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퀵바


핫이슈

민감한 사안들을 모아두는 곳입니다.



작성자
Lv.6 박상준1
작성
09.06.02 19:58
조회
2,644

작가명 :

작품명 :

출판사 :

며칠 전에 비평란에 평론을 하나 올렸습니다. 밤새 써서 새벽에 올리고 오후쯤에 다시 들어와 보니 글이 사라지고 없더군요. 게시판 성격에 적합하지 않아서 삭제 게시판으로 옮겼다는 쪽지가 와 있군요. 깜냥에는 비평을 쓴다고 쓴 글이고 아무런 의심 없이 당연히 비평란에 올렸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다시 살펴보니 확실히 제 글은 ‘연재 글 및 출판된 장르소설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다’는 문피아의 비평란 게시판 운영방침을 어겼더군요. 그러니까 스스럼없이 나름대로는 평론이라고 올린 것이 문피아의 운영원칙에 도발을 하고만 셈입니다. 겸연쩍고 또 한편으론 조금 서운했습니다. 사라진 글은 토론마당에 있습니다. 따로 부제를 달진 않았지만, ‘비주류 무협소설가의 눈으로 시대 읽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쏟아진 문학 읽기’ 정도의 글입니다.

내친 김에 비평란의 공지를 더 살펴보았습니다. ‘장르일반(이 단어 , 혹은 정의는 문피아 공지에서 규정한 명칭이다.)’에 대한 비평은 허용하지 않고, ‘장르비평 일반’은 허용하는 모양입니다. 이 글은 문피아에서 규정(혹은 제정)한 ‘장르비평 일반’ 즉, 장르문학 비평에 대한 비평입니다. 그런데 공지에 나와 있는 ‘비평총론’이라는 카테고리가 선택란에 없어서 조금 이상합니다. 그래서 이 글은 카테고리로 선택한 ‘기타’라는 확장 가능성에 매달려 있는 셈입니다. 혹시라도 제가 더 파악하지 못한 운영방침이 더 있어서 이 글이 그것에 저촉된다면, 삭제나 이동이 되어도 큰 이의는 없습니다. 대신, 노력했지만, 제가 더 파악하지 못한 운영방침에 대해서는 알려주시는 성의 정도는 부탁드리겠습니다.

1. 비평은 창작 예술이다.

당연한 전제이자 언명이다. 그렇지 않다면 문학평론, 영화평론이 신춘문예 공모 분야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없는 노릇이다. 대체로 신춘문예는 시(시, 시조) 소설(단편, 중편), 극문학(희곡, 시나리오), 평론(문학평론, 영화평론), 아동문학(동화, 동시) 등을 공모한다. 굳이 신춘문예를 이야기 하는 것은 신춘문예의 권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일반적으로 드러나는 문학의 범주에 대한 이해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문예비평은 흔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그 출발로 한다고 한다. 그러나 대체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문예비평, 혹은 문학평론이란 인식내용을 정초한 것은 프랑스 비평가 생트뵈브로 알고 있다. 근대 비평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생트뵈브의 출현은 창작으로서의 비평, 시나 희곡의 종속적인 존재로 인식되어온 비평을 자기 완결성을 가진 그 자체의 창작물로 인정받게 했다. 문학 수업을 정식으로 한 적이 없고 비평을 따로 공부하지 않은 나 같은 문외한도 몇 명의 유명한 문예 비평가들은 귀에 익다. 고 채광석, 고 김현, 백낙청 등이다. 고 김현은 본격, 참여 어느 쪽 문인이라도 대단한 비평가로 인정한다. 그 저변에 공통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평가는 “문학비평을 그 자체로 읽을 만한 텍스트로 만든 거의 첫 비평가(고종석, 말들의 풍경)”라거나 “엄청난 독서량과 섬세하고 날카로운 작품분석, 인문학 전 분야를 아우르는 지적 관심 그리고 명료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비평을 창작에 기생하는 장르가 아니라 독자적인 문학 장르로 끌어올린(장석주, 한국문단 비사)" 비평가라는 점이다. 그런데 장르비평(이 말의 실체를 나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이 글에서는 ‘문피아 비평’으로 읽어도 무방하다)은 비평의 자리를 다시 창작의 맡으로 혹은 그 언저리로 끌어내리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비평을 작가의 발전을 위한 조언 혹은 작품에 대한 비판이나 판단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문피아는 “전제를 하고 그 전제에 대해서 뭔가 검토를 하고 대안을 내고 발전적인 이야기(문피아 공지, 5.31)”를 하라고 직접 권유까지 하고 있다. 마치 모두가 어떤 문학상의 심사의원이 된 것 같은 모습으로 비평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읽었다. 차갑거나 혹은 따뜻한 두 가지 시선으로 작품과 작가를 대하는(혹은 해야 한다는) 비평을 향한 눈길을 느꼈다면 너무 과도한 걸까.

