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뉴비지만 쌩 뉴비때 정말 낯설었던 게 댓글 문화였습니다.
재밌게 읽고 습관적으로 댓글을 내려보았을 때의 그 충격이란...
왜냐하면 그 때까지만 해도 댓글을 다는 이유가 단순히 작가와 소통하기 위해서라는 단편적인 인식이었기 때문이었죠.
1차원적인 욕은 그렇다 치더라도 꽤나 세세한 반박도 있고 비아냥도 있고,
작가한테 할말이 있으면 쪽지로 보내도 될텐데... 이렇게 생각했었죠.
좀 지나서 생각해보니 깨달았습니다. 아 이건 꼭 작가 혼자 보라고 쓴건 아니였구나.
내 댓글을 보고 다른 독자들도 이 작가의 문제점을 깨닫고 공감해달라는 의미도 포함된 행위였구나.
즉 댓글은 작가와 독자간의 개인적인 교신이 아니라 오히려 독자와 다수의 불특정 독자간의 정보 교환의 성격이 더 큰것이란 거죠.
흔히들 맛집 후기로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아무리 양판소라도 글을 사랑하는 제 입장에선 조금 거부감 드는 표현이긴 합니다. 맛집 후기라는 것은 원래 표준화된 레시피와 입맛을 전제로 하거든요.
무슨말이냐면 우리가 만약 잘하는 평양 냉면 맛집을 가기 위해 후기를 검색할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평양냉면이란 음식은 가게마다 조금씩 다를 순 있어도 대개 비슷한 레시피와 대중들이 기대하는 획일화된 입맛이란게 있습니다. 다른 모든 음식들도 마찬가지죠.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식점을 찾아갈 때 모험을 하기 싫어합니다.
예상되는 맛을 기대할 뿐이죠. 자기가 어릴때부터 먹어왔던 아는 맛을 기대합니다.
그러므로 후기는 도움이됩니다. 평양냉면 맛집에 갔더니 함흥냉면이 나오더라 라는 식의 후기는 참고가 되니까요.
그런데 장르소설에도 이러한 후기가 적용된다는 건 바꿔말하면 입맛이 이미 획일화 되어 있거나
아니면 획일화 되길 원하는 사람이 다수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가령 이 소설은 전개가 너무 느려요. 고구마에요.
작가가 설명충이에요.
설정이 뭐가 이상해요.
등등 감상을 쓴다고 했을 때, 그 개개인의 감상을 타인이 작품 선택의 기준으로 삼아버린다고 상상해봅시다. 작가는 개인의 감상으로 그걸 대하기보단, 내 작품의 조회수를 좌지우지할 중요한 요소로 봐버리기 쉽습니다.
만약 독자들이 그런것에 영향을 안받는다면 작가도 신경쓸 이윤 없겠죠.
아하 넌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해.
이러고 말면요.
하지만 아하 이 작가는 고구마구나. 그럼 난 안봐야지. 내 시간은 소중하니까.
이렇게 나오면 작가는 댓글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나오는게 당연한겁니다.
당장 내 주머니에 들어올 금액의 단위가 달라지니까요.
하지만 소설에 전개가 빠르고 느리고의 기준이 정해져 있습니까?
수학 공식처럼, 주요 사건은 3화 이내에 나와야한다.
설명은 1천자 이내로만 써야한다. 이런게 작법에 나오나요? 양판소는 그래야한다고 누군가 말할 순 있겠지만 획일화는 시장을 고인물로 만듭니다. 시장이 커지고 신규 작가와 독자가 유입되지 못하게 되면 급기야 우리가 읽고 싶은류의 글조차 안나오게 됩니다.
그건 개인의 의견이란 겁니다. 독자도 자기 의견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란 걸 충분히 인식하고 댓글을 달아야 합니다. 자기 느낌을 표현하는건 언제고 보장되어야 할 자유지만 자기 의견을 작가나 다른 독자에게 강요하는 순간 선을 넘는겁니다.
언제고 언로는 트여있어야한다고 믿는 입장에서 작가가 불리한 댓글을 지우는 모습은 그다지 좋아보이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보면 일견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독자들의 모순된 바람이 교차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합니다.
작가가 맞춤법을 잘 지키길 원하지만 연재는 무조건 연참을 선호한다든지.(수정할 시간을 주고 바래야지)
뻔하디 뻔한 소재는 그만보고 싶지만 새로운 소재나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는 손도 대지 않는..
두 개가 양립하기 힘든 바람이 교차합니다.
작가들이 행하는 행태는 결국 독자들과의 상호작용에서 나오는 거라고 봐야합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댓글을 달기전에 댓글의 목적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진짜 작가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의견을 전달하고 싶은건지 아니면 내 의견을 작가를 포함한 다수에게 공감받고 싶은건지. 전자라면 비밀댓글이나 쪽지라는 좋은 수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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