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Evolution)
진화라는 개념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필자는 꽤 오랫동안 이런 생각을 했고, 특히 할 일 없었던 군대에서 특별히 더 많이 했다. 이때는 시간이 많아서(라기 보다는 말년에 할 게 없어서) 교양 과학책도 많이 읽었고, 지식도 풍성해진 나름 윤택한(?) 시간이었다. 물론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만.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진화라는 개념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혹시 생명체가 더 나은 형태로 발전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에 대한 대답은, ‘명백하게 틀렸다.’이다. 진화의 의미는 생명체가 더 나은 존재(사실 ‘더 나은‘이라는 것 자체가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남아서 유전자적 다양성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진화라는 개념에 대해 혹시 헷갈려하는 초보 sci-fi 작가가 있다면, 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과학적 배경지식을 찾고 있는 현명한 독자가 있다면 읽어도 좋다.
나는 진화의 핵심개념을 유전자 변이(작은 도약)와 큰 도약(대진화), 자연 선택(또는 적응)이라는 3가지로 설명하고자 한다.
1. 유전자 변이
유전자 변이의 개념은 정말 간단하다.(사실 진화 자체가 상대성이론이나 빅뱅이론 못지않게 현대 과학에서 중요하고 충격적인 현상이지만, 그 2개와는 달리 정말 이해하기 쉽다는 특징이 있다. 물론,‘제대로 된 정보를 얻는다면‘ 이라는 전제 조건이 붙어야겠지만.) 일례로, 지금 이 글을 읽고있는 독자와 부모님의 모습은 다르다.
그렇다면 왜 그러한가? 쉽게 말하면 선대(이 경우에는 부모님)의 유전자를 후대(나)에게 옮겨 쓰는 데 오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물론 더 들어가면 복잡하지만, 난 생화학을 썩 잘하지 못했다.(하지만 석/박사를 밟으면서 제대로 공부해볼 생각이다. 라지만 워낙 문과 체질이라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자신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특성을 정확히 반씩 똑 닮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물론 오차가 조금이라도 발생할 확률보다는 훨씬 희박하다.)
그렇다면 유전자 변이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생각보다 간단하다. 암수가 만나서 번식하는 고등생물체 말고 단세포 생물체를 확인해보면 된다. 예를 들어 대장균의 경우 후손을 만드는 방법은 자신을 복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복제한 자신(후손이라고 봐야겠지만.......)과 자신(부모라고 봐야할 것이다.)의 DNA가 다를까?
정말 그렇다! 그렇다면 그 증거가 어디에 있느냐? 분자생물학적 증거는 물론이고 실험 증거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렌스키 대장균 실험(http://ko.wikipedia.org/wiki/%EB%8C%80%EC%9E%A5%EA%B7%A0%EC%9D%98_%EC%9E%A5%EA%B8%B0%EA%B0%84_%EC%A7%84%ED%99%94_%EC%8B%A4%ED%97%98). 렌스키 박사 연구진이 약 20년, 4만 세대 동안 대장균을 증식시켜 소진화를 관찰한 실험이다. 그런데 정말로 약 3만 3000여 세대 대장균에서 모체의 DNA와 확연히 달라졌다! (쉽게 말하자면 원래는 글루코스를 에너지로 사용하는데, 시트르산을 계속 주입하니 시트르산을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는 DNA로 바뀌었다.)
올레!
2. 큰 도약
약 4만 세대만에 시트르산을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게 된 대장균. 그렇다면 앞으로 4만 세대 후, 또 4만 세대, 아니 40만, 400만, 4000만 세대 뒤에는 어떻게 변할까?
아무도 모른다. 주변 환경에 변화가 없다면 전혀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않을 수도 있다’가 아니라 반드시 전혀 변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만약 변한다면 아주 크게 변할 것이다. 이것이 큰 도약이고, 대진화이다. 어쩌면 4000만 세대쯤 지나면, 대장균은 프레데터나 드래곤으로 변해있을 지도 모른다. (상상하기 힘들지만.......)
혹자들은 작은 도약이 큰 도약으로 이어질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런 증거는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일례로 내가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으므로 계속 걷다보면 당연히 언젠가는 우리 학교 정문에 다다를 수 있다. 물론 시간은 오래걸리겠지만....... 진화에게는 생각보다 훨씬 더 충분한 시간이 있다.