읽을수록 나한테는 난해하기 만한 이상의 문학을 새롭고 독특한 시각으로 비평한 권영민의 평론을 오래전에 읽은 적이 있다. 이상의 시를 ‘병적 나르시시즘 혹은 고통의 미학’의 독법으로 읽은 비평을 보고 난 정말 감탄했다. 수십 년 전에 28세의 나이로 요절한 이상이 만약 그 평론을 본다면 “어? 난 그런 생각 안 해봤는데”라거나 “나도 모르는 나를 이렇게 끄집어냈네.”라고 할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어쨌든 수십 년 전에 고인이 된 이상이 그 비평을 자양분 삼아서 자기 문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섣부르지만 흔히 팬픽이라고 부르는 팬픽션(pan fiction)이라는 것을 주목해 본다. 어떤 문화 매체에 대한 자신의 독법을 픽션이라는 적극적인 자기 문법으로 다시 재구성하는 모양이다. 문장, 형식의 조악함 여부를 떠나 이것은 비평보다 적극적인 창작이다. 어떤 면에서, 장르문학은 기존 문단이 보여주는 비평이라는 장르보다 훨씬 밀접한 천착(혹은 개입)을 통하여 자유롭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비평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스스로 비평의 한계를 노정하려는 모습도 보고 있다. 그 괴리에서 나는 문학적 보편성과 개별성 혹은 특수성을 담지한 비평의 영역이 새롭게 시도될 가능성도 있지 않나 하는 섣부른 탐색을 해본다.    

    

2. 장르문학인가 문학 장르인가.

