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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고사성어

작성자
Personacon 검우(劒友)
작성
02.11.06 17:50
조회
3,485

아마도 무협 쓸땐 고사성어가 아주 유용하게 쓰일겁니다.

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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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苛:가혹할 가, 政:정사 정, 猛:사나울 맹, 於:어조사 어, 虎:범 호

[출전] <禮記><檀弓記>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사납다는 뜻으로, 가혹한 정치는 백성들에게 있어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는 고통보다 더 무섭다는 말.

춘추 시대(春秋時代) 말엽, 공자(孔子:B.C 551∼479)의 고국인 노(魯)나라에서는 조정의 실세(實勢)인 대부(大夫) 계손자(季孫子)의 가렴 주구(苛斂誅求)로 백성들이 몹시 시달리고 있었다.

어느 날, 공자가 수레를 타고 제자들과 태산(泰山) 기슭을 지나가고 있을 때 부인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일행이 발길을 멈추고 살펴보니 길가의 풀숲에 무덤 셋이 보였고, 부인은 그 앞에서 울고 있었다. 자비심이 많은 공자는 제자인 자로(子路)에게 그 연유를 알아보라고 했다. 자로가 부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부인, 어인 일로 그렇듯 슬피 우십니까?"

부인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더니 이윽고 이렇게 대답했다.

"여기는 아주 무서운 곳이랍니다. 수년 전에 저희 시아버님이 호환(虎患)을 당하시더니 작년에는 남편이, 그리고 이번에는 자식까지 호랑이한테 잡아 먹혔답니다."

"그러면, 왜 이곳을 떠나지 않으십니까?"

"하지만, 여기서 살면 세금을 혹독하게 징수 당하거나 못된 벼슬아치에게 재물을 빼앗기는 일은 없지요."

자로에게 이 말을 전해들은 공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잘 들 기억해 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苛政猛於虎]'는 것을…‥."

[주] 태산 :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오악(五嶽) 중 동악으로 중국 제일의 명산. 도교의 영지(靈地). 해발1335m.

'於' : ① 어조사 어. '…에, …에서, …보다' 등의 뜻을 나타냄.

② 탄식하는 소리 오.  (예) '於乎(오호)'-감탄하는 소리.

가정(苛政) : 가혹한 정치,  (동) 학정(虐政), (반) 관정(寬政).

가렴주구(苛斂誅求) : 세금을 혹독하게 징수하고 백성들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음.

각주구검(刻舟求劍)

刻:새길 각. 舟:배 주. 求:구할 구. 劍:칼 검.

[준말]각주(刻舟),각선(脚線),각현(刻鉉)

[유사어]수주대토(守株待兎)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자 뱃전에 표시를 했다가 나중에 그 칼을 찾으려 한다는 뜻으로, 어리석어 시세에 어둡거나 완고함의 비유.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나라의 한 젊은이가 양자강(揚子江)을 건너기 위해 배를 탔다. 배가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그만 실수하여 손에 들고 있던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아뿔싸  이를 어쩐다?'

젊은이는 허둥지둥 허리춤에서 단검을 빼 들고 칼을 떨어뜨린 그 뱃전에다 표시를 했다. 이윽고 배가 나루터에 닿자 그는 곧 옷을 벗어 던지고 표시를 한 뱃전 밑의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칼이 그 밑에 있을 리가 없었다.

간담상조(肝膽相照)

肝:간 간, 膽:쓸개 담, 相:서로 상, 照:비칠 조

(유사어) 피간담(披肝膽).(출전) 한유(韓愈)의 <柳子厚墓誌銘>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인다는 뜻. 곧 ① 상호간에 진심을 터놓고 격의 없이 사귐.   ② 마음이 잘 맞는 절친한 사이.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당대(唐代)의 두 명문(名文) 대가에 한유[韓愈: 자는 퇴지(退之), 768∼824]이 있었다. 이들은 함께 고문 부흥(古文復興) 운동을 제창한 문우로서 세인으로부터 한유(韓柳)라 불릴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다.

당나라 11대 황제인 헌종(憲宗:805-820) 때 유주 자사(柳州刺史)로 좌천되었던 유종원이 죽자 한유는 그 묘지명(墓地銘)을 썼다.

자신의 불우한 처지는 제쳐놓고 오히려 연로한 어머니를 두고 변경인 파주 자사(播州刺史)로 좌천, 부임하는 친구 유몽득(劉夢得)을 크게 동정했던 유종원의 진정한 우정을 찬양하고, 이어 경박한 사귐을 증오하며 이렇게 쓰고 있다.

"..... 사람이란 곤경에 처했을 때라야 비로소 절의(節義)가 나타나는 법이다. 평소 평온하게 살아갈 때는 서로 그리워하고 기뻐하며 때로는 놀이나 술자리를 마련하여 부르곤 한다. 또 흰소리를 치기도 하고 지나친 우스갯소리도 하지만 서로 양보하고 손을 맞잡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이며(肝膽相照)' 해를 가리켜 눈물짓고 살든 죽든 서로 배신하지 말자고 맹세한다. 말은 제법 그럴듯하지만 일단 털 끌만큼이라도 이해 관계가 생기는 날에는 눈을 부릅뜨고 언제 봤냐는 듯 안면을 바꾼다. 더욱이 함정에 빠져도 손을 뻗쳐 구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이 빠뜨리고 위에서 돌까지 던지는 인간이 이 세상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다."

건곤일척(乾坤一擲)

乾:하늘 건, 坤:땅 곤, 一:한 일, 擲:던질 척

(동의어) 일척건곤(一擲乾坤) (출전) 한유(韓愈)의 시( 過鴻溝)

하늘과 땅을 걸고 한 번 주사위를 던진다는 뜻. 곧 ① 운명과 흥망을 걸고 단판걸이로 승부나 성패를 겨룸. ② 흥하든 망하든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결행함의 비유.

