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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백과

무협에 관련된 지식백과



중국의 지명과 성

작성자
Personacon 빛돌이아빠
작성
08.10.10 20:43
조회
5,670

위하(渭河)

감숙, 섬서의 두 성에 걸쳐 흐르는 강. 위수(渭水), 위천(渭川)이라고도 한다. 감숙성 위현의 조서산(鳥鼠山)에서 발원하여 남동으로 흘러 섬서성에 들어와 봉상, 서안, 조읍(朝邑)을 거쳐동쪽으로 동관을 돌아 황하에 이른다. 도중에 견수(견水), 경수(硬水)의 지류를 합친다. 옛날에 흑룡이 이 물을 마셨다 하여 음룡천(飮龍川)이라고도 한다. 주의 문왕은 위하의 북쪽에 있는 반계(盤溪)에서 사냥하다가 낚시를 하고 있던 여상(呂尙)을 만났다. 그는 여상을 군사로 임명하여 주의 국권을 맡겼다. 이때 여상의 나이는 팔십 세였다.

유림(楡林)

섬서성의 북부에 있는 도시. 본래 한나라의 구자(龜滋)현 및 수나라 초기의 정덕진(靜德鎭)이었고 명나라때에 유림채(儒林寀)를 두었는데, 그것을 다시 유림위(楡林衛)로 고치고 청나라때 부와 현을 두었다. 산물은 보잘것이 없고 토량도 각박하고 기후까지 한랭하고 우량도 적다. 주로 모피의 집산만이 성하다.

육반산(六盤山)

섬서성에서 영하성에 이르는 산맥. 섬서성의 가장 서쪽끝의 위수의 북쪽에서 일어나 감숙성의 동부를 남으로 달려 영하성에 들어가 황하에 이른다. 준험하여 교통에 큰 장애가 된다. 주봉인 육반산은 약 3,000미터이며 징기스칸이 죽은 곳으로 유명하다.

자은사(慈恩寺)

당나라때 건립한 장안의 명승지. 장안 진창방(進昌坊)에 있으며 당 태종때 창건. 고종이 황태자때 그의 어머니를 위해 이 절을 지었기 때문에 자은이란 이름이 붙었다. 곡강의 북쪽에 위치하며 현장이 서역의 제도를 따라 오층탑을 건립, 측천무후때 다시 세운 것이 유명한 대안탑(大雁塔)이다. 대안탑은 삼백 척에 달하며 탑 입구는 흑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문인묵객들이 끊임없이 찾아가는 장안의 명소중의 명소다.

장릉(長陵)

한나라 고조의 능. 섬서성 장현(長縣), 위하 북쪽에 있다. 황후 여씨(呂氏)의 능은 그 동쪽에 있다.

장안(長安)

섬서성 위수의 남안에 위치한 고도. 진한이래 당의 소종(昭宗)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수도가 되었다. 특히 한, 당시대에 번영하였고 그 이후에는 지방도시가 되었다. 당때의 장안은 수의 문제가 지은 대흥성(大興城)을 고쳐 쌓았다. 성내에 천복사(薦福寺) 소안탑, 자은사 대안탑, 분묘 등과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卑)가 있다. 부근에 현장삼장탑(玄 三藏塔), 향적사 전탑(香積寺塼塔), 진시황제능, 곽거병묘등 고적이 많다.

정국거(鄭國渠)

