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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v.22 강무(姜武)
작성
06.10.29 02:58
조회
1,552

※주의!

이것은 번역본이 아닌 영문판임으로 번역기와 기본 영어실력으로 번역한 후 친척과 함께 어색한 부분을 임의 또는 알맞게 수정한 것임을 밝힙니다.

서문 일부

중세유럽의 군대는 알렉산드로스의 공격을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화약의 발명조차도, 19세기 중엽 소총보병이 표준무기가 되기 이전까지 전쟁의 수행에 그다지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지 못하였다. 이 책의 마지막장에서 나는 알렉산드로스가 늘 발휘하였던 지휘력이 그를 존경해온 나폴레옹을 대신해 프랑스군을 통솔하였더라면 프랑스는 워털루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으리라는 사실을 제시하고자 한다.

제6장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현대전쟁의 기원

3.워털루 전투와 알렉산드로스 대왕 일부

워털루 전투는 유럽역사의 결정적인 전투 중 하나였다. 이 전투를 두고 수없이 많은 가정이 세워졌지만 여기에서는 만약 알렉산드로스와 마케도니아군이 나폴레옹과 프랑스군 대신 워털루에서 싸웠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가정해본다.

알렉산드로스도 나폴레옹과 똑같은 전철을 밟았을까? 먼저 병력수와 전장의 크기를 포함하는 전투의 규모가 알렉산드로스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음을 기억해야한다. 그가 싸웠던 전투에서 전선의 길이는 비슷했고 알렉산드로스 그의 적들은 웰링턴의 군사보다 많았다. 화약은 그에게 새로울 수도 있겠지만 그는 비슷한 노포를 야전용으로 사용한 적이 있다.

사실 워털루 전투에서 승패를 결정지은 것은 포격이 아니었다. 전투는 기병과 보병들에 의해 주로 치러졌으며 백병전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포는 이것을 막지 못했다.

모든 전쟁사 관련 사학자들은 나폴레옹과 네이장군이 전투 중 몇 가지의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리고 오늘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우리들은 알렉산드로스가 그중 어느 하나도 실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물론 알렉산드로스였다 해도 나폴레옹과 같은 결과를 냈을 수도 있지만 그의 경력에서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겪었던 것과 같은 운 안 좋은 날은 찾아볼 수 없다.

일이야 어떻든 글의 요점은 알렉산드로스가 나폴레옹보다 더 뛰어난 장군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알렉산드로스가 유기적인 합동운용의 법칙을 잘 이해하고 실행했으며 그와 그의 아버지가 고대 중동에서 받아들인 개념을 그리스 특유의 중장보병들에 도입시켜 마케도니아 의 팔랑크스를 개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폴레옹의 첫 번째 실수는 승리를 확신한 나머지 프로이센군이 영국군을 지원하러 다가오는 와중에도 불구하고 웰링턴에 대한 공격을 늦춰버렸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은 알렉산드로스는 나태하지 않았고 적의 틈을 포착하는데 천재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라니코스와 이소스에서 그는 행군대형을 전투대형으로 바꾸고 지연도 하지 않고 곧바로 공격에 나섰다. 다른 전투에서도 그는 전술적 범위 내에서 열정적으로 적을 향해 움직였다.

게다가 알렉산드로스는 워털루 전투에서의 프랑스 군과 같이 다른 병종들의 지원 없이 단일병종만을 가지고 공격에 나서지는 않았다. 네이의 보병의 지원 없는 기병돌격은 또 다른 프랑스군의 실수였다.

마지막으로 알렉산드로스는 나폴레옹처럼 전선의 배후에서 대기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웰링턴과 네이는 전투를 하는 내내 자기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었다. 네이는 말 다섯 마리를 갈아탈 정도였지만 나폴레옹은 전선의 뒤로 너무 물러나 있어서 전술적인 움직임에 간섭할 수 없었다. 네이가 기병만으로 공격에 나섰다는 말을 듣고는 나폴레옹은 화를 냈다지만 그는 너무 배후에 있었던 탓으로 네이의 움직임을 미리 막지 못했다. 결국 전선의 배후에 지나치게 물러나 있어서 전선을 통제를 못한 것이 결정적인 패인인데 이것은 알렉산드로스 였다면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진가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단순히 알렉산드로스를 나폴레옹과 같은 자리에 놓고 생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투에서 마케도니아군이 프랑스군 대신 싸운 것으로 설정을 해보았다. 폭발하는 화약무기는 중요한 변수가 될 수도 있지만 정신적인 효과는 제쳐놓고 실제로 전투에서 위력적인 대포는 마케도니아 팔랑크스보다 더 깊은 진형을 이루던 프랑스군이 영국군 정면 20m 앞까지 다가올 동안 그들을 전혀 막지 못했다. 마케도니아군 역시 이것을 해냈을 것이다.

대포와 마찬가지로 보병용 머스킷은 특별히 위력적인 무기가 아니었다. 100m 바깥에서는 쓸모가 없었으며 50m 내에 와서야 효과적이었지만 나폴레옹 시대에는 적의 흰자위가 보일 때까지 쏘지 않는다는 원칙이 널리 지켜지고 있었고 프랑스군은 웰링턴이 그의 병력으로 맞서기 전 영국군의 20m 정면까지 도달했다.

