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지식인이시군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추천은 할 수 있지만 강요는 할 수 없죠.
하기 싫다는 것을 억지로 시키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평등하고, 자유로게 살 권리가 있죠. 그것을 침해하는 것은 범죄라고 생각할 정도로 가혹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에게 권리와 의무가 있기에, 의무를 진다면 반대로 권리를 누릴 자격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권리에는 기본권 중에서 평등권은 누구든지 성별이나, 종교, 직업, 장애 등에 의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이며, 자유권은 국가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고 행동하고 생각할 수 있는 권리로 종교를 믿을 권리, 살고 싶은 곳에 살 권리, 말할 권리, 원하는 직업을 가질 권리 등이 있습니다. 사회권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인데, 예를 들어 일할 기회를 요구할 권리,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 깨끗한 환경에서 살 권리,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호를 받을 권리 등을 말합니다. 또 청구권은 국민이 국가에게 어떤 행위를 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여기에는 국민의 어려움을 국가 기관에 알려 국민의 뜻을 반영시킬 수 있는 청원권이나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권리인 재판 청구권 등이 있고, 또한 국가로부터 국민의 권리가 침해받았을 때 국가에게 배상 요구를 할 수 있는 국가 배상 청구권 등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참정권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로 선거에 참여할 권리, 공무원이 되어 나랏일을 할 수 있는 권리 등이 있습니다.
아래글 글쓴분의 댓글중에 "하지만 배우자가 이미 관계를 갖었다는 것을 알면 찝찝해 하거나 심하게는 불쾌해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특히 저 같은 동정은 더 그렇습니다. 흐음, 생각만 해도 조금 기분이 그렇네요." 대체 많음의 기준을 어디서 삼았는지 궁금하고 "저는 윤리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결'이라는 것이 가치있다 말 할 뿐입니다" 가치를 측정해놓고 상품화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글쓴이는 정말 몰라서 말하는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말하는건지 궁금합니다. 같은 여성분이 이야기해도 민감한 주제인대 남자가 나서서 이득이니 가치니 따지면서 상품화가 아니다라고 역설하시는게 소름돋내요.
방금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 합니다.] 라고 하셨는데
점프찬님이 맨처음 썼던 글에 님 본인의 가치에 대해 언급했나요?
[그 말이 많은 남자랑 관계 하라는 건 절대 아닙니다. 그냥 만나기만 하세요. 만일 상대 쪽에서 그걸 요구한다면, 내가 숫처녀이고 결혼하기 저 까지 순결을 유지한다고 말하세요. 만일 상대가 그걸 부담스러워 하고 떠난다면 그냥 보내세요. 그것 밖에 안 되는 남자입니다.]
이게 아까 님이 썼던 글의 일부인데, 이게 어떻게 님 본인에 대한 가치에 대한 말이죠...?
남의 가치를 평가해놓고선, 이제와서 "너같으면 자신의 가치를 안높이겠느냐" 라니...(...)
처녀성을 좋아하는 누군가의 기호이며 그런 기호가 많다 라는 것이 제 의견이었습니다. 동의합니까?
일단 솔직히 말해 가치를 매기는 것이 어째서 상품화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처녀가 비싸다고 했습니까? 처녀성이 중요하다 했지, 그게 사람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제가 언급한 적이 있습니까? 제가 지금까지 계속 언급한 것은 '순결은 소중하다'입니다. 순결하지 않은 여자는 뭐다 얘기했습니까? 순결은 가치 있다, 소중하다=상품화 이겁니까?
제가 이중잣대를 듬다고 하셨는데, 오해의 소지를 주었을 지언정 성 삼품화에 대해서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순결이 미래늬 배우자를 배려한다는 게 상품성을 말하는 건가요?
저는 처녀성에 대하여 이중잣대를 잽니다.
첫째는 문학적인 관점으로 처녀성의 기준입니다.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여자는 대우가 좋지못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처녀성'을 중시하지 않은 역사도 없습니다. 오히려 처녀성은 신성함을 표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동정은 뗀다지만 처녀는 잃었다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처녀를 잃었다는 것은 누구의 것이 되었다는게 아니라 세속적으로 볼 수 없던 처녀가 세속적인 인간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프리카 같은 경우 처녀들이 왕의 기념일에 몇만 키로미터를 달려와서 춤을 추게 하는 행사가 있습니다. 이 마지막 행사는 왕이 친히 내려와 처녀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지요.
동양의 처녀성은 모두 세속과는 담을 쌓은 모습으로 나오고, 이것은 서양조차 마찬가지 입니다. 어느 경매사이트에 처녀성을 팔겠다는 기가막힌 경매가 진행되었는데 이 가격이 무려 10억을 넘었습니다. 물론 사이트에 팔겠다고 올린 사람도 사겠다는 사람도 '처녀성이 얼마의 가치를 지니는가' 알고 싶었다고 하는데요. (물론 이 뒤로 처녀를 진짜로 팔겠다는 사람들이 생겨서 나중엔 뉴스거리도 안되었지만) 서양 신문에 오르기를 '처녀성이 겨우 10억쯤 밖에 안가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라고 평하기 까지 했습니다.
이 처럼 문학적인 처녀성이란 신성한 것, 세속적이지 않은 것으로 취급됩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는 글이 길어지니까 뭐 진화의 과정이 어떻고, 역사적인 뭐가 어떻고 까지는 말하고 싶지 않고요. 그래서 문학적인 처녀성은 고결함으로 표현됩니다.
문학적인 표현으로 처녀성을 나타내는 것 중에서 더러운게 없어요. 감히 그런 단어가 생겨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문학적인 표현으로서의 처녀성은 신성함까지 표현되는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잣대는 현실적인 기준입니다. 현실에서 처녀는 곧 순결이며 순결은 곧 정숙을 뜻했습니다. 수학적으로 간단하죠. 처녀=순결= 정숙.
처녀면 당연히 순결한 거고, 순결한 건 당연히 정숙한거고, 정숙하면 당연히 처녀인거죠. 이 잣대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첫번째 기준인 문학적인 처녀성과는 백만광년쯤 동떨어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최종적으로 바라는 것은 정숙함이지, 처녀도 뭣도 아닙니다.
마음의 순결을 알 수 없고, 마음은 변덕이고, 마음은 확실치 않으니 몸으로 확인하겠다는 게 처녀의 순결이고 처녀의 정숙인거죠. 불안하니까 뭐라도 확인하겠다는 부류로 일종의 무신론자의 외침과도 같습니다. '안보이는데 어떻게 믿어?' 라는 외침이지요.
더불어 이런 표현들은 첫번째 예시와 달리 '더러움'의 표현이 같이 붙습니다. 장르판에 나오는 처녀성도 이 두번째 기준에 맞춘 것들이 아주 많지요. 이들은 묻습니다. '더러운 처녀가 가능한가? 정숙한 비처녀는 더러운가?' 숱한 기준들이 생겨나고 재어보고 논란을 이어가지요.
때문에 저는 두번째 기준이 결국 원하는 것은 '정숙함' 일 것이라 여기며, 그 때문에 처녀냐 아니냐는 그외의 문제라고 봅니다. 그러니 두번째 잣대로 처녀가 어떻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믿고요. 첫번째 잣대로는 지켜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이 논란은 첫번째 기준으로 맞지 않으며 두번째 기준에 부합하므로 별 상관없고 딱히 중히 생각하고 싶지도 않으며 그저 '마음을 믿지 못하나보다.' 여기고 넘어가고 싶네요.
.......아...나는 글을 왜 짧게 못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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