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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열하일기의 박지원

작성자
Lv.60 카힌
작성
19.07.11 21:01
조회
205


https://www.youtube.com/watch?v=SHEoLn_9I9M


연암 박지원이 사신단을 따라 건륭제가 머물던 열하에 다녀온 이야기를 적은 책입니다.


왕조는 대개 어쩌다 우연히 세력을 잡은 것이 아니라 시대적 소명을 쟁취한 자가 권력을 잡게 되는 경우 이후 약 100년 전후로 점차 강한 성세를 가지게 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청나라는 강희제 옹정제에 이어 건륭제가 청나라의 전성기를 이끌게 되는데...대단한 성세를 구가하게 됩니다. 그런데 국력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부패하지 않고 이어가는 나라가 극복하는 나라보다 훨씬 더 드물며 청나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후 여러가지 이유로 급격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연암 박지원은 중국이 영토를 넓힌 이후로는 역대 최고의 힘을 구가하던 시기를 지나갈 때 청나라를 방문하였기에 그곳에서 본 문물은 정말 대단했을 것이 자명합니다.


열하일기 영상을 보면서 느낀 점은,

무려 6번째 황제가 제위를 잇는 동안 조선의 사대부들은 달라진 시대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조선과 비슷한 시기에 건국된 명나라를 상국으로 받들던 마인드에서 그대로 머물러 있던 것입니다.  이후 청국 역시 급격히 무너져 내리며 융성했던 그 시절을 잊지 못하고 차후 유럽 열강에 수 차례 굴욕을 당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명에 이어 영토는 넓어지고 성세를 구가했지만 화기연구제조가 금지 되는 등 군사력을 이루는 여러 요건들이 부족함을 넘어 퇴보하는 수준까지 이르러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열하일기 이후 수십년이 지난 시점에 벌어진 아편전쟁의 결과는 비록 국력이 정점을 지나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고는 해도 중국인으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영상의 말미에 건륭제가 하사품을 내리지 않았다는 부분은 실은 적지 않은 의미를 갖습니다. 중국은 드문 경우에 공물을 쥐어짜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하사품이 더 규모가 커서 국가 재정에 영향이 있을 정도인데, 하사하지 않았다는 건 대단히 화가 났다는 의미가 되겠죠. 그럼에도 조선의 유학자들은 수백년전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생각 그대로 행하며 온갖  답답한 행태를 보입니다. 이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열하일기가 금서가 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에서 본 것들만으로도 국내의 상황과 비교할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였는데, 그가 당시 유럽의 문물을 직접 눈으로 보고 접하게 되면 어떠했을까요. 그가 접한 서구의 문물에 대한 정보 대부분은 청나라를 통해서였을 터이니 제한적이고 정확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Comment ' 15

  • 작성자
    Lv.17 아마나아
    작성일
    19.07.11 22:14
    No. 1

    그놈의 정치가 뭐라고 당쟁을 일삼았는지.... 이전투구를 반복하며 조그마한 이권을 얻고자 이미 망해버린 명나라를 숭앙하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자를 박해하며 입이 누런 아이에게까지 세금을 물리는 소인배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으니.... 박지원, 정말 똑똑한 사람이고 미래를 내다보는 선구자적 인물이 방구석 뒤안편에서 소설이나 썼으니.... 정말 아쉬움만 남는 시대..

    찬성: 3 | 반대: 1

  • 작성자
    Lv.52 사마택
    작성일
    19.07.12 02:07
    No. 2

    박지원.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사대부 선비이자, 관직 까지 한 이가 편지 내용에서 아버지가 직접 만든 반찬(직접 고추를 말려서 고추장을 만들고 돼지고기에 비며 재움 양념 고기)
    보내주었는데 답장에 그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서운한다고 답답장을 보냈죠.
    그거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요즘이야 부자관계가 좀 부드럽지만. 20세기에도 그런게 어디 상상이나 되겠습니까.
    진짜 충격 먹었어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11 게르의주인
    작성일
    19.07.12 18:54
    No. 3

    조선을 위한 변명.

