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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Comment ' 10

  • 작성자
    Lv.1 쿤산
    작성일
    05.09.19 12:33
    No. 1

    대부분은 오류라거나 아니면 인식부족으로(이를테면...저쪽에서도 무지해서. 또는 지도 같은 건 약간 세기가 늦죠-19세기는 17세기) 서술이 비틀린 감도 있지만 분명한 건 우리 민족은 '절대' 한반도가 강역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저 예전 마한진한변한의 삼한시대부터 한반도는 우리 한민족의 영토 '중' 한 곳 이었을 뿐 이곳이 모든 영토라 착각하면 굉장히 곤란하죠. 조선 말기에 들어와서야 간도까지 빼앗기고 처음으로 이 땅에 갇힌 지 어언 백년이 흐른 뒤입니다(신라는 남북국시대인 건 다 아실 테고, 고려는 발해가 어이없이-.- 망한 공백기 때문에 희한한 증상이 생긴 것 뿐)


    백제의 대륙 진출은 이미 알려진 것이고, 사실 광개토대왕의 업적도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의 행적과 당시 우리가 항상 무시해오던 '중국대륙'의 실체를 생각해보면 결코 그 땅일 리가 없습니다. 왜냐면 지금의 중국대륙은 진 시황 때 처음으로 절반가량만 이루어졌을 뿐 그 후론 거의 지리멸렬했기 때문입니다(현 중국은 사실 청의 후예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개쉐이들.. 만주족에게서 벗어난다더니, 같은 지배하에 있던 다른 종족들의 영토도 이제 빼앗아 가증스런 꼴을 하죠. 그래놓고 영토주의 사관이라니? 좆이나 까라고 하고 싶네요) 사실상 만리장성 이후로 장강 이북은 애초에 중화민족의 무대도 아니었고, 그들이 원하던 대도 아닌 방어적 '국경선' 일 뿐입니다. 그럼 그 공백의 영토는 어찌 된 건지? 사실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우리 민족은 이미 은 이후부터 중국 동북부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사료가 없기에 거짓으로 치부되지만(실증주의의 씨발같은 면이 여기서 나옴. 땅은 다 중국에 있고 자료는 일제 때 다 태워졌는데 어떻게 증명해? 그러고도 우리가 스스로 찾는 사료적 내용마저도 무시하고 사학계는 다 뒤져야 정신을 차리냐? 하여튼 저 영토를 우리가 수복하거나 사학계가 제정신을 차리거나 우리가 세계2등 먹기 전에는 절대 이 악순환은 못 벗어납니다. 갑골문자 발견이 100년이 안 됐습니다. 그 전까지 중국 역사는 4000년이 못 됐고요. 있을 '수' 없는 역사란 있을 '수' 없다 이겁니다. 적어도 의심이 가는 증명이 산재할 때는요!) 실제로 여러 면에서 그 자료들이 나오고 구이나 구려, 우리 민족을 나타내는 명칭들과 여러 면에서 확실히 눈에 들어오지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고구려를 깎아내리며 수당에 버틴 것은 단지 험한 산세와 깡으로 미는 근성이라고만 하는데, 절대 말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일단 방어전은 침략적 입장에서일 뿐, 유리한 점도 있지만 100만의 군세 쯤 되면 단지 산세가 험하다고 해서 다 될 일이 아닙니다. 그럼 칭기즈칸은 어떻게 세계제패를 했을까? 그리고 다른 면들과 또 항상 당군들이 수공과 육공 등 다양한 방법으로 대규모 전천후 대접전을 수시로 벌인 걸 생각할 때, 절대 우리가 딸렸던 게 아닙니다. 그리고 영토도 있어야 망정이지, 한반도 만한 코딱지 영토에선 삼국 수백만의 '국민'은 몰라도 '군대'는 절대 없습니다. 농경주의가 판치던 당시 시대를 지금과 같이 생각하지 마세요. 애새끼 하나 키우기가 지금관 비교할 수도 없이 험한 시대입니다.


    뭐... 나도 아는 게 빠삭한 건 아니니까 대충 끊고, 하여튼 여러분도 실증주의에 물들지 말고 역사를 바로잡았으면 합니다(실증주의, 말은 좋지만 함정이 너무 많죠. 찾아야 된다는 논리는 좋은데, 말뿐인 건 증명 못한다며 그걸 못 믿고 또 찾는 것도 돈 든다고 못하고 결국 역사의 증명 하나 못하니, 결국 국수주의. 일제가 박은 악습일 수밖에...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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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4 릴리엘
    작성일
    05.09.19 13:29
    No. 2

    본문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는 의심되지만(의외로 저런 식으로 사실인 것처럼 꾸미는 거짓글이 많습니다. 예전에 떠돌던 아시아의 역사를 바꾼 이순신이라는 제목의 글도 그렇고) 만약 저기에 제시된 미스테리로 추론한 결론을 인정하기는 어렵겠는걸요.

    일단 실증주의를 표방한 식믹사관의 일부사학계는 물론이거니와 민족주의자들마저도 받아들이기는 힘들겁니다. 양측의 추구하는 바와 모두 대치되거든요. 아니 오히려 민족주의자들이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것 같군요. 만약 저것을 인정하게 되면 한민족 '따위'는 우리가 지금껏 정통성을 주장해 왔던 고대국가들의 변방에나 위치한 극소수민족으로서 그 나라들에 대한 정통성을 이어받을 수 없게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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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4 릴리엘
    작성일
    05.09.19 13:37
    No. 3

    뿐만 아니라 저것을 인정하게 되면.....

