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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영토

작성자
Lv.1 휘수(輝手)
작성
03.12.01 12:19
조회
1,570

명지대 한국고대사학과 임승국 교수님의 두번째 논문입니다.

百濟史

대방이라고 하면 보통 황해도 사리원으로 알고들 있습니다.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을 쓴 김성호씨는 나름대로 식민사관을 비판하면서 글을 썩 잘 썼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잘못한 것은 사리원이 대방이라고 한 것입니다. 즉 일본사람들이 한 얘기를 그대로 고스란히 믿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백제시건국어대방고지(百濟始建國於帶方고지)'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백제가 처음 나라를 세운 땅이 대방이라는 뜻인데, 대방이 황해도 사리원이니까 사리원에서 백제가 건국한 것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사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흠이 있다고 해도 공격할만한 흠은 아니지만, 백제사 출발점은 대륙인데, 황해도 사리원에서 출발했다고 하니 참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학계에서는 미추골을 미추홀이라고 합니다. 홀(忽)자를 역사에서는 골이라고 읽습니다. 밤골이다 무슨 골이다 할 때처럼, 고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김성호씨는 이 미추골을 인천이 아니라 아산면 인주면이라고 했습니다. 미추골이 인천이라는 것도 마땅치 않은데, 거기에서 더 내려가 아산면 인주면이라고 했는데 이해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제가 번역한 책 '한단고기'에도 미추골이 나오는데, 그 곳의 위치는 바로 하북성입니다. 하북성에 있는 미추골에서 비류수가 흐릅니다. 비류백제라고 할 때의 비류수가 바로 거기서 흐릅니다.

우리 사학계는 정말 답답합니다. 오죽 답답하면 제가 유신정권 때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벌였겠습니까? 국사를 바로 잡으라고 행정소송을 했을 때, 원고는 명지대 교수 임승국이 되고 피고는 박정희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학계에서는 저보고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소송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요? 결과는 '피고 패소, 원고 승소' 이렇게 났습니다. 제가 이겼습니다.

그래서 그 때 판결장을 들고 문교부장관을 찾아가 집행할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피고가 억울하다고 대법원에 항고를 했습니다. 문교부에서는 아직 사건이 끝나지 않았으므로 집행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마지막 판결날짜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꼭 일주일 남겨두고 박대통령이 피살당해 버렸습니다. 조금 뒤 대법원에서, 그 재판은 피고의 유고로 인하여 무기한 연기한다는 통지가 왔습니다. 그 때의 무기연기가 지금까지도 무기연기 중입니다. 대법원장이 몇 번이나 바뀌고 정권이 몇 번 바뀌었는데도 지금까지 무기연기라니, 이거 법이론상 맞지 않는 얘기가 아닙니까? 그래서 이번 국정감사 시, 모 국회의원에게 그것을 좀 알아봐 달라고 했더니 그 국회의원이 하는 얘기인 즉, 그 재판은 판결하지 않은 채 폐기처분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폐기하려면 원고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하기야 뭐 5공화국시절이니까 법이 없었죠.

저는 억울한 나머지 국회에 청원서를 냈습니다. 그래서 청원서에 입각한 공청회가 열렸지요. 앞서 강연한 박시인 박사, 안호상 박사와 함께 셋이서 공청회에 나가 열변을 토했습니다. 박시인 박사는 사람이 너무 좋아서 투쟁형이 못되어 제가 대표격으로 싸웠습니다.

제안설명을 하면서 "낙랑현도진번임둔의 증거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더니 문교부 장관이 하는 말이, 자기는 역사학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답변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국무위원이 반드시 역사학 공부를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없기 때문에 그냥 넘어 갔습니다. 그 다음 앉은 사람이 차관인데,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은 사학은 고사하고 인문사회과학계통이 아닌 자연과학계통을 공부한 사람이라 내가 차관에게 질문하면, 그 사람은 속으로 '저 양반이 나 망신줄려고 국회에 불러온 것 아니냐'할 것 같아서 그냥 뛰어 넘었습니다.

다음은 국사편찬위원장이 나왔습니다. 3년동안 행정소송을 할 때 대통령 대리인으로 피고석에 있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도 장관과 꼭같은 답변을 하길래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국사편찬위원장이라는 직위에 있는 사람이 무책임한 발언을 하니 너무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 때 방청석에 있던 국회의원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국사편찬위원장 임명권자인 문교부장관은 사임하라고 외쳤습니다. 목표는 국사개정인데 인사문제로 번지니 다시 한번 더 국사개정의 방향에서 일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한 뒤, 장차관과 국사편찬위원장도 한사군 문제를 공부안했다고 발뺌하니 앞서 얘기한 대로 쭉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국사개정을 하기로 결정하고 공청회는 끝났습니다.

