냄으로써 ①을 스스로 어겼다.
‘왜지?’
순간 그녀가 보란 듯이 내게 큰엿을 먹인 것 아닌가 생각됐지만 속단은 금물이었다. 근거를 가지고 추론하여 사실을 밝히는 것이야말로 학자의 사명!
달리 가설을 세워보았다.
② 이 도서관에는 ①에 위배되지 않으면서 사서가 잡지에서 엽서를 뜯어낼 수 있는 또 다른 룰(근거)가 있다.
나의 경우에 비추어보면 이런 룰이 있을 수 있었다.
③ 사서는 회원이 임의로 잡지에서 엽서를 뜯어낼 경우에 대비해 먼저 엽서를 떼어내 보관하다가 요청이 있으면 보여준다.
가령,
“저, 씨네 21 설 합본 특대호에 엽서는 <서고_직원문의>라고 되어 있어서 그러는데요.”
“설 합본 특대호 엽서 말씀이십니까? 가져다 놓을 테니까 5분 후에 이 자리로 와 주시겠어요?”
하는 식이다.
…….
‘흠, 현실성이 떨어지나?’
다른 경우를 생각해보았다.
인간의 악의를 조금 더 고려한 경우였다.
『 충격! ○△구립도서관 사서의 주요업무는 도서관에 입고되는 모든 잡지의 엽서를 떼어내 도서관장의 이름으로 응모하는 것…… 인터뷰 중, “내가 이러려고 사서 됐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신문지상에 왕왕 보도되던 내용과 흡사하므로 ③에 비하여 현실성이 있다 할 것이었다.
문득 시계에 시선이 닿았다.
‘아차!’
현재시각 6시 20분.
서둘러 가방을 챙겼다.
자료실을 나서며 나 유택은 힐끗 사서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내일은 인간의 사욕私慾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공부해볼까? 그것도 흥미진진하겠군.’
*
《 독서는 일종의 탐험이어서 신대륙을 탐험하고 미개지를 개척하는 것과 같다. 》
- 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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