그보다 더 심각한 사람들은 지구의 역사가 6000년 정도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정도면 정신병이니, 굳이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3. 자연 선택
진화가 발생하는 원동력은 알았다. 진화의 원동력은 유전자 변이에 있다. 그렇다면 진화의 방향은 누가 결정하는가? 조향 장치는 없고 동력만 있는 자동차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주행하는 도로가 완전히 일직선이 아닌 이상.) 진화도 마찬가지다. 대체 생명체가 변화하는 모습은 누가 결정할까?
진화론에서는 그것을 자연 선택이라고 말한다. 아직까지는 자연 선택으로 모든 진화의 과정을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적설계론자들이 주장하는 바처럼, 언젠가는 거기서 벗어나는 예가 나올 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과학자들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 선택이란 무엇인가? 다음의 예시를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1. A군과 B양이 만나 결혼했다.(사실 결혼 안 해도 되지만 건전 사회를 위해 이렇게 설정하도록 하자.)
2. A군과 B양 사이에서 가, 나, 다, 라 4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3. 가는 키가 크고 머리가 좋은 대신 운동을 못했다. 나는 키가 작고 머리가 좋고 운동을 못했다. 다는 키작, 머못, 운좋이었다.(과도한 언어 축약은 필자의 귀차니즘 때문이니 양해바랍니다.) 마지막 라는 키크, 머못, 운좋이었다.
4. 물론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키 큰 가와 라였다.
5. 그런데 갑자기 핵전쟁이 일어났다.(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가나다라 형제는 운좋게 살아남았으나 핵겨울이 지속되었다.
6. 형제는 파괴된 문명과 추위를 피해 동굴로 들어갔다.(유후! 동굴 생활이라니! 키작이 유리하다니!)
7. 잘 생활하던 중 불행하게도 키가 큰 가는 낮은 동굴 천장에 머리를 부딪혀 죽었고, 라는 좀 더 오래 살았으나 너무 구부정한 자세를 오래 해서 디스크로 죽었다.
8. 키가 작은 나와(왠지 필자를 지칭하는 것 같다만.......) 다는 오래 살아서 결혼까지(이 시대에 결혼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만)해서 후손을 남겼다. 특히 그 중에서도 쓰잘데기 없는 머리보다는 운동신경이 좋은 다가 인기가 많았을 것이다.
9. 각자 2명씩 후손을 남겼는데, 역시 2명은 키가 좀 큰 편이고(아빠 키가 작아서 많이 크지는 않았겠지만.......) 2명은 키가 작았다.
10. 안타깝게도 키 큰 2명은 죽고 키 작은 2명이 살아남았다.
11. 이 과정이 무한히 반복되다보면, 언젠가 이 종족의 평균키는 정말로 작아질 것이다. 덧붙여 머리는 멍청해지고 운동신경은 좋아질 것이다.
12. 하지만 반대로, 가나다라 형제가 동굴이 아니라 넓은 평야지대에서 생존했다면 어땠을까? 틀림없이 키가 작은 개체가 도태되었을 것이다.(슬프지만......OTL)
13. 이것이 자연선택이다. 우월한 개체는 있을지 몰라도 우월한 종은 없다. 그냥 살아남는 종이 우월한 것이다.(이것이 자연선택의 기본원리다. 참 쉽죠잉?)
4. 진화 개념의 적용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발견하는 여러가지 현상에도 진화 개념을 적용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 대표적으로 남성이 글래머러스한 여자를 좋아하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가슴이 크면 모슈 수유에 유리하고, 엉덩이가 크면 아이를 잘 낳고, 허리가 잘록하면 건강한 아이를 낳아서(관련된 연구 논문이 있다.) 더 나은 후손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래서 좋아할까? 직접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전세계적으로 문화적 연관성이 없는 민족 -예를 들어 아프리카 부시먼과 서유럽 백인들- 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므로 어느정도 타당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생각보다 진화론은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고, 또 설명해왔다. 오늘은 진화론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관찰해보는 것이 어떨까.
Commen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