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당제국의 세계시대 군 사령관들이었던 절도사들은 엄청난 군대로 권세를 휘둘렀다.
절도사는 거의 한 국가의 왕(王)과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대당제국의 절도사인 만큼, 일반 국가의 왕 이상의 힘을 지녔다고 볼 수 있었다.
자신의 군대를 휘두르면 다른 영지의 절도사와 전쟁을 하기도 하고, 중앙 정부의 정치가 잘못되면 쿠데타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결국 대당제국이 세계를 지배한 것도 절도사들에 의해서지만, 멸망한 것도 이러한 절도사들의 강력해진 군대가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마치 세계대전의 탄생과 몰락의 과정과도 비슷하다 볼 수 있다.
반면 송제국은 건국신념으로 문예주의, 민주주의를 선포한다. 당시의 미국이었던 송제국의 엄청난 화려함과 부, 권력과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합쳐도 못 따라올만큼의 경제력을 정복 전쟁으로만 소모 한다는 것은 인간 발전에 굉장히 큰 해를 가한다는 송태조의 생각덕분에, 그러한 경제력의 절반은 정복 전쟁에 쏟지만, 나머지 절반은 수학, 천문학, 철학, 문학(책의 출판), 치안의 발전과 유지, 빈부격차 완화, 인쇄술, 예술(미술, 음악 등), 상공업 등의 발전에 기여하기로 한 것이다. 즉 정복 전쟁으로 신경쓰지 못한 내정에 기울이겠다는 의지였다. 그럼으로써 송제국은 비록 세계지배자의 자리를 대몽골제국에게 넘겨주지만, 지금의 미국처럼 화려한 문명력에서만큼은 단연 세계 최강이 된 것이다.
그 덕분에 세계 근대사회로 오게하는 핵심인 4대 발명품 중 무려 3개(화약, 인쇄술, 나침반)가 송제국에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대당제국의 마지막 절도사 출신이었던 조광윤은 군 사령관이면서도, 송제국의 건국 황제이기도 하다. 그는 군대가 더욱 강력해지려면, 그 뒷받침인 문명이 강력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로 군사 과학기술을 말한 것이었다. 군사 과학기술이 발전해야만 군대도 발전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송제국 태조의 주장에 따라 화약과 같은 군사 과학기술의 진보가 세계사에 등장한 것이다. 또한 송제국 태조는 아무리 많은 땅과 국가를 정복한다해도, 문명력이 강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배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스스로도 절도사에게 많은 군대가 주어지는 경우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군인 쿠데타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장군들에게서 집결되었던 권력을 밸런스에 맞게 양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송제국이 그저 문명의 발전에만 기여했다고 군사력 발전에 소홀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중국 황조 중 가장 약한 송제국이라도 송제국도 결국은 중국. 그 어마어마한 파워와 강력한 힘은 세계 국가 중 적어도 군사력에선 3위 안에서 드는 제국이었다.
또한 아시아에선 화약무기와 중장기병으로 무장한 150만의 송제국 대군은 아시아에서 가장 활동력이 컸으니 그만큼 가장 강했다. 송제국의 군사력이 문명력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는 왜곡이 시작된 것은, 어쩌면 그 시대를 잘못 타고났기 때문이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들이던 무수한 북방 유목민족들의 침공을 받았기 때문이다. 세계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근대사회 이전까지 북방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다. 떴다하면 정복하고 세계를 집어삼켰다.
몽골족은 세계정복에 성공했으며, 흉노족은 한제국과 로마를 위협까지 몰고 갔으며, 돌궐족은 지중해를 지배하여 오스만 투르크를 세우고, 여진족이었던 만주족은 아시아를 점령하여 대청제국의 위상을 세계 만방에 떨친다.
이러한 과정들만 봐도 북방민족의 강력함은 세계 국가들이 감히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따로 '북방민족 제국사'가 있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이런 북방민족의 상대는 오로지 북방민족이었다. 중세시대까지도 북방민족은 유럽와 이슬람, 아시아, 중국 등 세계를 정복하고 지배하며 발 안에 굴복시켰다. 도저히 난다 긴다하는 문명 국가들도 북방민족의 상대가 되지 못한 것이다.
