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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Comment ' 22

  • 작성자
    Lv.2 빌딩부자
    작성일
    04.05.06 15:26
    No. 1

    제가 아는 사실은 손톱의 때 밖에 안되겠지만
    원균장군은 질투와 시기심 많고 이순신의 여러 공적을 가로채는 등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소인배와 같은 성격의 소유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방면 이순신장군은 성격이 꼼꼼하고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사람이며
    약간의 편협한 면이 있으며 외골수의 기질과 고지식한면도 있으며
    선비같이 책을 주로 많이 보던사람이라고 어렸을적 역사책에서 본적이 있는것 같습니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일명 "융통성이 없다" 라고 표현하
    면 될려나 모르겠네요.
    아묻든 윗글을 보면 원균은 영웅의 모습이요 이순신은 소인배 형식으로
    나온것 같은데... 저도 이글을 읽고 만약 이런식의 방송이 된다면 많이
    이들이 식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소우(昭雨)
    작성일
    04.05.06 16:15
    No. 2

    이순신이 한참 왜놈들을 척결하고 있을때
    원균의 시기심 떄문에 옥에 갇혀 우리나라가 죽어가지 않았었나요??
    참, 어이가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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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계명
    작성일
    04.05.06 16:42
    No. 3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 얘기는 처음 들었습니다. 티브이에 선전했나요?
    대체로 원균은 소인배고 이순신은 영웅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만, 이에 대해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분들이 전부터 있었습니다.
    사실 이순신이란 인물이 우리 역사에 크게 부각된 것은 박통 때부터라고 합니다. 그 전까진 그다지 크게 유명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군사 반란세력이 자신들의 이미지메이킹에 적절하게 이용한 면이 크다는 설명이지요. 그래서 원균을 재조명하는 일이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역사 속에서 한 사람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반대 편의 사람을 끄집어 내리는 일은 종종 있는 일입니다. 그런 와중에 원균이 상당 정도 피해를 보았던 것도 사실일 듯싶습니다.
    당시는 동인과 서인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였던 만큼 그 정도는 더욱 심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히 유성룡이 몸담은 세력은 조일전쟁에 회의적이었던 동인-당시 통신사의 부사였던 김성일(조일전쟁의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이 동인임-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전후 정쟁과 권력판도에서 동인세력은 이순신을 끄집어 들임으로써 그 입지를 강화하려한 측면도 없지 않아 있어 보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상대적으로 원균이 피해를 보았다는 의견도 부당하다고만은 생각되지 않습니다.
    전엔 어느 정도 관심이 있었으나 지금 그에 대한 깊은 고찰이 없어 뭐라 말씀드리기가 곤란합니다만, 이 부분은 마냥 쉽게 결론지을 수 있을 만큼 만만한 문제는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더 깊고 깨인 시각으로 바라봐야만 역사적 진실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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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38 메롱이군
    작성일
    04.05.06 16:58
    No. 4

    계명님 www.warfog.net나 윤민혁님 홈페이지에 가서 보면 단순에 님의 생각이 잘못된것인줄 알 수 있을겁니다.
    원균이 70년대에 묘사된것만큼이나 바보는 아니었지만 소설'불멸'은 전형적인 자기가 뜨기 위해서 유명인사를 물어뜨는 방법을 차용한 소설입니다.
    불멸의 작가 참 심하더군요. 어떻게 저렇게까지 바꾸어버렸는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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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7 freein
    작성일
    04.05.06 17:16
    No. 5

    제대로 평가받아야 하는 분들은 당시의 의병들이라고 봅니다.
    임란 당시 최초의 의병장이 누군지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하나 뿐인 목숨을 받쳐 나라를 구한 분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백 번 생각해도 제대로 평가받아야 할 분들은
    오직 나라와 백성을 구해야 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의병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공신이란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도망가는 임금 따라갔다고 공신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전제왕국이니 임금이 중요하긴 하겠죠.
    그렇지만, 목숨 내놓고 싸운 사람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도망가는 임금 따라 간 사람들은 공신이 되고, ................
    병자호란 때 조선이 무너진 것이
    다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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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55 日越
    작성일
    04.05.06 17:41
    No. 6