정국거는 전국시대 말의 진왕 정(政)(시황제)때, 위수로 흘러가는 경수(涇水)의 물을 끌어들여서 만들어진 큰 관개용수로이다. 그런데, 이 이름높은 수리시설은, 7국쟁패에서 통일을 향하여 움직여 나가는 세상에서 따지고 보면 한(韓)나라의 대진정책(大秦政策)에서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진나라의 동쪽에 이웃하고 있는 한나라는 호전적인 진나라의 대한진공(大韓進攻)을 두려워하여 어떻게 하든 그 관심을 다른데로 돌리려고 하였다. 그래서 수리관개의 기술이 뛰어난 정국을 진나라에 보내어 경수에서 물을 끌어서 중산(中山)의 서쪽에서 호구(瓠口)에 이르고, 다시 동쪽 낙수(洛水)로 흐르는 3백여리의 거(渠)(큰도랑)을 만들어서 전답을 관개하도록 은밀히 역설케 했다. 과연 진은 그 건언을 받아들여서 착공했는데, 공사의 중도에서 한나라의 책략이 발각되었다. 그러나 하마터면 죽음을 당할뻔한 정국은, "나는 한나라의 첩자로서 시작했지만, 거가 이룩되면 진나라에 있어서 큰 이익이 됩니다." 라고 그 만대의 이익과 공을 역설하였다. 그리하여 진나라는 10년을 걸려서 거를 완성시켜, 염분이 함유된 석로( 鹵)의 땅 4만여 경(頃)(일경은 백무(畝))에 물을 대고, 불모의 황무지는 1무마다 백 종(鍾)(6곡(斛) 4두(斗))의 수확을 올리는 옥야(沃野)가 되고, 흉년도 없어졌다. 정국거라는 이름은 이 수리관개사업을 완성시킨 수공(水工) 정국(鄭國)에서 온 것으로, 진왕 정은 이 비옥한 땅을 배경으로 국력을 축적시켜 마침내 부강(富强)으로써 천하를 통일하기에 이르렀다. 정국거는 후에 한나라 무제가 그 남쪽에 만든 백거(白渠)와 함께, 그 다한 역할이 크며 중국 고대에 있어서의 수리관개의 유산으로서 오늘날까지도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종남산(終南山)

섬서성의 남부에 있는 산. 관중, 한중의 양도 사이에 있으며 연장 오백 리에 달한다. 서쪽은 감숙성, 동쪽은 하남성에 미치고, 소위 진령산맥을 형성하며, 위수. 한수의 분수령이다. 문헌에 기재된 명칭은 주남산(周南山), 진산(秦山), 태을산(太乙山), 남산(南山)으로 되어 있다.

진녀봉(秦女峯)

위서(渭西)에서 보이는 산. 옛날 진왕의 딸이 촉왕과 결혼하러 가던 중, 이 산꼭대기에서 슬픈 나머지 돌로 변한데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전설이 있다.

집령궁(集靈宮)

한무제가 화산의 북쪽인 화음(華陰)에 신령의 강림을 기원하며 세운 궁.

천복사(薦福寺)

서안의 남문을 따라 나서면 서남쪽에 솟아 있는 것이 소안탑이다. 측천무후때 인도에서 돌아온 의정(義淨)이 이 절에서 불전을 번역할 때 세웠다. 높이는 대안탑보다 조금 낮다.

청룡사(靑龍寺)

섬서성 서안부에 있는 절. 처음의 이름은 영감사(靈感寺)이다. 수나라의 고조 문제(文帝)가 건립한 것으로, 당나라때 예종(睿淙)에 이르러 청룡사라고 일컬었다.

총지각(總持閣)

장안의 서남쪽에 있는 대총지사(大總持寺)안의 건물. 조망이 좋기로 유명하다.

태백산(太白山)

섬서성 관중 도미(道 ) 현의 남쪽에 있는 산. 서쪽으로 종남산의 산맥과 접하고 있다. 산은 매우 높아서 봉우리에는 언제나 눈이 쌓여 있고, 꼭대기에는 도교에서 알려진 굴이 있다.

파천( 川)

장안의 동쪽 교외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시내 이름.

풍(豊)

섬서성 운현(雲縣)의 동쪽. 주나라 문왕이 강태공을 얻고부터 소국을 차례로 병합하고 국도를 기에서 이곳으로 천도하였다.

하마릉(蝦 陵)

장안성의 남쪽에 있으며 기녀 및 명주의 출산지. 원래는 한의 대학자인 동중서(童仲舒)의 무덤이 있어서 한무제를 비롯한 모든 문인들이 이곳에서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는 하마릉(下馬陵)에서 비롯된 이름. 곡강 부근인데 주막과 요정이 많았음.

