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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1 madfrog0..
    작성일
    10.07.14 21:36
    No. 1

    고로 삼국지에서 백만 어쩌고 하는 것은 나관중의 허풍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한배달쥬신
    작성일
    10.07.15 12:41
    No. 2

    소설에서는 유비, 조조, 손권이 영웅들로 묘사 되었지만 중국의 三國時代는 세계사 교과서에서 단지 한 단락 정도만 차지하는 아주 보잘 것 없던 시기였습니다. 사실 역사 속에 한번 정도 등장하는 어느 왕조의 창업자들도 그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만큼 국가를 창업 하는데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고생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국을 창업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수많은 별처럼 역사에 등장한 국가들 중 역사에 길이 남을 제국이 되느냐 아니면 그냥 사라지느냐는 창업자를 승계한 똑똑한 통치자가 나와야 가능한 일입니다. 앞에 예를 든 유비, 조조, 손권의 경우는 제대로 된 후계자가 없어 그들이 만든 왕국은 결국 단명의 왕조로 막을 내립니다.

    삼국지정사는 사서이고, 삼국지연의는 소설입니다. 삼국지연의 자체가 소설이니 그것이 허구에 불과할 뿐이죠.
    '연의'라는 용어가 소설이란 뜻이니....
    쥐나의 삼국지에 나오는 100만 어쩌고 하는 것은 사실 뻥이다. 짱골라들의 농간에 불과합니다.
    그 당시 인구 대비로 따져도 그것은 억지이다. 실제로는 1/2에서 1/3정도 즉 50만에서 30만정도의 군사력 밖에 안 됩니다.
    나관중이 지은 연의에는 장판파에서 조운이 80만의 군대 속을 홀로 유린했다고 하지만 실제 정사의 기록을 보면 조조의 군세는 8천뿐이었다고 합니다. 나관중의 허무맹랑은 상산 조자룡에만 거치지 않죠. 관우의 청룡언월도 그것 역시 거짓입니다. 언월도란 무기 자체가 송나라 시대 이후에나 등장해 원나라때 자주 사용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즉, 후한 말기 언월도란 무기 자체가 없었습니다. 툭하면 100만 대군 하는데 이 역시 거짓입니다.

    또 제갈량은 촉한으로 진격해오는 육손을 팔진도八陳圖라는 기묘한 술책으로 꺾었다고 하는데 이 역시 모두 허구입니다.
    그것은 연의의 작가 나관중이 제갈량을 신격화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죠.
    그렇다면 팔진도의 비밀은 무엇일까. 팔진도가 실제로 존재하긴 했습니다.
    다만 연의(소설)에서처럼 그런 요술진이 아니라 중군을 가운데에 두고 주위 팔방으로 8개의 진을 두어 방어에 뛰어난 진형을 뜻합니다. 이 진형을 제갈량이 주로 썼는데 진형의 형태와 예리함이 실로 뛰어나 사마의가 그것을 보고 감탄했다는 구절이 정사에 기록되어 있죠.
    제갈량과 방통만 보더라도 제갈량은 내치內治에 강한 내신內臣형이었으며 방통은 오히려 정치보다는 병법에 강한 외신外臣이었습니다. 하물며 병법의 기재라는 사마의, 주유, 육손이 제갈량보다 뛰어나면 뛰어났지 밀리지 않죠.
    제갈량에 대한 환상은 제갈량을 높이기 위해 허구인 연의를 지은 나관중이 의도적으로 방통, 사마의, 주유, 육손 등의 인물들을 폄하한 것에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쌍쌍크로스
    작성일
    10.08.26 23:25
    No. 3

    고구려 역사에 관심이 많으시면 중국 길림성 집안시 고구려 유적지를 가보십시요...

    고구려왕족들의 무덤이 그대로 남아있구요
    호태왕비는 굉장합니다

    완도산성과 오녀산성 모두 고구려 역사가 그대로 남아있는 곳입니다

    오녀산성에 가보신 어떤분은 그곳이 하와이보다 더 멋지다고 했는데
    저도 엉청나고 감탄하고 돌아왔어요
    너무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오녀산성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진짜 기막히게 아름답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살았던 땅 ....

    함 가보십시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제반(齊潘)
    작성일
    10.09.12 23:34
    No. 4

    하긴 고구려가 100만명의 인구도 되지 않는다는것은 실로 어불성설이죠.
    단군조선의 속국인 예국의 수장 남려가 한나라로 도망할때 이끌고 간 사람이 28만호, 즉 100만에 이르는 인구였다고하죠. 호(戶)를 인구수 그대로 받아들이면 오류가 생기죠. 호는 집 한채에 사는 사람 수로, 최소 4인에서 최대 10인까지 볼 수 있습니다. 고구려 멸망당시 30만호니 하는 말은 가당치도 않은 사실이죠. 전쟁국가라고해도 1000년 동안 인구 수가 늘지언정 줄어들 수 는 없는 것이니까요. 또, 약소국으로 폄하되는 고려의 초기 군사력이 거의 60만에 이르렀던 것을 생각한다면, 아무래도 중국의 기록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을 것같습니다. 오랜만에 제대로된 역사적 근거가 깃들여진 글을 읽네요. 이 자료가 대체역사소설에 쓰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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