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
해태는 시비와 선악을 판단하여 안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해태라는 말은 중국의 해치에서 유래되었다. 중국의 고서인 『이물지(異物誌)』에 따르면, 해태는 동북 변방에 있는 짐승으로 사자와 비슷하게 생겼으며 머리 가운데에 뿔이 한 개 돋아 있는 일각수이다. 신선이 먹는 나뭇잎만 먹고 살며 성질이 충직하고 시비곡직(是非曲直)을 가릴 줄 알아 사람들이 다툴 때 옳지 못한 자를 가려내어 뿔로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초나라 때부터 해태를 행정과 사법의 이상적 상징으로 궁궐 문 앞에 세워두고 본을 받았으며 관복에 해태의 모습을 장식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서울의 한복판인 광화문 앞에 서 있는 해태상이 유명하다. 광화문에 해태상을 세운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아래는 그림에 대한 설명입니다.))
'광화문 앞에 세워진 해태상(1890년대와 현재) 고종 때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광화문 앞에 세운 해태상은 불기운을 막는 풍수지리학적 의미와 바른 정치를 상징하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이 해태상은 일본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비운을 겪었다.'
첫째는 조선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잦은 화재로 공사가 지연되자 남쪽의 관악산이 휴화산이기 때문에 그 불기가 화재의 빌미가 된다는 지관의 주장에 따라 광화문에 해태상을 설치하여 관악산의 불기운을 삼키도록 함으로써 화재를 막았다는 것이다. 항간에는 이처럼 풍수지리의 사상에 의해 해태 석상이 세워졌다는 속설이 널리 퍼져 있다.
둘째는 해태가 옛부터 바른 정치를 상징하는 신비스러운 동물이었으므로 벼슬아치나 백성들로 하여금 본받게 하기 위해 광화문 정문의 좌우에 석상을 세웠다는 설이다. 해태상을 궁 앞에 세워두면 궁궐에 거처하고 있는 임금이 성군임을 칭송하는 상징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백관들이 궁궐을 출입할 때 마음을 가다듬게 할 수 있었다.
((아래는 그림에 대한 설명입니다.))
'작자미상 <해태와 신선>, 조선시대 민화(왼쪽)/작자미상 <해태>, 조선 시대 민화(오른쪽) 해태는 해치라고도 불리는 상상의 동물이다. 물에 사는 짐승이기에 불을 막아주는 영물로 믿었다. 조각이나 그림을 그려 불기를 다루는 곳에 붙여 주술적인 벽사용 부적으로도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서수와 길상의 상징물을 든 신선과 함께 등장하기도 하였다.'
광화문을 지키던 해태상은 조선이 일본 식민지가 되면서 비운을 맞게 된다. 총독부 건물 공사로 경복궁 담이 헐리면서 해태상도 제자리를 지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총독부 건물이 완성되자 그 앞으로 해태상이 다시 옮겨졌으니 일제의 아성을 지키는 꼴이 되고 말았다. 해태상은 해방이 되고도 그 자리에 있다가 1961년 제3공화국 때 광화문 건물이 복원되면서 오늘의 자리로 옮겨졌다. 그만큼 광화문 앞의해태상은 우리 나라의 상징적 풍물이 되고 있으며, 해태는 법과 정의의 상징으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프로야구단인 해태 타이거즈의 승승장구로 해태는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승리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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