앞서 말한 비평의 이런 식의 한계는 장르문학의 장르적 한계와도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문학 장르를 뒤집어 ‘장르’와 ‘문학’이라는 두 글자를 결합한 이 새로운 경향성을 관통하는 내용을 난 찾지 못했다. 참여문학이라고 하면 그런 경향성을 가진 시, 소설, 희곡 등을 괄호로 묶어 ‘참여’라는 카테고리라고 붙일 수 있다. 본격문학, 혹은 순수문학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 근대 문학비평은 참여와 순수로 대별되는 그룹을 통해 시도되었다. 카프와 국민문학파의 문학논쟁이 비평문학을 촉발했다고 본다. 7,80년대의 문학논쟁 역시 두 그룹에 의해 벌어졌다. 90년 이후로 들어와서는, 그러니까 80년대라는 격렬한 시대적 격랑이 가라앉고, 소련의 해체 이후 대중문학과 본격문학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느낌이다. 2000년대 초반 한 언론사가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논쟁을 부추긴 적이 한 번 있었던 것 같고, 조금 궤를 달리하지만 권성우, 이명원과 창비의 문학권력 논쟁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이전의 격렬한 논쟁이나 비평에 비해 이것은 조금 미지근한 감이 있다. 아무래도 이것은 본격문학, 혹은 고급문학의 (엄숙주의적) 외면이 아닐까 하는 내 느낌을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장르문학은 -그러니까 나는 장르시 라거나 장르희곡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장르 소설(그것도 대부분 엄청난 장편이다.)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대중문학의 개별 혹은 하위로서의 위치는 부정하지 않는 것 같다. 보통 무협, 판타지, 로맨스, SF, 추리 등을 묶어 장르문학이라고 칭하곤 하는데 그 각각을 연결하는 속성을 난 도무지 모르겠다. 무슨 ‘주의’ 무슨 ‘이즘’하는 사조로 카테고리 지워지는 것도 분명 아닌 것 같다. 이를테면 독일의 미카엘 엔더와 영국의 로널드 톨킨, 조앤 롤링, 미국의 토머스 헤리스, 아이작 아시모프, 홍콩의 진용, 대만의 워룽성 등을 모아 한국에서 하나의 괄호로 묶어 놓았는데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장르비평이라고 한다면 우선 자기 정체성을 먼저 밝히는(혹은 정의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피치 못할 사정이 없다면 발신자가 수신자에게 정체를 밝히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이 말을 하면 발신자에는 무협소설을 쓰고 있는 나도 분명히 해당하는데, 난 분명히 무협소설을 쓰고 있는 것은 맞는데, 그것이 로맨스, 추리, sf와 같은 범주로 묶이는, 장르문학이라고 묶어 관통하는 근거를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이것은 작가보다는 장르비평이 담당해야할 몫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럴듯한 것이 있다면, 한국 대중문학 중에서 비주류를 외연의 확대로 묶어놓은 것? 혹은, 특정한 관습이나 습관이 두드러지는 작품 군을 통칭하는 것? 정확히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존재하는 동질감?  

나는 ‘세계관’이라는 신조어(?)를 접했다. 세계관은 분명히 신조어가 아닌데 이른바 장르문학에서는 그 신조어를 보고 듣는다. 인문학, 사회과학에서 동의하는 '세계관'의 아주 간단한 정의는 주체와 세계의 형이상학적 혹은 실천적 관계이다. 철학, 역사, 문학, 사회학, 정치경제학, 미학 등 수 많은 인문, 사회과학에서 세계관이라고 한다면 위와 같은 함의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물론 그 내용은 다 다르다. 그래서 흔히 철학자의 수 만큼이나 세계관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문학가의 수 만큼이나 문학적 세계관이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래도 비슷한 범주로 이를 엮어서 또한 카테고리화 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민족문학’론, ‘민중문학’론이 나오고, ‘자연주의 문학’론이 ‘생명주의 문학’론이 태동하고 ‘탈현대 문학’론, ‘맑스주의 문학’론, ‘구조주의 문학’론 등도 존재한다. 물론 ‘환상문학’론, 혹은 ‘장르문학’론도 나온다. 세계에 대한 주체의 태도를 가지고 순수문학이니 탐미주의니 참여문학이니 계급주의니 대중추수주의니 하기도 한다. 그런데 장르문학, 장르비평에서는 그 세계관을 툭하면 짜고, 짰다가 마음에 안 들면 새로 짜기도 하고, 또는 공유하기도 한다. “세계관은 짜임새가 있는데 스토리의 흥미가 좀 떨어지네요.” 같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고 듣는다.