    결론에서 광활한 영토를 자랑하는 고대국가들. 그 나라들의 영토와 민족들이 현재 가장 많이 속해있을 나라는 바로 중국입니다. 즉 정통성은 한반도의 국가가 아니라 중국이 가지게 되겠죠.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가뜩이나 역사왜곡이다 뭐다해서 주변국가들을 역사적으로, 궁극적으로는 현재진행적으로 집어삼키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는 중국입니다. 이런 중국에게 명분을 제시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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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3 張秋三
    작성일
    05.09.19 13:39
    No. 4

    현 중국은 솔직히 말해서 '잡인'들의 나라죠.
    민족의 정체성이란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혼혈의 민족이랄까요...
    여러시대를 거치면서 그들의 혼혈민족이 되었고,
    '한족'이란건 그냥 개밥 일뿐이죠.
    우리나라 역사는 일제 이전부터 말살되고 있었지요.
    고구려가 나 당 연합군에 의해 망하면서 그들의 서적 및 문화가 깡그리 사라졌으며(그러나 고구려의 기상은 후일 중국대륙을 제패하는 민족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지요.),그 후 지리멸렬해졌지만 후손들은 그들을 잊지않고 끊임없는 복국운동을 펼쳐,대진(발해)국이 건국되었고 해동성국이라 불릴만큼 번영을 누렸으나,후일 거란에 의해 망하게 되었다고는 하지만...그들의 찬란했던 역사는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역사를 우리는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뿌리가 없는 나무는 그냥 쓰러지듯이 우리의 역사를 찾지 못한다면 우리 또한 '잡인'들의 나라로 기억될 수밖에 없을겁니다.
    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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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3 張秋三
    작성일
    05.09.19 13:42
    No. 5

    저도 릴리엘님의 말처럼 본문의 글이 의심스럽긴하군요.
    저 미스테리가 실증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닌가싶네요.
    '정통성'문제에서도 역시 중국에게 넘어갈 수밖에 없다라...
    안타깝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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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句芒
    작성일
    05.09.19 14:44
    No. 6

    고무판에서 이런 글은 좀 난감합니다.
    흔히 이런 쪽의 주장을 펼치는 분들을 재야사학자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금강님 역시 재야사학을 주장하시는 것 같고....

    호신화님 말씀처럼 실증주의 사관은 극복되어야 한다고 보고,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는 청을 승계한 거라 생각되어지지 중화족(하와족)의 고유영토라 볼 수 없다는 점 동의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본문에서 말하는 자료가 옳다는 것이 증명되진 않다고 봅니다. 호신화님도 그렇다고 보시진 않겠지만....

    어떤 것이 옳은 자료이고 올바른 역사관인지 저 역시 모르지만, 한가지 참되다고 생각되는 것은 저 개인이 생각하는 정의에 부합하는 역사흐름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에 태어나서 그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백인 빈민이 되고 싶진 않습니다. 한 나라의 크기나 정복의 역사는 그나라의 밑바닥에 있는 개인의 행복과는 무관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김구 선생의 말씀처럼 문화에 있어서 세계에 도움이 되는 일등국가가 됐으면 합니다.
    과거 하북이남에 우리의 영토가 있었는지, 실제 우리역사가 1만년이 넘었는지 정확한 자료가 없는 이상, 저의 관심은 그 자료를 찾거나 증명하는 것보다 앞으로의 우리나라의 올바른 발전에 있습니다. 뭐 본문이 사실이고 증명가능하다면 뜻깊은 일이라고 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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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쿤산
    작성일
    05.09.19 17:36
    No. 7

    흑응// 저도 저기에 적힌 걸 사실로 믿지는 않습니다(ㅋ)

    보니까 한 30%는 약간 진실성 같이 보이게 해놓고 40%는 구라, 나머지 30%는 거의 허구로 날조했군요(왜냐면 너무 뻔히 보이는 건. 좀 -.-)

    실제로 우리가 완전히 중국대륙의 시조이니 했다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자꾸 들어가다 보면 주위의 부족들이나 국가들이 다 우리 꺼고 그렇게 되다 보면 오히려 우리가 정통성을 인정받기가 힘들거든요(청나라도 주신의 본을 이었고, 몽골도 상당히 그쪽 식으로 정통을 이어받고 금,요 그 외 모든 것들이 그런 식으로 치자면 오히려 우리가 밀려버리죠 -그러니까 사실 그런 추정이 무의미합니다만..) 종래의 사학자들 중 개방적인 사람들도 문제 삼는 것이 그건데요, 실제로 은나라나 그런 문화, 그리고 중국에 산재한 동이족의 문명들이 단지 그 이름이라고 '한'민족의 것이라긴 문제가 있지 않냐며, 바로 그 점에서 우리가 자가당착에 빠질 위기가 높다는 겁니다.


    우리는 모르고 있지만, 사실 중국 내에서도 이미 은나라는 동이족이 세웠느니, 중국 전국 칠기나 오호 십육국 시대, 그리고 그 이후에도 중국본토에 동이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인정하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좋아할 게 아닌 것이, 그들은 만리장성 이후의 진과 그 후 당, 사실상 고구려 시대 이후로는 동이를 '두 개'로 나눠서 생각하거든요. 한마디로 우리가 연관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주체라고도 못한다는 거지요. 그 한 갈래 정도, 아니면 다른 계통으로 여기거나 치부해 버리는 겁니다. 은은 사실 중국의 시조국가쯤 되니, 차라리 오히려 그들이 한국을 자기네 계통이라고 해버리는 그들의 주장히 되려 어느정도 뭔가가 들어맞게까지 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그들의 주장이기까지 하는 겁니다.








    참고자료로

    〈동이는 누구인가〉

    기원전 3000년경에 단군의 고조선이 국가로서의 위상을 갖고 현재의 한반도를 비롯한 만주 등 중국의 동북부를 통치했다고 객관적인 자료로 인정하더라도 당시의 기록이 없으므로 추론만 가능한 것은 사실이다.

    바로 이들을 중국은 동이(東夷)로 불렀다. ‘동이(東夷)’란 ‘동쪽 오랑캐’란 의미로 고대 중국인들이 세계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는 이른바 중화사상(中華思想)에 기초하여 그들의 동방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사용한 별칭이다. 중국 동북부에 살던 민족들이 스스로 동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으나, 중국인들에 의해 동이라 불려졌기 때문에 동이는 우리의 고대사를 거론하려면 반드시 등장하는 단어로 볼 수 있다.

    동이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중국인들이 의미하는 중국사에서의 영토가 동쪽으로 어디까지이냐가 관건이다. 중국의 사료에 의하면 연경(燕京) 즉 오늘의 북경에서 조금 동쪽인 만리장성이 끝난 곳 즉 산해관 부근으로 추정한다. 산해관 동쪽이 동국사 즉 한국사의 영토이다.



