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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神飛翔刀】しんや
작성
02.09.08 21:54
조회
5,010

각궁 角弓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 활인 각궁이다.

한국의 활은, 쏠 수 있도록  시위를 걸어놓은 것을  '얹은활' 이라고 하고,  풀어놓은 것을 '부린 활' 이라고 한다.

부려놓으면 한국의 활은  동그란 모양이 된다. 활의 양쪽 끝이 거의 붙을락말락 할 만큼 휜다.  

이렇게 구부러진  활을 반대편으로 휘어서 시위를 거는 것이다.  이것은 탄력을 많이  내기 위한 것이다.  

한국의 활을 만드는 데는 모두 일곱 가지 재료가 들어간다.  대나무, 뽕나무, 참나무, 물소뿔, 소힘줄, 민어부레풀, 벚나무껍질이다.  

가운데에는 나무가 들어가고, 안쪽에는 얇게 깎은 물소뿔을 대고,  바깥쪽에는 소의 힘줄을 대서 탄력을 보강한다.

가운데에 들어가는  나무는 다시 세 조각으로 이루어졌는데, 손으로 쥐는 가운데 부분은  대나무이고 시위를 거는 양쪽은 뽕나무를 쓴다.  그리고 특별히 손  으로 잡는 줌통 부분에는 참나무를 대서 보강한다.  이 모든 것을 붙이는 풀은 민어라고 하는 바닷고기의 부레를 끓여서  만든 풀이다.

갑주 甲胄

전투용구로 이용되는 갑옷과 투구.

갑(甲)은 갑옷, 주(胄)는 투구를 이른다. ‘갑옷’은 전쟁에서 화살 ·창검을 막기 위해 쇠나 가죽의 비늘을 붙여서 만든 옷이며, ‘투구’는 적의 무기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머리에 쓰던 쇠모자이다. 갑주는 전투시에 전사(戰士)들이 몸을 지키기 위하여 착용하던 무구(武具)인데, 미개인도 야수의 가죽으로 몸을 감싸 입고 적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지켰다.

한국에서 갑주의 사용은 삼국시대로 들어서면서부터였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는 기마(騎馬)의 무장(武將)은 괘갑(붐甲)을 착용하였는데, 양식은 중국 북위(北魏)의 토우(土偶:흙으로 만든 인형)나 천무상(天武像)의 것과 비슷하다.

걷고 있는 모습의 병졸은 짧은 갑옷에 허리받이를 두르고 맨손에 칼과 방패를 쥐고 있다.

투구는 주발을 엎어 놓은 형상인데, 앞에는 차양이 있고 후두부(後頭部)는 목의 둘레를 싸게 되어 있으며,

정수리 부분에 술같이 생긴 장식 또는 깃털 모양의 장식이 달려 있다. 남한에서도 이와 비슷한 괘갑(붐甲)과 단갑(短甲)이 사용된 듯한데, 고대 신라 고분인 경주 금관총(金冠塚)에서는 쇠에다 구리를 도금한 작은 갑옷미늘과 금동판(金銅板)의 작은 갑옷미늘이 출토되었고, 대구 달성고분(達城古墳)에서는 금동제의 팔꿈치받이가 출토되었다. 어느 것이나 중국 남북조의 형식을 답습한 것이라 생각된다.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 중기까지 중국 당송(唐宋)의 갑제(甲制)를 본받은 괘갑이나 포백갑(布帛甲)이 쓰였던 사실은, 당시 고분의 석조상(石彫像)이나 불교미술이 그것을 보여 주고 있다.

13세기 이후는 원(元) ·명(明) ·청(淸)의 갑제에 의한 면오갑(綿虜甲:솜두루마기의 갑옷)을 입었고, 투구는 정수리 부분이 뾰족하고 주발 모양을 한 첨두철발형(尖頭鐵鉢型)의 몽골식 쇠투구 ·가죽투구가 성행하여, 이것이 조선 후기까지 이어졌다.

