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말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성격이라고 하면 흔히 하나의 포괄적인 개념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에게도 여러가지 일면이 있고, 바라보는 방향과 입장에 따라서 다르게 보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욕설을 잘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성격이 더럽다고 평가되었지만 알고 보니 불운한 환경 때문에 쌓인 울분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는 거짓으로 자신을 위장하지 못하는 순수한 성격이었던 셈입니다. 학생들에게 자상한 교수님이지만 연구실에 돌아오면 조교들에게 욕설과 폭행을 서슴지 않는 그런 사람도 있죠. 학문이 성격에 미치는 영향은, 사람이 자신의 길을 내면 깊이 받아들인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한 사람의 일생에는 너무나 많은 경험과 변수가 있을 뿐 아니라, 변수들 사이의 상호 작용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래 살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알지 못했던 일면을 발견하는 일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닙니다. 생각나는대로 말해봤습니다만, 결론은 오리무중이네요.
먼저, 언어 차이에 대해서. 저는 언어의 차이가 문화 별 성격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Magenta와 Pink는 다른 색인데, 우리말로는 둘 다 분홍색이라고밖에 표현이 안 됩니다. 이와 같이 언어마다 특화된 분야가 조금씩은 다릅니다. 비슷한 예로, 저는 우리나라말의 높임말이 심하게 구체적인 탓에 사회 분위기가 경직적이라고 생각해요. 개인 단위에서도 이런 일은 벌어질 수 있겠죠. 학문에 의한 성격 차이는 학문 특성에 따라 드러날수도, 또는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경제학을 배운 학생들의 의사결정이 유의적으로 이기적이더라'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격에 영향을 미치기 어려워보이는 학문도 있겠죠.
제 생각에는,
독일인이 일본어를 배웠다고 해서 갑자기 멀쩡하던 인간이 국뽕을 들이키며 역사를 날조. 왜곡하면서 히틀러 만세를 불러제낀다거나,
독일인이 한국어를 배웠다고 해서 갑자기 성격이 급해져서, 자판기에 컵을 붙잡고 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한국인이 영국식 영어를 배운다고 해서 학교 일진이었던 학생이 갑자기 우산을 들고 다니며 신사가 되어버린다거나,
소심쟁이 학생이 미국식 영어를 배운다고 해서 갑자기 쾌활해 진다거나,
매사에 비관적인 학생이 필리핀 영어를 배운다고 해서 매사에 낙천적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상이 언어의 영향력에 대한 생각이고요.
마지막으로 학문의 영향력이 성격에 미친다는 것을 전제로 생각해 본다면,
조선에서는 성리학을 바탕으로 500년이나 가르쳤는데, 성격에 영향을 미쳤다면 세종대왕이후 산업혁명이 도래하지 않은게 굉장히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그런 성리학으로 배운 세종대왕은 천민이었던 장영실을 등용하여 해시계, 물시계, 측우기, 한글, 신기전, 혼천의, 금속활자 같은 과학문물이 등장하였습니다. 조선은 '세종대왕을 닮아라. 태평성대다.' 하고 500년 동안 가르쳤으며,
글의 본문처럼 논리와 성격이 닮아간다는 전제라면, 세종이후에는 선례를 참고 삼아 신하부터 임금까지 세종시대를 닮았을테고,제2의 장영실을 등용하여 과학을 파는 것은 이어졌을 것이며, 천민등용의 선례까지 있으니 신분제가 공고히 하지 않았을테고, 과학은 깊졌을테니까 산업혁명까지 가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학문이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오직 한길의 일직선을 바라보는 논리가 되면, 저의 예시도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학문이 논리와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 똑같은 성리학으로 배웠음에도, 어떤 이는 조광조가 되고, 어떤 이는 오성과 한음이 되며, 또 어떤이는 탐관오리가 된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고 봅니다.
제생각과 입장은 다 말했고요. 참고로 말씀드립니다만, 조선의 성리학을 굉장히 고리타분한 것이라고 느끼시는 듯 해서, 이야기 하나 드립니다.
조선시대의 논쟁.
[학문이 인성에 영향을 미치는가?]
이것은 이미 조선시대에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논쟁인, 이기 일원론과 이기 이원론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동양철학으로 나와서 꼭 그것만을 뜻하지는 않으나, 결국 이거였지요.
1. 좋은 것을 가르치면 착한 이가 되고, 나쁜 것을 가르치면 나쁜 이가 된다.
타고난 인성은 교정이 된다.
vs
2. 나쁜 것을 가르쳐도 착한 이는 반면교사로 삼아 경계하여 착해지고, 착한 것을 가르쳐도 나쁜 이는 나브게 해석하니 사람 따라 다르지, 백날 좋은 것만 가르쳐봣자 소용없다.
타고난 인성은 교정이 안된다.
이 논쟁은, 일부분 합의를 보았던 조선시대 논쟁인데요.
서로가 보완한다는 합의죠. 이런 겁니다.
''인성은 타고난다. 나쁜 놈은 뭘해도 나쁘고, 착한 놈은 뭘해도 착하다. 하지만 약간 교정 될 수는 있다. 아주 나쁜 놈을 덜 나쁘게 하거나, 아주 착한 놈을 약간 착한 놈으로 말이다."
여기까지가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합의이며, 이후 조선시대는 수백년간 논쟁을 이어가게 됩니다.
[약간 교정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1.강제로 교정되는가.
2. 스스로 원할 때에만 교정되는가.
3.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접하는 것 만으로도 자동으로 교정되는가.
4.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접하는 것 만으로도 수동으로 교정되는가.
조선의 성리학은 유교가 뿌리인 만큼, 교육론과 인성론에 대해 아주 관심이 많았습니다.
조선시대에 아이에게 '예의'를 가르쳤던 것은, 그것이 습관이 되버리면, 인간이 살면서 저 1번부터 4번까지, 상황에 따라 모두 접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착한 이들만 세상에 가득하면, 나라는 저절로 다스려지는거니까요.
너무 고루하게 여기시는 듯해서 사족을 남기고 갑니다.
Comment '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