개념은 사유와 실천의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인문, 사회과학자, 혹은 예술가는 ‘실존’이라거나 ‘투기(앙가주망)’라거나, 혹은 ‘순수이성’, ‘오성’, ‘인식’, ‘존재’, ‘리좀’, ‘어두운 전조’, ‘노마드’, ‘구조’, ‘계급’, ‘기의’, ‘기표’, ‘담론’, ‘언어 전회’ 등 자신의 사유를 담아 설득하거나 설명하기 위해서 수 없이 많은 개념을 정초한다. 그것은 보편성을 지니기도 하고 개별적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내가 당장 이 글에 쓰고 있는 ‘세계’라거나 ‘주체’라거나 하는 말은 당연히 -난 새로운 개념을 정초할 능력이 없다.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획득한 보편성 위에 서 있다. 만약 장르비평이 정초되어 이미 보편성을 가진 개념을 ‘해체’할 필요가 있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떤 목적으로 누가 어떻게 해체했는지 난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단지 짐작이나 유추는 해볼 수 있겠다. 야콥슨이 문학적 변별을 갖는 언어를 발견하기 위해 플롯이라는 문학의 보편 개념을 ‘낯설게 하기’라는 개념을 통해 다시 정초했듯이 판타지 소설(혹은 그 비평)에서 그 환상을 끝까지 밀고가기 위해 새롭게 사용하지 않았나 하는 정도의 짐작을 나 혼자 그냥 해본다. 아니면, 어쩌다 잘못 굳어진 습관일지도 모르겠다. 장르비평은 당연히 이런 문제에 대해 해답을 해야 한다고 본다. 보편성을 개별성의 범주로 끌고 와 달리 해석하고 사용했을 때는 당연히 그 의의와 정의에 이르는 고민의 과정을 언중에게 고스란히 드러내야 하지 않겠는가.  

3. 소통과 대중성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내내 느끼고 있던 것을 풀어내는 것이긴 하지만, 처음에 밝힌 겸연쩍음과 조금 서운함에 있다. 물론, 그 서운함이 겸연쩍음을 넘어설 만큼 격렬하거나 과격한 것은 아니다. 내 서운함에는 장르비평이 좀 더 많은 소통을 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으로는)당위와 희망이 담겨 있다.

문학 앞에 장르라는 레이블을 붙여 놓는다는 것은 분명히 개별성, 혹은 특수성을 한정짓는 것이다. 그 개별성, 특수성은 한편은 소외라는 위험을 직면해야 한다. 특히 장르 소설의 경우는 그런 위험의 경향성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각각 장르 법칙 혹은 관성에 기대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이것은 장르 문학 일반은 장르 법칙에 기댄 경향성이 큰 개별 장르의 암묵적 집합체(?)라는 내 나름대로의 추측과 판단에 기인한다.) 문학은 당연히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아니면 거리두기든 독자와 소통을 해야 한다. 또 하고 있다. 장르문학은 상당히 적극적인 소통을 하고 있다고 본다, 어떤 경우에는 그 적극적인 소통이 문제가 되기도 할 정도로. 그런데 그 적극적이고 활발한 소통이 한정적인 범주에 머무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장르문학이 자기 정체성을 엘리트 문학(혹은 고급문학, 본격문학)이 아니라 대중문학이라고 밝혔다면 좀 더 많은 대중과 소통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춘수, 서정주를 김수영, 황지우와 온전히 동일한 틀로 비평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김춘수에게는 김춘수를, 서정주에게는 서정주를 읽는 독법이 있다면 마찬가지로 김수영을, 황지우를 읽는 독법이 있다. 그런데 그들이 갖는 문학적 의미의 차이를 비평할 수는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서정주, 김춘수의 미학적 문법을 넘어서 그 시대와 사회가 갖는 미학적 문법이라는 것으로, 혹은 익명성의 층위에 있는 미학적 담론으로 그 둘을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넷을 같이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장르비평이라고 한다면 장르문학을 읽는 독법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대중문학을 읽는 독법이기도 하고 그 중에서 무협소설을 혹은 추리 소설을 읽는 독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더 넓게 혹은 높게는 21세기 한국 문학의 지형아래 대자적 존재로 그것을 읽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르비평은 좀 더 소통의 방식을 유연하게 하고 소통의 법주를 넓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장르비평은 (개인적으로는) 그 역방향으로(안으로 침잠하려는)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아쉬움이 크다.