    북경 근처 만리장성인 모전욕의 설경. 진시황은 기마민족 흉노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는데 이를 만리장성 안에 있는 민족만이 중국인이라는 것을 선언하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중국인들이 동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매우 오래된다. 중국 은허에서 출토된 갑골문에는 은의 무정(武丁 기원전 1324∼1266)이 동이를 정벌하느냐 마느냐로 그 가부를 점친 갑문(甲文)이 있으므로 동이족이 무정(武丁)시대 이전에 중국의 동북방에 거주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사에서 동이는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협의의 동이는 고대 중원의 동쪽인 산동반도와 회하(准河)유역 일대의 종족을 가리키며 광의의 동이는 한족(漢族)의 세력이 보다 확대된 진(秦)이후 중국의 동쪽인 만주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이르는 민족을 총칭한다. 그러므로 동이를 종족의 칭호가 아니라 정치적인 용어의 개념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좌전(左傳)』에 의할 경우 상(商)의 멸망은 결국 동이족 때문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으며 갑골문, 청동기 명문에서도 이와 같은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상(商, 은)이 기원전 11세기경 주족(周族)이 중심된 여러 종족의 연맹 세력에 의해 멸망하고 서주(西周)시대가 열렸다. 동이는 끊임없이 중국 역사 속에서 활동을 전개하였다.

    주공(周公) 단(旦)은 어린 성왕(成王)을 대신하여 섭정하였다. 단(旦)은 동이에 대한 대대적인 전쟁을 벌여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한 지역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주(周)왕실의 친척과 공신을 대규모로 분봉하였다. 이때 봉해진 나라가 산동(山東)과 강소(江蘇) 지역의 노(魯), 제(齊), 초(楚) 등의 나라이다. 노나라에 살았던 공자(孔子)와 맹자(孟子) 등을 동이족이라고 주장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후 서주(西周)시대의 동이는 그들 지역에 분봉된 제후국들과 치열한 병탈의 과정을 겪게 되었다. 서주(西周)시대에 주(周)의 제후국과 토착민 동이 사이에 있었던 대표적인 대결이 제(齊)와 래이(萊夷), 주(周)와 회이(准夷)와의 전쟁이다. 래이(萊夷)는 중국 동부 연해 지역에 거주하던 동이족의 한 지파로서 산동에 거주했던 토착민(주로 목축업과 농사를 지었음)이며 회이(准夷)란 준수(準水) 유역에 위치했던 종족이다.

    제와 혈전을 벌였던 래이(萊夷)는 제나라 영공(靈公) 15년에 완전히 멸망하였다. 회이(准夷)도 노(魯)와 대립적인 관계에서 점점 밀접한 관계로 변화되며 동화되었다. 춘추(春秋)시기에는 서이(徐夷)가 등장하는데 서이(徐夷)는 산동에 존재하던 동이 중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나라였다.

    서이(徐夷)가 한민족으로부터 주목을 받는 것은 서언왕(徐堰王)의 설화가 고구려 주몽의 난생설화(서군(徐君)의 궁인이 임신하여 알을 낳았으므로 상스럽지 못하다 하여 강가에 버렸더니 독고모(獨孤母)의 개가 물고 들어왔다. 그가 알을 따뜻하게 하였더니 마침내 아이가 태어났는데 이 아이가 바로 서언왕이라는 내용)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후한서(後漢書)』에 ‘서주(西周) 강왕(康王) 때 서이(徐夷)가 스스로 왕임을 천명했다. 그는 ‘구이(九夷)를 거느리고 종주(宗周)를 쳐서 황하의 상류까지 이르렀으며 국토가 사방 500리에 달했고 조회하는 나라가 36국이나 되었다.’라는 기록을 볼 때 당시에 매우 강성한 나라였음을 알 수 있다. 임승국은 서언왕이 주나라 목왕(穆王, 기원전 1001∼947)과 일대 결전을 벌렸는데 이 당시 서언왕이 할거한 곳은 회수(淮水)와 대산(垈山)사이의 회대(淮垈) 지역으로 중원 대륙에서 가장 기름진 평야라고 설명했다.

    중국 문헌에서 동이는 ‘이(夷)’, ‘동북이(東北夷)’, ‘구이(九夷)’, ‘구려(九黎)’, ‘사이(四夷)’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된다. 그러나 동이보다 이(夷)가 먼저 일반화된 것은 이(夷)가 어떤 특정한 민족을 가리킨 고유명사가 아니라 고대 중국인들이 자신들과는 다른 이질집단을 통틀어 부른 명칭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인들은 문화가 높은 지역을 ‘하(夏)’, 문화가 높은 사람 혹은 종족을 ‘화(華)’라 칭하고 화하(華夏)가 합해져서 중국이라 칭했다.

    여하튼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산동의 동이들은 점점 중국인들에게 밀려 점점 제후국에 예속되면서 그들의 고유의 문화는 중국 문화에 흡수되기 시작하였는데 이 과정을 완성시킨 사람이 기원전 221년 진시황제이다. 그는 중국 천하를 통일시켜 전국(戰國)시대를 마감시키면서 중국을 통일하자마자 이전까지의 국가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통일 제국을 세웠다.

    진시황제가 통일한 중국 영역은 동으로는 조선(朝鮮), 서로는 임 조 강중, 남으로는 북향호(北嚮戶), 북으로는 황하의 북단, 동북은 요동과 국경을 접하는 거대한 영토로 오늘날 중국 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서주(西周)시대부터 중국인들에게 동화하기 시작한 중국 대륙 안의 동이들은 진나라의 출현으로 중국민족으로 완전히 흡수되었다고 볼 수 있다. 기수연 박사는 한대(漢代)이후 동북지역에서 나타나는 동이를 그 이전 시기 산동 일대에서 존재했던 동이와 같은 계보로 묶을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하와 은나라는 후대에 중국에 동화되어 중국인으로 자리잡았으므로 이들 국가를 동이족이 원류인 한민족이 세웠고 한자도 동이가 살던 산동 지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한자 역시 ‘한민족이 만든 것과 다름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비약 중에서도 비약으로 볼 수 있다.