기록을 보면, 《양서(梁書)》에 고구려에는 개갑(鎧甲)이 있어 전투를 연습하였다 하였고, 《당서(唐書)》에는 당 태종이 명광개(明光鎧) 1만벌을 얻었다고 씌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 ·총융청(摠戎廳)에 여러 종류의 갑옷이 있었는데, 다홍대단도금동엽(多紅大緞塗金銅葉)갑주 ·모단피(冒緞皮)갑주 ·두석린(豆錫鱗)갑주 ·화단피(禾緞皮)갑주 ·남대단철(藍大緞鐵)갑주 ·피출(皮出)갑주 ·철갑주 ·환(環)갑주 ·다홍성성전도금동엽(多紅猩猩氈塗金銅葉)갑주 ·각색 목면피(木綿皮)갑주 ·각색 장단피(沫緞皮)갑주 ·백단피(白緞皮)갑주 등으로 철제 ·피혁제 ·포백제 등에 다양한 무늬를 새겨 넣고 여러 비단으로 겉을 꾸몄다.

강노 强弩

한 번에 화살 여러 개를 쏠 수 있는 위력이 센 활.

신라시대에 명노사(名弩師) 구진산(仇珍山)이 만들었으며, 1104년(고려 숙종 9) 윤관(尹瓘)이 별무반을 만들 때 이를 썼다고 한다. 노의 종류는 발로 잡아당기는 것, 활과 같이 만든 것, 한 번에 여러 개의 화살이 나가는것 등이 있다..  

검 劍 (sword)

찌르거나 치는 기능을 가진 무기이다. 처음에는 돌로 만들었으며, 금속시대에는 무기의 주류를 이루었다. 유럽에서는 16세기에 결투용 칼(rapier)이 보급될 때까지 폭이 넓은 것이 사용되었다. 실용적인 면을 떠나 의식용 ·신앙용으로도 쓰였다.

고려전 高麗箭

고려시대에 만들었던 짧고 작은 화살을 중국에서 부르던 말

《지봉유설(芝峰類說)》에 의하면 기술이 뛰어나 이 화살은 1,000보(步) 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갑옷 ·투구를 뚫을 수 있을 만큼 빠르고 촉이 날카로웠다고 한다. 중국의 창(槍), 일본의 조총과 함께 으뜸가는...

고리토스 (Gorytos)

흑해 북안의 남(南)러시아 지방에서 BC 7∼BC 3세기경에 걸쳐 번영하였던 유목 ·기마민족인 스키타이족이 사용한 활과 화살을 넣는 상자.

기마 때에 필요한 활과 화살을 넣는 것으로, 보통 활을 넣는 가죽자루[皮袋]와 화살을 넣는 통이 결합된 것이다. 남(南)러시아의 크루오바나첼톰리크 등에서 출토된 항아리의 부조회화(浮彫繪畵)를 보면 이것을 허리에 차고 다녔음을 알 수 있다. 또 켈츠의 묘에서 나온 목제의 모형을 보면 활을 넣는 주요 부분에 화살을 넣는 부분을 덧붙인 것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이 가죽으로 만들어졌고 요소에 장식으로 쇠장식을 달았다.

중국에는 고대 유품은 없지만 활과 화살을 함께 넣는 가죽자루를 건(룟)이라고 하였으며, 근세(近世)까지 사용되었다. 전국(戰國)시대에 북방 기마민족과 접촉하였을 때에 전수되었으며 고리토스와 동일 계통의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도 같은 형식의 것이 있어 근세까지 의장용으로 사용되었다.

곤봉 棍棒

타격하여 사람을 살상하는 막대 모양의 무기.

가장 원시적인 무기로, 각지에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특히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에서 발달하였다. 이것들 중에는 돌을 깎아서 만든 고리나 十자 모양을 머리 부분에 끼워 무게를 더 한 것, 단단한 재목을 깎아서 날카로운 모서리나 날을 세운 것, 복잡하게 조각을 한 것, 돌날이나 생선 이빨을 끼운 것, 배 젓는 노의 모양을 본뜬 무도용 지팡이나 금속제 칼을 모방한 것 등도 보이며 또 무기로서의 기능을 떠나 추장 권위의 상징으로 쓰이는 것도 적지 않다.

  

귀갑차 龜甲車

임진왜란 때 왜군이 성(城)을 공격할 때 사용하던 무기.

관(棺) 모양으로 만든 큰 궤 속에 돌 등 무거운 것을 채우고, 잘 부서지지 않게 생우피(生牛皮)로 여러 겹을 싸서 사륜거(四輪車)에 얹은 것이다. 갑주(甲胄)를 입은 무사가 이것을 끌고 성을 공격하였다.

