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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1

  • 작성자
    書喜
    작성일
    07.04.04 18:56
    No. 1

    오옷,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이월
    작성일
    07.04.04 22:28
    No. 2

    좋은 공부가 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8 안구건조
    작성일
    07.05.07 15:37
    No. 3

    이제 보니 중세 유럽.....별거 아니었구나..... 그때 한 판 붙었으면 이길 수도 있었을 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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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튜튼기사단
    작성일
    07.05.16 12:15
    No. 4

    알렉산더는 워낙에 굄훌... 페르시아 경기병들을 중기병으로 포위섬멸한 놈 입니다 = 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7 그믐달아래
    작성일
    07.05.17 20:28
    No. 5

    음 글쓴 분이 매우 많은 것을 알고 계시는 군요. 그런데 두 가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어요. 첫째로, 활을 사용하는 것을 유럽인들은 비겁하게 여겼다고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순신 장군이 일본도를 모방한 것을 들고 있었다?입니다. 우선 첫째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당시 유럽에서는 좋은 활을 만들기가 어려웠고, 그 활의 사거리도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작고 강하게 만들어 그 효용성이 극대화 되었던 동양의 활과는 차이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굳이 상대방을 격멸하지 않더라도 괜찮았습니다. 고대 시대라면 모를까, 중세의 전쟁은 귀족의 전쟁이라 불려도 말이 필요없으니깐요. 활은 사냥이나 암살 등에나 쓰일 것이라 여겼지, 대규모적인 부대를 운영한 기록이 서양에는 많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활이라는 것은 아주 쏘기 쉬울것 같지만 많은 훈련이 필요한 무기입니다. 또한 그렇다고 해도 명중률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에 반해서 창이나 칼은 쥐어주고 전장에 보내기만 하면, 싸울 수 있게 됩니다. 죽던 살던 아무튼 가까이 붙어 있으니 찌르거나 베기만 하면 공격이 가능하니깐요. 유럽이 왜 총이 개발된 이후에 총을 쏘는 것이 비겁하다고 하지 않는지 잘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의 문화에서 활은 전쟁무기가 아니었던 겁니다. 그래서 십자군 전쟁이 실패했던 것이고요.
    두번째, 님께서 착각하시는 것은 당시 검이나 도를 만드는 기술은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더 발전해 있었습니다. 당시 그렇게 일본군이 더 강력하게 보였던 것은 무기의 강력함보다는 지휘의 문제가 더 크다 할 수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것은 많은 자료가 있으니 참고해 보시고요.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일본도의 형태는 그 당시에 만들어진 전형적인 일본도가 아닙니다. 현재 일본도는 보통 백제도에서 더욱 발전된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일본의 도가 발전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에 발생합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많은 기술자들이 일본에 잡혀가서 전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 일본의 도가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어서 현재 우리가 감탄하는 사람을 베기에 최적화된 일본도가 나오게 된 겁니다. 그러므로, 이순신 장군이 일본도를 모방한 검을 썼다고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또한 이순신 장군은 작은 검과 함께 장군검이라는 거대한 검을 쓰고 있는데(거의 이순신 장군 키만한 검...), 이것은 의장용이나 실제로 쓰는 검이 아니라 지휘기라 보시면 됩니다. 이것을 이용하여 군사를 지휘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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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法雨
    작성일
    07.06.12 11:43
    No. 6

    성양에서 활과 갑옷은 서로 경쟁 관계에 있었습니다. 활은 원래 전투에는 잘쓰이지 않았죠. 던지는 창이나 투석기(손)에 비해 손도 많이가고 명중률도 낮아서 그렇죠. 이때에는 중갑 보병이 인기 였지만 얼마 후 기병의 유용성을 알게 된 후 기병이 득세하게 되었죠. 이런 기병들은 그만큼의 숙련도를 꼭 필요로하기 때문에 이들을 특별히 기사라는 칭호를 내려주었지요. 하지만 말이나 갑옷등의 유지비가 많이 들게되기때문에 기사는 귀족들의 칭호로 변질되게 되었죠. 몽골의 침입때 활의 무서움을 접하게 되고 아마 백년전쟁 떄 영국의 핸리 2세였던가하는 왕이 평민들을 모아 활과 창으로 무장시켜 프랑스의 강한 기병들을 상대로 지형을 이용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전투가 아마 역사적으로 유명한 전술이였을거에요. 전투중에 기병들은 발달 된 활의 좋은 표적이 되어 가장 먼저 죽게되었죠. 그래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갑옷이 판금메일 들로 만들어지고 관절부위들까지 완전방어하는 풀플레이트가 생겨 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발달된 갑옷은 그 무게로 인해 기병의 이점인 속도와 민첩성이 사라지게 되었고 결국 대포에 의해 성이 사라진 것처럼 총이 개발되면서 갑옷을 입은 기사는 더이상 필요가 없게되고 갑옷은 단지 흉갑정도만 남았다가 이도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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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法雨
    작성일
    07.06.12 13:30
    No. 7

    그리고 세계에서 인정한 최고의 재련법은 다마스커스 강입니다. 이제야 제련법을 알아 냈다고 하더군요. 고유의 문양을 나타내기도 하는 이 공법은 그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최고의 검을 만들어 낼수 있는 비법이요. 그리고 일본검인 카타나를 높게 쳐 주는 것은 재련법이 아닌 가장 살상력이 있는 검의 형식이기 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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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07.06.21 01:20
    No. 8

    좋은 자료 좋은 답글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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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카사노블
    작성일
    08.01.20 16:17
    No. 9

    이순신 장군님이 사용하신 검은 다마스커스 검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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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BleiSha
    작성일
    08.12.05 18:00
    No. 10

    ... 중세시대의 기사들은 저런 옷은 입지 않았습니다.

    저런 옷을 입기 시작한것은 아주 나중에이죠.

    저런 갑옷을 입지 않은 이유는 무거워서 움직이는데 불편함이 있기 떄문입니다.

    중세시대의 기사들은 거의 입지 않거나 거의 평상복이라도 해도 될만큼 평범한 옷을 입었고, 그러기에 중세시대의 기사들은 무기도 가끔가다 도끼들지 왠만하면 그냥 가벼운 무기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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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54 꿈과멘토
    작성일
    18.06.20 08:07
    No. 11

    퍼갑니다.(복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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