    여하튼 이런 주장은 중국의 북방에서 생성된 이(夷)집단이 한 파는 산동으로 내려가고 또 다른 한 파는 동쪽으로 나와 만주 일대에 분포되었다는 견해들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동이(東夷)가 동쪽의 오랑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동쪽의 활을 잘 쏘는 민족이라는 설명도 있다. 이(夷)자는 원래 활은 평상시에 활줄을 빼놓았다가 유사시에 걸어서 쏘는 생활을 한 사람들의 상형자라는 것이다.

    고대사에 대한 연구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우리의 고대사는 이제 시작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을 감안한다면 이 분야는 앞으로 보다 많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계속 우리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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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걸 보면 대다수의 중점을 차지하는 주장이 어느 것인가 명확히 보이게 됩니다. 실제로 이건 심각한 사태로, 자칫하단 고증이 부족한 우리가 당할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분명 동이는 우리와 연관이 있으며, 그렇다고 해서 '중화'족과 완전히 연관 있다고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또 갈라지는 게, 분명 하은주는 중국의 시조격이지만(삼황오제는 신화시대니 여기선 제외) 이들은 동이로 분류할 수도 있으니 그러나 중화족이 이들과 연관있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지금의 중국민족의 형성은 고작해야 진 시황 때 처음 통일이 됐고 그 뒤로 한(漢)나라 이후로 비로소 그들의 정체성이 형성되었습니다.
    사실 한족 한족 하지만 이건 그냥 한나라 사람이란 것으로 별 의미도 없고 구속력이나 강화시키는 뿌리약한 개념입니다(유방이 치우의 제사를 지낸 건 참고로 알아두시길.. 일단은). 실제로 중국인들은 한족이라는 것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냐면 주위 국가를'흡수'하는데 거의 사용합니다. 강제로 융화시키고 강제로 통합시키는 식으로 민족을 늘리는 데 개중에 지금 중국은 54민족이 있고 13억이라지만 소수민족은 1억 도 안 되냐 반문하는 데 , 정확한 사실이 아닙니다.
    사실 아무리 한족이 생산력이 좋아도 그렇게 한 민족이 많이 못 낳습니다(인도 제외...-.-) 정확히 하자면, 지금의 한족은 거의 100년도 채 못 된 시기나 마찬가지 입니다. 뭐냐면, 부모가 위구르족이다, 그럼 자식은 '한족' 입니다. 행정상 그렇게 됩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무조건 3대째는 '한족'이 됩니다. 왜냐면 그렇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중국 수억을 차지하는 인구는 그들 자신도 뿌리를 잃었겠지만 저 옛날 서하나 화남 지방, 중국 외 전역에서 뿌리를 타고 온 부류들이 상당합니다. 그래도 그들은 '한족' 입니다. 왜냐면 이제 그렇게 못하면 그들이 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중국의'순수한족'은 "없습니다". 몇 명이 아니라 없구요, 왜냐면 이미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수천년 전 한나라 사람들이 지금은 거의 사라진 거나 마찬가진 데 현재 한족은 그냥 개념상 헤게모니로 사용하는 지배층의 논리구조나 다름없다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금세금세 부족을 늘리고 융화시키기 때문에(사실 중국의 민족개념은, 우리가 좀 반성해야 할 것이 한쪽만 아니 한방울만 피가 섞여도 무조건 하나로 만들어버립니다. 아니 자기'네' 땅에만 살아도 자기네 사람입니다. 그에 반해 우리는 같은 핏줄도 한때 서자라고 쫓아내고 하던 시절이 있었으니...-_-;) 중국이 거대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한 게, 한족이란 것만으론 힘들지요 솔직히.

    우리는 더 생각해야 할 것이 바로 '중화' 라는 겁니다. 항상 우리가 의미없이 넘기는 중화. 바로 이것이 진정한 중국을 움직이는 핵심이고 사상이라 이겁니다. 바로 자기네들이 화하족, 즉 화(華)의 정신을 살려 모든 것에 (심지어 그들은 문화권 구분도 화북, 화중, 화남으로 해버리죠 -사실 화남은 송대 이후고, 화북은 우리 동북 3성입니다 --개세이들) 그리고 여기에 바로 중! 중(中)을 넣어 중화! 즉 화의 중심, 바로 문화의 중심이며 그들이 다른 동이나 구이, 그 외의 세력들을 합할 수 있는 주류'세력' 이라는 것을 천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시대가 흐르며 많은 나라가 군웅할거 했어도 (심지어 한족이 없어져도) 중화의 정신은 중국에 뿌리남아 있습니다. 바로 자신을 주체로 삼고 자신들이 아시아 문명의 법통을 잇는다는 그것이 바로 다른 민족을 '한족'으로 편입함에 있어서도 당당하고 그들을 하나의 문명으로 융합하는 기틀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 좋게 봐줄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바로 이 '중화'라는 것이 은 이나 그 외의 중국지역을 한때 지배하던 동이족들마저도 화 속에 녹여버리고, 그들을 후안무치하게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중국은 삼황오제라는 가상의 존재로 치우를 이김으로서, 우위를 점거했고 여기에 은나라가 지금의 한韓민족과는 다른 동이로 그들에게 융화되었다는 자신감을 가짐으로서, 그리고 그 이후로 진시황 이래 적어도 중국 영토의 일부인 화중 지방을 비롯해 한족으로 민족을 묶고 그 이후로 법통을 꾸준히 유지했다는 의미로 타민족에 비해 그들의 자부심이 가장 굳건해 질 수가 있습니다 -사실 이민족이 중국에 그렇게 집착한 이유도 물론 중국이 큰 떡이지만, 사실 중국이 바로 아시아 동네에서 가장 전통있고 그 명맥을 이었다는 것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그래서 몽골도 초원의 기틀을 부르짖으며 중국의 한족을 부숴버리려 했고, 청나라도 만주를 중히 여기며 주신제국의 후예라 부르짖으며 '화'족을 없애려 했던 거겠지요) 완전 후흑의 정신이 틀어박혀 있다 이겁니다.


