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문(專門, Particular object of study or pursuit)과 대중(大衆)
제가 유전공학을 공부하는 과학도라는 사실은 모두 잘 아실겁니다. 유전공학(Genetic Engineering)라는 학문은 아마도 일반인에게 알려진 과학 중에서는 가장 신비롭고 어려운 학문으로 되어 있는데…… 어쨌든 저는 유전공학에 대해서 잘 압니다. 박사 수준은 안되지만 준 석사 수준은 될거에요. 실험실에도 출입하고 있고...또한 곧 석사를 따기위해 시험도 봐야 하니까요. DNA 조작도 가능한 정도니까…… 마음만 먹는다면 팔뚝만한 미꾸라지나 머리 둘 달린 뱀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게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갑자기 나쁜 과학자가 생각나네요. 우겔겔겔....)
그런데 여러분……혹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제가 어째서 SF를 쓰지 않을까요? 그것도 유전공학을 모토로 하는. 아주 잘 아니까 멋들어지게 쓸수 있지 않는가 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아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몇 년전에 유전자 조작을 아이디어로 SF를 쓴 적이 있었습니다. 결과는? 아, 물론 참패였었죠. (으윽...) 저는 그때 어떤 사실에 대해 아주 잘 안다……라는 사실은 결국 창작에는 해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예를 들어 '검법'에 대한 설명을 해 보죠.
검도나 펜싱을 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우리가 흔히 하는 "검을 들어 내리치다."라는 문장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아실겁니다. 제 친구 녀석 중에 검도 공인 3단 짜리 괴물이 있습니다. 이 친구는 운동이란 운동은 못하는 것이 없는데…… 그 친구가 어느날 제가 쓰던 글을 읽어보고는 피식 웃더군요. 그리고 하는 말이…… 정말 쇼킹했습니다.
"검은 절대 [들수]가 없어. 검은 [쥐는] 것이지 [드는] 것이 아니야. 더군다나 [내리친다]라니…… 검은 [치는] 것이 아니라 [가속]하는 거야. 손목의 스냅을 잘 살려서 끊어내듯 [가속]해야 한다구."
이 친구도 물론 글을 쓰기에……저는 한번 그에게 검도에 관한 글을 써보라고 시켰습니다. 대학에서 어느정도 글솜씨를 인정받은 친구였는데……나중에 가져온 소설은 결국 소설이 아니라 "검술 지침서"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검술 지침서"를 자료로서 잘 활용하고 있어요. (^^;;)
전문이란 어떠한 사실에 대해 일반적 수준을 넘어가는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일반인이 생각하기에 무쇠토막으로 된 검만 하더라도, 세세히 들어가자면 한도끝도 없습니다. 단순한 검술이란 면에서 볼때, 검도와 펜싱…… 그리고 중국 검술과 수박술에서 활용하는 '검'이란 것을 분류하자면 그 미세한 차이는 극심하게 드러나니까요. 하지만 이런 것을 쓰면 결국 '지침서'가 되고 맙니다.
따라서 뭐랄까…… 대중의 수준에 맞춰 글의 묘사도를 떨어트린다고 할까요? 저는 일단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대중이 이해할 수 있을만큼에서 조금 더 묘사를 하는 것으로 타인에게 '이해 가능한 수준 있는 글'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물론 그 '정도'를 잡는 것이 글쟁이의 기술이겠죠?
2. 문학상 수상집은 절대 안팔린다.
이번에 일본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작품 아실겁니다. '아쿠가타와 문학상'을 탄 글인데요…… 여러분도 신문에서 몇번 읽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에서 혹시 그 작품 읽어보신 분 계세요? 저는 한번 읽어보았는데…… 더럽게 재미 없더군요.
같은 아쿠가타와 문학상을 받은 '가족 시네마'도 그렇고 노벨 문학상을 받은 '설국'이란 작품(작가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였던가?)역시 열받게도 재미 없습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역시 다수의 독자를 보유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우며, 어쨌든 상받은 작품치고 재미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문학상을 받으면 출판사 관계자들이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어이, 장사 다 했군. 그만 찍고 재고정리 하지."