이런 북방민족들을 전 세계 지도상에 모두 그 발자취와 흔적을 없어지게 한 제국이 바로 만주족인 대청제국이다. 즉, 당시 가장 강렷한 북방민족 제국밖에는 같은 북방민족을 상대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송제국은 그러한 북방민족들에게 하나도 아닌 여럿에게 다굴을 맞은 것이다. 금제국, 서하제국, 서요제국, 대몽골제국 등에게 말이다. 일반 국가와도 하나도 아닌 여럿과 싸우기 힘든데.. 적어도 일당백의 역활을 하는 북방민족이 그것도 여럿이 다굴하니 아무리 중국이라도 송제국의 멸망은 당연하였다. 이런 북방민족들이 뭉치면 세계 정복도 문제 없으니 말이다. 아니, 뭐 몽골제국 하나만으로도 세계 정복했지.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것은 송제국이 패했다는 것이 아닌, 송제국이 그러한 북방의 대제국들과 전쟁을 치루면서 무려 100년이상이나 패배하지 않고 승리하면서 전쟁의 양상을 빼앗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100년동안이나 여러 북방민족 제국들에게 다굴맞으면서도 멸망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시 세계의 지배자들인 북방민족들에겐 어쩌면 최대의 오점으로 남았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분풀이로 몽골제국이 이슬람, 유럽, 아시아 할 것 없이 모두 점령하고 식민지로 만들어 버린 것이고.
이러했으니 만약 송제국 이전의 황조였던 대당제국이었다면 시대는 어땠을까? 과연 대몽골제국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을까? 당시 대당제국의 시대에는 송제국과 달리 대당제국이 몽골제국처럼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세계의 지배자들의 격돌인데, 장기전으로 간다면 그 패배는 아무래도 화력이나 문명력, 군사 과학에서 밀리는 대몽골제국의 패배가 될 것이다.
그러했으니 송제국이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는 것이다. 반면 대몽골제국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던 것은 시대를 아주 운 좋게 타고난 것이다. 물론 대몽골제국 자체가 아주 세계에서 강력한 제국이었으나, 중국이라는 거대 제국이 버티고 있는 이상 세계 정복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인데, 마침 중국 황조 중 가장 약한 송제국이.. 그것도 대몽골제국이 전성기일때 송제국이 몰락기였기 때문에 아주 천운이라고 볼 수 있었다.
만약 대당제국이었다면 대몽골제국은, 엣 고대시대에 한제국의 한무제에게 토벌당해 멸망당한 북방민족인 흉노제국과도 같은 꼴이 되버렸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국내외적인 환경에도 불구하고 남송제국은 세계제국 몽골제국에 대항하여 아시아와 유럽에서 유일하게 1279년까지 항전할만큼 강했으니 아시아와 유럽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강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송제국을 제외한 유럽과 이슬람의 모든 국가들을 통틀어도 몽골제국에게 빠르면 일주일, 늦으면 1년 정도 안에 정복당하는 게 정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과 이슬람의 나라들은 대부분 한달 안에는 싹스리 멸망당하거나 정복당했다. 그나마 버틴 것이 고려였는데.. 고려는 방어에 맞는 한반도라는 지리적 요건과 방어 만큼은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려도 송제국처럼 몽골제국과 오랜기간 전쟁하지 않았다. 100년 전쟁은 송제국과 몽골제국의 전쟁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실제 세계에서 가장 긴 전쟁이기 때문이다. 아마 그러한 전쟁의 참혹함은 2차 세계대전 이상이 아니었을까.
악비 장군이나 한세충 제독, 장준 군사령관과 같은 강력한 장군들도 등장할 만큼 남송제국의 후대엔 장군들의 집권이 어느정도 회복이 된다.
고려의 무신 정변에서는 순검군이 그 주체였다. 순검군은 순찰과 치안유지를 담당하는, 그야말로 요새의 경찰에 해당한다.
군왕을 수행했던 문신 전원이 고작 경찰들에게 척살당한 고려의 정변당시 상황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이는 정중부와 이고 등이 당시 황명을 거짓으로 조작한 어지를 만들어서 가능했겠지만 말이다.)
여러가지 이유를 생각해보았지만, 사실 송제국에서도 정중부와 같은 일이 발생하였다면, 예를 들어 악비 장군이나 한세충 제독 같은 명장이 그저 충의 군인이기만 하지 않고, 황위를 노리고 군대를 돌려 수도를 향할 결단을 가진 야심가였다면, 송제국에서도 고려나 일본과 같은 무신정권이 탄생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대당제국 시대가 무신정권이었기 때문에 악비 장군과 한세충 제독은 진정한 의미의 제국의 영광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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