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참고로 이야기세계사의 저자는 요하문명을 건설한 주인공은 중국이 말하는 황제족이 요하로 퍼져나갔다는 식이 아니라 지금의 한중일,몽골이 생기기 전부터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이고(그래서 고유한 문화를 가졌고) 우리의 공동조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결론을 보면서 느끼는건 아리아인의 대이동입니다. 중앙아시아에 살던 그들은 인도-유럽어인의 여러 갈래의 시조이나 결국 다양한 문명을 각 지역에서 각각 탄생시켰고, 세월이 흘러 특성 또한 토착민들과 섞여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 갔으니까요.
결국 요하문명도 그러한것이 아닌가...그 중 중심에 있던 것이 고조선이 아닐까 싶으나 확실하게 증명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확실히 중국이 역사를 자기네들에게 - 즉 한족에 - 유리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고대, 특히 시간을 거슬러갈수록, 그 시대의 문명을 해석하는 것은 여러모로 복잡한 이야기죠. 중국이 한족의 역사로 해석하는 것 못지 않게, 모든 것을 동이족의 역사, 고로 우리의 역사 식으로 해석하는 것도 조금은 경계해야할 일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공통조상- 몽골, 여진, 고조선으로 이어지는 - 의 역사일 가능성이 더 크겠죠.
그리고 문명의 연대만 따지면 터키에서는 7,000년 전의 문명도 발굴이 된다고 하죠.
문명의 영향을 따질 때 시간 때만을 따지는 것은 자칫 잘못된 방향으로도 흐를 수가 있습니다.
요하문명 흥산문명....이쪽 초기 문명의 형태는 말씀하신 그 7천년 전보다 더 오래전에 더 앞선 모습으로 이미 상당부분 발굴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이르지만 요하문명 발굴이 더 진행되고 체계적인 연구와 문명정립이 되고 나면, 누가 주인이었나가 문제지 수십년안에 최고(가장 오래된)의 문명으로 세계역사책이 바뀔 것이 확실시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3천여년 전의 문명 모습 역시도 동시대의 어떤 문명보다도 훨씬 앞선 모습입니다. 중국이 기겁을 한 이유가 황하문명을 조금이 아니라 연대와 수준 모두에서 크게 앞서기 때문입니다.
윗 댓글에 아리아인의 대이동도 아마 처음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특히 영국의 탐험가 또는 고고학자들이 고대문명 발굴의 시작이 대개는 자국의 문명적 우월성 확인에 있다고 하면, 유러보다 오래된 문명이 발굴될 때마다 당황해 했을 것이나 수백년간 고고학적 발굴과 연구가 이어지는 가운데 체계가 잡히고 인정할 건 하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네요. 물론 아직도 서구 중심의 해석을 하고는 있지만 말이죠. 대표적으로 인도를 하찮게 보던 시각이 인더스 문명의 본격 발굴로 인도가 일정 수준의 교류는 있었을 지언정 서에서 동으로 문화가 전파된 것이 아니라 고유의 거대문명이 존재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시각이 달라졌죠.
마찬가지로 요하문명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유물과 유적 등에 의해 문명에 대해 체계적으로 밝히게 되면 몽골인들도 납득하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문제는 유적이 존재하는 땅의 주인이 숨기고 왜곡하고 있는 문제인데...이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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