    첫째 "그놈의 정치"를 안한 나라는 역사상 하나도 없습니다. 신성 로마 제국에서 젤로 힘없던 바이에른 공국도 "정치질"을 했습니다. 붕당을 만들고 파벌을 만들어서 요직을 차지하려고 모함과 모반을 반복했죠. 서로 반목하는 정치 세력이 적어도 둘 이상 있으면 서로 견제하기 때문에 오히려 일반 백성들의 삶은 평안합니다. 그리고 그 당쟁을 이 지구상에 모든 나라(일당독제국가 빼고)가 하고 있습니다.우린 그런 나라를 민주주의 국가라고 합니다.
    오히려 붕당정치가 무너지고 안동김씨 일당독재 즉 세도정치가 시작되면서 다른 붕당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자 세금이 가혹해지고 수탈이 극심해졌습니다.

    둘째 조선은 적어도 만력제에 대한 의리를 버릴 수 없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만력제는 임진왜란 당시 결단을 내려서 조선에 구원병을 파견했고 더 대단한 것은 청야전술로 인해서 수많은 조선 백성들이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금고(내탕금)을 써서 곡물을 조선에 공급함으로서 백성들을 살렸습니다. 웃기게도 만력제는 명나라 백성들이 굶어죽든말든 신경 안쓰는 파업군주로 명성(?)이 자자한 황제였단 점이죠.. 다른 나라는 다 만력제 까도 조선은 깔 수 없었습니다.
    이걸 이해하기 쉽게 바꾸자면 한국전쟁 당시에 즉각 50만 대군을 파병하고 한국 시민들이 아사하고 있다고 하자 수십억 달러를 써서 식량을 무상으로 배급해준 나라를 우리는 깔 수 있을까요?

    셋째.. 박지원이 활동하던 시기의 조선 국왕은 정조입니다. 그의 가치를 몰라서 안쓴 게 아닙니다. 정조에게는 박지원보다 훨씬 뛰어나고 충성심도 높은 인재들이 넘쳤습니다...정약용이라든지 정약용이라든지..ㅋㅋ...수원 화성을 서양의 건축 기술을 이용해서 건설하기도 했죠.

    찬성: 2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아마나아
    작성일
    19.07.12 21:51
    No. 4

    아마 저의 글을 보고 댓글을 쓰신 듯하니 답변하겠습니다. 우선 그놈의 정치를 누구나가 다 한다고 정당화되진 않습니다. 붕당정치가 조선에 큰 악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고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붕당은 민주주의는커녕 역사적 반동을 낳았습니다. 우리나라 붕당정치는 결국 민주주의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붕당정치는 선조 대에 짧은 시기에 건전하게 이뤄졌다고는 하지만 결국 그것도 건저의 사건, 대동계 사건으로 세계사적으로도 건전하다고는 말못합니다. 광해군 대에 들어서도 우리나라 붕당정치는 아주 아슬아슬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정권을 독점하기위해 북인은 회퇴변척, 폐모살제를 거듭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붕당정치는 처음부터 일당독재를 향해 맹렬히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역사적 반동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사실 고조선 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정치적 참여가 넓어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신라는 진골이상부터 정치적 실권을 잡았고 그 후 고려부터 제한적이지만 과거시험 도입이라는 획기적인 시도로 공고한 신분제에서 능력을 기준으로 관리를 뽑았습니다. 또 그 후, 정치적 중심에서 배제된 지방 지주세력이 세운 조선에서 정치적 참여기회가 더 넓어졌습니다. 하지만 붕당정치 이후, 우리나라는 붕당에 들어서지 못하면 정치에 참여하지 못했고 말씀하신 것처럼 일문독재가 시작되면서 그 폭이 좁아졌습니다. 우리나라의 붕당정치가 역사적 반동을 가져왔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고 보편적인 파벌정치와는 다른 형태였습니다. 학문적 성격과 정치적 성격이 공존하는 세력은 유럽에서도 볼 수 없고 동양에서도 흔치않습니다. 결론적으로 붕당정치는 자기 학파의 절대화와 정치적 이익추구가 공존하여 상대당을 모두 붕괴시키기 전까진 멈추지 않는 기관차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일반 보편적인 파벌정치와 같다고 할 수 있을까요?