한수(漢水)

섬서, 호북 양성을 흐르는 강. 한강이라고도 한다. 양자강 지류중 큰 것으로, 섬서성의 서남부에서 발원하여 호북성에 들어가 양양(襄陽) 이남은 양하(양河)라 불리우고, 한구(漢口)의 옆에서 양자강으로 흘러든다. 지류에 단강(丹江), 백하(白河)등이 있다.

한중(漢中)

섬서성 남서부 한수의 북안에 있는 도시. 진령산맥과 대파산맥의 중간에 있는 한중분지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한수 뱃길이 닿아 수운이 편리하고, 또 남부에의 관도가 있으므로 호북, 사천, 감숙의 3성과의 상업이 성황하고 쌀, 누에고치등이 이 분지의 주요 농산물이며 약초의 집산지이기도 하다. 또 옛날부터 군사상으로도 중요한 곳이었으며, 한의 고조도 여기를 근거로 하여 천하를 통일하였고, 3국 시대에는 위와 촉과의 항쟁지가 되었다. 한때 남정시(南鄭市)라고도 불리웠다.

함양(咸陽)

섬서성의 옛 지명. 진나라의 시황제가 경영하던 굉장한 도읍인데 지금은 서안 동쪽에 있는 위성(渭城)의 고성(古城)이다. 북방의 필원(畢原)에는 주나라의 역대 여러 임금이나 주공(周公)의 능묘가 있고, 동북쪽의 무릉에 한무제의 능이 있다. 위성이라고도 불리웠다.

향적사(香積寺)

장안 종남산 부근의 자오곡(子午谷) 북쪽에 있는 절. 장만의 서남쪽에 있으며 왼쪽에 보제사(菩 寺), 오른쪽에 혜소사(惠昭寺)가 있다. 당나라 고종때 세워졌다.

혁련대(赫連臺)

진대(晋代) 오호 십육국중의 하나인 대하(大夏)국이 쌓은 대.

화산(華山)

이름높고 지세높은 화산. 이 산은 세칭 중국의 오악중 서악이라고 불리워지기도 한다. 이 산은 섬서성의 화음(華陰)현에 위치하고 있다. 이 화산의 서쪽에는 소화산(小華山)이 있기 때문에 이를 구분해서 태화산(太華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산의 높이는 오천 길, 이를 척으로 환산하면 사만 척에 달하고 넓이는 백 여리나 된다. 이 산 동쪽에는 선인봉(仙人峯)(일명;朝陽峯)이 있고 서쪽에는 연화봉(蓮花峯), 남쪽에는 낙안봉(落雁峯)이 있어 모두가 구름을 뚫고 하늘에 닿을 듯이 우람하게 솟아 있다. 그러니까 화산은 선인, 낙안, 연화. 이렇게 세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다. 선인, 낙안 두 봉우리는 고고하게 솟아 있는데 비해 유독 연화봉만은 운대(雲臺), 공주(公主), 옥녀(玉女)등 세 작은 봉우리가 떠받들 듯 시립해 있다. 이런 연고로 당대의 유명한 시인 두보는 이 연화봉 밑의 세 봉우리를 두고 시를 읊었으니, -여러 봉우리가 자손인 양 솟아 있도다. 이 시귀는 말할 나위도 없이 연화봉을 떠받들고 있는 세 봉우리의 형세를 나타낸 것이다. 이 연화봉 정상에는 상궁(上宮)이 있다. 이 상궁이 바로 무림의 정통일파인 화산파(華山派)의 근원지였다. 그래서 이름도 화산파가 된 것이다. 이 상궁 앞에는 맑은 물이 고여 있는 못이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하늘의 옥녀가 달 밝은 밤이면 강림하여 머리를 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옥녀지(玉女池)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설에 의하면 천신인 거령(巨靈)이 자신의 초능력을 과시해 보기 위해 화산에서 조화를 부려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황하 가운데를 가로막고 있던 화산을 손발로 뒤흔들어 두

동강이를 내 버렸다. 화산이 갈라지면서 황하가 흐르게 되니 이제는 멀리 돌아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지금도 화산에는 그 흔적이 완연하게 남아 이것을 고장(高掌)이라고 하기도 한다. 화산에는 도교의 사대동천(四大洞天)이라 불리우는 태극동(太極洞), 서현동(西玄洞), 노군동(老君洞), 왕자동(王子洞)이 있으며 산 아래에 서악묘(西岳廟)가 있다.

