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상 경어를 생략합니다.
당신은 나처럼 재수없는 사람에 대하여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왜 재수없을까?
나의 얼굴이 재수없나? 정답이다. 연금술사. 육체가 재수없나?
분위기,생각, 논리, 사상, 능력이 재수없나? 어째서 재수없다고 생각하였는가? 전부
어떤 재수없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의 입장을 하나하나 분리해서 따져보면 사실 이해할 구석이 굉장히 많다. 아마도 재수없는 이도 재수없어 보이려고 그런 짓을 하는게 아니다.
그를 구성하고 있는 재수없는 구석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재수없는 사람은 거른다.
이 점을 생각해야 한다. 분리해서 따져보면 이해할 구석이 있는데도 그냥 거른다. 그것은 재수없어서 일 수도 있고, 마음에 안들어서도 있지만 거부감이 들었다는 것은 일치한다.
거부감이 드는 서술은 어떤 것이 있을까?
지금 이 글처럼 설명하는 듯 하면서도 가르치려 들면 재수없어진다. 설명과 가르침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겠다. 설명과 가르침은 일치하지 않는다.
망하는 판타지 시작편. 시작하자 마자 다음의 글이 나온다.
[ 마나란 무엇인가? 매우 흥미로운 질문이라 할 것이다. 누군가는 마나를 일컬어 우주의 기운을 이루는 에너지 덩어리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들 각자 하나하나는 모두 마나를 품고 있으며 단지 의식하지 못할 뿐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동양의 기(氣) 와도 비슷하였는데 차이점이 있다면 동양사상과 달리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지 않고 오롯이 멈추어 존재한다는 차이점이 존재하였다.
마나가 순환하든 순환하지 않든간에 우주의 기운을 일컫는다는 것은 공통점이라 할 것이다. ]
*
이것은 설명인가? 가르침인가? 누가 누구를 가르치고 있는가.
아무런 캐릭터가 없고, 아무런 세계관도 나타나지 않은 상태로 접점이 없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캐릭터의 입장도, 세력의 입장도 아닌 중립적이고 권위적인 서술이 되었다.
때문에 작가가 독자를 가르치고 있게 되는 것이다. 백지에서 아무것도 없이 작가말고는 없는 상태니까.
수업이라도 할 생각인가?
독자를 끌어모으는 1화는 지나가는 독자를 끌고 오는 것과 같다.
지나가는 독자에게 당신은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이다.
‘마나를 아십니까?’
독자는 그런 당신을 보고 뭐라고 할까? 안사요! 안사!
판타지의 시작을 교수님 강론처럼 설파하면 망한다. 그것은 깊이있는 운치나 정중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가 고루하고 지루하며 권위적이라 느껴지게 된다. 그리하여 재수없는 사람처럼 하나하나 따져보면 이유가 없을지라도 소설을 기피하게 된다.
판타지 작가여. 가르침과 설명을 구분하라. 그렇지 않으면 나처럼 이 글처럼 재수없게 보이게 된다. 재수없는 것도 개성으로 봐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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