    찬성: 1 | 반대: 2

  • 답글
    작성자
    Lv.17 아마나아
    작성일
    19.07.12 21:59
    No. 5

    둘째 만력제의 의리는 갚을 만큼 갚았습니다. 약 삼백년간 단을 세우고 기렸으면 충분히 갚았다고 생각합니다. 숭명대사, 처사를 자처하며 과거에 입시하지 않은 선비도 널리고 널렸습니다. 이 정도면 갚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 은혜를 양반이 갚지 않고 일반 백성이 갚았다는 것입니다. 송시열이 화양서원을 세우고 그 안에 명나라 황제를 기리는 만보단을 숙종 대에 만들면서 묵패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묵패는 서원이 일반 백성들에게 걷는 일종의 세금이었습니다. 이 묵패의 폭압이 얼마나 심했던지 아낙네가 기와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묵패가 떨어진줄 알고 놀라 죽었다는 시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양반이 주야장천 보은을 주장할 때, 민초는 괴롭고 고통스럽기 짝이없는 시기였습니다.

    찬성: 2 | 반대: 1

  • 답글
    작성자
    Lv.17 아마나아
    작성일
    19.07.12 22:02
    No. 6

    셋째, 정조 주위에 인재가 넘쳤다고 박지원을 안썼다는 이야기는 궤변입니다.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여 인력을 효율적으로 써야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고 국익에 도움되는 것이지 인재가 많다고 또다른 인재를 버리는 것은 폭압이고 무능입니다.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8 호서(好書)
    작성일
    19.07.12 22:33
    No. 7

    1. 말씀하신바 정치형태는 역사적으로 붕당정치가 붕괴되고 일당전제화 추세가 나타난 시기라고 말합니다. 즉, 붕당정치기와 그 이후를 구분을 못하고 계십니다.
    2. 붕당정치가 처음부터 일당독재로 나아갔다는 말은 지극히 결과론적인 얘기에 불과합니다.
    3. 붕당정치가 역사적 반동을 가져왔으며 지극히 부정적인 존재라는 주장을 우리는 식민사학의 당파성론이라고 부릅니다.
    4. 만력제에 대한 의리를 갚을만큼 갚았다는 주장은 현재적 관점에 기인합니다. 당대 사람들 중에도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겠으나, 보편적으로는 의리를 갚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입니다
    . 역사를 바라볼때 단순히 현재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입과 추체험 등을 통해 과거인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아마나아
    작성일
    19.07.12 23:33
    No. 8

    1. 붕당정치기의 역사를 나열만 했을 뿐인데 어떤 면이 붕당정치기와 다른 것 입니까?
    2. 제 말씀을 곡해하신 것 같은데 저는 물음에 답한 것입니다. 게르의 주인님께서 민주주의와 붕당과의 연관성에 대해 말씀하신 것에 대한 답변입니다. 당연히 결과를 얘기해야죠. 결과를 조작할 순 없지 않습니까.
    3. 아주 잘못된 생각이십니다. 지극히 잘못된 점을 짚고 넘어가야 역사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붕당정치의 폐해에 대해서는 관련 논문만 몇 천건이 넘어갑니다. 우리가 단지 당파성론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고 우리의 눈을 가려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당파성론과 제가 말한 학문적 성격의 당파는 절대로 다른 개념입니다.
    4. 그것 또한 님의 주장입니다. 역사는 주류계층에서 작성되어집니다. 따라서 조선의 역사는 양반계층에서 작성되죠. 그래서 우리는 양반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봅니다. 하지만 구때문에 수탈되는 일반 무지렁이 백성들의 관점은요? 그들도 명나라에 보은하자 주장했을까요? 아날학파가 대두된 이유도 이때문입니다. 과거의 역사를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죠?