호경(鎬京)

섬서성 장안 남서부의 유적. 주나라 무왕이 도읍하여 동천할 때까지 왕도였다.

홍문(鴻門)

섬서성 임동현의 동부에 있다. 중국의 유방과 항우가 이 홍문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 연회에서 항우는 범증(范증)으로 하여금 유방을 자살(刺殺)케 하였으나, 유방의 부하 번쾌(樊 )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홍문연이란 이야기로 더욱 유명한 곳이다.

황하(黃河)

중국의 북부를 굴곡하면서 서에서 동으로 관류하는 큰 하천. 옛날에는 단지 하(河) 또는 하수(河水)라고 칭하였으나, 그 물이 많은 토시를 품어 황색을 드러내기 때문에 황하란 이름이 붙었다. 개봉 동방에서부터 북동으로 흘러 산동성을 거쳐 발해로 들어간다. 황하는 다량의 토시를 흘러내려서 퇴적시키기 때문에 하류역에 있어서는 하상(河床)이 양안(兩岸)제방 바깥쪽의 지면보다도 높은 천정천(天井川)으로 되어 있다. 황하는 화북(華北)의 대평원을 형성하였고, 유역의 농업에 큰 이익을 가져다 주었으나 홍수에 의한 인명, 재산의 손실이 커서 중국의 우환으로 일컬어졌다.

흑룡구(黑龍口)

섬서성 낙남(洛南)현의 서북쪽에 위치한 마을. 이 마을 한가운데에는 임동(臨潼)으로 통하는 관도가 뚫려 있으며 또한 이곳은 감숙, 사천, 섬서를 왕래하는 상인들이 거쳐가는 요로이기도 했다. 그런고로 시내에는 상점들이 즐비하게 있어 무척 번회한 곳이다. 그곳엔 객점을 비롯하여 주루, 반점, 다관 등 없는 것이 없었다.

절강성(浙江省)

가흥(嘉興)

절강성 동북부의 도시. 쌀농사가 성하고 상업이 발달하였다. 남방의 협석진( 石鎭;海寧)은 쌀시장으로 유명하다.

갈홍정(葛洪井)

서호(西湖) 근처의 우물. 옛날에 이 갈홍정 속 돌독에서 마름열매와 같은 단(丹)이 몇 개 나온 일이 있는데, 먹어 보아도 아무런 맛이 없어 버려두었던 바, 시어옹(施漁翁)이라는 사람이 그 중 하나를 주워 먹고 105세까지 살았다는 말이 있다. 차를 끓이는 물로는 최상으로 친다.

건덕(建德)

절강성 서부, 전당강 상류 연안의 도시. 옛 이름은 엄주(嚴州). 안휘성 남부 및 본성 서부에서 나는 오동나무, 기름, 치, 목재의 집산지이다.

교단(敎壇)

절강성 갱주(갱州)의 남쪽 십리지점 오구산(烏龜山)의 서록(西麓)에 있는 천제에게 제사 지내는 단. 이 아래에 남송 중기의 정부에서 직영하는 청자요(靑滋窯)가 있다. 교단하신관요(敎壇下新官窯)라고 한다.

귀주(귀州)

절강성 남서부 전당강의 상류지방에 있는 도시. 시가는 전당강의 상류 귀항(귀港)에 연하고 수,륙교통의 중심지로 상업이 성하다.

금화(金華)

절강성 중부의 도시. 동양(東陽), 영강(永康) 두 강의 회합점에 있다. 수륙교통의 요지로 북쪽의 북산(北山)은 명승지로 유명하다.

난계(蘭谿)

절강성 전당강의 중류에 있는 도시. 당나라 이후는 난계현성이었으며, 성의 내외에 시가가 있고 남문 밖, 북문 밖, 동문 밖은 번성한 상업구역이다. 집산품은 쌀이 제일 많다. 교통은 수운이 발달하여 복건, 영파(寧波)와 상거래를 한다.