공성무기 : 성을 공격할때 사용되는 기구들

  

          

공성무기 : 성을 공격할때 사용되는 기구들

그리스의 불 (Greek fire)[참고]

로마인의 화약이라고도 하였다. 황 ·주석(酒石) ·수지(樹脂) ·암염(岩鹽) ·경유(輕油) ·정제유(精製油)를 혼합한 반액체상태의 것이라 하였으나, 제조기술의 보안상태가 철저하였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정확한 성분은 알 수 없다. 이것을 항아리에 담아 날려보내기도 하고 호스 모양의 관(管)을 이용해서 적의 함선 등 목표물에 발사하였으며, 물로도 끌 수 없어 특히 해전에서 효과가 있었다.

678년 시리아의 기술자 카리코니스가 발명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이미 673년 사라센함대가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였을 때 이를 사용하여 무찌른 기록이 있어, 이 무렵 아랍인의 지배를 피해 이주해온 그리스 ·시리아 난민이 발명하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 화기는 673년 이후 8세기 전반에 걸쳐 이슬람함대의 콘스탄티노플 공격이 있을 때마다 그 위력을 크게 발휘하여 숱한 적과의 싸움에서 비잔틴제국을 위기에서 구하여 주었다. 이 화기는 14세기 전반 화약의 실용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비잔틴제국만이 보유한 비밀무기였다.

극 戟

과(戈)와 함께 구병(句兵)이라 하는 중국 고대의 무기

자루 끝에 날카로운 날로 된 창 끝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에 보면, 극에는 반드시 자(刺:矛頭)가 있다고 기술하였으며, 허난성[河南省] 쉰현[濬縣] ·후이현[輝縣]에 있는 서주(西周)에서 전국시대에 걸친 묘군(墓群)에서 과와 자가 결합된 형식의 무기가 발견되어 이것이 극의 종류라고 인정되었다. 전국시대에 가장 많이 사용되었으며, 처음에는 청동제(靑銅製)였으나 한(漢)나라 이후 철제의 것이 나타났다.

한국의 극은 끝이 세 갈래로 갈라진 긴 창으로, 6자 정도의 나무 자루 끝에 3개의 칼날(6치의 刺, 6치의 胡, 7치 반의 援)이 달려 있다. 평양 근방의 낙랑고분(樂浪古墳)에서는 한나라 때 것으로 보이는 철극(鐵戟)이 출토되었다. 평남 대동군 용악면(龍岳面)에서 출토된 철극도 이와 유사한 것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기창 旗槍

조선시대에 노란빛 ·붉은빛의 작은 기를 단 창.

단창(短槍)이라고도 한다. 창날 9치, 자루 길이 9자이며, 무기로도 사용되었다. 창술도 18기 등 여러 가지가 있었으며, 선조 이후 수년에 한 번 각 군문의 무사들에게 보였던 관무재(觀武才) 초시(初試)의 시험과목이었다.

화살 끝에 붙이는 도구  :   더자세히는[클릭]

나무 ·대나무 또는 뿔로 만들며, 장원형(長圓形)으로 속을 비게 하여 외부에 구멍을 뚫어서, 화살을 쏘면 구멍이 바람을 스치며 소리를 내는데, 구멍의 수는 4개 또는 8개로 되어 있다.

****    보         충     ****

갑주의 종류(서양, 일본, 중국의 갑주)

서양의 갑주

서양에서는 갑주가 발달하였으며, 시대에 따라 여러 가지로 변화하였다. 편의상 고대 ·중세 ·근세 이후로 나누어서 각시대의 전형적인 갑주에 대하여 알아본다.

⑴ 고대:고대의 갑주는 그리스에서나 로마에서나 다같이, 도보전(徒步戰)에 알맞도록 경쾌하게 만들어졌으며, 손발은 노출된 채 원형 ·사각형의 방패로 방호하였다. 로리카(lorica)라고 하는 로마시대의 갑주가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은 흉갑(胸甲)과 배갑(背甲)을 주체로 한 것으로, 가슴부분의 겉면에 부조(浮彫)를 새기고, 어깨와 허리에는 가죽 또는 금속의 짧은 조각들을 이어서 만든 어깨받이와 허리받이를 붙였다. 갑옷 위에는 파르다맨탐 또는 사굼이라는 화려한 망토를 둘러입었다. 투구는 반원구형의 주발 모양인데, 차양이 달려 있고, 정수리에는 초승달 모양 또는 부채 모양의 크레스트(crest)가 붙어 있는 외에 새의 깃털 등의 장식도 달았다. 신은 가죽으로 만든 반장화 또는 샌들을 신었다