이 말은, 당나라의 대문장가인 한유가 홍구[鴻溝: 하남성(河南省)내]을 지나다가 그 옛날(B.C. 203), 한왕(漢王) 유방(劉邦)에게 '건곤일척'을 촉구한 장량(張良) 진평(陳平)을 기리며 읊은 회고시<과홍구(過鴻溝)>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이다.

용은 지치고 범은 피곤하여 강을 나누니[龍疲虎困割川原(용피호곤할천원)]

만천하 백성들의 목숨이 보존되는도다  [億萬蒼生性命存(억만창생성명존)]

누가 군왕에게 말머리를 돌리도록 권하여[誰勸君王回馬首(수권군왕회마수)]

진정 '건곤일척'의 성패를 겨루게 했는가[眞成一擲賭乾坤(진성일척도건곤)]

역전(歷戰) 3년만에 진(秦)나라를 멸하고(B.C. 206) 스스로 초패왕(楚 王)이 된 항우는 팽성[彭城: 서주(徐州)]을 도읍으로 정하고 의제(義帝)를 초나라의 황제로 삼았다. 그리고 유방을 비롯해서 진나라 타도에 기여한 유공자들을 왕후(王侯)로 봉함에 따라 천하는 일단 진정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의제가 시해되고 논공 행상에 불만을 품어 온 제후들이 각지에서 반기를 들자 천하는 다시 혼란에 빠졌다.

항우가 제(齊) 조(趙) 양(梁)의 땅을 전전하면서 전영(田榮) 진여(陳餘) 팽월(彭越) 등의 반군을 치는 사이에 유방은 관중(關中)을 합병하고, 이듬해 의제 시해에 대한 징벌을 구실로 56만의 대군을 휘몰아 단숨에 팽성을 공략했다. 그러나 급보를 받고 달려온 항우가 반격하자 유방은 아버지와 아내까지 적의 수중에 남겨둔 채로 겨우 목숨만 살아 형양(滎陽:하남성 내)으로 패주했다.

그후 병력을 보충한 유방은 항우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계속하다가 홍구를 경계로 천하를 양분하고 싸움을 멈췄다. 항우는 유방의 아버지와 아내를 돌려보내고 팽성을 향해 철군 길에 올랐다. 이어 유방도 철군하려 하자 참모인 쟝량과 진평이 유방에게 진언했다.

"한나라는 천하의 태반을 차지하고 제후들도 따르고 있아오나 초나라는 군사들이 몹시 지쳐 있는데다가 군량마저 바닥이 났사옵니다. 이야말로 하늘이 초나라를 멸하려는 천의(天意)이오니 당장 쳐부숴야 하옵니다. 지금 치지 않으면 '호랑이를 길러 후환을 남기는 꼴[養虎遺患(양호유환)]'이 될 것이옵니다."

여기서 마음을 굳힌 유방은 말머리를 돌려 항우를 추격했다. 이듬해 유방은 한신(韓信) 팽월 등의 군사와 더불어 해하[垓下:안휘성(安徽省) 내]에서 초나라 군사를 포위하고 '사면 초가(四面楚歌)'작전을 폈다. 참패한 항우는 오강(烏江:안휘성 내)으로 패주하여 자결하고, 유방은 천하 통일의 길로 들어섰다.

[주] 관중 : 감숙성(甘肅省) 동부의 산지(山地)에서 발원(發源)하여 섬서성(陝西省) 중부를 흐르는 위수(渭水:황하의 큰 지류) 유역의 평야(분지)를 가리킴. 옛부터 정치 군사상의 요지로서 주(周) 진(秦) 한(漢) 당(唐)나라는 이곳을 중심지로 삼았음.

걸해골(乞骸骨)

乞:빌 걸, 骸:뼈 해, 骨:뼈 골

[준말]걸해(乞骸). [원말]원사해골(願賜骸骨).

[동의어]걸신(乞身). [참조]건곤일척(乾坤一擲).

[출전]《史記》〈項羽本記〉,《子春秋》

해골을 빈다는 뜻으로, 늙은 재상(宰相)이 나이가 많아 조정에 나오지 못하게 될 때 임금에게 그만두기를 주청(奏請)함을 이루는 말.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에게 쫓긴 한왕(漢王) 유방(劉邦)이 고전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유방은 지난해(B.C. 203) 항우가 반란을 일으킨 팽월(彭越) 전영(田榮) 등을 치기 위해 출병한 사이에 초나라의 도읍인 팽성[彭城:서주(徐州)]을 공략했다가 항우의 반격을 받고 겨우 형양[滎陽:하남성(河南省) 내]로 도망쳤다. 그러나 수개월 후 군량(軍糧) 수송로까지 끊겨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렵자 항우에게 휴전을 제의했다. 항우는 응할 생각이었으나 아부(亞父:아버지 다음으로 존경하는 사람이란 뜻) 범증(范增)이 반대하는 바람에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안 유방의 참모 진평(陳平)은 간첩을 풀어 초나라 진중(陣中)에 헛소문을 퍼뜨렸다.

'범증이 항우 몰래 유방과 내통하고 있다'고.

이에 화가 난 항우는 은밀히 유방과 강화의 사신을 보냈다. 진평은 항우를 섬기다가 유방의 신하가 된 사람인 만큼 누구보다도 항우를 잘 안다. 그래서 성급하고도 단순한 항우의 성격을 겨냥한 이간책은 멋지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진평은 장량(張良) 등 여러 중신(重臣)과 함께 정중히 사신을 맞이하고 이렇게 물었다.

"아부(범증을 지칭)께서는 안녕하십니까?"

"나는 초패왕의 사신으로 온 사람이요."

사신은 불쾌한 말투로 대답했다.

"뭐, 초왕의 사신이라고? 난 아부의 사신인 줄 알았는데 ……."

