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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조

작성자
Lv.32 착정검주
작성
02.10.31 19:33
조회
1,889

  명대(1368-1644)에 인구는 8000만에서 1억 6천으로 증가했다. 내전은 없었고 교육/철학/문학/예술의 업적은 뛰어났다. 명조는 군사적으로 몽고를 몰아내고 외부의 영향을 차단하려 했다. 명은 송을 계승하지 않고 원의 특징을 유지하면서 이론적으로는 한/당의 모델로 돌아가려고 했다.

  주원장은 농촌 출신 탁발 승려로 반원종파 백련교 반란군의 수령으로 봉기하여 강남을 장악한 뒤 유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천명을 선언하고 1368년 남경에 수도를 건설했다. 폭력적이고 과대망상적인 홍무제는 반역음모를 의심하면서 훈계와 규제, 법령/조칙/조법/포고/의례규정을 통해 중앙집권적 통제를 꾀했다. 토지세를 경감하고 제방을 보수하고 창고를 채우고 연좌제를 실시하고 빈민을 구제하는 신사층을 격려했다. 상업은 기생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농업을 국부의 원천으로 보아 전통적인 유교적 관점을 채택했다.

  관료들에게는 봉록만 지급했으므로 관료들은 뇌물/청탁을 찾았다.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홍무제의 정책은 경제적 파탄으로 이끌었다. 원의 군제를 모방하여 전략적 지점에 위소를 설치하고 세습적인 군호를 두었다. 음모를 의심하여 관료 10만을 참수하여 유교통치는 발전할 수 없었다. 신하들을 매질하고 모욕 주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중앙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1380년 중서성과 승상을 폐지하고 황제 독재를 단행케 했다. 하루 10시간 200건의 상주문을 처리해야 했으므로 정부의 비효율은 일상화되었다. 승상/육부/어사대/관청의 연결망이 파괴되고 황제는 환관에게 행정을 의존하게 된다. 환관이 7만에 달하게 되었다. 황실재정과 국가재정 사이의 구분이 없었다.

  영락제는 몽고의 침입을 저지하기 위해 북경으로 천도했다. 황실 공급용 관청과 상점에 10만 인이 고용되었다. 비밀경찰 금의위도 7만 5000으로 증가했다. 토지세는 생산물의 10%로 고정되어 정부의 세입이 고갈되고 경제활동을 돕는 간접자본투자가 방치되었다. 1381년 110호를 단위로 이갑제로 편제하여 10호마다 납세와 요역을 책임졌다. 조세/징병/통화 제도가 남용되어 부패로 가득 찼다. 명대 재정제도의 관심사는 정권의 안정이었다. 징수 대리인의 수가 수백만 명에 달해 재정운용을 파악할 수 없게 되었다.

  군대는 자급자족할 수 없었으므로 병사들은 농업에 종사하고 토지를 팔거나 저당잡혔다. 홍무제는 지폐를 남발하여 1425년에는 2%로 가치가 축소되어 결국 은이 지폐를 대용하게 되었다. 정부는 동전을 주조하지 않아 위조 동전이 공백을 메웠다. 교역이 증대하는 시점에서 백성이 사용하는 동전의 수급에 실패했다. 16세기 교역이 증대하여 은이 대량으로 중국에 유입되자 중국 특유의 상품경제가 화폐화되었다. 결국 다양한 통화가 사용되었다. 정부는 잠재적 경제력을 발전시키는 데 실패했으며 정치적 통제에 의존했다. 당/송/원이 명보다 훨씬 세련되고 높은 행정을 시행했었다.

  영락제의 태감 정화는 중국 남부의 교역로를 따라 3천 톤에 달하는 2000척의 선박을 건조하고 2700명의 병사를 이끌고 원정에 나서서 인도를 넘어 아프리카 동부 해안과 메카에 이르렀다. 30개 국가와 외교관계를 열었다. 주둔군의 재정문제와 환관에 대한 반목으로 인해 1479년 병부시랑은 그들의 기록을 모두 파기하고 해외무역은 중단되었다. 50년이 지나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대항해시대가 열린다.

  1449년 사례감 태감 왕진은 황제의 친정을 부추겨서 황제가 몽고에 잡혔다. 1474년 이후 16세기까지 만리장성을 완공했다. 선박건조가 소형선박으로 제한되자 해군력이 쇠퇴하여 왜구를 가장한 중국인 해적이 들끓게 되었다. 중국은 세계무대에서 은퇴하고 군대는 약해지고 환관의 전횡은 심해지고 보수적 신유학자 관료들은 근대적 기술발달과 경제발전을 포기했다.

  유능한 문인관료이자 반란의 진압장군인 왕양명의 사상이 많은 추종자를 얻었다. 그는 향약을 통해 지방공동체를 활성화시키고 도덕적 훈련과 지기수양을 위한 사색을 중시했다. 신중한 사고와 명상을 통해 내면적 세계의 직관적 지식을 강조한 것은 선종과 유사하다. 지행합일의 주장은 도덕적 지식과 사회적 행동의 통일을 요구한 것이다. 주자학파와 양명학파는 모두 윤리적 행동이 좋은 정치의 뿌리이며 기술은 열등한 문제라고 가르쳤다. 도덕적 원리의 강조는 붕당투쟁의 근거를 제공했다. 만력제의 재위기간(1573-1620)에 장거정은 내핍을 강조하고 국고를 축적했다. 황제는 관료들의 도덕적 공격에 염증을 느껴 수년간 집무를 거부했다. 강남지역 무석 부근 동림서원을 중심으로 개혁운동이 일어났는데 사림들이 관료들을 무차별 공격하자 1620년대 환관 위충현이 권력을 잡고 동림파를 탄압하여 관료사회를 분열시켰다. 상업의 발전과 서양과의 접촉은 정치적 질서를 흔들어놓을 위험성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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