난정(蘭亭)

절강성 소흥현 서남에 위치한 난저(蘭渚)에 있는 정자. 진나라때 왕희지가 41인의 문사를 모아놓고 그 낙성식에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 한 잔' 이란 풍류를 남겼다.

대진도(大陣島)

절강성의 동쪽과 대만에서 약 3백킬로 떨어진 해상에 있는 섬. 상대진, 하대진의 두 섬이 있고 그 주위에 사산(蛇山), 상여(上여), 죽여(竹여) 등 작은 섬이 있으며 이것을 총칭해 대주열도(臺州列島)라 한다.

막간산(莫干山)

절강성 항주에서 북서쪽에 있는 산. 간장(干將)과 막사(莫邪)가 검을 만든 곳이라 한다. 간장은 춘추시대 오의 칼 만드는 장인이고 막사(혹은 막야)는 그의 처였다. 이 부부가 오왕 합려(闔閭)를 위하여 칼을 만들었는데 간장이 칼을 만들면 그의 처는 철을 부드럽게 하기 위하여 머리털과 손톱을 깎아 화로속에 쇠와 함께 넣어 달구어서 명도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만든 두 칼을 음양법에 따라 양으로 된 칼은 간장, 음으로 된 칼은 막사라 하였다 한다.

민절산지( 浙山地)

절강성 항주 부근에서 관동성에 이르는 연해지역. 산지가 바다에 박두하고, 갑(岬)과 섬무리가 교착하여 대표적인 침수 해안선을 이루고 있다. 좋은 항구가 많다.

백제(白堤)

서호의 북쪽에 고산(孤山)이란 섬에서 동쪽으로 약 2킬로쯤 호수를 가로지르는 산책길을 백제라 한다. 당대 시인 백거이가 이 지방 지사로 있을 때 쌓은 것이라고 전하다.

보타산(普陀山)

절강성 주산열도(舟山列島)에 있는 불교의 영지. 범명은 보타락가(補陀洛伽). 중국명은 소백화(小白華), 매잠산(梅岑山). 관음보살의 영지로 풍경이 좋고 산 모양이 8각이다. 사천 아미산. 산서 오대산. 안휘 구화산과 더불어 불교의 사대 명산중의 하나이다. 보제사(普濟寺), 법우사(法雨寺), 혜제사(慧濟寺) 등이 있으며 조음동(調音洞)이 유명하다.

상산만(象山灣)

절강성 동쪽에 있는 해만. 내륙에 40킬로나 만입하였고, 넓이는 6.4킬로나 된다. 동쪽은 상산반도로 둘러있다. 만안에 몇 개의 작은 도시가 있어 선박의 출입에 편리하다. 물이 깊어 옛날부터 중국 해군의 근거지를 만들려고 기도하였던 곳이다.

사명산(四明山)

절강성 영파(寧波)의 남서에 있는 산. 천태산(天台山)에서 기맥하여 북동으로 달리어 만봉(彎峯)을 이룬다. 도교에서 이 산을 존경하여 제 9동천이라 한다. 송나라 진종(眞宗)때 천태종의 지례(知禮)는 명주(明州)의 연경사(延慶寺)에서 살고, 산가적류(山家嫡流)의 법문을 홍의(弘宜)하고 산외파(山外波)의 학장과 논난항쟁하여 그 이름이 나타나 사명존자(四明尊子)라 칭하여 졌다고 한다.

산음(山陰)

절강성 소흥현. 여기에 살던 도사 하나는 왕희지의 글씨가 탐이 나서 입수하려 했으나 구하기 어려웠으므로, 왕희지가 좋아한다는 거위를 보내 환심을 사서 황정경(黃庭經)을 쓰게 했다 한다. 부근에 있는 경호(鏡湖)의 경치가 뛰어나다.

서시석(西施石)

춘추시대 이름난 미인인 서시가 비단을 세탁했다는 돌로 회계산(會稽山)의 산성에 남아 있다.