⑵ 중세:갑주는 신체의 완전 방호를 위하여 중장(重裝)으로 변하였다. 전성기에는 전신을 강철판으로 둘러싸듯 한 것이 만들어졌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갑주로서는 메일(mail:쇠사슬을 엮어 만든 갑옷)과 플레이트아머(plate armour:강철만을 잇대어 만든 갑옷)를 들 수 있다. 메일은 10세기 이후부터 성행하였는데, 한 벌에 몇만 개의 쇠고리를 이어 엮어서 만들었으며, 얼굴을 제외한 몸 전체를 완전히 둘러싸게 되어 있었다. 갑옷 위에는 서코트라고 이르는 겉옷을 둘러입고, 가슴부분에 문장 등을 표시하였다. 투구는 원추형이나 만두 모양의 것으로 얼굴 전체를 완전히 둘러쌀 수 있도록 되었으며, 눈과 코 부분에만 조그만 구멍을 뚫어 놓은 절구형 투구도 있었다. 플레이트 아머는 앞서 말한 메일의 주요 부분이 점차 강철판으로 바뀌어서 15세기경에 완성된 갑주이다. 흉갑(胸甲) ·배갑(背甲) ·견갑(肩甲) ·완갑(腕甲) ·각갑(脚甲) 등의 각부의 강철판을 서로 경첩 ·돌쩌귀 등으로 이어 맞추어서 몸 전체를 완전히 둘러쌀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형태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세부적으로는 상당한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몸의 윤곽에 맞추어서 만들었으며 어깨 부분은 둥글게 부풀어오른 반면 허리 부분은 잘록하게 되고, 가슴 부분은 불룩하게 된 것이 있는가 하면 중심선이 능선으로 된 것도 있었다. 장갑, 즉 곤릿(gauntlet)은 손가락 없는 벙어리형과 손가락이 있는 형이 있었는데, 어느 것이나 대개 나팔 모양의 커프스(cuffs:소맷부리)가 달려 있었고, 손가락 부분에는 많은 금속편을 연결하였거나 또는 가죽장갑에 덧붙여 만들었다.

즉 살러렛(solleret)은 조붓하고 얇은 강철판을 리벳으로 연결하여 구부러지게 하여서 각갑(脚甲)의 끝에 이어 맞추게 된 것이 보통이었다. 투구는 여러 가지 종류 ·형태 ·명칭의 것이 있었으나, 속이 깊은 냄비나 깊은 주발을 거꾸로 한 모양의 샐릿(sallet)과, 정상부가 둥글고 코끝이 돌출한 아밋(armet)이 잘 알려져 있다. 아밋은 서양 투구의 대표라고 할 만큼 널리 이용되었던 것으로, 안면부분에는 밖을 볼 수 있게 터놓은 좁은 틈과, 호흡용의 작은 구멍이 많이 뚫려 있는 바이저(visor)라는 마스크형의 덮개가 있는데, 필요없을 때는 위로 젖혀 올렸다.

⑶ 근세 이후:총포 화약과 집단전술의 발달은 갑주의 형태를 크게 변화시켰다. 한편으로 총탄의 위력에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두껍고 견고한 흉갑(胸甲)이 요구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중장(重裝)의 갑주는 실용적 가치가 적다는 것이 판명되어 경장화(輕裝化)하게 되었다. 또한, 주로 의식용의 장식적인 갑주가 왕후(王侯) ·무장(武將)의 예장(禮裝)으로 이용되었다.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에 걸친 흉갑기병(胸甲騎兵)이나 용기병(龍騎兵)의 갑주나, 오늘날 유럽 각국의 친위대 ·의장대의 예장용 갑주는 허리까지의 짧은 흉갑과 배갑으로 되어 있고, 고대 로마시대의 것과 비슷한 투구를 쓰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서양에서는 갑주가 발달하였으며, 시대에 따라 여러 가지로 변화하였다. 편의상 고대 ·중세 ·근세 이후로 나누어서 각시대의 전형적인 갑주에 대하여 알아본다. ⑴ 고대:고대의 갑주는 그리스에서나 로마에서나...  

