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은나라 최후의 폭군이라고 알려진 걸왕은 기원전 10~11세기경
주나라 왕에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은의 멸망 후에 걸왕의 친 동생인 기자는 1000명을 거느리고
고조선에 이주하여 조선왕으로 봉해졌다고 중국 역사서 및 공자가 쓴 시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자는 한반도에서 한(韓)씨와 왕(王)씨로 나중에 개성을 했습니다.
그런 역사가 과거 한자 족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과거 족보에는 이 기자 후손이 고조선의 왕이요 고려 태조
왕건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조선 피난민들이 이룩한 삼한이라는 나라는 이주한 기자의 후손
중 세파로 갈라진 한씨를 뜻한다는 이설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우리나라 역사학자는 기자는 단군 왕검 밑의 고조선의 제후였을 뿐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왕건은 고구려의 후손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은 삼한도 고유의 진국의 후손의 번성으로
인한 3국의 분리로 기록하고 있고 역사적 문화적 증거로 고유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걸왕의 형은 나중에 송씨로 개성하여 중국에 거주했습니다.
당나라 안록산의 란 때에 피난온 당 8학사중 송학사의 통일신라
시대의 한반도 이주로 부터 송씨는 한반도에 뿌리를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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