서호(西湖)

절강성 항주에 있는 호수. 서자호(西子湖)라고도 한다. 예 서적에는 명성호(明聖湖), 전당호(錢塘湖), 상호(上湖) 등으로 불린다. 당이후 이미 세상에 알려졌으며 송대에 와서 특히 유명하여 졌다. 소식이 각종의 시설을 베풀었다고 전하여 진다. 항주성의 옆에 있으며 둘레는 언덕으로 둘리었고 이른바 서호십경을 비롯하여 경치가 매우 좋으며 또한 영은사(靈隱寺), 천축사(天竺寺) 등의 절, 고적이 많고 항시 유람객이 끊이지 않는다. 서호십경이란 평호추월(平湖秋月), 소제춘효(蘇 春曉), 단교잔설(斷橋殘雪), 뇌봉석조(雷峯夕照), 남병만종(南屛晩鐘), 곡원풍하(曲院風荷), 유흔문앵(柳痕聞鶯), 삼담인월(三潭印月), 쌍봉압운(雙峯押雲), 화항관어(花港觀魚)이다.

석교(石橋)

절강성 천태산(天台山) 깊은 골짜기에 걸려 있다는 돌다리로, 생사를 초월한 사람만이 건널 수 있다하여 생사교(生死橋)로 불리운다.

성과사(聖果寺)

향주 봉황산(鳳凰山)에 있는 절로서 수나라때 창건되었다고 한다.

선하령(仙霞嶺)

절강, 강서, 복건의 성계에 있는 산. 전당강의 상원(上源), 신강(信江), 민강( 江)의 상원, 남포 계(南浦溪)의 분수령을 형성한다. 침식에 의하여 생긴 안부(鞍部)는 강서와 복건 사이의 관문이다.

소흥(紹興)

절강성의 도시. 항주만 남쪽에 위치한다. 춘추시대 월(越)의 도성이었고 회계(會稽)라고도 불리웠던 운하(運河)의 거리. 부근은 쌀의 생산이 풍부하고, 찹쌀로 만든 소흥주(紹興酒)는 유명하며 중국명주의 1이다. 회계산, 구천의 묘와 난정 등의 명승이 있고 많은 사원이 있다. 성 교외에 우가 장사 지내여졌다는 대우릉(大禹陵)이 있다.

봉황산(鳳凰山)

항주 교외에 있는 산. 풍광이 수려하고 성과사 등 유적이 많다. 특히 산 아래에 남송때 설치된 수내사요(修內司窯)의 유적이 발굴되었다. 수내사는 장작감(將作監)에 속하며 요무(窯務)에 종사하는데 환관 소성장(邵成章)의 감독하에 청자기 중에서 가장 우수한 청자기를 구웠다고 한다.

아육왕산(阿育王山)

절강성 영파의 동쪽에 있는 산. 육왕산이라고도 한다. 서진(西晋) 무제의 시대에 유살하(劉薩하)가 아육왕(이소카왕)의 8만 4천탑 중의 하나인 것을 여기서 발견한데서 기인한다. 유송(劉宋)시대에는 여기에 사탑(寺塔)이 건립되었고, 양나라의 무제가 중수하여 아육왕사라고 불렀다. 조송(趙宋)시대에 소동파와 친교가 있던 대각회련(大覺懷連)이 내주한 후부터 천하의 명찰로 되었다.

악왕묘(岳王廟)

서호의 한 귀퉁이에 악왕묘가 있다. 이것은 남송의 무장인 악비(岳비)의 묘다. 악비는 금과 싸워 승리하였고 뒤에 진회(秦檜) 때문에 형벌을 받아 죽었다. 서른 아홉에 죽기 직전, 등에 '진충보국(盡忠報國)'의 넉자를 자청하였다고 한다. 악비는 사후에 악왕으로 추봉되었고, 오래도록 나라를 구한 민족의 영웅으로 숭배되었다.

안탕산(雁蕩山)

절강성의 가장 남단에 있는 산. 남안탕산과 북안탕산으로 나위며 남안탕산은 평양(平陽)현, 북안탕산은 낙청(樂淸)현에 위치한다. 고래의 명산으로 기봉(奇峯)과 폭포, 동부(洞府)가 많아 삼절(三絶)이라 불리우며 구름이 짙고 산의 높은 곳에는 호(湖), 낮은 곳에는 깊은 담(潭)이 많다. 환상만태한 곳으로 이름이 높다.