    사실 아시아 문명에 동이는 꽤나 많이 남아있고, 우리도 동이를 온전히 우리 거라고만은 못합니다(중국이 맨날 말하는 고구려는 한나라의 역사로는 무리다 하는 것도 바로 여기서 기원). 그러나 분명 동이가 각 민족마다 다 끈이 있는 연고가 있다고 해도, 우리는 절대 중화에 물들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그들보다 훨씬 '더' 뿌리가 깊으며 그 원류가 차라리 더 깊이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중국에 대항해 가장 오래 대항한 동이민족 방어전을 치룬 국가는 우리며(다른 민족은 아니죠... 거의 없었으니) 우리의 어원도 중국보다 훨씬 튼실합니다. 만날 명칭이 왔다리갔다리인 중국에 비해(중국에는 한韓나라도 있었습니다. 얼마 못갔지만. 그리고 진 당 말고 15c이후론 거의 이민족 천지. 금 요 원 청 다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주신-조선-고조선으로 이어지는 동이법통, 그리고 마한진한변한에서부터 이어지는 삼한제, 그리고 늘상 있던 5경제와 3경제 등 우리는 수도중심의 중국문명과 달리 언제나 유동적인 체제를 형성했습니다(누가 우리는 항상 분단만 하고 살아서 신라때부터나 우리 민족이라고 하는데, 정신 차리시고... 고구려 땐 좀 싸웠지만 그 전에는 우리 역사도 모르면서 셧다 마우스 혓바닥 놀리는 건 제발 닥쳐주시길) 그리고 고구려는 한자식 옮김이며, 실제로는 가우리입니다.

    아예 부여나 고구려때부턴 중국의 수작에 니기미 뽕딱 하며 코빵귀도 안 뀌었습니다. 오히려 고구려는 부여통합 이후 아예 나라 이름도 가우리, 즉 가우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지금도 순우리말 어원이 남아있는 말입니다. 가우 , 가, 가이 등 변천사가 많죠.
    리는 리, 즉 땅이라는 뜻으로 나라라는 의미도 있고 강역, 민족의 생터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가우리는 가운데 나라, 즉 중국(中國)입니다.


    고구려의 말 뜻은 중국입니다.
    (한자번역은 신경쓰지 마시고...-- 그건 오역입니다)
    즉 우리는 중국의 중원, 중화 사상에 대항해 웃기고 있네, 중원은 우리야! 동이민족, 조선의 법통은 우리가 이어받은 것이다! 바로 우리가 중국(가우리) 이다! 라는 걸 온 몸으로 내보인 겁니다. 그리고 항상 우리 역사와 민족에게서 내려오던 천손제도 언제나 조상과 민족을 기리던 상징이었지요. 한마디로 우리 민족은 이렇게 자랑스럽게 민족의 혼을 이어오던 것입니다. 고려는 당연히 고구려 뒤를 이은 건 아실테고, 설마 조선 모르시진 않으시겠죠? 이렇게 우리의 어원과 명칭은 언제나 뜻이 있고 맥이 있는 한결같은 흐름으로 내려져 왔습니다. 발해니 백제니 신라도 다 우리 안에 있는 뜻이고, 혹자는 신라가 토착민족이니 우리 민족이 아니느니 백제는 전라도 쓰레기, 동이가 아니다 이러는 좆소리를 하는데, 신라는 마한과 변한이 합쳐져 내려온 후예이고 백제는 고구려의 갈라진 형제입니다. 모두 우리 자손이고 민족이며 중국대륙으로까지 진출한 자랑스런 국가입니다. 신라는 -.- 좀 글타만 하여튼... 발해도 우리 민족이고 이렇게 우리는 언제나 한 민족의 기틀을 이루어냈습니다(대한민국도 韓이라는 말이 들어감으로서 그 법통을 여전히 잇고 있지요. 중국이 중中 화華 한漢 등으로 5천년 법통을 상징했다면 우리는 거기에 대항해 가우리, 한韓 조선朝鮮 등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동이를 동방의 활의 민족으로 한결같이 해석한 데 비해, 그들은 동방오랑캐라는 말로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는 망언을 했지요. 무슨 의미겠습니까? 결국 자신들이 부정하는 것이고 자신들이 진정한 법통이 아닌, 분파에 불과하단 겁니다. 지금 와서 계속 망언은 계속됩니다만 그래도 부정할 수 없는 건 역사와 기록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세계 어느 나라를 가 봐도 가우리(중국) 이라는 말 같이 확연한 오연함과 자신감을 가진 나라는 없습니다. 이건 유럽 나라가 로마를 사칭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중국은 약간 의미가 약하고 우회적이긴 하지만). 그 누가 아시아에서 감히 법통, 즉 중국이라는 뜻의 자신이 원류라고 자부할 수 있었겠습니까? 바로 우리뿐입니다. 중화민족도 그런 소리는 못했습니다. 그들 역사에서 중국은 이제 갓 50년도 안 된 가소로운 오만의 극치일 뿐입니다.


    이렇게 어디를 보더라도 5천년 고조선, 한씨조선에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참고로 한韓씨는 우리의 고유의 성씨이며, 고조선의 왕족의 씨입니다. 즉 우리 민족을 나타내는 성입니다. 한씨는 한국의 최고(最古) 역사를 지닌 이른바 삼한갑족(三韓甲族)이고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선사시대부터 기원을 이어온 사슴이나 우물 등 다양한 의미가 내포된 -아직 분분하기에 여기는 잘 모르겠습니다...- 고유성이고 당연히 우리만 쓰는 성입니다. 중국의 한씨는 우리와 다른 성씨로 갈래가 다른 한자만 어떻게 같은 성씹니다. 현재 청주 한씨를 제외하곤 한국 한씨는 전멸했다만, 청주 한씨가 거의 고조선 법통을 잇는 성씨라고 현재까지 정설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동이민족 계통을 잇는 성씨로는
    부여의 해씨(解氏), 고구려의 고씨(高氏), 백제의 부여씨(扶餘氏), 신라의 박씨(朴氏)·김씨(金氏), 발해의 대씨(大氏), 고려의 왕씨(王氏), 조선의 이씨(李氏) 정도가 있고 그 외의 성씨는 이들 성씨의 분파이거나 아니면 중국 성씨입니다-물론 중국 성씨는 거의 없고 대개가 이들 성씨에서 변형된 것들입니다- 한마디로 韓씨를 필두로 그 아래로 갈라져 온 성들이 한국 고유의 대성(大姓)이고 바로 이런 흔적들이 부인할 수 없는 법통의 증거로 남는다 아입니까! ㅋ)