일본의 갑주

고대에 일본의 갑주는 주로 보병전이었기 때문에 보행에 편리하고 화살 ·창검에 견딜 만한 대형철판을 이어 맞추어 동체(胴體) 전후를 둘러싼 단갑(短甲)이 사용되었으나, 중앙아시아계 기마사전(騎馬射戰)의 영향을 받아, 기마에 의한 싸움이 활발해짐에 따라, 기사(騎射)에 편리한 미늘인 소철판을 옆으로 연결하고, 죽 잇대어 상하로 연접시켜서 등체의 앞뒤에서 무릎 밑까지 완전히 덮어 싼 괘갑(붐甲)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것은 대륙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해진 양식이었다.

그 후 무사계급의 등장으로 갑주의 구조가 일변하여 실용과 장식을 겸한 양식이 형성되고, 기병용으로는 대형의 부속무구를 갖춘 대개(大鎧)라는 중장갑주(重裝甲胄)를 착용하였으나, 보병전이 발달하자 무겁고 큰 대개는 의식용(儀式用)이 되고, 흉복갑(胸腹甲)에 소매와 무릎을 가리는 정도의 간편한 복권식철갑(腹捲式鐵甲)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나 총포와 화약의 전래로 인해 갑주의 실용적 가치가 상실되고 말았다.

중국의 갑주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자료는 은(殷)의 청동투구이다. 은의 갑옷은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은나라 때는 차전(車戰)을 주로 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방패만으로도 충분하였을지 모른다. 갑주의 착용이 성행된 것은 주(周)나라 시대에 들어오면서부터이다.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의 함인(函人:옛날 갑옷과 투구를 만를던 사람)의 항(項)에 '함인(函人)은 갑옷을 만든다. 서갑(犀甲)은 7속(屬), 시갑(串甲)은 6속, 합갑(合甲)은 5속…'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 무렵에 무소[犀]의 가죽, 외뿔소[串牛]의 가죽 등으로 갑옷을 만들었다. 속(屬)이란 작은 갑옷미늘을 말하는데, 이 작은 직사각형의 갑옷미늘에 구멍을 뚫어 꿰매어서 갑옷을 만들기 때문에 질긴 가죽일수록 튼튼하다.

철(鐵)의 사용이 불충분한 시대에는 가죽으로 갑옷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 고기록(古記錄)은 늦어도 주대(周代) 말기(BC 3세기) 이전의 것임을 알 수 있다. 진(秦)·한(漢) 시대가 되면서 갑옷의 미늘을 쇠로 만들었으며, 후한(後漢)시대에는 몸통 부분과 팔꿈치·목을 가리는 부분까지 쇠미늘로 만들어 입었다.

갑주의 형식은 시대에 따라 다소 변화하였다. 양팔에 붙이기 쉽도록 쇠사슬로 연결하여 꿰맨 갑옷도 만들었고, 삼국시대에는 등받이와 가슴받이의 두 쪽으로 만들어서 어깨 부분에서 매어 맞추게 한 갑옷으로 변하였는데, 이것은 남북조시대에 유행하였다. 갑옷은 미늘을 잇대어 연결한 것이었으나, 그 외면을 직물(織物)로 덮고 거기에 수를 놓아 호화로운 장식을 하게 되었으며, 복부나 양어깨 부분에는 주로 사자의 머리를 수놓았다. 투구는 쇳조각을 잇대어 쇠못을 박아 만든 주발 모양의 것으로 변하였는데, 정수리에 관(管)을 만들어 거기에 붉은 털의 술을 달거나 새의 깃털로 장식하여 화려하게 꾸몄다.

투구의 외면(外面)에 옻칠을 하고 금으로 용을 그려 넣었으며, 갑옷에도 금수(金繡)로 용문(龍紋) 등을 수놓았다. 중국에서는 무(武)보다 문(文)을 숭상하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에, 청조(淸朝) 이전의 갑주는 실물을 찾아보기 어렵고, 그림·지하유물로 알아보는 수밖에 없으며, 현존하는 실물로는 청(淸)의 역대 황제의 갑주가 보관되어 있다.

~~시간이 없어서 그림을 못올립니다..죄송...

출처 신북풍표귝

                                                                  -[死神飛翔刀]しん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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