영은사(靈隱寺)

항주의 운림사(雲林寺)라는 절. 대웅전 앞에 8각 9층탑이 유명하다. 무림산(武林山)에 있다. 옛날 해리(해理)라는 고승이 이곳에 올라 그 절경을 찬탄하며 '천축의 영취산(靈鷲山)이 날아온 것이 아니냐.'라고 하였다 하여, 이후 비래봉(飛來峯)이라 불리어 온다.

완사(완沙)

절강성 제기(諸 )현 저라산(苧蘿山) 기슭에 시냇물이 흘러 그곳에서 서시가 동리 아낙네들과 어울려 빨래를 하기도 했었는데 지금도 서시가 빨래하던 돌이 남아 있다.

월계(越溪)

약야계(若耶溪)를 말한다. 절강성 소흥현 동남쪽에 있는데 서시가 이곳에서 연꽃을 따기도 하였다고 한다.

영파(寧波)

절강성 동부 용강(甬江) 하류에 발달한 도시. 옛 이름은 명주(明州)라고 한다. 당대 이래의 대외 통상 교통으로 중요한 항구이며 영소(寧紹)평야, 주산열도의 산물의 집산지이다. 영파 사람들은 옛날부터 상술(商術)이 뛰어나 지금도 전국적으로 활약하고 있다. 부근의 천동산(天童山), 아육산(阿育山)은 명승지로 유명하다.

온주(溫州)

절강성 남부의 항구도시. 영가(永嘉)라고도 한다. 구강( 江) 유역의 화물을 집산하고 상공업이 발달하였다. 온주귤, 차, 고치 등의 산지로 유명하다.

용정(龍井)

절강성 항주의 서남쪽, 풍황령(風篁嶺) 밑에 있는 도시. 용홍(龍泓)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나는 용정차는 천하에 유명하며 진짜는 구하기가 힘이 들다고 한다.

용천(龍泉)

절강성의 서남부에 있는 도시. 중국 최대의 청자의 생산지이다. 기원은 늦으나 세계를 시장으로 하여 수출하였고 남송 이후의 유품이 많다. 특히 아름다운 분청색(粉靑色)의 다듬잇돌은 청지의 최고품이다. 송나라때 장생일(章生一), 장생이(章生二) 형제가 이곳에서 함께 그릇을 구웠는데, 뒤에 형제가 분리되어 형의 요를 가요(哥窯)라 하고 동생의 것을 장요(章窯) 혹은 용천요(龍泉窯)라고 불렀다. 가요에서는 침수(砧手)의 청자를, 용천요에서는 천룡사수

(天龍寺手)의 청자를 구웠다고 한다.

전당강(錢塘江)

절강이라고도 하며 절강성을 흐른다. 하류의 양안에는 산이 많아 조수가 사나우며, 특히 음력 팔월에는 한층 맹렬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매년 가을, 오자서(伍子胥)의 혼백이 큰 조류가 되어 이 강을 거슬러 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산열도(舟山列島)

절강성 동쪽 항주만 남쪽에 있는 제도(諸島). 중심은 주산도의 정해(定海)현이다. 어업이 주이며 보타산은 관음보살의 영장이다.

천관탑(千官塔)

항주 연하동(煙霞洞) 입구에 있는 오월시대의 탑. 높이 이 장에 8각 7층의 탑은 그 주변에 무수한 관인소상(官人小像)이 있어 천관탑이라 불리운다.

천목산(天目山)

절강성 항주의 북서쪽, 임안(臨安)현에 있는 산 이름. 산세가 험하고 끝이 뾰족하여 마치 하늘의 눈과 같아서 천목이란 이름이 붙었다. 동천목산과 서천목산으로 나뉘며, 여기에서 출산되는 차는 천지(天池)와 용정(龍井) 다음으로 좋은 것이라 한다.