진평은 짐짓 놀란 체하면서 잘 차린 음식을 소찬(素饌)으로 바꾸게 한 뒤 말없이 방을 나가 버렸다. 사신이 돌아와서 그대로 보고하자 항우는 범증이 유방과 내통하고 있는 것으로 확신하고 그에게 주어진 모든 권리를 박탈했다. 범증은 크게 노했다.

"천하의 대세는 결정된 것과 같사오니, 전하 스스로 처리하시오소서. 신은 이제 '해골을 빌어[乞骸骨]' 초야에 묻힐까 하나이다."

항우는 어리석게도 진평의 책략에 걸려 유일한 모신(謀臣)을 잃고 말았다. 범증은 팽성으로 돌아가던 도중에 등창이 터져 75세의 나이로 죽었다고 한다.

[주] 소찬(素饌) : ① 고기나 생선이 들어가지 아니한 반찬. ② 남에게 식사를 대접할 때의 겸양의 말.

    등창[背瘡] : 한의학에서, 등에 나는 큰 부스럼을 일컫는 말.

격물치지(格物致知)

格:이를 격. 物:만물 물. 致:이를 치. 知:알 지.

[준말]격치(格致). [출전]《大學》〈八條目〉

①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후천적인 지식을 명확히 함[주자(朱子)의 설].

② 낱낱의 사물에 존재하는 마음을 바로잡고 선천적인 양지(良知)를 갈고 닦음[왕양명(王陽明)의 설].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大學)》은 유교의 교의(敎義)를 간결하게 체계적으로 서술한 책으로서 그 내용은 삼강령(三綱領 : 明明德, 新民, 止於至善), 팔조목(八條目 :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으로 요약된다.

팔조목 중 여섯 조목에 대해서는 《대학》에 해설이 나와 있으나 '격물' '치지'의 두 조목에 대해서는 해설이 없다. 그래서 송대(宋代) 이후 유학자들 사이에 그 해석을 둘러싸고 여러 설이 나와 유교 사상의 근본 문제 중의 하나로 논쟁의 표적이 되어 왔다.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송나라 주자(朱子 : 朱熹, 1130∼1200)의 설과 명(明)나라 왕양명(王陽明 : 王守仁, 1472∼1528)의 설을 들을 수 있다.

① 주자의 설 : 만물(萬物)은 모두 한 그루의 나무와 한 포기의 풀에 이르기까지 각각 '이(理)'를 갖추고 있다. '이'를 하나하나 궁구(窮究 : 속속들이 깊이 연구함)해  나가면 어느 땐가는 활연(豁然 : 환하게 터진 모양)히 만물의 겉과 속, 그리고 세밀함[精]과 거침[粗]을 명확히 알 수가 있다.

② 왕양명의 설 : 격물(格物)의 '물'이란 사(事)이다. '사'란 어버이를 섬긴다던가 임금을 섬긴다던가 하는 마음의 움직임, 곧 뜻이 있는 곳을 말한다. '사'라고 한 이상에는 거기에 마음이 있고, 마음밖에는 '물'도 없고 '이'도 없다. 그러므로 격물의 '격'이란 '바로잡는다'라고 읽어야 하며 '사'를 바로잡고 마음을 바로잡는 것이 '격물'이다. 악을 떠나 마음을 바로잡음으로써 사람은 마음 속에 선천적으로 갖추어진 양지(良知)를 명확히 할 수가 있다. 이것이 지(知)를 이루는[致] 것이며 '치지'이다.

[주] 양지 : ① 배우지 않을 수 있는 타고난 지능. ② 양명학(陽明學)에서, 마음의 본체.

견토지쟁(犬 之爭)

犬:개 견,   :토끼 토,  之:갈 지(…의),  爭:다툴 쟁.

[동의어]전부지공(田父之功). 방휼지쟁(蚌鷸之爭). 어부지리(漁父之利). 좌수어인지공(坐收漁人之功).

[출전]《戰國策》〈齊策〉

개와 토끼의 다툼이란 뜻. 곧 ① 양자의 다툼에 제삼자가 힘들이지 않고 이(利)를 봄에 비유. 횡재(橫財)함의 비유. ② 쓸데없는 다툼의 비유.

전국 시대, 제(齊)나라 왕에게 중용(重用)된 순우곤(淳于 )은 원래 해학(諧謔)과 변론의 뛰어난 세객(說客)이었다. 제나라 왕이 위(魏)나라를 치려고 하자 순우곤은 이렇게 진언했다.

"한자로(韓子盧)라는 매우 발빠른 명견(名犬)이 동곽준(東郭逡)이라는 썩 재빠른 토끼를 뒤쫓았사옵니다. 그들은 수십 리에 이르는 산기슭을 세 바퀴나 돈 다음 가파른 산꼭대기까지 다섯 번이나 올라갔다 내려오는 바람에 개도 토끼도 지쳐 쓰러져 죽고 말았나이다. 이 때 그것을 발견한 '전부(田父 : 농부)는 힘들이지 않고 횡재[田父之功]'을 하였나이다.

지금 제나라와 위나라는 오랫동안 대치하는 바람에 군사도 백성도 지치고 쇠약하여 사기가 말이 아니온데 서쪽의 진(秦)나라나 남쪽의 초(楚)나라가 이를 기화로 '전부지공'을 거두려 하지 않을지 그게 걱정이옵니다."

이 말을 듣자 왕은 위나라를 칠 생각을 깨끗이 버리고 오로지 부국강병(富國强兵)에 힘썼다.

[주] '之'

① 갈 지. 가다, 향하다. 예) '之東之西(지동지서)'-동으로 갔다 서로 갔다 함. 곧 마음을 질정(質定 : 갈피를 잡고 헤아려서 작정함)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한다는 뜻.

② …의. 주격 소유격을 나타내는 접속사. 예) '人之常情(인지상정)'-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보통 인정.

③ 이 지. 지시 대명사로 쓰임[是(시)와 같은 뜻]. 예) '論之(논지)'-이것을 따져서 말함.