    그런데... 위대했던 조상들 대신 우리의 후손은 비참한 분단과 함께 슬픈 현실에 놓여있으며, 우리의 과거를 부정하고 민족의 혼을 잊는 망연한 현실에 처해있습니다. 영토도 뺏긴 채 조상들이 묻힌 무덤 한 곳도 제대로 들르지 못하고 제사 한번 못 지내며, 단절된 뿌리 하나 회수하지 못하며 개씨벌 같은 실증사학에 물들어 미친년 지랄 떠는 소리나 지껄이고 있으니 가히 간과 폐를 찢고 내 염통을 통째로 갈아 마셔버리고 싶은 심정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하아...)


    거기에 우리 민족의 문화와 역사도 중국에게 법통을 넘기고 아시아중심이 중국이라고 해 버리며(갑골문자는 은이 만들었고, 은나라는 동이. 갑골은 나중에 한자로 이어지죠... -물론 아직도 논쟁은 많습니다만, 상형문자의 역사를 생각해볼 때 그림문자를 다 중국 거라고 도저히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신대문자나 그 외의 문자 등, 많은 설들이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단지 '설'로만 끝나는 실증주의 때문에 비애가 잠길 뿐 -가림토는 제외... 너무 오래된 6천년 역사에 -.-; 환단고기가 좀 문제 있어서. 일단 보류...) 이제 세계의 4대문명은 강대국의 것들만 되어버리게 되어 버렸습니다.


    쯥...
    그래도 아직 희망을 놓지 말고 앞으로 나갑시다. 이미 우리 문명의 흔적은 명확하며, 그 모든 것이 확연합니다. 실제로 중국의 홍산문명은 이미 중국 학자들 자신마저도 당황할 지경이라고 합니다(아직도 4대문명 4대문명 하는데...70년대부터 이미 그건 부정됐습니다. 4대문명이 거짓이라는 게 아니라, 4대문명의 설 자체가 거짓이죠. 가끔 신화관을 너무 믿는지 아니면 판타지소설을 너무 처 봤는지 세계가 4 뿌리에서 갈라져 인류가 시작됐다는 소설을 너무 믿는데... 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정해진 흐름에서 딱 인간들이 갈라져 나온답니까? 내 참 어이가 없어서 이미 세계 문명의 흐름을 시작하는 문명권은 10개가 넘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 상식은 우리 의미를 초월하고 전혀 뜻밖의 것들인 게 많습니다. 단지 개중에 문명권이 좀 작거나 발굴이 늦고, 의심가는 여지가 남아서 그렇지. 그리고 4대문명 따지자면 일단 마야문명들부터가 말이 안 되죠. 전혀 다른 세계관과 법통을 이어온 문명들은 4대문명으로는 설명 못합니다. 심지어 황하 문명도 동이족 꺼란 설까지 나오는데... 그런 식으로 하자면 한 10 몇대 문명 하듯이 하든가 아니면 종래의 설을 버리던가 해야 합니다. 모든 문화는 이 4개에서 비롯됐다는... 이건 절대 각 나라와 민족들의 고유의 습성을 설명해 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그들의 상상과 달리 전혀 문화적으로 다른 옥, 토기나 그 문양들이 학설을 뒤집기 때문이죠. 홍산문명은 참고로 중국 요녕성에 있으며 동북3성 중 가장 중국에 가까운 지역입니다(이쯤 되면 감 좀 잡히시겠지? ㅋㅋ). 덕분에 중국학자들은 발굴을 멈추고 현재 늦추며 고심하는 지경이랍니다. 최소한 고구려(가우리) 이전부터 흘러나오고 또한 석묘계 돌무덤 등 중국의 땅파는 무덤과 전혀 다르고 확연히 차이나는 문화권의 요소가 그들을 가장 골머리 쌓이게 하며 고대 황화중심의 한(漢)족이 아닌 환(桓)족..즉 한(韓)민족에 가깝다는것이 중국 사학계의 터부시 되는 고민입니다. 이로서 우리는 우리 역사를(홍산문명-BC.4500~BC.2500) 고조선의 실제범위까지 넓혔고 심지어 홍산문명이 더 오래된 흥륭와문화, 신락문화(BC.6000~BC.5000)을 기반으로 세워졌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어 중국 입장에서는 절박한 위기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이 문명의 발견으로 중국은 황하중심 문명전파론을 철회하게 되었으며 '다중심문화론'을 인정하고 산동에서 발견되는 북신문화, 대문구문화와 용산문화가 바로 이 홍산문명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론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고로 중국에서는 가장 최우선 되는 게, 즉 은을 시작으로 이어지던 동이의 중화법통, 즉 우위관을 버리고 아예 이쪽 문명을 '영토주의관'(개쉐이들...끝까지 해보잔 거지)에 따라 동이, 즉 그들이 말하는 중화로 묶어 한 민족 계통으로 만들기 위해 고구려를 역사왜곡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학자들이 이상하게 유화적으로 고구려를 최근 인정하면서 그 대신 한 나라의 역사만은 아니다는 주장을 계속 하는 게 바로 이 때문이지요(아호 씨파넘들)

    한마디로 그들의 문명우위가 흔들리지 않게, 또 법통을 계속 잇고 그쪽 지배권을 확대하기 위해(자칫하단 동북3성이 이탈할 수까지 있죠...이대로 가다간), 그리고 곧 닥치는 간도협약에 대해서도 대비하고 여러경제문제나 서부대개발로 이어지는 중국의 오지약진(사실 심각한 게, 이게 실현되면 정말 중국을 부수기 힘들어집니다. 최소한 5~10년, 늦어도 20년! 안에는 결판을 내야 우리가 지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근데 지금 현실이 ... 어휴 속 터져)의 연장선인 만주개발, 또 시베리아 열차의 중국권리나 몽골루트 등 다양한 계산이 합해져 이루어낸 후진타오 '주석!' 휘하 명으로 행해지는 공작이다 이겁니다.