    <a href=http://www.whitedeath.pe.kr/board/zboard.php?id=ancient
    target=_blank>http://www.whitedeath.pe.kr/board/zboard.php?id=ancient
    </a>
    <=윤민혁님이 올리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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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0 백면걸인
    작성일
    04.05.06 18:08
    No. 7

    왜란종결자 추천 -_-;;; (<-- 이말이 갑자기 하고싶어졌어요 ;; 왜일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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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65 깜장바위
    작성일
    04.05.06 18:16
    No. 8

    불멸은 깨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편협하게 어린 시절은 이러했을 것이다. 이순신은 무조건 나쁜 놈이다. 원균이 짱이다. 이유? 뭘 물어 그런 것 없어.니들이 그시대 사람이냐? 난 다알아. 니들은 몰라.

    이런 형식의 글입니다. 깨인 시각과 편협한 시각은 그시대 통념과 다르다는 공통점을 가지지만 한 쪽은 이론으로 다른사람을 수긍하게 할 수 있고 다른 쪽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한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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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starfish
    작성일
    04.05.06 20:26
    No. 9

    이순신의 전쟁에 대한 능력 외에 실제 성격이 어떠했는지 혹은 실수하나 없는 완전 무결한 사람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흔히 어릴때 교과서에 나오는 원균과 실제 원균은 조금 달랐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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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8 검마
    작성일
    04.05.06 21:57
    No. 10

    중요한건... 확실한 역사적 사실도 없으면서 상상만으로 몰아치는 데 부아가 치밀어 오를 뿐입니다. 적어도 이순신 장군은 우리나라의 영웅으로써, 충무로 한 가운데에서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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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21 CReal
    작성일
    04.05.06 22:15
    No. 11

    이우혁님이 왜란종결자를 맺으시면서 이순신에 대해서 수없이 조사를 했지만 흠이라곤 지나치게 융통성이 없다 뭐 그정도 밖에 없다고 하셨던것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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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54 魔君
    작성일
    04.05.06 22:32
    No. 12

    원균의 인간성이 어쩌고는 후세의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흉학한 살인범도 자상한 아버지 좋은 친구 효심깊은 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그당시 전쟁당시 그가 보여준 전투의 결과는 그가 이순신을 까내리고 자기가 나설만큼 뛰어나지 않았다는것과 그자신이 그렇게 모자람을 알지못하고 나서서 병력만 죽였다는것이겠죠.....
    그리고 사료 어쩌고 해도 결과는 다알고 있는사실입니다...
    패장은 말이없는 법입니다...
    그걸 가지고 그가 원래 좋고 유능한 사람이 어쩌니..하는건 어불성설입니다...유능했으면 전쟁에 이겼어야죠...하다못해 병력은 보존해야 하는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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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54 魔君
    작성일
    04.05.06 22:34
    No. 13

    그리고 저 작가..서애..유성룡까지 까내리는 군요....
    허어.....류시원이 가만히 있으려나.....
    아니 하다못해 안동에서..가만히 있지 않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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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단단한 넘
    작성일
    04.05.07 02:29
    No. 14

    칠천량 해전에서 보여준 원균의 모습만 봐도 이순신과 비교될 자가 아닙니다.인간적인 면은 몰라서 모르겠고 장군으로써 이순신과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능력 뿐만아니라 기개조차 없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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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99 SOJIN
    작성일
    04.05.07 10:50
    No. 15

    위에 계명님...이순신장군이 재조명 받은 시기는 물론 박통때입니다..하지만 임진왜란에서 이순신이 장군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다면 충무공이란 시호를 받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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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3 광애
    작성일
    04.05.07 14:07
    No. 16