세객 : 교묘하고 능란한 말솜씨로 각처를 유세(遊說)하고 다니는 사람. 제국(諸國)의 군주(君主)가 저마다 패자(覇者)를 지향하며 패도정치(覇道政治)를 펼쳤던 전국 시대(戰國時代)에는 책사(策士) 모사(謀士) 또는 종횡가(縱橫家) 출신의 세객이 많았음.

경원(敬遠)

敬:공경할 경.  遠:멀 멀리할 원.

[원말]경이원지(敬而遠之). [참조]자불어(子不語).

[출전]《論語》〈雍也篇(옹야편)〉

존경하되 멀리함. 공경하되 가까이하지 않음.

춘추 시대의 성인 공자(孔子)에게 어느 날, 조금 어리석은 번지(樊遲)라는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 지(知)란 무엇입니까?"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이 해야 할 도리를 다하고자 노력하고 '혼령(魂靈)이나 신(神)에 대해서는 존경하되 멀리한다면[敬 神而遠之]' 이것을 지(知)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논어(論語)》〈옹야편(雍也篇)〉에 실려 있는 글이다.  또 〈술이편(述而篇)〉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공자는 괴(怪) 난(亂) 신(神)을 말하지 않았다.

[子不語 怪力亂神(자불어 괴력란신)]

즉, 공자가 괴이(怪異) 폭력(暴力) 문란(紊亂) 귀신(鬼神)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괴'와 '신' 이하는 초월자(超越者)에게는 따를 수밖에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러한 태도야말로 지(知)인 것이다.'라고 확신하며….

[주] '존경하되 멀리한다.'는 이 '경원'이란 말이 오늘날에는 '꺼리어 피한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음.

계구우후(鷄口牛後)

鷄  :닭 계.  口:입 구.  牛:소 우.  後:뒤 후.

[원말] 영위계구 물위우후(寧爲 口勿爲牛後).

[출전]《史記》〈蘇秦列傳〉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쇠꼬리는 되지 말라는 뜻. 곧 큰 집단의 말석보다는 작은 집단의 우두머리가 낫다는 말.

전국시대 중엽, 동주(東周)의 도읍 낙양(洛陽)에 소진(蘇秦: ?∼B.C.317)이란 종횡가(縱橫家:모사)가 있었다. 그는 합종책(合縱策)으로 입신할 뜻을 품고, 당시 최강국인 진(秦)나라의 동진(東進) 정책에 전전긍긍(戰戰兢兢)하고 있는 한(韓) 위(魏) 조(趙) 연(燕) 제(齊) 초(楚)의 6국을 순방하던 중 한나라 선혜왕(宣惠王)을 알현하고 이렇게 말했다.

"전하, 한나라는 지세가 견고한데다 군사도 강병으로 알려져 있사옵니다. 그런데도 싸우지 아니하고 진나라를 섬긴다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옵니다. 게다가 진나라는 한 치의 땅도 남겨 놓지 않고 계속 국토의 할양을 요구할 것이옵니다. 하오니 전하, 차제에 6국이 남북, 즉 세로[縱]로 손을 잡는 합종책으로 진나라의 동진책을 막고 국토를 보존하시오소서. '차라리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寧爲鷄口]쇠꼬리는 되지 말라[勿爲牛後]'는 옛말도 있지 않사옵니까."

선혜왕은 소진의 합종설에 전적으로 찬동했다. 이런 식으로 6국의 군왕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소진은 마침내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임하는 대정치가가 되었다.

[주] 종횡가 : 전국 시대(戰國時代)에 제국(諸國)의 군주(君主)들을 찾아다니며 독자적인 정책을 유세(遊說)하여 그들 여러 나라를 종(縱) 횡(橫)으로 묶어서 경륜(經綸)하려던 외교가(外交家) 책사(策士) 모사(謀士)의 총칭. 합종책을 설(說)한 소진과, 소진이 피살된(B.C.317) 후 합종책을 깨기 위한 연횡책(蓮衡策)을 펴 성공한 장의(張儀)가 그 대표로 꼽힘.

계군일학(鷄群一鶴)

鷄  :닭 계. 群  :무리 군. 一:한 일. 鶴:학 학.

[원말]계군일학(鷄群一鶴)

[동의어]군계일학(群鷄一鶴). 계군고학( 群孤鶴).

[출전]《晉書》〈 紹傳〉

닭의 무리 속에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으로, 여러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뛰어난 한 사람이 섞여 있음의 비유.

위진(魏晉)시대, 완적(阮籍) 완함(阮咸) 혜강( 康) 산도(山濤) 왕융(王戎) 유령(劉伶) 상수(尙秀) 곧 죽림 칠현(竹林七賢)으로 불리는 일곱 명의 선비가 있었다. 이들은 종종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북동부에 있는 죽림에 모여 노장(老莊)의 허무 사상을 바탕으로 한 청담(淸談)을 즐겨 담론했다.

그런데 죽림 칠현 중 위나라 때 중산대부(中散大夫)로 있던 혜강이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처형당했다. 그때 혜강에게는 나이 열 살 밖에 안되는 아들 혜소( 紹:?∼304)가 있었다. 혜소가 성장하자 중신(重臣) 산도가 그를 무제[武帝:256∼290, 위나라를 멸하고 진나라를 세운 사마염(司馬炎)]에게 천거했다.

"폐하,《서경(書經)》의 〈강고편(康誥篇)〉에는 부자간의 죄는 서로 연좌(連坐)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나이다. 혜소가 비록 혜강의 자식이긴 하오나 총명함이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대부 극결( 缺)에게 결코 뒤지지 않사오니 그를 비서랑(비書郞)으로 기용하시오소서."

"경(卿)이 천거(薦擧)하는 사람이라면 승(丞)이라도 능히 감당할 것이오."

이리하여 혜소는 비서랑 보다 한 계급 위인 비서승에 임명되었다.

