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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Lv.7 현실주의2
    작성일
    18.05.09 22:28
    No. 1

    통치요. 말 그대로 현대 정부에서 하는 업무를 개인이 수행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크게는 어느쪽에 예산을 심어줄 것이냐, 부터 작게는 모 마을에서 벌어진 촌장직 임명문제까지 담당합니다.

    더불어 상속과 계승문제도 한몫합니다. 이게 딱 사망하면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상속법이 복잡했던 경우, 수 세대 이전의 혈통관계까지 복잡하게 얽힙니다. 때문에 차후에 내 상속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세력 견제도 해야하고, 정기적인 정치, 종교행사에 참석해야하고, 봉건 국가라면 가신의 의무로서 의무 군복무도 해야하고... 뭐 끄집어내기 시작하면 끝도 없습니다.

    뭔가 이해하기 어렵고 귀찮다고 느끼신다면, 그냥 정부 업무를 혼자서 수행한다, 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0 구운베이컨
    작성일
    18.05.13 15:06
    No. 2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해됬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TailD
    작성일
    18.05.17 12:25
    No. 3

    요즘 판타지 소설들에서 나오는 귀족들은 굉장히 독특합니다.
    판타지에서 나오는 '격무에 시달리는 왕과 귀족'들은 근, 현대 관료제에 익숙한 현대인들의 상상으로 창작된 부분이 많습니다.

    왕과 귀족의 관계나 업무는 문화권마다 다릅니다. 대부분 한국인은 중국, 일본사 조금에 한반도 역사를 위주로 공부하기 때문에 서양배경의 판타지를 그리면서도 봉건제와 중앙집권 관료제를 섞어버립니다. 자료가 많아 가장 많이 공부하는 조선이 신권이 강했다고 배우지만, 그건 동양기준이고 봉건제가 오래 지속된 서양기준으로 조선은 중앙집권국가입니다.

    그럼 서양 봉건제 하의 귀족들을 살펴봐야 하는데, 이것도 시대마다 다릅니다.

    서양 봉건제는 서로마 몰락 이후 게르만족 전통을 따르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게르만족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전사>죠. 실제로 봉건 초~중기에는 문자를 익히고 공부를 한다는 것이 몸을 나약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강력한 치수사업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왕조를 구성한 중국의 영향을 받은 한반도는 관료제 기반의 판타지에 나오는 '유약한'귀족(혹은 양반)들이 일찍부터 자리잡은 반면, 유럽 귀족은 상무적인 전통이 강했습니다. 이들은 봉토에서 나오는 세금으로 생활했는데...... 이들이 '격무'에 시달렸을까요? 이들은 관료가 아닙니다. 지주에 가깝죠. 지주가 격무에 시달리던가요? 종이를 '태울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되기 전에는 양피지를 주로 사용했기 때문에 관료적인 업무를 처리할 것도 별로 없었습니다. 대신 다른 귀족들을 만나거나 자기 사람들을 관리하며 정치적인 이득을 챙기려고 노력했죠.

    근대 부르주아 태동기에도 영국 귀족들은 업무를 보지 않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부르주아만 부르주아로 인정했습니다. 나중에나 발로 뛰어서 일하는 사람들도 하등하지만 평민보다 나은 무언가로 인정했습니다. 19세기 유명한 소설 <오만과 편견>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일을 할지 안할지는 귀족의 의지에 달린 것이었습니다. 여성이 소설로 혼자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면서 여권이 신장되었지만, 몸쓰는 일을 하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게 천박하다 하여 '창x'라고 욕하기도 했습니다. 근대 영국 귀족가를 그린 막장드라마(재미는 있습니다) <다운튼 애비>를 보시면 귀족가 노부인이 변호사에게 '주말'(weekend)이라는 단어를 듣고 무슨 개소린지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군사적인 면을 보면 자세히 들어가면 유럽 국가마다(정확히는 지역마다, 민족주의가 제대로 퍼진게 나폴레옹때부터입니다. 가문이 국가보다 중요했죠) 다르지만 보통 귀족이 왕의 군대에 종군해야 하는 의무는 대략 연 40일로 제한되고, 그 이상이 되면 급여를 지급해야 했습니다. 영지군이라는게 얼마나 데려오냐는 영주 맘이었죠. 많이 데려가서 죽어버리면 해당 영지는 망하는 것이고, 전쟁이 조금만 길어져도 농토가 황폐화되기 때문에 오히려 용병이 더 싸게 먹혔습니다. 당연히 밭이나 갈던 농민보다 신의와 창질이 유일한 돈벌이인 용병이 더 잘 싸웠구요.

    찬성: 6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2 TailD
    작성일
    18.05.17 12:38
    No. 4

    왕이야 항상 궁(court)에서 자문기구와 함께 업무를 보긴 했습니다만, 현대 전문직이나 관료들처럼 격무에 시달린다고 할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큰그림을 짜고 최종 안건의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고 힘든 일이겠습니다만은, 사냥도 다니고 할거 다 했습니다.

    귀족의 군사적인 면에 대해서 하나 더 이야기하면, 근대 영국의 경우 육군 장교단은 하나의 사교클럽같은 곳으로 서로 추천하고 일정 기간 후 가격표(...네 세계를 지배하고 거문도에 놀러왔다 돌아간 애들 맞습니다)(공식적인 자료로 남아있습니다!)에 있는 가격을 내면 진급할 수 있는 신사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장교는 신사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자리 하나 사서 제복입고 직위는 반납한 채로 사교계에 놀러다니기도 했습니다. 전시에 장군들은 티타임도 깔끔하게 가지고 애인들을 만들고 놀기도 했죠.

    이들은 물론 귀족의 전통에 따라 전투시에는 돌격시에는 항상 다른 장교들과 앞에 섰고, 전선을 돌아다니며 지휘했습니다.

    찬성: 4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2 TailD
    작성일
    18.05.17 12:55
    No. 5

    + 그럼 관료적인 일은 누가 했냐? 놀랍게도 영지마다 있는 교회에서 주민대장도 작성하고 주민들 관리도 하고 그랬습니다. 세례받고 주말마다 예배드려야 하니까요. 지역마다 다르겠습니다만,

    이들이 관료보다 봉토 위주의 지주계급에 가깝고 지역이 국가보다 중요하다고 말씀드렸는데, 이해하기 쉬운 증거로 한자동맹이라는 상인조합이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던 것이나, 구호기사단(성 요한의 예루살렘과 로도스와 몰타의 주권 군사 병원 기사단)이 기사단 명의의 영지를 가지고 있었고, 꽤 최근까지도 몰타 섬을 영지로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또, 신성로마제국 초기이후 지역색이 강했던 독일지역은 근대까지도 서로 말이 안 통할 정도로 언어가 달랐습니다. 한국에서도 제주도가 그랬죠.

    찬성: 5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0 구운베이컨
    작성일
    18.05.20 18:49
    No. 6

    질문에서 이정도까지 세세하게 답변해 주시는 분이 있을지 몰랐네요.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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