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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3

  • 작성자
    Lv.54 궤에에엑
    작성일
    14.02.04 22:29
    No. 1
  • 작성자
    Lv.15 pan레닐
    작성일
    14.05.08 14:44
    No. 2

    어떤 의미로 그리 표현하신지 잘 모르니 말하긴 그렇지만 삼황오제는 중국의 춘추시대보다 훨씬 이전에 있었던 이들입니다. 이 글의 내용만 보면 오해하기 쉬운데 삼황오제란 중국의 문명이 시작된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저희나라로 치면 단군왕검 수준의 인물들이지요.
    그 삼황오제 이후에 (요와 순이 오제인지 아닌지 저도 헷갈리네요) 하나라가 시작되고 그 하 이후에 은(상) - 주 - 춘추 - 전국 - 진 등으로 이어지는 것.

    그리고 친왕과 군왕은....저도 모르던 것인데 (그냥 왕으로만 통일시켜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시대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나라까진 왕은 천자를 가리켰고 춘추시대에 주왕실의 권위가 떨어지며 초에서 먼저 왕을 칭하고 그 다음 전국시대에는 다같이 왕먹음, 이후 한나라에서는 황족인 유씨만이 왕이 될 수 있도록 하라는 유방의 말이 있었죠.)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 베놈텅
    작성일
    14.11.14 06:11
    No. 3

    저희나라 -> 우리나라......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1 별명뭐하지
    작성일
    14.06.26 23:11
    No. 4

    제 1 시민(프렌켑스)이란 칭호는 로마의 첫 황제인 옥타비아누스가 원로원의 견제를 피하기 위해서 사용한 호칭입니다. 로마의 제정 초기에는 황제의 권력이 원로원보다 약했으니까요.

    서로마 제국이 게르만족에게 멸망하고 그자리에 세워진 게르만 국가들중 프랑크 왕국의 궁재(재상)이었던 카롤루스 마르텔이 반란으로 왕위를 차지하고 클로비스 왕조를 개창. 그 후 그의 자손인 카를 1세가 서유럽의 기독교 지역을 통일했으며, 그중 롬바르드 지역을 교황에게 기증하자 명목상의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비잔티움 제국의 간섭을 받던 교황인 레오 3세는 카를 1세에게 서로마 황제의 관을 대관 하면서 신성 로마 제국의 명목상 부활을 알리고 비잔티움 제국의 간섭에서 벗어나게 되었죠.

    왕은 그보다 훨씬 전인 그리스의 아테네나 스파르타도 왕정이었습니다. 또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왕의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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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별명뭐하지
    작성일
    14.06.26 23:13
    No. 5

    여담이지만, 최초의 제식 무기인 석궁을 사용해 전국시대를 종식시키고 그 엄청난 권력을 자랑하던 진시황은 주치의에게 수은으로 관광당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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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5 Harmaged..
    작성일
    14.07.28 23:17
    No. 6

    준남작을 빼먹으셨군요

    물론 준남작이란 작위는 사실상 평민이기는 하나 세습이 가능한 작위이며 부계세습을 원칙으로 합니다 물론 평민이나 다름없지만 대부분 귀족취급을 받는경우가 많죠

    뭐 사실 말하자면 대부분의 판타지 소설에서 빼먹는 경우가 많고(기사는 꼭 들어가도 준남작 나오는 판소는 많이 못봤습니다)현실에서도 준남작이란 작위의 상설이유가 군대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서 였다니...사실 안넣어도 상관없는 작위이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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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28 루이캇트
    작성일
    14.08.15 19:06
    No. 7

    오등작은 우리 나라도 고려때 썼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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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 별명뭐하지
    작성일
    14.10.12 00:16
    No. 8

    아 마르텔이 아니라 그의 아들 피핀이 클로비스 왕조가 아니라 카롤루스 왕조를 세웠네요, 또 신성 로마 제국이 아니라 서로마 제국이었습니다;;; 다시쓰긴 귀찮고 아 쪽팔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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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45 眞月譚月姬
    작성일
    15.04.30 22:22
    No. 9

    황제를 지칭하는 용어인 엠페러는 라틴어 임페라토르가 어원인데 임페리움을 소유한자라는 뜻입니다. 임페리움은 최고명령권으로 군통수권을 나타내는 단어이며 집정관이나 법무관 또는 집정관이나 법무관을 역임하고 대행집정관 혹은 대행법무관 자격으로 속주에 나가있는 총독들이 행사하였습니다. 초기 로마공화정때는 한명의 집정관은 로마에 근무하고 나머지 한명의 집정관이 2개 군단을 지휘하며 외정을 나가거나 로마를 방비하였기 때문에 집정관직에만 임페리움이 부여되다가 로마의 팽창기와 맞물려 법무관직이 신설되고 잦은 외정과 식민지 건설로 전직 집정관혹은 법무관들을 총독으로 파견하고 평시에는 2개군단을 지휘하고 전시에는 4개군단혹은 6개군단을 지휘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오면서 임페리움은 주로 군통수권을 임페라토르는 군통수권자를 지칭하는 단어로 완전히 자리매김하게 되죠. 카이사르나 폼페이우스 술라 마리우스 모두 집정관 혹은 대행집정관 자격의 총독으로서 정복전쟁을 수행했죠. 즉 당시 가장 막강하고 명예로운 칭호였으며 그러한 까닭에 카이사르부터 후대의 황제들까지 꼭 자신의 긴 칭호중에서도 임페라토를 특별히 중히 여기게 되고 이러한 것이 최고 권력자의 대명사로 자리잡고 나중에 엠페러라는 황제고유 명사로 발전하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짜르나 카이저 같은 명사들은 모두 카이사르가 어원인데 후기의 황제들이 저마다 자신들이 카이사르의 계승자라면서 카이사르란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이어져 황제의 고유 명사가 된것이죠. 이것만 봐도 당시 황제의 무수한 칭호중에서도 임페라토르와 카이사르가 차자하는 위상을 알수 있겠죠 . 카이사르란 칭호는 황제의 정통성을 임페라토르란 칭호는 황제의 권력을 상징했으니 까요. 프린켑스나 아우구스투스 폰티펙스 막시무스 호민관등 다른 황제의 칭호들도 중요했지만 후기로 가면서 임페라토르와 카이사르가 강조되면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떨어졌기에 황제의 어원이 될수 없었죠. 그렇기 때문에 황제가 제1시민(프린켑스)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맞지 않은 설명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5 眞月譚月姬
    작성일
    15.04.30 23:08
    No. 10