혜소가 입월하던 그 이튿날, 어떤 사람이 자못 감격하여 와융에게 말했다.

"어제 구름처럼 많이 모인 사람들 틈에 끼어서 입궐하는 혜소를 보았습니다만, 그 늠름한 모습은 마치 '닭의 무리 속에 우뚝 선 한 마리의 학[鷄群一鶴]'같았습니다."

그러자 왕융은 미소를 띠고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혜소의 아버지를 본 적이 없지만 그는 혜소보다 훨씬 더 늠름했다네."

계륵(鷄肋)

鷄:닭 계.  肋:갈빗대 륵.

[출전]《後漢書》〈楊修傳〉. 《晉書》〈劉伶傳〉

먹자니 먹을 것이 별로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닭갈비란 뜻.  곧 ① 쓸모는 별로 없으나 버리기는 아까운 사물의 비유.  ② 닭갈비처럼 몸이 몹시 허약함의 비유.

① 삼국 시대로 접어들기 1년 전(219)인 후한(後漢) 말의 일이다. 위왕(魏王) 조조(曹操)는 대군을 이끌고 한중(漢中)으로 원정을 떠났다. 익주[益州:사천성(四川省)]을 차지하고 한중으로 진출하여 한중왕을 일컫는 유비(劉備)를 치기 위해서였다. 유비의 군사는 제갈량(諸葛亮)의 계책에 따라 정면 대결을 피한 채 시종 보급로 차단에만 주력했다. 배가 고파 도망치는 군사가 속출하자 조조는 어느 날, 전군(全軍)에 이런 명령을 내렸다.

"계륵(鷄肋)!"

'계륵?' 모두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주부(主簿) 벼슬에 있는 양수(楊修)만은 서둘러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한 장수가 그 이유를 묻자 양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닭갈비는 먹자니 먹을 게 별로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전하께서는 한중 역시 그런 닭갈비 같은 땅으로 생각하고 철군(撤軍)을 결심하신 것이라오."

과연 조조는 며칠 후 한중으로부터 전군을 철수시키고 말았다.

[주] 한중 : 섬서성(陝西省)의 서남쪽을 흐르는 한강(漢江:양자강의 큰 지류) 북안의 험한 땅으로서 진(秦)나라를 멸한 유방이 항우로부터 분봉(分封)받아 한왕(漢王)을 일컫던 곳.

② 진(晉:西晉, 265∼316)나라 초기에 죽림 칠현 가운데 유령(劉伶)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유령이 술에 취하여 행인과 말다툼을 벌였다. 상대가 주먹을 치켜들고 달려들자 유령은 점잖게 말했다.

"보다시피 '닭갈비[鷄肋]'처럼 빈약한 몸이라서 그대의 주먹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소." 그러자 상대는 엉겁결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고 한다.

계명구도(鷄鳴拘盜)

鷄:닭 계.  鳴:울 명.  拘:개 구.  盜:도둑 도.

[출전]《史記》〈孟嘗君列傳〉

닭의 울음 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 흉내를 잘 내는 좀도둑이라는 뜻. 곧 ① 선비가 배워서는 안 될 천한 기능을 가진 사람. ② 천한 기능을 가진 사람도 때로는 쓸모가 있음의 비유.

전국 시대 중엽,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은 왕족으로서 재상을 지낸 정곽군(靖郭君)의 40여 자녀 중 서자로 태어났으나 정곽공은 자질이 뛰어난 그를 후계자로 삼았다. 이윽고 설(薛) 땅의 영주가 된 맹상군은 선정을 베푸는 한편 널리 인재를 모음으로써 천하에 명성을 떨쳤다. 수천 명에 이르는 그의 식객 중에는 문무지사(文武之士)는 물론 '구도'(拘盜:밤에 개가죽을 둘러쓰고 인가에 숨어들어 도둑질하는 좀도둑을 말함)에 능한 자와 닭 울음소리[鷄鳴]을 잘 내는 자까지 있었다.

이 무렵(B.C.298), 맹상군은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으로부터 재상 취임 요청을 받았다. 내키지 않았으나 나라를 위해 수락했다. 그는 곧 식객 중에서 엄선한 몇 사람만 데리고 진나라의 도읍 함양(咸陽)에 도착하여 소양왕을 알현하고 값비싼 호백구(狐白 :狐 )를 예물로 진상했다. 소양왕이 맹상군을 재상으로 기용하려 하자 중신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전하, 제나라의 왕족을 재상으로 중용 하심은 진나라를 위한 일이 아닌 줄로 아옵니다."

그래서 약속은 깨졌다. 소양왕은 맹상군을 그냥 돌려보낼 수도 없었다. 원한을 품고 복수를 꾀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은밀히 죽여 버리기로 했다. 이를 눈치 챈 맹상군은 궁리 끝에 소양왕의 총희(寵姬)에게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그녀는 엉뚱한 요구를 했다.

"내게도 진상한 것과 똑같은 호백구를 주시면 힘써 보지요."

당장 어디서 그 귀한 호백구를 구한단 말인가. 맹상군은 맥이 빠졌다. 이 사실을 안 '그도'가 그날 밤 궁중에 잠입해서 전날 진상한 그 호백구를 감쪽같이 훔쳐내어 총희에게 주었다. 소양왕은 총희의 간청에 못 이겨 맹상군의 귀국을 허락했다.

맹상군은 일행을 거느리고 서둘러 국경인 함곡관(函谷關)으로 향했다. 한편 소양왕은 맹상군을 놓아 준 것을 크게 후회하고 추격병을 급파했다. 한밤중에 함곡관에 닿은 맹상군 일행은 거기서 더 나아갈 수가 없었다. 첫닭이 울 때까지 관문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일행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계명'이 인가(人家)쪽으로 사라지자 첫닭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동네 닭들이 울기 시작했다. 잠이 덜 깬 병졸들이 눈을 비비며 관문을 열자 일행은 그 문을 나와 말[馬]에 채찍을 가하여 쏜살같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추격병이 관문에 닿은 것은 그 직후였다고 한다.