    근데 내 친구한테 고구려왜곡으로 방방 뛰니까 홍산문명이니 중화의 전래니 얘기하니까 한나도 -- 못알아 듣더군요. 심지어 그런 판타지는 안 읽는다고 정신병자가 고구려는 믿고 고조선도 믿지만 그래도 중국이 우리보다 문화적으로 우수한 건 사실이 아니냔 겁니다. 그리고 대신 일본은 우리 꼬봉이고 하여튼 그런 간단한 얇은 사고관으로만 단지 한국을 건드렸기 때문에, 땅을 빼앗기기 때문에(그래도 간도는 어설프게나마 알더군요. 근데 왜 동북3성은 몰라 ㅡ_ㅡ 이거 참) 화를 낸다는 건데.
    아오 씨발럼. 나도 고2지만 니보다는 더 많이 안다 등시야 씹땍


    하여튼... 이런 이유없는 감정과 왜곡된 국가관, 민족관, 역사관으로 억눌린 세대들이 많아질 수록 이 불쌍한 어린 영혼들의 방황과 방종, 국가총화좀먹기는 계속된다 이겁니다...(뒷짐;)


    그나저나 우리는 정말 제대로 된 사고관과 세계관, 서구중심과 중화중심의 세계관을 타파하고 앞으로를 준비해야 됩니다. 왜냐면 우리의 역사는 우리만 지키는 거거든요. 남이 못 지켜요. 우리의 것. 우리가 지킬 것. 그런 의식과 이념이 있어야지 우리는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가 평화롭다고 단순히 마음놓지 말고, 언제나 전쟁과 분쟁의 불씨는 바로 옆에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단련하십시오. 단순히 전쟁에 미친 전쟁광의 소리가 아닙니다. 무조건 평화적 우민화, 양의 사고로 전쟁을 무슨 포르노마냥 취급하는데 인류역사는 분명 전쟁의 연장이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아프리카의 2000만 난민, 중동의 흐르는 피, 중국의 소수민족 탄압과 지금도 자행되는 그 많은 미국주도의 전쟁... 우리는 무엇을 직시해야 할까요?). 싸우자 싸우자 이것도 나쁘지만 자신을 되찾고 위기에 대처할 '실력'과 예기치 못한 '위기'도 미리 내다볼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말해두겠지만 중국이 우리 땅을 뺏고 우리 문명을 파괴한 지 이제 '100년'도 안 됐습니다. 간도는 여전히 공식적으로 우리 '땅'이고 한족이 불법점거하고 있습니다. 동북3성은 우리의 고토며 갇힌 한반도를 넘어서 다시 '복귀'할 수 있는 우리의 무대입니다.

    서양이니 미국이니, 이미 멕시코 아프리카 세계를 뺏고 나서 이제 좀 평화로워지니까 전쟁은 안돼~ 싸움은 다메요~ 이러면서 평화로워진다면, 그럼 뺏긴 자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좇까라 해요 결국 그들의 주도 하에 한번 뺏긴 걸 쥐는 거면서. 그런 주제에 누가 전쟁 끼미만 보이면 구타하고 없는 핑계에 그짓말까지 지어내는 그 습성, 가증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중국이 밉다고 일본이 밉다고 점령하고 수도함락하고 약탈하고 땅을 다 뺏을 수야 없죠. 비록 사고관이 잘못됐다지만 그렇다고 성장한 세계관마저 어쩔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뺏긴' 땅만은 되찾아야 합니다. 그럼 결국 그소리가 그소리 아니냐며 그렇게 되면 전세계가 피바다 될 날이 머지 않았다 그러지만 우리는 중국을 따라하는 게 아닙니다. 한번 내땅 내땅 한번 네땅 내땅 저땅 내땅 모르는 땅도 내땅 하여튼 내땅 이런 게 아니라 우리가 분명 찾아야 될 우리의 '법통'을 수호하기 위한 강역, 우리의 선조가 묻힌 곳, 우리의 숨결이 아직 남아있는 그 곳들만은 되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심지어 국제법상으로도 연해주와 간도, 만주 북부와 동북3성은 찾을 건덕지가 남아있는 곳입니다. 최소한의 불리한 협정에 의해 일본과 청이 맺은 그 땅들은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조선과 가우리, 그리고 발해와 고려가 지배하고 함께 어울리던 송화강과 흑룡강(아무르강) 랴오허(요하) 너머의 둥베이평원(동북평원. 현재 중국에서 가장 넓은 평원이며 석유와 기타 산지, 채굴량이 단연 돋보인다. 그리고 화중남 평원 보다 더 많은 쌀 생산량과 기름진 토지, 고원지대의 이점으로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며 장강(양자강,양쯔강)의 범람같은 요소도 없는 천혜의 옥토며 자연의 땅이다. 넓이도 가장 넓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평원이다. 많은 이민족들이 중원을 넘보기 위해 만리장성을 넘었다고 했지만 오히려 한족들이 동북평원을 항상 호시탐탐 노렸던 것이 사실이며 고구려가 그 오랜 역사 동안 침략전 한번 펼친 적이 없던 것은 이 드넓은 영토와 중국 동북부에 이르는 강대한 영역을 가지고 있는 중국(대제국)이었기 때문이다. 간혹 우리는 시베리아의 이미지 때문에 언제나 북쪽은 추우리라 막연히 생각하지만 그것은 현실의 괴리이다). 그리고 집안과 그 외의 우리 고조선의 단군선조들이 묻힌 왕릉, 기마대가 널뛰던 벌판, 위대한 기상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법통을 다시 잇기 위해, 우리 민족의 기상과 거대한 그 흐름, 1만년이 넘는 그 가슴벅차는, 눈물 흐르는 고토. 그리고 그들의 야욕에 맞서 우리가 우리의 전통을 잇기 위해. 우리의 얼, 우리의 영혼, 우리의 정신. 그 무엇으로도 훔치거나 빼앗을 수 없는 바로 그 정신들이 우리에게 함께 하는 한 우리는 언제나 위대할 것입니다. 오랜 시간 잊혀져 오던 우리의 힘과 저력을 다시 보여줄 때가 머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만세일계, 가문과 지배계층의 상징인 그 의미, 중국을 버티는 그 힘과 중화의 요소.
    그러나 우리는 만세일족, 하나된 마음과 한민족의 거대한 힘과 아름다운 화합애, 드디어 우리 민족의 저력을 이제는 다시 보여야 할 것입니다. 결코 부족이나 일족이 아닌, 하나의 흐름으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닌 민(民)족. 바로 민초가 기틀이 된 우리가 그것을 잊지 않는 한 저 땅에는, 저 강역에는 다시 우리의 숨결이 숨쉬고 우리가 뛰놀 땅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동이의 법통과 한(韓)의 후예, 스스로가 중원이고 중국이라 칭할 수 있는 가우리의 그 믿음과 힘찬 역동을 잊지 않고 함께 하기 위하여...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랜디로즈
    작성일
    05.09.19 17:52
    No. 8