이제 백제사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제 전공이 백제사이고 백제사는 그야말로 저의 의중의 역사입니다. 제가 경희대 영문학 교수시절 때 우연히 중국 25사를 구경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25사 가운데 사기(史記), 전한서(前漢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 진서(晉書) 다음으로 여섯번째 책이 송서(宋書)입니다. 하루는 윤영춘 박사댁에 놀러갔다가 그 분이 갖고있는 장서 중에서 우연히 이 송서를 끄집어 냈습니다. 윤 박사가 이걸 보라고 권한 것도 아닌데, 제가 펼친 곳이 송서 97권 '백제의전'이라는 대목이었습니다. 그 기록을 무심코 쭉 읽어 내려갔지요. 중국에서 태어나 중학교 4학년까지 그곳에서 성장했으니 한문실력은 그런대로 있어서 쭉 읽어보니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송서에 기록되어있는 백제는 우리가 알고있는 백제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우리는 의례히 백제를 생각할 때면 연상되는 것이 의자왕이고, 의자왕 하면 삼천궁녀, 삼천궁녀와 낙화암과 백마강, 그리고 다이빙 앤드 풍덩 등입니다.

그런데 송서 97권을 보니까 아예 백제의 위치부터가 달랐습니다. 반도가 아니었습니다. 현 수도인 북경으로부터 남쪽으로는 산동반도를 지나 양자강 남북의 평야지대를 포함한 중국동해안 일대를 백제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 기록을 보고서 그 때 하고 있던 영문학이라는 낡아빠진 학문을 집어 치우고 스승도 안내자도 없이 한국상고사라는 난장판 학문에 뛰어 들었습니다. 만 5년동안 학교도 나가지 않고 직장도 없이 도서관에 파묻혀서 사서삼경과 25史와 씨름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6년 만에 다행히 명지대학으로부터 다시 교수발령을 받은 후에, 영문학 교수가 아닌 한국고대사를 강의하는 사학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제 학문의 안내자가 바로 백제사였으니, 오늘 강의하는 것도 백제사의 이해라고 하면 비로소 말문이 열립니다.

송서 97권 백제전의 머릿부분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百濟國, 本與高驪俱在遼東之東千餘里, 其後高驪略有遼東, 百濟略有遼西. 百濟所治, 謂之晉平郡晉平縣.' 송서에만 이런 기록이 있고 다른 기록에는 이런 것이 없다고 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닙니다. 25사 중 송서 다음이 양서(梁書)인데, 양? ?54권 백제전에도 같은 기록이 나옵니다. 양서 다음은 남제서(南濟書)입니다. 당시 양자강 남쪽에는 제(濟)나라가 있었고, 북쪽에는 북위(北魏)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남제서에도 백제전이 있는데, 그 내용은 더 엄청납니다. 당시의 백제왕은 무령왕의 아버지인 동성왕이었습니다. 동성왕의 무덤이 산동반도에 있다고 25사에 기록되어있고요, 동성왕은 산동반도에 서경(西京)을 설치하여 직접 도읍하면서 대륙을 경영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의 군사·외교정책은 가까이에 있는 위나라와는 전쟁으로 상대하고, 양자강 남쪽의 남제와는 우호관계를 맺는 등의 정책을 폈습니다.

동성왕은 남제의 소도왕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실로 엄청납니다. 아마 간덩이가 작은 사람은 이 글만 보아도 깜짝 놀랄 것입니다. 요서나 진평이라고 했던 백제의 세력이 놀랍게도 남쪽으로 확장되어 북위의 군대와 싸워 이겼고, 또 한 때는 양자강 남쪽까지 점령해 버립니다. 그리고 그 땅을 일곱구역으로 나누어서 백제장군 일곱을 각각 파견하여 통치하게 합니다. 쉽게 말하면 총독 일곱명을 두고 중국동해안을 싸그리 지배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록을 중국인들은 다 없애 버렸습니다. 남제서 백제전의 머리부분을 다 뜯어버렸다는 말입니다. 현재 한국으로 오는 25사 중 남제서를 보면, 백제전의 앞부분이 뜯겨나간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글씨가 없는 공백이 하얗게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게 '똥되는 놈'(똥떼놈,지나인)의 심뽀입니다. 오죽하면 똥되는 놈이라고 하겠습니까? 백제전이라는 제목은 있는데 그 다음이 빈칸이란 말이예요.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강시단야(降屍丹野: 쓰러진 시체가 들판을 붉게 물들였다)인데, 똥되는 놈을 시체로 만든 자는 백제 군대이겠죠. 그리고 그 빈칸은 그냥 남겨두었습니다.