[주] 호백구 : 여우 겨드랑이의 흰 털가죽을 여러 장 모아 이어서 만든 갖옷. 귀족 고관 대작(高官大爵)만이 입을 수 있었던 데서 귀족의 상징 물이 되기도 했다고 함. 호구(狐 )라고도 일컬음.

고복격양(鼓腹擊壤)

鼓:북 북칠 고. 腹:배 복. 擊:칠 격. 壤:땅 양.

[준말]격양(擊壤).

[동의어]격양지가(擊壤之歌), 격양가(擊壤歌).

[출전]《十八史略》〈帝堯篇〉, 《樂府詩集》〈擊壤歌〉

배를 두드리고 발을 구르며 흥겨워한다는 뜻으로, 태평 성대를 형용하여 이르는 말.

먼 옛날 중국에 성천자(聖天子)로 이름난 요(堯) 임금이 선정을 베풀어 온 지도 어느덧 50년이 지났다.

하루하루를 태평하게 지내던 어느 날, 요 임금은 정말로 세상이 잘 다스려지고 있는지 궁금하여 미복(微服)을 하고 민정(民情)을 살펴보러 나갔다. 어느 네거리에 이르자 아이들이 손을 맞잡고 요 임금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가 이처럼 잘 살아가는 것은[立我烝民(입아증민)]

모두가 임금님의 지극한 덕이네[莫匪爾極(막비이극)]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지만[不識不知(불식부지)]

임금님이 정하신 대로 살아가네[順帝之則(순제지칙)]

마음이 흐뭇해진 요 임금은 어느새 마을 끝까지 걸어갔다. 그 곳에는 하얀 한 노인이 손으로 '배를 두드리고[鼓腹]' 발로 '땅을 구르며[擊壤]'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네[日出而作 日入而息(일출이작 일입이식)]

밭을 갈아먹고 우물을 파서 마시니[耕田而食 鑿井而飮(경전이식 착정이음)]

임금님의 힘이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帝力何有于我哉(제력하유우아제)]

요 임금은 정말 기뻤다. 백성들이 아무 불만없이 배를 두드리고 발을 구르며 흥겨워하고, 정치의 힘 따위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정치가 잘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요 임금은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주] 격양 : 나무로 만든 신 모양의 '양(壤)'을 땅에 세워 놓고 떨어진 곳에서 다른 '양'을 던져서[擊] 맞추는 놀이라는 설과 '흙으로 만든 악기를 타는 일'이라는 설도 있음.

고침안면(高枕安眠)

高:높을 고. 枕:베개 침. 安:편안할 안. 眠:잘 면.

[동의어]고침이와(高枕而臥).

[출전]《戰國策》〈魏策 哀王〉, 《史記》〈張儀列傳〉

베개를 높이 하여 편히 잘 잔다는 뜻. 곧 ① 근심 없이 편히 잘 잠. ② 안심할 수 있는 상태의 비유.

전국 시대,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종횡가(縱橫家)로서 유명한데 소진은 합종(合縱), 장의는 연형(連衡)을 주장했다. 합종이란 진(秦)나라 이외의 여섯 나라, 곧 한(韓) 위(魏) 제(齊) 초(楚)가 동맹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는 것이며, 연횡이란 여섯 나라가 각각 진나라와 손잡는 것이지만 실은 진나라에 복종하는 것이었다.

소진보다 악랄했던 장의는 진나라의 무력을 배경으로 이웃 나라를 압박했다. 진나라 혜문왕(惠文王) 10년(B.C. 328)에는 장의 자신이 진나라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를 침략했다. 그 후 위나라의 재상이 된 장의는 진나라를 위해 위나라 애왕(哀王)에게 합종을 탈퇴하고 연횡에 가담할 것을 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자 진나라는 본보기로 한나라를 공격하고 8만에 이르는 군사를 죽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애왕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장의는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애왕에게 말했다.

"전하, 만약 진나라를 섬기게 되면 초나라나 한나라가 쳐들어오는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초나라와 한나라로부터의 화만 없다면 전하께서는 '베개를 높이 하여 편히 잘 주무실 수 있사옵고[高枕安眠]' 나라도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이옵니다."

애왕은 결국 진나라와 화목하고 합종을 탈퇴했다. 장의는 이 일을 시작으로 나머지 다섯 나라를 차례로 방문, 설득하여 마침내 주(周)나라 난왕( 王) 4년(B.C. 311)에 연횡을 성립시켰다.

곡학아세(曲學阿世)

曲:굽을 곡. 學:학문 학. 阿:아첨할 아. 世:인간 세대 세.

[유사어] 어용학자(御用學者).

[출전]《史記》〈儒林傳〉

학문을 굽히어 세속(世俗)에 아첨한다는 뜻으로, 정도(正道)를 벗어난 학문으로 세상 사람에게 아첨함을 이르는 말.

한(漢)나라 6대 황제인 경제(景帝:B.C. 157∼141)는 즉위하자 천하에 널리 어진 선비를 찾다가 산동(山東)에 사는 원고생(轅固生)이라는 시인을 등용하기로 했다.

그는 당시 90세의 고령이었으나 직언을 잘하는 대쪽같은 선비로도 유명했다. 그래서 사이비 학자들은 원고생을 중상비방(中傷誹謗)하는 상소를 올려 그의 등용을 극력 반대했으나 경제는 끝내 듣지 않았다.