    저도 한때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진짜 밤새면서 조사해봤습니다만..
    뭐 대륙백제니하면 증거를 대라..등등의 말을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증거는 정말 널리고 널렸습니다....

    아~~정말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생각하면 화만 납니다...
    더 열받는건 증거를 대라 ..에이 저게 말이되냐..라고 하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입니다..
    책에 적혀있습니다..중국의 역사책에도...
    역사 책에 적혀있는 걸 말하는데, 삼국사기를 토대로, 천체 기록을 토대로 주장들을 펼치는데 증거를 대하고 하시면...도대체 어찌해야 됩니까...

    16,17번의 천체기록....삼국사기」에 기록된 천문현상을 검증한 것입니다.
    삼국시대의 천문상태를 재현한 프로그램을 짜고 이를 대학의 중앙컴퓨터에 연결해 가동시켰습니다.
    시간이 흘러 방대한 관측결과가 나타나자 금성이 낮에 보이는 현상과
    달이 행성을 가리는 현상, 일식현상 등에 대한 「삼국사기」의 기록들이 정확하게 컴퓨터의 계산과 일치했으습니다.

    실험결과 더욱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습니다.
    삼국에서 주기적으로 관측한 일식기록을 분석한 결과 삼국의 최적 관측지점이 한반도를 벗어나 중국 동부지역에 걸쳐 있었던 것.
    초기 신라의 경우 중국의 양쯔강 유역,
    백제는 발해만 유역,
    고구려는 백제보다 더 북방에 최적 관측지가 자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삼국시대의 우리나라 인구가 조선시대보다 더 많습니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어디있습니까??
    시대가 가면갈수록 인구가 줄어들다니..
    (이 사실은 증거 운운할 필요가 없는거죠..책에 기록되어 있으니깐..)

    1. 중국의 역사서에 북위가 10만의 기마병을 몰아 백제를 치러왔다가 패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말도안되는 기록이죠..
    왜냐면 대륙에 있는 북위가 어떻게 한반도에만 있는 백제를 기마병을 몰아 치러 올 수 있을까요??고구려는 어쩌고??

    이 깜짝놀란 만한 증거를 두고 우리나라의 사학자들은 절대로 대륙백제를 인정못하겠다는 심사를 내비춰서 아마도 해군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생쑈 억지를 부리고 앉아있습니다.

    2.역사스페셜 대고구려 편을 보니 광개토태왕비를 비롯 몇몇 사료에 고구려의 요서진출과 내몽고지역까지의 영토 확장했에 대한 기록이 나와있습니다.
    이 얼마나 황당한 노릇인가?
    고대의 요동 = 지금의 '요서'설이 아니더라도 고구려의 요서진출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이 그렇게 많았다니........
    그런데 이 나라의 사학자들은 이러한 중국기록과 광개토태왕비의 기록을 눈으로 보고서도 부정했습니다.

    3.지금까지 한반도의 청동기 시작연대는 BC 10세기경으로 판명되었습니다.그러나 요즘에 한반도와 만주에서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이란 매우
    과학적, 객관적인(비록 오차가 큰(보통 100~200백년) 것이 탈이지만......) 연대측정을 사용해서 이전의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을 완전히 박살내고 말았습니다

    먼저 만주의 단군조선의 도읍이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난하유역의 하가점하층문화(청동문화)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BC 2400여년 전의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남한의 양평군과 영암군에서 발굴된 청동 유적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결과 BC 2500여년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여기서 이전의 식민사학자들이 우리 나라의 청동기가 북방 시베리아 지방에서 전래되었다고 주장했다는 것을 상기하면 비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시베리아 지방의 청동기 시작연대는 BC 1700여년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이보다 수백년이나 빠른 청동기가 나왔으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모순.....
    그러나 만주의 하가점하층문화는 고사하고라도 한반도 양평, 영암에서
    발견된 이들 엄청난 유적들을 몇몇의 교수님들만 언급할 뿐 다른 사학자들은 반박은커녕 언급조차도 전혀 없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탁상공론, 그 시간에 중국 땅의 수많은 고구려 유적이
    쓰러지며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고, 고구려, 백제식 지명들이 사라져
    가고.........

    도대체 뭘 했는가?

    기록에 쓰인 대로 한번만이라도 답사, 아니 여행차원에서 한번
    가봐도 되는 것을, '설마 우리의 못난 조상들이 그렇게 대단한
    일을 했을까?' 라고 생각한 것인가요?




    시간이 되시면 <a href=http://www.coo2.net여기 target=_blank>http://www.coo2.net여기</a> 한번 찬찬히 둘러보세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바겐
    작성일
    05.09.20 21:11
    No. 9

    ......딴건 몰라도 4번은 억지인듯.....
    중국인구가 얼만데.....
    혹시 제야사학에 관심이 많으시면 김진명님의
    소설들(하늘이여 땅이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등)
    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듯.!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9 파천러브
    작성일
    05.09.22 11:20
    No. 10

    난감하네;;;으음..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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