장르문학에 구조주의 비평이 말하는 핍진성(逼眞性:verisimilitude)을 -논리학적 개념인, 비평에서 플롯의 인과관계의 확실성을 뜻하는 개연성(probability)이란 말을 우리는 흔히 대신 사용하고 있다.- 흔히 비평의 잣대로 들이댄다. 보통 ‘재미있으면 그만’이라거나 ‘어차피 환상(혹은 게임)을 자기기반으로 하는 문학인데 뭘 그런 엄격한 잣대를 들이 대냐.’ 같은 반론과 반발에 부딪히기도 한다. 이것은 장르비평의 주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보편성으로서의 문학과 개별성, 특수성으로의 장르가 장르비평에서 충돌하는 것이다. 그 충돌에서 어떤 것에 더욱 큰 가치를 둘 것인가는 개별 비평주체의 몫이겠지만, (대중문학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나는 좀 더 상층위의 정향성을 가져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대중문학은 대중성을 가진, 혹은 지향하는 문학이다. 말 그대로 대중성은 대중이 좋아할 만한 대중에게 소구력이 큰 성질이다. 그런데 대중이란 실체는 모호하기 그지없다. 내용적 경향성으로는 참여문학이라고 하지만, 참여문학 역시 엄연히 대중성을 추구하고 있는 (어떤 의미론 대중)문학이다. 대체로 대중(mass)은 군중(crowd)과 구별된다는 점에서 설명가능하다. 이질적인 집단이라는 점에서 같을 진 모르지만 우연성이란 측면에서는 다르다. 다수라는 점에서 엘리트와도 구별된다. 그리고 대중은 불특정 다수이지만 세분화가 가능하다. 나머지는 역사 동인의 실체로 보느냐 아니냐에 따라 참여문학에서 바라보는 대중과 변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도 그 경계가 불분명하다. 환상, 혹은 무협 등을 문학적 장치로 사용하면서 그런 경향을 가진 소설이 있을 양상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중성에 대한 의미 역시 비평주체의 수만큼 많은 가치 정향성을 드러내겠지만, 최소한 엘리트주의, 소수주의, 엄숙주의와는 확실한 변별점을 가진다고 본다. 말하자면 재미있고 친숙한 문학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학은 상품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가진다. 대중문학을 말하면서 소구력이라는 마케팅 용어를 썼지만, 분명히 상품가치는 내재하고 있다고 본다. 여기에서 장르비평의 접점이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상품성을 상업주의로 볼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역시 대중성을 대중추수주의, 혹은 대중영합주의로 볼 것인가 역시 또 다른 문제이다. 장르비평은 이러한 접점에서 비평의 질료를 또한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4. 산문의 시대

80년대는 흔히 시의 시대라고 한다. 그런데 90년대 이후부터는 산문의 시대가 된 모양이다. 산문의 대표적 장르인 소설의 시대이다. 문학의 위기를 점치기도 하지만, 소설이 문학 창작의 대세(?)인 것은 틀림없는 모양이다. 문학의 위기를 말하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인문학의 위기가 있다. 문학의 주제와 소재는 누가 뭐래도 인간이다. 인문학의 위기, 문학의 위기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위기 혹은 흔들림인지도 모르겠다. 또 그 위기는 문화 환경의 변화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시각 역시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텍스트를 통하지 않고도 향유할 수 있는 매체가 넘쳐난다. 아무래도 인문학의 위기, 문학의 위기는 내 깜냥으론 한 두 마디로 할 수 없는 묵직한 주제이다.

아니러니 하게, 문학의 위기에 나는 작가 행세를 하게 되었다. 우연히 인터넷 연재 사이트에 즐겨 읽던 무협소설을 나도 한 번 써보자고 연재를 하다 덜컥 출판까지 하게 됐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이 꽤 될 것도 같다. 장르문학, 다른 것은 몰라도 판타지, 무협, 로맨스는 여전히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스갯소리이지만, 장르소설에서 만큼은 인터넷에 등에 힘입어, 맑스가 사회주의 이상사회의 단면으로 얘기했던 낮에는 양치기, 밤에는 비평가의 시대가 온 것이다. 장르소설의 출판의 문제, 유통의 문제, 소비의 문제 등은 여기서는 잠시 논외로 하자.