청전(靑田)

절강성 청전현. 이곳에서 산출되는 동석은 청전석이라 하며 완구(玩具)와 인장을 만드는데 쓰이며 특히 청전석 중에서도 옥과 같이 형결(螢潔)하여 등불빛처럼 찬란한 것이 있는데 이것을 등광석(燈光石)이라고 한다고 한다. 등광석은 옥보다도 더 비싸며 질이 아름답고 새기기가 쉬워 인장으로는 최고의 재질로 알려져 있다.

항주(抗州)

옛날 호림(虎林)이라 불리우던 오(吳), 월(越), 전(錢), 무(武), 숙(肅)의 오대국의 서울이었던 곳이다. 그 후에는 송나라의 고종황제가 도읍을 남으로 옮겨 임안(臨安)으로 개칭하였다가 그 후 항주라 불리우게 되었다. 그곳엔 전당강이 굽이쳐 흐르고 남쪽으로는 운하가 통하고 있었다. 또한 물자가 풍부했고 산수가 빼어나서 뛰어난 인물들이 속출했다. 항주성 서쪽에 있는 서호는 청산이 병풍처럼 둘러섰으며 호숫물이 어찌나 맑은지 십 여장이나 되는 밑바닥이 환히 들여다보였다. 그 경치의 아름다움이란 류를 찾을 수가 없었다. 자연히 이름난 풍류객들이 모여들었다. 풍류객들만이 아니라 선비, 고승들도 그 절경에 도취되어 발길이 끊어질 새가 없었다. 진정 극락이라 할 만한 곳이었다. 성 동남쪽 연하동에 호포사(虎包寺)가 특히 유명하다. 상유천당(上有天堂) 하유소항(下有蘇抗)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강소의 소주와 함께 명승지로 알려져 있으며, 진(秦)때는 전당, 수 양제때 운하 개설 후 항주로 명명되었다.

호주(湖州)

절강성의 서북, 태호 남안의 도시. 일명 오흥(吳興)이라고 한다. 잠사업의 중심지이고 직물, 호추(湖 )의 특산지이다. 또 명산물 호필(湖筆)이 나온다. 북동에 있는 남심진(南 鎭)은 잠사의 거래가 성하며 이 성에서 가장 부유한 곳이다. 남서의 막간산(莫干山)은 절경으로 유명한 피서지이다.

회계산(會稽山)

절강성 소흥현의 남동에 위치한 명산. 월왕 구천과 오왕 부차가 싸워 이 산에서 구천이 쓰라린 고난을 참고 부차를 이겨 회계의 굴욕을 씻었다. 산기슭에 대우릉(大禹陵)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우가 군신들을 회계산으로 불러모았다고 한다. 군신들은 우가 지정한 시각에 회계산에 모였다. 그러나 오직 방풍씨(防風氏)만이 늦게 도착해서 우는 그를 죽여버렸다. 그 뒤 2천년이 지나 춘추시대 오왕 부차가 월나라를 칠 때 월왕 구천이 살고 있던 회계산을 포위한 적이 있었다. 전쟁은 산까지 무너뜨릴 정도로 치열했는데 그런 와중에도 무너진 산 속에서 이상한 두개골을 발견하게 되었다. 자세히 보니 사람의 뼈도 아니고 그렇다고 짐승의 뼈도 아니었다. 그것은 얼마나 컸는지 수레에 싣고 와 당시의 대학자였던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는 우의 신화를 설명해 주었는데 그제야 사람들은 그것이 방풍씨의 두개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회계산은 원래 모산(茅山)으로 불려졌던 산인데 우가 천하의 제신을 모아놓고 치수를 상의하고 공공(共工)을 토벌한 뒤 회계산으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회계(會稽)란 회계(會計)를 의미하는데 그것은 곧 모아놓고 계획을 의논한다는 뜻이었다. 우는 남방을 순시하다가 회계산에 이르러 병이 나서 죽고 말았다. 그의 신하들은 그를 그곳에 장사 지내어 지금도 대우릉이 남아있다. 회계산은 우혈(禹穴)이라고 하는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는데 전설에는 우가 들어간 구멍이라고 한다.

퍼온 곳

제가 적은 것이 아니라 양심에 걸려서 링크 걸었습니다. 전 이곳 가입도 되어있지 않습니다. 네이버 검색에 나오길래.. 몰래 퍼왔습니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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