    칼의 노래 같은 경우에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현학적인 이야기 때문에 지루하다고 생각했지만, 별 거부감은 없었습니다만...
    불멸은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지금 소개된 내용만으로도 참 뭐같은 소설이라는 생각 밖에 안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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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계명
    작성일
    04.05.07 17:14
    No. 17

    제가 저 위에 개괄적인 말을 남긴 것은 역사를 지나치게 편중되게 보려는 경향을 경계하기 위함입니다. 사료는 당시의 힘을 반영하는 자료이기에 믿지 않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다는 말 또한 그에 해당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원균의 재조명이란 정황을 간단하게나마 말한 것입니다.
    어느 분 말씀에 원균은 형편없는 놈에서, 그저 좀 괜찮은 놈으로, 그리고 이젠 영웅이라고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그것이 역사인 것입니다. 역사는 당대의 사실이기도 하려니와, 현실을 기반한 잣대이기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인물의 하나인 광해군선생은 정말로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치졸한 평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야 그를 재조명하여 제자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조차 잠정적인 것이지만)
    이렇듯 역사 속 인물은 드러난 사료 외에 그 내면에 숨겨진 것들을 들추어 내서 바라봐야만 온전해 질 수 있습니다. 그런 노력이 없다면 역사는 정체되어서, 10년 전에 배운 것이나 백년 전에 배운 것이나 모두 똑같게 될 뿐입니다. 그럼 역사학은 존재할 이유도 없어집니다. 그냥 기록만 있으면 될 뿐이니까요.
    일례로 한 분이 충무공 시호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꼭 이순신의 군공에 의한 시호라고만 말해야 하는 것일까요?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이순신은 당시의 붕당정치 상황에서 상대를 누르고 자신을 치켜세우기 위해서 벌이는 암투과정 속에서 빚어진 뜻밖의 수혜자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분 말씀마따나 의병장들에게 혹은 의병일동에게 시호를 내린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들의 공이 이순신만 못해서 그런 푸대접을 받은 것일까요? 하기야 그들은 공을 탐했다기 보다는 순순한 열혈로 국가를 위해서 나섰을 터이니 그까짓 공따위야 관심에도 없었을 테지만......물론 이것은 하나의 가정일 뿐이지 별 의미는 없습니다. 다만 역사는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기 위한 가장 단순한 사례일 뿐입니다.
    우리는 단군의 역사를 말할 때, 그 빈곤한 사료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인정도 받지 못하는 사료를 빌어서 이렇고 저렇고 애기하며, 심지어 중국대륙에까지 우리 역사의 지평을 넓히려 하고 있습니다. 저또한 그에 대해 어느 정도 동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그 빈한한 사료로 인하여 그다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 사실에 분개하기도 합니다.
    한데 그런 입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조차 다른 사실과 다른 상황에선 정반대로 한정된 사료에만 국한시켜 역사를 얘기하려 합니다. 그것은 결국 자기 입맛에 맞는 사실에 대해서만 열린 시각을 갖으려 할 뿐이지,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거나 자신이 알고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은 좀처럼 참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래선 편파적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크든 작든 기득권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한번 우리 머리에 들어온 사실은 그것이 부정되어질 때 엄청난 고통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런 자세는 역사를 바로 아는 과정에 가장 금기시되어야 하는 태도인 것입니다.
    저는 불멸을 보지 않아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지는 알지 못합니다. 불멸이 비난받아야 한다면 비난받아야 겠지요. 위에 잠깐 소개한 책의 내용에 있어서 저 또한 그다지 크게 마음에 와닿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일방적인 성토가 되어선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가능성은 그야말로 열린 미래만큼이나 무궁무진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고무링
    작성일
    04.05.07 18:09
    No. 18