    애초에 로마는 왕정을 폐하고 공화정을 열었던 국가로 왕과 같은 절대자의 출현을 오랫동안 경계하였습니다. 더구나 로마의 확장과정에서 그리스의 문물이 들어오면서 이러한 시민 민주정 공화정 이데올리기는 더욱 강화되었고, 많은 정무직을 선거로 선출하기에 이릅니다. 또한 재무관 이상의 공직을 은퇴하고 일정한 재산을 보유한자는 자동으로 원로원 의원으로 등재되면서 원로원 또한 막후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임페리움을 보유한 권력자들을 견제하게 됩니다. 또한 최고의 관직인 집정관 또한 선거로 선출되기에 비록 귀족과 기사계급이 주로 선출된다지만 혈통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중에 선출되고 1년의 임기를 마치면 다시 시민으로 돌아가기에 집정관도 우리와 같은 시민이다 인식이 보편화 되었고 원로원 민회 호민관으로부터 끊임없이 견제를 받았기 때문에 태어날때부터 혈통으로 정통성이 보장되는 동양의 황제와는 그 태생부터 다르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후기 원수정 제정하의 로마에서는 황제가 호민관도 하고 집정관도 하고 폰티펙스 막시무스(최고대제사장)도 하고 원로원 의원도 하고 속주총독도 하고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아우구스투스 프린켑스 카이사르란 칭호를 줄줄이 사용하면서 어떻게든 자신은 일반시민이 아니라 특별하다면서 더 권위를 더할려고 한것이죠. 그래서 제정하의 황제는 특별해졌지만 그래도 태생이 그래서 동양만큼 절대적이지 않았고 그것이 그 전통이 쭉 이어졌다고 할수 있죠. 또한 설명중 맞지 않은것이 카톨릭 국가중 강력한 국가기독교의 이익을 위해 힘쓰는 국가의의 왕을 교황이 추대하는 것이 안닙니다. 중세시기는 제국은 오직 로마 하나고 당연히 황제도 로마의 황제만 그 권위를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제국이 동서로 갈라지고 동로마 제국은 당연히 오리지널 로마이니 뭇 국가들이 황제로 인정하였고, 서로마 제국은 망해 없어졌다가 샤를마뉴가 서로마의 영토를 회복하면서 로마에서 교황과 많은 유력자들의 추대로 서로마의 계승을 인정받고 황제로 인정받은 것이죠. 그후 신성로마제국은 샤를마뉴로 ㅂ부터 소로마의 계승자 자리를 물려받아 황제로 추대된 것이죠. 그러나 오리지널인 동로마와는 달리 자기들은 짝퉁이므로 교황이 서로마의 명맥을 계승했다고 승인 해줘야 비로서 황제가 되는거고 승인 안해주면 황제란 칭호는 못쓰고 독일왕이란 칭호만 사용할수 있었습니다. 즉 제국과 황제위는 기독교나 교황 국가의 국력이 아니라 오직 로마의 계승여부로만 인정을 받았고 오리지널인 동로마와는 다르게 망해버린 서로마를 계승해야 하는 쪽에서는 짝퉁을 진짜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교황의 권위를 빌린 것뿐이란 겁니다. 동로마도 망하면서 동로마 계승은 러시아에서 하는데 동로마 왕녀와 블라디미르가 결혼하면서 러시아에 동로마 황제의 피가 흐르게 되었고 자연히 러시아가 동로마의 계승자로 인정받게 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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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21 묵초(默初)
    작성일
    15.06.23 16:43
    No. 11

    프랑크 왕국이 갈려나가면서 재밌어지죠. 독일이 신성로마제국 타이틀을 가져가면서 독일왕은 황제로, 서열이 낮은 프랑스는 왕국으로, 프랑스보다 혈연관계상 서열이 낮은 영국왕은 대공으로. 이 관계를 기반으로 서열관계가 재편됩니다. 공작, 후작, 백작으로. 노르망디는 대공으로, 플랑드르는 백작으로 등등.. 저도 정확히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예를들어 노르망디 대공은 프랑스왕의 봉신이면서 동시에 영국 대공의 봉신일 수도 있고, 하지만 노르망디 땅은 프랑스에 속한다는 식. 노르망디 자체가 이민족한테 내준거라서 특별하게 대공이라는 작위를 준 점. 땅에 대해서 거긴 프랑스 땅이지만, 초창기엔 거의 지배권을 행사하지 못한 점.
    백년전쟁과 종교전쟁이 완전히 끝나고서야 민족주의가 싹텄으니, 중세 시절에 작위를 도식화 하는 건 너무 힘든 작업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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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Lv.16 TailD
    작성일
    18.05.17 12:41
    No. 12

    선제후가 대공이 아닌경우도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6 TailD
    작성일
    18.05.17 12:42
    No. 13

    그리고 관직이 아니라 작위입니다. 조선도 품계와 직위는 달랐죠. 중위 - 중대장 이런관계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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