당시 원고생과 함께 등용된 소장(小壯) 학자가 있었는데, 그 역시 산동 사람으로 이름을 공손홍(公孫弘)이라고 했다. 공손홍은 원고생을 늙은이라고 깔보고 무시했지만 원고생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공손홍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학문의 정도(正道)가 어지러워져서 속설(俗說)이 유행하고 있네. 이대로 내버려두면 유서 깊은 학문의 전통은 결국 사설(邪說)로 인해 그 본연의 모습을 잃고 말 것일세. 자네는 다행히 젊은데다가 학문을 좋아하는 선비란 말을 들었네. 그러니 부디 올바른 학문을 열심히 닦아서 세상에 널리 전파해 주기 바라네. 결코 자신이 믿는 '학설을 굽히어[曲學]'이 '세상 속물들에게 아첨하는 일[阿世]'이 있어서는 안 되네."

원고생의 말이 끝나자 공손홍은 몸둘 바를 몰랐다. 절조를 굽히지 않는 고매한 인격과 학식이 높은 원고생과 같은 눈앞의 태산북두(泰山北斗)를 보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공손홍은 당장 지난 날의 무례를 사과하고 원고생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공중누각(空中樓閣)

空:빌 공. 中:가운데 중. 樓:다랄 루. 閣:누각 각.

[유사어] 과대망상(誇大妄想).

[출전]《夢溪筆談》

공중에 떠 있는 누각[蜃氣樓(신기루)]이란 뜻. 곧 ① 내용이 없는 문장이나 쓸데없는 의론(議論). ② 진실성이나 현실성이 없는 일. ③ 허무하게 사라지는 근거 없는 가공의 사물.

송(宋)나라의 학자 심괄[沈括:호는 몽계옹(夢溪翁)]이 저술한 일종의 박물지(博物誌)인 《몽계필담(夢溪筆談)》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등주(登州)는 사면이 바다에 임하여 봄과 여름철에는 저 멀리 하늘가에 성시누대(城市樓臺)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고장 사람들은 이것을 해시(海市)라고 이른다.

[登州四面臨海 春夏時 遙見空際 城市樓臺之狀 土人謂之海市(동주사면임해 춘하시 요견공제 성시루대지상 토인위지해시)]

훗날 청(淸)나라의 학자 적호(翟灝)는 그의 저서《통속편(通俗篇)》에서 심괄이 이 글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지금 언행이 허구에 찬 사람을 일컬어 '공중누각'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일을 인용한 것이다.

[今稱言行虛構者 曰空中樓閣 用此事(금칭언행허구자 왈공중누각 용차사)]

이처럼 '공중누각'이란 말은 이미 청나라 때부터 쓰여 왔으며, 심괄의 글 가운데 '해시'라는 것은 '신기루'를 가리키는 말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過:지날 과.  猶:같을 유.  不:아니 불.  及:미칠 급.

[참조] 조장(助長).

[출전]《論語》〈先進扁〉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뜻.

어느 날 제자인 자공(子貢:B.C. 520∼456)이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 자장(子張)과 자하(子夏) 중 어느 쪽이 더 현명합니까?"

공자는 두 제자를 비교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자장은 아무래도 매사에 지나친 면이 있고, 자하는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다."

"그렇다면 자장이 낫겠군요?"

자공이 다시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過猶不及]."

공자는 중용[中庸: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중정(中正)함]의 도(道)를 말했던 것이다.

[주] 자공 : 성은 단목(端木), 이름은 사(賜). 위(衛)나라 출신으로 공문십철(孔門十哲)의 한 사람. 정치에 뛰어난 후에 노(魯)나라 위(衛)나라의 재상을 역임함. 제자 중에서 제일 부자였으므로, 경제적으로 공자를 도왔다고 함.

자하 : 성은 복(卜), 이름은 상(商). 공문 십철의 한 사람으로, 시문(詩文)에 뛰어난 후에 위(魏)나라 문후(文侯)의 스승이 됨. 공문 중에서 후세에까지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제자로, 공자가 산정(刪定)한 《시경(詩經)》《역경(易經)》《춘추(春秋)》를 전했다고 함.

과전이하(瓜田李下)

瓜:오이 과.  田:밭 전.  李:오얏 리.  下:아래 하.

[원말]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동의어] 과전리 이하관(瓜田履 李下冠), 이하관 과전리.

[출전] 《列女傳》, 《文選》〈樂府篇〉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뜻으로, 의심받을 짓은 처음부터 하지 말라는 말.

전국 시대인 주(周)나라 열왕(烈王) 6년(B.C. 370), 제(齊)나라 위왕(威王) 때의 일이다. 위왕이 즉위한지 9년이나 되었지만 간신 주파호(周破湖)가 국정을 제멋대로 휘둘러 왔던 탓에 나라 꼴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러웠다. 그래서 이를 보다못한 후궁 우희(虞姬)가 위왕에게 아뢰었다.

"전하, 주파호는 속이 검은 사람이오니 그를 내치시고 북곽(北郭)선생과 같은 어진 선비를 등용하시오소서."

이 사실을 알게 된 주파호는 우희와 북곽 선생은 전부터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고 우희를 모함하기 시작했다. 위왕은 마침내 우희를 옥에 가두고 관원에게 철저히 조사하라고 명했으나 이미 주파호에게 매수된 관원은 억지로 죄를 꾸며내려고 했다. 그러나 위왕은 그 조사 방법이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위왕이 우희를 불러 직접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전하, 신첩(臣妾)은 이제까지 한마음으로 전하를 모신 지 10년이 되었사오나 오늘날 불행히도 간신들의 모함에 빠졌나이다. 신첩의 결백은 청천 백일(靑天白日)과 같사옵니다. 만약 신첩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瓜田不納履]'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李下不整冠]'고 했듯이 남에게 의심받을 일을 피하지 못했다는 점과 신첩이 옥애 갇혀 있는데도 누구 하나 변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신첩의 부덕한 점이옵니다. 이제 신첩에게 죽음을 내리신다 해도 더 이상 변명치 않겠사오나 주파호와 같은 간신만은 내쳐 주시오소서."

위왕은 우희의 충심어린 호소를 듣고 이제까지의 악몽에서 깨어났다. 그러자 위왕은 당장 주파호 일당을 삶아 죽이고 어지러운 나라를 바로잡았다.