    이순신 장군은 제가 제일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백번 양보해도 이순신장군이 왜란을 종결하는데 가장 큰역할을 한 것은 누구도 부정할수 없는 것이며 그 전과는 의병 개개인의 국지적 승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전쟁의 양상을 바꿔놓은 것입니다. 또한 의병의 활약도 해로가 끊긴 왜병의 사기저하, 물자부족 등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두번의 전투도 아니고 모든 전투를 가장 효과적인 전술로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이런 기초적인 사실조차 부인한다면 그것은 정사는 물론 야사도 되지 못하는 그냥 공상에 불과할 뿐..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5 깜장바위
    작성일
    04.05.07 18:50
    No. 19

    책내용 전체가 저렇다면요.
    왜 원균이 명장인지 말은 제대로 하지 않고 무조건 없는 공도 만들고 그저 자료도 없이 이순신 장군을 모해하는 것이 역사 바로세우기이면
    전 비뚤어진 역사를 보렵니다. 그리고 광해군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광해군 복권도 사료로 이루어진 것입니다.왜 광해군의 사료는 믿습니까?
    그것도 틀릴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광해군 사료보다 더욱 많은 것이 이순신 장군의 사료입니다. 조선 명 왜 모두 존재합니다. 그런데 왜 광해군의 사료는 믿고 이순신 장군의 사료는 승리자의 역사 어쩌고 합니까?
    사료로 반박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론도 증명하기 어렵다는 반증입니다. 즉 모순입니다. 자신의 이론으로도 막지 못하는 것을 가지고 남의 이론을 부시는 행위입니다.

    위의 상황과 전혀 맞지않습니다. 그리고 광해군도 모두 잘한 것은 아닙니다. 최악의 실수로 군사력장악에 소홀했습니다.최소한 경기도의 군사력은 장악했어야 했습니다.

    역으로 물어보지요. 원균이 명장인 이유가 무엇이며 그에 대한 증거는 뭡니까?

    만약에 증거를 가져온다고 해도 전 그들이 말한대로 말하면 됩니다.
    그 증거 확실합니까? 조작아닙니까? 왜란 이후 선조기에 여전히 여전히 이순신 모해세력이 있었는데 그들의 조작 아닙니까? 전 그거 인정 못합니다.

    뭐가 다르나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0 큰곰
    작성일
    04.05.07 19:59
    No. 20

    글쎄요... 계명님의 주장에는 한가지 모순이 있네요.
    물론 류성룡의 동인세력이 이순신을 끌어들여 자신들의 공으로 삼으려 한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인세력은 이후 남인과 북인으로 갈리고 광해군때 득세하던 북인은 인조반정으로 된서리를 맞습니다.
    그후 조선 정권의 패권은 누가 쥐었습니까?
    바로 원균을 옹호했던 서인계열, 노론계열입니다.
    그러함에도 원균보다는 그 정권에서조차 이순신이 더 높게 평가되었습니다.
    충무공 시호도 서인정권의 인조가 내려준 것이구요.
    이것은 어떻게 해석하실는지...

    물론 군사정권에서 이순신을 지나치게 미화한 것도 사실이고 원균을 깎아내린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설령 원균이 간신모리배는 아닐지 모르나 그는 결코 뛰어난 장수가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그는 조선의 수군을 단 한판의 전투에서 괘멸시켰으니까요.
    그리고 그 뒷수습을 훌륭히 해낸 이순신의 위대함이야 말할 필요가 없죠.
    그나마 원균이 이순신과 같이 공신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당시 붕당정치하에서 서인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단단한 넘
    작성일
    04.05.08 11:59
    No. 21

    계명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 해야 하나요?
    그 예가 이순신이라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드네요.
    광해군은 적당한 것 같구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5 [탈퇴계정]
    작성일
    04.05.24 05:07
    No. 22

    불멸의 이순신 게시판에서 퍼온 글

    원균이 임진왜란 선무1등 공신 가운데 한 명이라는데 이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가 1등공신입니까? 어떤 사람은 조총 70정 주워서 보낸 것도 공적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따진다면 이억기의 공은 그보다 더 큽니다. 한산도 대첩에서만 해도 배를 30여척의 배를 이순신 함대와 격파했으니까요. 조총 몇 정 주운 것이 1등공신에 걸맞는 공이라면 이억기는 어떻게 될까요?