장르문학의 등단 문턱이 다른 문예 부문에 비해 월등히 낮은 것은 사실이다. 말하자면 향유, 소비하는 대중에서 창작, 공급하는 대중으로의 전이가 쉽게 이루어진다. 그것은 장점이기도 하고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다. 그 강점과 약점 사이에 역시 장르비평이 서야할 자리가 있을 것 같다.  

문학은 예술 가치를 지니며 동시에 상품 가치를 지닌다. 어디에 가치우위를 둘지는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런데 그 상품 가치라는 것이 공산품의 상품가치하고는 많이 다르다. 예술(상품)은 기본적으로 창작을 본질로 한다. 창작은 다른 상품과 생산방식이 판이하게 다르다. 그런데 그 창작 과정에서 독창성을 어느 정도 소거해 내면 좀 더 용이한 생산을 할 수 있다. 대신 그 독창성 대신 들어가게 될 것은 복제일 것이다.(우리는 이것을 차마 복제라고는 못하고 클리세라고 부르기도 한다.) 감수성을 상실한 문학, 복제 제품으로서의 문학, 쉽게 소비하고 쉽게 버려지는 문학. 나는 장르문학은 그 경계에 다른 장르보다 더 근접해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알아서 할 일이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난 정식으로 문학 수업을 한 적이 없고 비평을 따로 공부한 적이 없다. 이렇게 (나름대로 비평이라고 생각하는) 비평을 쓰는 것은 내가 무협소설을 쓴 과정과 흡사하다. 내가 즐기는 문학을 내가 써보자는 것이다. 장르비평이라고는 하지만, 주류 문학비평이 장르문학에 대해, 비록 차갑고 따가운 눈길이라도, 시선을 돌릴 경우는 당장은 요원할 것 같다. 장르비평을 창조해야 한다면 그것은 별 수 없이 장르 문학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인 것 같다. 그것이 조악하고 거칠든 간에. 그래서 용기를 내본다. 낯 뜨겁지만 비평란에 올려본다. 너무 흉보지 말 것을 당부 드린다.

총론 격으로 문제의식이나 명제를 몇 가지 나열한 수준입니다. 나중에 시간을 더 내서 좀 더 풍부하게 풀어 보겠습니다. 당장은 밀린 글을 좀 써야 할 것 같습니다.

* 금강님에 의해서 문피아 - 하 - 핫이슈 (hot) 에서 문피아 - 하 - 운영자 게시판(master) 으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9-08-04 13:20)


Comment ' 15

  • 작성자
    Cloud_Nine
    작성일
    09.06.02 20:08
    No. 1

    항몽님, 원 글이 토론마당에 있는게 맞나요?
    [천명의 노무현, 만명의 노무현]이란 글외에는 보이지 않는데요. 다시 한번 확인 부탁드립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철천야차
    작성일
    09.06.02 20:17
    No. 2

    혼자만 막연하게 생각하고 두서없이 점멸을 거듭하고 있었던 문제입니다.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 박상준1
    작성일
    09.06.02 20:19
    No. 3

    클라우드 나인님! 말씀하시는 그걸 말하는 거였는데. 제가 글을 잘 못 써서 오해를 일으켰나 보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4 셸먼
    작성일
    09.06.02 20:21
    No. 4

    전문적인 비평가의 부제는 장르계에서 꾸준히 지적되어 오던 문제였지요. 사실상, 비평에 권위를 줄 수 있는 '지면' 자체가 적은게 장르 비평이 드문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철천야차
    작성일
    09.06.02 20:27
    No. 5

    지면문제도 있지만, 인상비평 이외의 마땅한 방법론이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일반적인 문학비평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아마 초토화가 될테니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4 셸먼
    작성일
    09.06.02 20:34
    No. 6

    비평이 이루어지고 있는 작품들을 보자면 서양권 거장들의 판타지/SF나 서점에 가끔 나오는 환상 문학 류 정도지요. '판타스틱'에서도 그 수준을 다루고.