관포지교(管鮑之交)

管:대롱 관.  鮑:절인 고기 포.  之:갈 지(   의).  交:사귈 교.

[동의어] 관포교(管鮑交). [유사어] 문경지교(刎頸之交), 금란지교(金蘭之交), 단금지교(斷金之交), 수어지교(水魚之交), 교칠지교(膠漆之交), 막역지우(莫逆之友). [반의어] 시도지교(市道之交). [출전]《史記》〈管仲列傳〉, 《列子》〈力命篇〉

관중(管仲)과 포숙아(鮑淑牙) 사이와 같은 사귐이란 뜻으로, 시세(時勢)를 떠나 친구를 위하는 두터운 우정을 일컫는 말.

춘추 시대 초엽, 제(濟)나라에 관중(?∼B.C. 645)과 포숙아라는 두 관리가 있었다. 이들은 죽마 고우(竹馬故友)로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관중이 공자(公子) 규(糾)의 측근(보좌관)으로, 포숙아가 규의 이복 동생인 소백(小白)의 측근으로 있을 때 공자의 아버지 양공(襄公)이 사촌 동생 공손무지(公孫無知)에게 시해되자(B.C. 686) 관중과 포숙아는 각각 공자와 함께 이웃 노(魯)나라와 거( )나라로 망명했다. 이듬해 공손무지가 살해되자 두 공자는 군위(君位)를 다투어 귀국을 서둘렀고 관중과 포숙아는 본의 아니게 정적이 되었다. 관중은 한때 소백을 암살하려 했으나 그가 먼저 귀국하여 환공(桓公:B.C. 685∼643)이라 일컫고 노나라에 공자 규의 처형과 아울러 관중의 압송(押送)을 요구했다. 환공이 압송된 관중을 죽이려 하자 포숙아는 이렇게 진언했다. "전하, 제 한 나라만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신(臣)으로도 충분할 것이옵니다. 하오나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시려면 관중을 기용하시오소서." 도량이 넓고 식견이 높은 환공은 신뢰하는 포숙아의 진언을 받아들여 관중을 대부(大夫)로 중용하고 정사를 맡겼다. 이윽고 재상이 된 관중은 과연 대정치가다운 수완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안다[倉 實則 知禮節(창름실즉 지예절)]' '의식이 풍족해야 영욕을 안다[衣食足則 知榮辱(의식족즉 지영욕)]'고 한 관중의 유명한 정치철학이 말해 주듯, 그는 국민 경제의 안정에 입각한 덕본주의(德本主義)의 선정을 베풀어 마침내 환공으로 하여금 춘추(春秋)의 첫 패자로 군림케 하였다. 이같은 정치적인 성공은 환공의 관용과 관중의 재능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이긴 하지만 그 출발점은 역시 관중에 대한 포숙아의 변함없는 우정에 있었다. 그래서 관중은 훗날 포숙아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나는 젊어서 포숙아와 장사를 할 때 늘 이익금을 내가 더 많이 차지했었으나 그는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를 위해 한 사업이 실패하여 그를 궁지에 빠뜨린 일이 있었지만 나를 용렬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일에는 성패(成敗)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 벼슬길에 나갔다가는 물러나곤 했었지만 나를 무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게 운이 따르고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나는 싸움터에서도 도망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나를 겁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게 노모가 계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를 낳아 준 분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이다 [生我者父母 知我者鮑淑牙].'"

괄목상대(刮目相對)

刮:비빌 괄.  目:눈 목.  相:서로 상.  對:마주 볼 대할 대.

[출전]《三國志》〈吳志 呂蒙傳注〉

눈을 비비고 본다는 뜻. 곧 남의 학식이나 재주가 전에 비하여 딴 사람으로 볼 만큼 부쩍 는 것을 일컫는 말.

삼국시대(三國時代) 초엽, 오왕(吳王) 손권(孫權:182∼252)의 신하 장수에 여몽(呂蒙)이 있었다. 그는 무식한 사람이었으나 전공을 쌓아 장군이 되었다. 어느 날 여몽은 손권으로부터 공부하라는 충고를 받았다. 그래서 그는 전지(戰地)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手不釋卷(수불석권)]' 학문에 정진했다. 그 후 중신(重臣) 가운데 가장 유식한 재상 노숙(魯肅)이 전지 시찰 길에 오랜 친구인 여몽을 만났다. 그런데 노숙은 대화를 나누다가 여몽이 너무나 박식해진 데 그만 놀라고 말았다.

"아니, 여보게. 언제 그렇게 공부했나? 자네는 이제 '오나라에 있을 때의 여몽이 아닐세[非吳下阿蒙]'그려."

그러자 여몽은 이렇게 대꾸했다.

"무릇 선비란 헤어진지 사흘이 지나서 다시 만났을 땐 '눈을 비비고 대면할[刮目相對]' 정도로 달라져야 하는 법이라네."

[주] 여몽 : 재상 노숙이 병사(病死)하자 여몽은 그 뒤를 이어 오왕 손권을 보필, 국세(國勢)를 신장하는데 힘썼음. 여몽은 촉(蜀) 땅을 차지하면 형주[荊州:호남성(湖南省)]를 오나라에 돌려주겠다던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유비(劉備)의 촉군(蜀軍)을 치기 위해 손권에게 은밀히 위(魏)나라의 조조(曺操)와 화해 제휴할 것을 진언, 성사시키고 기회를 노렸음. 그러던 중 형주를 관장하고 있던 촉나라의 명장 관우(關羽)가 중원(中原)으로 출병하자 여몽은 이 때를 놓이지 않고 출격하여 관우의 여러 성(城)을 하나하나 공략(攻略)한 끝에 마침내 관우까지 사로잡는 큰 공을 세움으로써 오나라의 백성들로부터 명장으로 추앙을 받았음.

[출처]마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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