이것은 단순한 루머가 아닙니다. 김지룡 씨의 [나는 일본문화가 재미있다]에 나오는 실화이니까 한번 읽어보세요. 문학상 = 따분, 지루, 재미없음의 공식은 일본에서는 상례화 되어있으며 이 법칙은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우리나라에서도 거의 비슷합니다만…… 이상문학상 수상작은 베스트에 들었다고 하니 철칙은 아닌듯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째서 문학상을 받은 것은 잘 안팔릴까요? 그 이유는 [대중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중성이란 말 그대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과 묘사를 내린 것입니다. 수준을 내린 것이 높은 수준의 전문화가 될 리 없겠죠. 상을 받기 위해서는 '작품성' 면에서 전문화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성이란 것이 따분 지루의 첩경과도 같으므로…… 문학상 수상작은 대중성이 결여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안팔리는 것입니다.
3. 전문과 대중……그 미묘한 함수관계
요즘 판타지가 점차 무협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른바 무협 판타지의 도래인데요……. 드래곤 라자의 영도님의 경우, 이것은 예전에도 밝혔지만 순수 서구형 판타지라고 보기에는 힘듭니다. 작품성이 극대화 된 서구형 판타지의 수준을 대중 수준으로 끌어내려 재미있게 만든 일본형 판타지인 셈이죠.
그런 일본형 판타지는 기본 모티브를 서구 판타지로 했기 때문에 어느정도의 작품성을 유지하면서 대중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려 노력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입니다.
우리나라는 일본형 판타지를 선진 문물로 받아들였습니다. 보통 복제본이 원본을 능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초기의 판타지는 일본형 판타지에도 미치지 못하는 특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현재에는 거의 비등비등 할 정도로 올라가긴 했지만…… 심리묘사나 플롯의 설정은 여전히 뒤떨어지는 면모가 많아요.
전쟁의 묘사나 전투의 삽입…… 그리고 강대한 마법에 대한 직접묘사등이 그 차이점인데…… 일본과 한국의 극단적인 차이점은 아마도 한국의 판타지는 무협적인 성향을 많이 띄고 있다는 겁니다. 이미 보편성을 확보한 무협과 판타지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한국형 '무협 판타지'의 등장을 가져온 것이죠. 대중성을 극대화 시킨 일명 아류 판타지입니다.
초기 오컬트 붐을 타고 일어난 '퇴마록'은 엄밀히 말해서 판타지가 아니라 오컬트입니다. 아마도 정규 판타지는 '드래곤 라자'가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만……아뭏든 작품성과 대중성의 사이에서 고민하던 영도님께서 대중성으로 발길을 돌리신 이후 '드래곤 라자'는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뒀습니다. 영도님이 얼마나 고민하셨는지는 이번의 연재작, '퓨처워커'에서 드러나 있습니다. '드래곤 라자'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철학적 전개……그리고 설명과 묘사에 있어서의 컬트성이 드러나 있습니다. 초기에 비해 조회수가 많이 하락한 것도 아마 전문적으로 파고들어가는 작품성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중은 편식을 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뭐어…… 영양성을 고려하지 않고 맛있는 것만 찾는다고 할까요? 그래서 보통 식자(識者)라 불리는 사람들은 이를 통탄스러워 합니다. 흔히 오타쿠(Otaku)라든가 매니아(Mania)라는 사람들은 대중에서 벗어나 전문성을 띄는 사람들을 의미하구요……이들의 등장은 아마도 대중과 전문가의 중간형태에 대한 갈망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에반게리온을 아실 겁니다. 에반게리온의 구성은 거의 천재적입니다. 초기에는 그저 그런 로봇 전투물인 것 같았다가…… 점차 진행되면서 주인공 신지의 고민속에 시청자들을 완전히 빨아들이고 아픈 괴로움을 공유하게 합니다. 그리고 20화를 넘어가면 완전히 사이킥 컬트로 변해버리게 되죠.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에반게리온을 봅니다. 어쩌면 에반게리온은 20화를 기점으로 대중을 전문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결국 전문과 대중 사이의 극명한 차이를 조금은 좁혀보려던 훌륭한 시도가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에반게리온의 시도는 우리에게 많은 사실을 알려줍니다. 대중 수준을 넘어가는 작품도 흥행이 될 수 있다는 사실과…… 그 한도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에바의 흥행은 20만을 기점으로 더이상 확산되지 않았으니까요.
결국 대중과 전문화는 양립하기 힘드며……양립한다 하더라도 한 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나 다를바 없습니다. 그러니 어려분도 전문적으로 파고 들 것이 아니라 보다 더 대중적인 묘사가 필요하다라고 생각합니다.
- 천리안 다크스폰님의 글입니다. [불멸의 기사]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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