    제 말씀을 오해하신 것 같은데, 저는 랑케식 역사식 즉 게르의 주인님께서 말씀하신 과거가 정당화될 수 있느냐 없느냐, 그 판단은 누가하고 정의내리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려 한 것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2 사마택
    작성일
    19.07.12 22:24
    No. 9

    웃긴게 아닙니다. 만력제가 어린 나이에 황제 올랐을 때 당시 섭정이었던 나라의 재상이 만력제의 스승이었고. 꼬장꼬장할 정도로 스파르타씩 교육을 시켰죠. 만력제는 스승을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했는데. 재상이 죽고나서 뒤로는 호박씨(탐관오리 짓)을 알고는 지독한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자기는 뒷구녕으로 온갖 못된 짓 다하고 자기는 성군이 길만을 걷게 하더니, 그 이전까지 만력제는 한나라의 군주가 모여야 할 모범을 보였는데 분노에 차서 재상의 일족을 다 죽이고 파업 했음. 원래는 성군의 자질과 좋은 성격이었는데. 배신감이 재상을 넘어 온 나라로 확대되서 정사는 안 돌보고 재물을 탐하고 궁녀와 환관들이 거슬리면 때려죽였죠.
    배신감이 자기가 다스리는 나라에까지만 있던 만력제에게는 사대 특히, 조선처럼 유학이 국시인 나라에게는 종주국 황제로서 책임감을 느꼈나 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1 게르의주인
    작성일
    19.07.12 19:01
    No. 10

    역사를 좁은 안목으로 보면 스스로 어리석음을 대로변에서 외치는 꼴입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그랬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던 겁니다.
    결코 어리석어서 그랬던 게 아닙니다.
    한 200년 뒤에 우리 후손들이 "세계 최빈국인 북한을 공격해서 1세기라도 빨리 통일했으면 우리나라가 더욱 강대국이 되었을텐데 왜 조상들은 통일도 안하고 뭐했지?"라고 하면 어쩝니까?
    당장 전쟁이 나면 수도권의 천만 인구가 위험해진다는 걸 모르니까 저러는 겁니다.

    찬성: 2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아마나아
    작성일
    19.07.12 22:07
    No. 11

    역사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따라서 과거가 현재의 우리가 판단하지 못하고 정당화된다는 소리는 제가 듣도보지도 못한 소리입니다. e h 카는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라는 소리를 했습니다. 역사가의 의무는 현재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는 죽은 역사입니다. 역사를 통해 우리가 진보하는 것만이 살아있는 역사이고 역사가의 의무입니다. 따라서 역사는 지금, 현재, 이 시각에 살고 있는 우리가 정의내리고 판단내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위조, 창작을 지양하고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통해 지금 현재를 바꿔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 인간은 과거를 통해 진보해나가고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 모든 학문의 시초라는 것입니다.

    찬성: 0 | 반대: 1

  • 답글
    작성자
    Lv.68 호서(好書)
    작성일
    19.07.12 22:49
    No. 12

    1. 역사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은 역사학자라면 누구나 동의합니다. 인간의 역사적 행위를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어떤 상황에 처한 역사적 행위자가 그러한 행위를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니까요.
    2. 과거를 현재의 우리가 판단하지 못한다는 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랑케 이후 근대적 역사학자들이 주장한 실증주의적 역사학에서 탈피한 이후부터 많은 사학자들은 '사료는 저자의 관점. 가치관 그리고 사회적 맥락'과 같은 것들이 개입되어있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를 객관적으로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역사가의 연구 또한 그 역사가의 관점이나 가치관, 해석 등이 개입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과거를 현재의 우리는 온전히 알 수도 없고 단순한 현재적 관점으로만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3. E.H카 역시 현재적 관점을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현재와 과거를 수평적 관계로 보고 지속적인 상호작용이 중요하다고 했지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아마나아
    작성일
    19.07.12 23:37
    No. 13

    예 제 말이 바로 그겁니다. 핸펀으로 작성하다보니 날림으로 작성하긴 했지만 바로 그 말이 제가 게르님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아마나아
    작성일
    19.07.12 23:39
    No. 14

    제가 첫줄을 날림으로 써서 그런지 저는 우리가 평가내리지 못한다는 말에 답변드리고 싶은 말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어미를 잘 못 썼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0 슬로피
    작성일
    19.07.12 23:55
    No. 15

    양반들은 뱃대지 불러서 아래로 대우가 ㅈ같았죠.
    부정부패가 만연한 이유가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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