    사실, 대리만족만 추구하는 작품이라면, 그 대리만족이 제대로 이루어 지도록 작품이 만들어 졌느냐로도 비평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철천야차
    작성일
    09.06.02 20:44
    No. 7

    실제로 소규모나마 이루어지고 있는 저널비평을 보면 아직 인상비평의 수준에서 크게 나아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사실 모든 예술장르에서 저널 비평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그 작품 하나만이 소재가 되고 주제가 되는 비평은 인상비평으로는 가능하지만, 그 이상으로 가려면 비평의 여러 근거들을 마련해야 하고 전체적인 상황과 다른 작품들의 언급은 필수적이 됩니다.

    일반문학론을 여과없이 들이댈 경우에는 그 부분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셸먼님이 말씀하신 장르문학에서 통용되는 새로운 방법론도 꼭 갖추어져야 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문학비평의 방법론에서 아주 멀리 나가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거의 2천년이 넘는 기간동안 세계각지에서 수없이 뻘짓하고 깨지고 다듬어져 온 방법론들이니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5 高雲
    작성일
    09.06.03 13:50
    No. 8

    좋은 글 정말 반갑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사실 저같은 독자의 얕은 생각으로는, 과연 이 '장르문학'이라는 소설군에 대해 비평이 필요한가? - 만약 필요하다면 그것은 작가를 위해서 필요한가 아니면 독자를 위해서 필요한가, 혹은 시장을 위해서인가라는 것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잔인하게 말하자면 멸치를 메스를 들이대고 해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입니다.
    더더군다나 멸치로 계속해서 남아있다면 해부의 필요성이 어느정도 있을 터인데 이것은 어느날은 송사리로,어느날은 빙어로, 그러다가 정체를 도저히 알 수없는 모호한 존재로 아주 숨가쁘게 바뀐다고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제가 이 소설군들을 비하하거나 모독하려는 악의만 갖고 있다고 생각치는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비평가들이(혹은 대중들이) 일본의 애니를 비평하지 않는 것처럼, 코믹스를 비평하지 않는 것처럼, 비지스나 잭슨의 팝을 애써 비평하지 않는 것처럼 이 소설군들을 비평하지 않는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Maniac한 의미를 부여하거나, 소개하거나, 열광할 수는 있겠지만....

    다음 글도 큰 기대 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4 셸먼
    작성일
    09.06.05 15:33
    No. 9

    高雲님//아니, 일본 애니나 코믹스는 오히려 비평과 연구가 꽤나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편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7 句芒
    작성일
    09.06.06 00:55
    No. 10

    이쪽으로 넘어왔군요.
    씁쓸하지만 좋게 생각하면 다시 읽고 싶을 때 쉽게 찾겠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철천야차
    작성일
    09.06.09 15:25
    No. 11

    흐음...왜 이 글이 여기 와 있지요?

    논단으로 보내도 손색없다고 생각하는데...

    약간의 네거티브한 발언만 있어도 운영진이 경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아젤키버
    작성일
    09.06.11 16:05
    No. 12

    문피아는 눈팅만 하는 것이 속이 편함.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접하면 실망만 커질뿐. 장르는 재미가 최우선이라고 하는 것처럼, 가볍게 접하는 것이 실망하지 않는 것인 듯.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Sol.S
    작성일
    09.06.21 05:01
    No. 13

    개인적으로는 비평이 있으면 좋긴 하겠습니다만, 그러면 또 관리상의 문제가 생기겠지요. 어디까지를 비평으로 보고 어디까지를 비난으로 볼지. 분명이 비난 글을 쓰는 사람은 있을 겁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5 외로운남자
    작성일
    09.06.29 04:17
    No. 14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사족이지만, 문피아의 운영을 보고 있자면 마치 원천봉쇄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현정권의 행태를 보는 듯해서 참 씁쓸하네요~
    역시 눈팅이나 하면서 신경안쓰는 것이 열받지않는 길 인듯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백민산
    작성일
    09.07.20 04:59
    No. 15

