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하게 생각하는 활에 대한 생각:
1. 철시 철궁은 더 쎄다?? 사실 그렇지는 않다. 철궁은 복합궁에 비해 사거리가 더 짧아진다. 궁의 탄력이 그만큼 적기때문에 그렇다. 거기에 금속피로현상이 더해지니 연사로 쏠 도리도 없다. 그리고 파괴력도 더 쎄지도 않다. 화살이 가장 파괴력을 가지는 방법은 곡사에 있다. 허공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며 만들어진 파괴력과 화살깃이 바람을 타고 멀리 날으는 그 사거리를 더하면 갑옷을 꽤뜷을 정도의 위력이 나온다. 하지만 철시는 화살깃을 달지 않기때문에(철 무게로 무게중심을 앞에 둘수밖에 없어진다) 바람을 타지 못해 곡사로 쏠수가 없다. 직사로 쏘는 거리는 상대적으로 그만큼 짧아질수 밖에 없고 파괴력도 그보다 못하게 나온다.
2. 철시의 장점은? 장점은 규격생산에 있다. 같은 규격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기때문에 어느정도 평준화된 사격을 군대에게 가르쳐줄수 있는 것이다. 어느 규모의 궁수들이 모인다면 제압사격이 가능해진다. 여기에 규격 화살이라면 평균적인 탄착점을 줄수있다.
3. 명궁은 왜 그리 적을수 밖에 없었나. 화살만 따로 만드는 공방은 국가에서나 지원할수 밖에 없다. 나무화살의 경우 내구연한이 일년여밖에 안되니 연생산량은 늘 적을수 밖에 없다. 따라서 웬만한 화살은 궁수 자신이 다듬어 만들수 밖에 없고 여기에 개인적인 손재주에 따라 얼마나 규격적인 화살을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 명중율이 0%에서 크게 차이가 날수 밖에 없는 것이다.
4. 서양. 15세기의 활과 10세기의 활 어느 것이 더 쎌까.
정답은 10세기의 활이다. 이슬람과 (그들의 중국과의 중계무역으로 인한) 의 무역을 통해 복합궁과 석궁이 유럽에 소개되었지만 이후 십자군전쟁등으로 전쟁물자의 교역이 중지되고 암흑시대가 시작되면서 서양의 활들은 정말 형편이 없어졌다. 복합궁과 석궁의 기술이 실전되면서 고작해야 나무활이나 만들수 밖에 없어 졌다. 그 결과 강력한 활을 만드려면 그 사이즈가 터무니없이 커질수 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복합궁의 30% 효과도 못내었다. 15세기 당시의 궁수들의 경우 심지어 2미터짜리 나무활까지 등장하였다. 이러한 빈약한 투사무기의 존재 덕분에 풀플레이트갑옷같은 비효율적인 갑옷이 등장하게 되었다.(물론 여기에는 동양식 칼날이 예리한 무기를 막기위한 면도 없지 않아 없다. 서양의 칼 역시 허접해서 베는 것이 아니라 갑옷을 으깨는 대도나 갑옷의 빈틈을 찌르는 송곳같은 기형적인 검들이 존재하게 되았다) 반면 동양의 경우 파괴적인 복합궁 덕분에 이러한 통짜갑옷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게 되었다. 솜과 철 나무등을 조합해 어린과 요철을 만드는 동양식 갑옷은 복합궁의 성능으로 부터도 안전할수 있지만 풀플레이트 갑옷은 어이없이 뜷려버릴수 밖에 없기때문이다.
서양의 그 무거운 갑옷들 뽀대는 나지만 부러워 하지는 말자. 서양 활로부터는 안전할지 몰라도 복합궁 상대로는 어림도 없다.
5. 우리의 각궁은 과연 천하무적이었을까? 정답은 아니다 이다. 각궁은 몽고(원나라)에서 전래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물소가 자생하지 않으니 재료 자체가 수입산이다.
6. 애기살은 천하무적이었을까? 설마다. 그 터무니없이 긴 사거리는 인정하지만 화살깃과 긴 화살대의 에스자운동 없이는 탄착점에 대한 명중율은 거의 기대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제압사격용의 일제사격외에 연사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7. 석궁은 그렇게 좋았나? 15세기에 서양에 재수입된 석궁의 경우 장전하려면 일단 누워서 양발로 시위대를 밟고 손으로 눌러 시위를 당겨야 했다. 장전속도는 거의 3분당 한발에 사거리는 80여미터를 그냥 시위의 탄력으로 던지는 것이니 실제 유효사거리는 20미터가 안되리라 본다. 즉 단발용이다. 한발쏘고 그뒤에는 도끼들고 최전선에서 싸워야 하니 석궁병은 그만큼 위험한 직업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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