    공적이라 하는 것은 기여를 말합니다. 승리에 대한 기여, 패배의 피해를 줄이는 데 대한 기여를 일컬어 공적이라 하는 것이죠. 수전에서 조총 몇 정 주운 게 무슨 큰 공이 될까요? 수전에서 중요한 건 적을 몇 명 죽이고, 조총 몇 정 줍는 게 아니라 적의 배를 그만큼 많이 격파하고, 그 전략적 의도를 차단하는 겁니다. 따라서 수전의 공은 어디까지나 배를 격파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조총? 그런 건 전장에 굴러다니는 거 주워모아도 70정 나옵니다. 적의 수급? 바다위에 떠다니는 목만 베어도 수십 개 챙기죠. 명나라 군대처럼 민간인 죽여서 일본군 머리인양 속일 수도 있는 것이구요. 그런 걸 가지고 공적이라구요? 맹장이 웃는다니까요.



    배를 격파한 것으로 따지면 이억기, 배흥립, 정운, 이순신(다른), 최수 등 원균보다 공이 큰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왜군 목을 벤 것으로 따지면 김덕령, 정기룡, 곽재우, 김천일, 고경명 등의 무장이 육전에서 더 많은 적을 죽였습니다. 김시민은 일본군의 초기 전라도진공의도를 진주에서 막아냄으로서 이후 조선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잠재력을 크게 보전한 공이 있습니다. 어느모로 보나 모두 원균보다 공이 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전부 원균보다 낮게 평가되었거나 아예 공신록에서조차 빠져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마땅히 원균의 재평가에 더불어 다른 무장들에 대한 재평가도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원균의 패전이 칠천량 패전 단 하나 뿐이라고 하시는데 그보다 전에 한 번 더 패전이 있습니다. 아니 패전이 아니죠. 자신의 임무를 방기하고 도망친 거니까. 임진왜란 초기 경상도로 진군하는 일본군을 보고 배를 불태우고 병사를 흩뜨린 후 판옥선 한 척에 협선 세 척만을 거느리고 혼자서 도망쳤죠. 혹자는 원균이 적과 싸워 10여척의 배를 격파했다고 하는데 그 사실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당시 경상우수영의 배가 100여척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모든 함대를 잃은 대패입니다. 하물며 조선왕조실록 어디에도, 심지어 원균에 우호적이던 사람들조차도 임진왜란 초기의 승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원균 혼자 그렇게 주장할 뿐입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겠습니까?

    더구나 칠천량 해전에서의 문제는 단순히 지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지는 내용이 문제입니다. 계백이 황산벌에서 패했다고 그를 졸장이라 여기지 않는 것은 그가 그만큼 잘싸웠기 때문입니다. 졌지만 충분히 명장이라 불리울만한 역량을 보여주었기에 그를 명장이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칠천량에서 조선수군은 변변한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무너졌습니다. 그 사령관 원균이 혼자 도망친 이후에 말입니다. 단순히 졌다는 사실 때문에 그를 졸장이라 하는 것이 아니라 지는 과정이 치졸하고 비겁하며 무능하기 때문에 그를 졸장이라 여기는 것입니다. 맹장? 맹장이 적과의 전투 도중 휘하 병사들을 버리고 도망갑니까? 다른 장수들은 배와 함대를 지키다 전사하는 도중에 도망치는 맹장도 있습니까? 어이가 없을 뿐입니다.