정면 20m라면 마케도니아의 4m짜리 창은 프랑스 근위대보다 웰링턴의 영국군에 더 큰 위협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영국군이 근위대에 사용한 것과 같은 일제사격 뒤의 총검공격은 마케도니아군을 무너뜨릴 수도 있지만 상식적으로 첫 사격에 마케도니아군을 무너뜨리지 못하는 이상 팔랑크스를 향한 총검 돌격은 무익한 일이었다. 머스킷의 재장전시간과 이열에 불과한 머스킷총병들을 생각한다면 50m 이내 마케도니아군의 돌격은 영국보병들에게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마케도니아군이 일제사격으로 큰 피해를 입는다고 하더라도 벽병전에서는 마케도니아군이 영국보병들보다 월등했으므로 여전히 승기는 마케도니아군에 있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전초병들이라면 고대에서의 전투보다 워털루에서의 영국군과의 전투에 더욱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활과 투석기는 머스킷보다 더 긴 사정거리를 가지고 있는데다 19세기 초의 병사들은 갑주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기병전인 경우 영국군의 등자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마케도니아 기병들의 승마술은 우수했으며 게다가 그들의 장창은 위력적인 무기였다. 프랑스 창기병들은 워털루에서 영국군을 애먹인 병종이었으며 다음해 영국은 이를 따라 창기병부대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알렉산드로스의 마케도니아군이 웰링턴을 물리칠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는 없다. 이런 식의 비교는 제한된 상황 하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실효성도 없고 데이비드 첸들러가 말한 것처럼 지나간 전투는 다시 싸울 수 없다.

전투를 분석할 때는 정신적인 요인과 물리적인 요인을 따로 구분해야 한다. 군사들의 사기와 지휘관의 자질은 첫 번째 분류에 들어가고 군대의 숫자와 무기, 전술, 편제 등은 두 번째로 분류된다. 전투의 승패는 그중 어느 하나만의 결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여러 가지 요인들이 합쳐 일어난다. 전체를 다 알기 위해서는 단순한 평가는 실용적으로는 불가능할 수도 있다.

한 시대의 것을 다른 시대의 것과 비교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지만 비교 없이는 배울 수 있는 폭이 더욱 적어질 것이다. 워털루에서 알렉산드로스가 어떻게 싸웠건 그는 2000년전에 이미 전쟁을 상당한 수위까지 끌어올린 인물이다. 후대의 로마인들은 보병들의 편제를 더욱 향상시켰지만 고대의 그 어떤 장군들도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같이 전쟁의 토대를 쌓지는 못했다.

초기 그리스와 마케도니아의 전술은 타문명들에 비해 형편없었지만 보병의 질만은 월등했고, 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는 이 우수한 중장보병과 페르시아의 전술적 유연성을 결합시켜 과학과 편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의 시대까지 이어지는 전술적 기초를 마련했다.

알렉산드로스가 세운 전술의 기초는 20세기에 들어서야 많은 병사, 비행기, 잠수함, 기관총, 빠른 소형연사무기 그리고 핵무기에 의해 전쟁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18세기의 근대군과 싸워도 이길 수 있는 알렉산드로스의 군입니다. 비록 로마의 스피키오가 피로스의 병참과 알렉산드로스의 전술을 조합해서 한니발을 이겼다고 하지만 결국 알렉산드로스의 환상적인 임기응변, 전략을 이기지 못할 겁니다.

내용출처 : [기타] Arther Ferrill의 the origin of war에서 인용

출판년도 1985년

washington 대학 고대전쟁사 강의

아더 훼릴 교수

1938년 미국 Enid 출생

1960년 학사학위취득

1964년 고대사 연구로 박사학위취득

현재 역사학 교수로 재직중이며 특히 고대전쟁사를 담당하고있다.

한국 번연본 번역자 약력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졸업

육군 제 3사 국제정치학 교관역임

미국 유나이티드 오브 텍사스 엣 austin 졸업(정치학박사)

연세대 중앙대 이화여대 강원대 정외과 및 대학원 강사


Comment ' 1

  • 작성자
    Lv.13 한빈翰彬
    작성일
    07.01.21 02:35
    No. 1

    글쎄요, 지금 님이 말하는 것이 마케도니아의 중장기병을 워털루 전장에 옮겨놓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웰링턴의 승....이랄수밖에는 할 말이 없군요.

    머스킷으로 무장한 방진에 네가 돌격하다가 무너졌지요. 그런데 그보다도 훨씬 무겁고 창을 쓰는 마케도니아 중장기병이라니....

    게다가 알렉산드로스 하나만이 이동했다 해도 문제가 많습니다.
    전술이라는 것이 워낙 변수가 많다 보니 꼭 그가 그 틈을 놓치지 않았을거라는 확언도 할 수 없었을뿐더러 그 때 프랑스는 그랑드 아르메의 장기인 오더믹스진형을 펼치기 위한 필수조건인 산병이 에스파냐와 러시아에서 많이 소모되어 있었지요.
    꼭 알렉산드로스가 나폴레옹 대신 전장에 참여했다고 승리한다고 말할수는 없을 겁니다. 어차피 가정이니까요.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가정은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역사는 결과가 보여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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