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정치나 정부에 대해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저 역시도 그러합니다.
'큰 정부'보다는
'작은 정부'를 선호해 왔고,
시장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효율성과 효능을
믿어 왔어요.
그렇다 보니...
예전부터 정치인들이
무차별 복지 정책을
전방위적으로 펼치겠다,
이런 공약을 내세워서
지지를 호소할 때마다
거부반응이 꽤나 컸지요.
물론,
저도 복지의 필요성에 대해선
십분 공감합니다.
하지만 가끔씩 보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모두 지원해 줘야 한다,
이런 스탠스의 정책을 볼 때 마다
많이 답답했어요.
'아니, 부자들한테도 지원을 해 준다고?'
'안 그래도 돈이 차고 넘치는 사람들인데?'
'그거, 완전 예산 낭비 아니냐고?'
'국민들 돈 끌어다가 자기들 표로 바꿔 먹네.'
...굳이 구체적으로 적어 본다면,
저런 식의 생각을 했겠지요.
그러나,
과거에 생각지도 못한 재난이 터집니다.
'코로나바이러스'
다들 힘드시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있어
구명줄이 하나 내려옵니다.
'긴급재난지원금'
저 같은 경우,
부부이기 때문에
60만원을 받게 됐어요.
아직, 자식은 없습니다.
꼭 갖고 싶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
차일피일 미루고 있지요.
정부가 준 지원금,
저희 살림살이에
정말 큰 힘이 돼 주고 있어요.
여기서 약간의 혼란이 오기 시작합니다.
내가 예전부터 생각해 왔던
'작은 정부'였다면,
이 혜택이 현실에 실행될 수 있었을까.
내가 믿어왔던 '시장'이
이와 같은 위기도 스스로 작동해서
극복해 낼 수 있었을까.
'작은 정부'였다면,
이런 큰 위기가 왔을 때
문제 해결책을 내놓을 만한
'규모'를 갖추지 못했겠지요.
'시장'이 평소처럼
혼자 일하게 내버려 뒀다면,
아직도 우리가 쓰고 있는
KF94나 KF80은
천정부지 값을 유지하고 있겠지요.
그렇다고,
제 생각이 이번 계기를 통해
완전히 바뀌었다는 건 아닙니다.
저는 여전히
'작은 정부'와 '시장'을
신봉하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이 글이 무슨,
'좌파'를 육성한다던가,
사회주의의 가치를 설파하며
그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그런 정치적 성향의 글은 절대 아님을 강조합니다.
반대로,
제 가치관이 얼마나 나약한지에 대해
하소연하는 글이라 할까요.
솔직히, 너무 달콤했거든요.
'긴급재난지원금'
정말 요긴하게 잘 썼고,
잘 쓰고 있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요.
그러다가, 문득 깨닫습니다.
'야, 너가 즐기고 있는 이 돈...
네 신념하고 정 반대되는 가치 아니니?'
'이 돈 몇 푼에,
평소에 내가 믿어왔던 걸
한방에 다 까먹어 버렸네?'
...라고 자신에게 비꼬아 질문하는
제 자신의 이성을요.
이번 계기를 통해
절대적 가치는 없으며,
어디까지나 '균형'이 중요함을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너무 오른쪽이어서도 안 되며,
너무 왼쪽이어서도 안 되는.
이미 너무 한 쪽으로 기운 상태라면,
그 반대쪽이 필요한 상황에 처했을 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게 된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우칩니다.
문제는, 제 자신입니다.
이 깨달음을,
정말로 현실을 냉철하게 보고 나서
얻게 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저에게
돈이란 혜택을 줬기 때문에
그 수혜(受惠)를 합리화하려고
자기를 기만한 것인지.
...어렵네요.
하지만 이러한 혼돈 가운데에서도
확실한 건 딱 하나.
지금 제가 먹고 있는 '도미 한 사라' 입니다.
어제 저녁,
하나로마트에서 스티로폼에 올려져
랩으로 씌워진 걸 샀거든요.
안에는 초장과 와사비 소스가 동봉돼 있는
매우 효율적인 아이템입니다.
아마, 제 돈이었다면...
형편상 먹기 힘들었을 음식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돌이키며 봤던 것들,
모두 형체가 없는 형이상적 가치뿐이었지요.
유일하게 형체가 있는 이것,
도미.
작은 정부 어쨌느니,
시장이 어쨌느니,
아침부터 무의미하게 왈가왈부하고 있는 저를
이 도미가 비웃고 있습니다.
'응, 그래서 넌 지금 날 먹고 있어.'
'쯧쯧... 그래서 날 무슨 돈으로 샀는데?'
요즘, 한우가 그렇게 잘 팔린다지요?
평소에는 절대 못먹을 음식이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용기를 내서
한우를 먹어보려는 사람들이 모이는 거겠지요.
저도 그와 같은 사람 중 하나임을
오늘 아침에 깨닫습니다.
단지, 음식의 종류만 다를 뿐이지요.
신념과 가치를 떠나서,
가난한 자에게 도미 한 사라를 먹게 해준 이 돈,
그리고 이 돈을 준 주체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오늘 하루를 버티고
내일을 바라보며 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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