    이근안도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럼 고문기술자 이근안도 국가유공자인 것일까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 잡아들이던 경찰이 버젓이 독립유공자가 되어 국립묘지에 안장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 이 경우도 국가가 독립유공자라 인정했으니까 독립유공자가 되는 것일까요? 법원이 간첩죄로 사형을 선고했으니까 조봉암은 빨갱이에 간첩입니까? 인민혁명당 사건의 당사자들은 국가가 유죄를 선고하고 사형을 집행했으니까 국가전복을 기도한 간첩단인 겁니까? 만일 그렇다고 하신다면 원균의 선무 1등공신 책록이 원균이 명장인 근거로 제시하는 것을 이유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임진왜란 이후 공신 책록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조는 아예 대놓고 말합니다. "조선의 장수들이 한 바는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명나라의 공이다."라구요. 그래서 문신들은 선조를 쫓아 의주까지 갔다는 이유만으로 18명이 1등공신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무신은 3등공신까지 합해도 30명도 되지 않는 수만이 겨우 공신으로 인정받습니다. 객관적인 평가에 의한 것이 아닌 지극히 정치적인 공신책록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공신책록이 도대체 어떠한 사실적 근거가 될 수 있을까요? 그저 당대의 선조나 조정 신료들 일부의 원균에 대한 평가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러한 평가가 명장을 평가하는 사실적 근거가 될 수 있습니까?


    원균은 존중받을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처음 저도 원균을 존중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무장이니 적전도주한 쓰레기들에 비해 최소한 책임은 질 줄 아는 무장이라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의 위치에 비해 능력이 모자랐던 것이 그가 역사에 오명을 남기게 된 이유라고 여기고 있었죠. 덕분에 예전 비슷한 논쟁이 있었을 때 원씨였던 토론 상대자와도 우호적인 분위기로 토론을 종료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이 있었거든요. "원균은 간신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군통제사로서의 자질은 자리에 미치지 못했다."라구요. 저도 그런 평가에 만족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원균재평가론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가관이 아닙니다. 원균재평가 하자는게 단순히 원균이 간신이 아니었다고 하는 것을 넘어 원균이 명장이라고 주장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원균이 명장이라니요? 원균이 명장이었다고 주장하는 분이 제시한 근거조차도 고작 조총 70정 노획했다는 것 정도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명장이 될 수 있죠? 국지적인 전투에서 잘 싸우는 장수정도라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명장이라 하는 것은 지휘관의 덕목입니다. 지는 것도 치졸하고 더럽게 진 인간이 어떻게 명장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거기에 더해 원균을 명장으로 만들자고 이순신을 폄하하기까지 합니다. 원균의 공을 이순신이 빼앗았다구요? 당시 원균은 경상우수사였습니다. 이순신의 휘하가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순신이 공을 빼앗았다 하더라도 따로 자기가 장계를 올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는 이순신이 자신의 공을 빼앗았다고 따로 장계를 올려 보고하지 않았을까요? 이후 이순신이 징죄당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된 안위 사건만 하더라도 이원익이 바로 이틀 후에 장계를 올려 사실을 바로잡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원균은 그런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뒤에서 궁시렁거리고만 있었겠습니까?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빼앗긴 공을 다시 되찾기 위한 행동조차 할 주제도 못되는 무능력자이거나, 그가 거짓말쟁이였다는 말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왜 이런 부분은 귀를 막으시는지.


    사실상 저의 원균에 대한 반감은 원균옹호론자들에 대한 불쾌감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원균이 단순히 나라를 위해 순국한 선열일 뿐이라면 저는 굳이 그에 반발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것은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삼도수군통제사로서의 원균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분명 그는 무능력자에 실적도 없으니까요. 감히 이순신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겁니다. 그런데 그런 원균을 이순신과 동격에 놓으려 하니 저의 원균에 대한 평가도 임진란에서 싸우다 죽은 무장이 아닌 이순신과 비교한 삼도수군통제사로서의 원균이 되어버립니다. 그렇게 된다면 결론은 하나죠. 또라이새끼라는 것. 이순신의 경쟁자로서의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은 또라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분이 사료, 사료 말씀하시는데 조선왕조실록이라면 제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조선왕조실록의 귀절을 따로 떼어 인용하지 않는 것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몇 몇 귀절을 인용한다거나, 정체도 알 수 없는 사료를 인용해서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지 않아도, 상식으로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기에 조선왕조실록 귀절 하나하나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차피 조선왕조실록 연구는 전문 역사연구자들이 더 잘 할 텐데 괜히 전문가도 아닌 제가 나서서 아는 체 할 이유도 없는 것이구요.