중국본토에는 오리지날 25사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대만에는 물론이고요. 중국본토와 대만에 가공하지 아니한 원본 25사가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흔하지 않지만. 중국 가는 사람들은 오리지날 25사를 구해서 남제서 백제전을 펼쳤을 때, 공백이 아니라 글씨가 꽉 차 있다고 한다면 무조건 갖고와야 합니다. 요즘 중국에 많이 갔다왔다 하는 모양인데 다 소용없어요. 강아지 눈에 보이는 건 누런 똥밖에 없습니다. 근래 중국갔다 온 사람들의 눈에는 누런 황금덩어리만 보일 뿐입니다. '백제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딱 꼬집어서 얘기할 때는 위와 같은 것이 적절한 예화가 될 겁니다. 백제가 이렇다는 것은 감히 생각을 못합니다. 그저 '낙화암 풍덩'만을 연상할 뿐입니다.

중국지도에 있어 동해안 지역은 사실상 중국땅의 전체나 다름없습니다. 깊은 오지에는 사람들이 살지를 못합니다. 중국사람들이 집결되어있고 중국문화가 한데 모여 있는 곳이 중국 동해안 지역입니다. 모택동도 여기에 사는 중국인구의 수를 8억이라고 했습니다. 전체 10억 중에서 8억의 인구가 이곳에 몰려 살고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지역을 몽땅 백제가 지배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요즘 남북사학자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 토론하자고 하는데, 그건 위험천만한 얘기입니다. 우리 사학계는 아직도 식민사관에 푹 젖어있어서 노태우정권은 또 그런 사람을 뽑을테고, 그래서 '마피아단'을 남한대표로 보내면 북한사학자들한테 비웃음만 당할 것입니다. 북한 사학은 60년대 초에 한사군문제를 싹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낙랑현도진번임둔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마주 앉으면 남쪽이 망신당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 사학의 주류가 민족주의 정예학자로 되기 전에는 위험한 주장입니다.

얼마 전에 KBS에서 사학 관계서류를 모아서 연변대학에 기증을 했습니다. 약 몇 천권 보낸 모양입니다. 연변대학 총장이 그걸 ? 騁티?읽어 보니까 식민사관이 그대로 남아있길래, 예를 들어 김철준씨가 쓴 문화사관이나 이기백씨가 쓴 한국사의 무엇 등등이었는데, 무슨 이런 책을 보냈느냐 하면서 모조리 폐기처분해 버렸다고 합니다. 남한에서 보내 온 사서는 모조리 식민사학에 젖어 있어서 폐기처분했다는 사실, 이것만큼 대한민국 망신시킨 적이 어디 있습니까? 해방 이후 40-50년동안 우리는 식민사학을 복창 복습했다는 것을 여기서 또한 알 수가 있습니다.


Comment ' 2

  • 작성자
    주웅용
    작성일
    04.02.13 02:40
    No. 1

    개인적으로 백제사의 발굴이 고구려사보다 우히려 더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북국시대 장보고장군이 단독 해양세력으로도 남해, 서해를 완전히 지배했었는데..
    일본까지 영향력을 미쳤다는 백제가 전라도와 충청,경기 일부만을 지배했다는게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게다가 장수왕 시절 그 강대하고 넓은 영토를 지닌 고구려가 백제의 한성을 정복할때 들인 공을 살펴봐도 백제가 그런 소국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좋은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국회의원들 실컷 설명했더니 사람바꾸라는 대목은..눈에 선하군요 ㅋ)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西韓
    작성일
    05.02.19 03:37
    No. 2

    고구려와 백제가 패수에서 서로 전쟁을 치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있

    습니다.

    이 패수라는 강이 수경주라는 강물에 관한 사서에 장성남쪽에 있는 강이

    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역사서 기록된 장성이란 명나라가 완공한 하북성의 장성

    이 아니라 진나라가 섬서성 북방에 쌓은 장성을 가리킵니다.

    삼국사기및 수경주 지명사전을 토대로 패수의 위치를 보자면 섬서성

    장안의 남쪽에 흐르는 강이 바로 패수이며 이 패수를 경계로 북쪽으로는

    고구려가 남쪽으로는 백제가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런 두나라를 한반도및 동북삼성에 있다고 우겨대니... 쯧~~

    아니면 기껏해야 대륙으로 진출했다고 하니....

    삼국사기를 잘 읽어보십시오... 이 패수라는 강은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

    제 신라의 전쟁 때마다 등장하며 후에 고구려 백제를 멸한 후에는 잠시

    당나라가 차지하다고 얼마후 신라에게 패수남쪽의 땅을 당이 신라에게

    주는 것으로 나옵니다.

    또한 고려 조선의 강으로도 역시 패수가 등장합니다..

    고구려 양원왕 및 평원왕에 실린 기록을 보면 이 패수란 강이 섬서성

    장안 남쪽에 흐르는 강임을 알 수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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