    향몽님
    쪽지 한 번 보내주세요. 컴이 좀 서툽니다. 제가 지금 문학 소설을 쓰고 있는데 작품분석에 대해서 조금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론서들을 읽어야할지 도움 바랍니다.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핫이슈 게시판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73 연재한담 장르 시장을 확대시키려면? +13 Lv.4 트벼 10.04.21 1,617
172 연재한담 잘 마무리 되서 감사히 생각합니다 +57 Lv.22 방탄리무진 10.01.06 3,537
171 연재한담 문피아는 무료일까요? +4 Lv.1 한비암 09.11.15 3,014
170 비평란 그만좀 빼꼈으면좋겠네 +16 쓰다방 09.06.02 6,157
» 비평란 비평총론- 장르비평 일반에 대하여 +15 Lv.6 박상준1 09.06.02 2,644
168 비평란 청성무사를 빌려왔습니다 +12 Lv.10 쌩까는 09.06.02 2,747
167 연재한담 늦은 떡밥이지만 물어봅니다. - 작가는 대여점 탓... +25 Lv.30 만월(滿月) 09.05.25 3,401
166 연재한담 대여점, 양판소, 장르 소설 사서 읽기? +126 심재열 09.05.24 5,311
165 연재한담 요즘엔 대여점에 가기조차 싫어지네요. +41 Lv.38 道不同 09.05.24 5,322
164 연재한담 악플. 선플. 비방. 칭찬글....... +3 Lv.1 요우우 09.05.08 764
163 연재한담 제발 부탁이니 자신의 의견을 그만큼 주장했고.. +6 Lv.78 거울속세상 09.05.07 1,197
162 연재한담 공개된 장에서의 연재를 선택한다는 것은.. +10 Lv.62 I.G.X 09.05.07 1,215
161 연재한담 제안합니다. +17 철천야차 09.05.07 1,008
160 연재한담 비교분석 +7 Lv.13 최강바보 09.05.07 1,172
159 강호정담 향공열전 9편부터는 꼭. +4 Lv.1 친우 09.05.04 2,566
158 강호정담 한국장르소설의 트랜드..구타? +8 Lv.54 노을1 09.05.03 2,369
157 강호정담 마교란 명칭에 대해서... +21 Lv.3 suud 09.05.02 2,904
156 연재한담 이제 키잡은 그만두시고, 대체단어를 찾아봅시다^^;; +61 Lv.1 묘당 09.03.22 2,714
155 연재한담 키잡? 뭐 이런 정신병자같은 단어가.. +269 Lv.1 한글세자리 09.03.22 8,117
154 강호정담 전 이 세상 악덕의 원인 중 하나를 이렇게 봅니다. +44 니그라토 08.12.17 2,499
153 강호정담 .....어쩌죠? 13155자. 스크롤주의 +6 Lv.1 Zian·X 08.12.16 1,927
152 강호정담 고시원 =묻지마 살인사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13 전통 08.12.11 1,934
151 강호정담 모든무협,판타지작가는 들으세요![필][독] +40 전통 08.12.06 3,592
150 연재한담 도검님, 도대체가 말이 안됩니다. +2 Lv.9 애무자 08.11.29 1,433
149 연재한담 거,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8 Lv.6 광천광야 08.11.29 1,174
148 연재한담 문학은 국어교과서도, 도덕교과서도 아니다 Lv.51 미수 08.11.29 883
147 연재한담 한 독자의 글에 경악을 금치 못하다. +31 Lv.6 서하(瑞河) 08.11.29 4,103
146 연재한담 외설, 기준이 어떤지요? +5 Lv.27 회색물감 08.11.29 1,209
145 연재한담 욕설 이야기 나온 김에 외설도... +13 위키드 08.11.28 1,426
144 연재한담 문피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본 한줄의 글에 ... +50 Lv.2 EscorT 08.11.28 3,239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