    가짜 먹물들은 흔히 상식을 깨뜨려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 지식이요 지성이라 착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놀라운 사실들을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죠. 그러다보니 부분적이고 지엽적인 내용들을 마치 전체인양 포장하고, 기존의 가치에 도전하는 것을 즐기게 됩니다. 그 결과 나타나는 것이 발췌사학이죠. 문헌의 일부만을 발췌해서 학대해석함으로써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가설을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삼국재중국설과 같은 재야사학일 것입니다. 원균재평가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들 대부분은 사료의 일부분만을 내세워 그게 전부인양 얘기하면서 전체적인 인진왜란이라는 큰 그림이나, 상식적인 접근은 거부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지적우위를 무척이나 과시합니다. 상식이 왜 상식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솔직히 웃깁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구요. 맹장이라는 사람이 전투가 벌어졌는데 조금 불리하다고 혼자서 도망칠 수 있는가 말입니다. 최소한 불리한 싸움이라면 포위망을 뚫기 위한 결사적인 의지는 보여야 할 겁니다. 최소한 항우처럼 28명의 부하들이나마 포위망을 뚫을 수 있도록 앞장서서 싸우는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 비로소 맹장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억기처럼 끝까지 싸우다 전사하는 것도 맹장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적전도주한 장수를 어찌 맹장이라 부를 수 있는 지 정말 궁금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더구나 그 적전도주가 한 번이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더구나 더 웃기는 건 원균이 세운 공이라고 하는 것의 실체조차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는 겁니다. 조총 70정을 노획했다거나, 선조가 공이 크다고 말했다거나 하는 것이 그들이 내세우는 근거의 전부입니다. 배를 격파한 기록이 있고, 그 전투의 지휘자가 이순신임이 분명한 한산대첩이나 명량, 노량 해전은 무시하면서 말입니다. 상식적으로 어떻게 두 공적을 같은 수준에 놓을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물론 여기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시겠죠. 이순신이 공을 가로챘다. 그에 대한 답은 위에 썼으니 부연 않으렵니다. 도대체 상식이 왜 상식인지부터 생각해주었으면 합니다. 그게 뇌에 대한 예의일 것입니다.


    그리고 착각하고 계신 게 하나 있는데 사실입증의 책임은 원균재평가론자들에게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존의 정설인 원균졸장론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건 어디까지나 원균재평가론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논쟁은 반론하는 자에 입증의 책임이 돌아가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원균재평가 논쟁은 원균재평가론자들이 원균을 재평가해야 하는 근거와 논리를 통해 그 타당성을 검증받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원균재평가를 하자면서 이순신이 명장이라는 근거를 제시하라 한다면 그저 웃을 뿐입니다. 근거를 제시하면 위인전 어쩌구 하며 편견하는 것 아예 웃을 가치도 없죠.


    원균 재평가의 결론은? 당연히 원균은 이순신에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졸장이라는 것. 능력은 어쨌든 그 실적에 있어 2등공신인 이억기나 이순신에조차 미치지 못한다는 것. 아니 아예 공신록에조차 이르지 못한 곽재우 등에 비해서도 턱도 없이 부족하다는 것. 능력에 맞지 않는 삼도수군통제사 자리로 인해 국가를 위해 싸우다 죽은 무장으로 남을 수도 있었을 것을, 도리어 역사에 오명만 남기게 되었다는 정도일 겁니다. 원균이 명장? 농담도 정도껏 해야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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