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희가 사용하고 있던 '석궁' 이란 표현은 틀린 것이라고 합니다. 애초에 이름부터가 앞에 돌 석이 붙어있는데 사실 그 무기는 돌이랑은 전~혀 관계가 없지요. 비슷하게 생긴 탄궁(돌을 발사하는)것을 석궁이라고 번역했는데, 애꿎은 십자궁까지 석궁이란 표현으로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대로 번역하자면 십자궁이 더 맞겠죠.
그러니 저희는 십자궁을 씁시다. 석궁은 오역의 산물입니다.
형태는 대략 활을 나무 막대 위에 올려놓은 형태인데, 여기서 활 몸체는 프로드(prod)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목재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안에 뿔 같은것을 덧댄 복합재질이 등장해 십자궁의 사거리를 크게 늘렸습니다.
강철 프로드를 지닌 십자궁은 흔히 철궁이라고 부르는데, 파괴력을 제외하고도 흔한 목재 프로드보다 좋은 점은 100%방수이기 때문에 내구성이 좋았고, 복합재질의 프로드보다 재료가 구하기 쉬웠습니다. 군용으로는 강철 프로드가 훨씬 편했기 때문에 공방에서 대량으로 한꺼번에 주문할 수 있었기 때문에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물론 단점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 일단 철이다 보니 매우 무거웠고, 영하의 날씨로 가면 오히려 강철 프로드 십자궁이 불리했습니다(이유는 말 안해도 아시겠죠?)
초창기에는 그냥 시위를 당겨서 락(시위를 고정하는 장치)에 걸던가 좀 크다 싶으면 십자궁을 아래로 내려서 활 몸체로 두 발로 고정해 허리의 힘까지 이용해 고정축에 걸었습니다. 나중에는 여러가지 재질의 십자궁이 등장하면서, 대부분은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장전하기 힘들 정도의 물건들이 나왔기 때문에, 다양한 장전 방식이 사용되었습니다.
1. 벨트 앤 클러
심플하고 저의 비루한 영어상식으로도 충분히 알아들을 만한 이것은 말 그대로 허리띠에 갈고리가 달린 줄을 매달고, 그 갈고리를 시위에 건채 발로 활대를 밟고 뒤로 젖혀 장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좀 원시적이긴 했지만 특별한 기계장치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2. 염소발 장치
염소발 장치라고도 부르는 레버의 원리를 이용해 장전하는 방법입니다. 염소발 장치는 약간 복잡했기 때문에 비쌌지만 사용방식이 쉬웠고, 더 강한 십자궁에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주로 마상에서 사용하는 십자궁이 이런 장전방식을 채택했는데, 다른 방식들은 죄다 마상에서 하기는 불안정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시위를 고정한 레버를 사용자 쪽으로 힘껏 당겨주면 시위가 당겨지면서 고정축에 걸리는 심플하기 그지없는 디자인이었습니다.
3. 윈들러스 방식.
이것은 십자궁 개머리판 쪽에 장착해서 양 손으로 연필깎이 돌리 듯 줄줄줄 감아주고, 다 감으면 떼서 쏘고, 다시 장착해서 장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갈고리 달린 끈을 시위에 걸어주고 열심히 감아주면 윈들러스 원통이 회전하면서 시위를 당깁니다. 이 방식은 아주 강력한 것까지도 장전할 수 있는 방식이었지만 너무 거추장스럽고, 무거워서 공성전일 때 사용되었습니다. 제노바 아바레스티어들은 1200파운드의 장력으로 450야드의 사거리를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사거리 출처: 백돼지님의 이글루)
십자궁은 일반 활에 비해 연사력이 떨어지긴 하지만 강력한 파괴력과 관통력으로 보완했고, 좀 흉악한 물건들은 먼 거리에서 기사의 방패와 갑옷을 한 번에 관통시킬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장궁이 그 정도의 파괴력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장궁의 문제는 궁수들이 웬만큼 오래 훈련을 받지 않는다면 파괴력 문제가 아니라 잘 맞히지도 못해요, 십자궁은 그냥 덜컥 쥐여주고 일반인들도 웬만큼의 명중률이 나왔습니다. 조준기도 달려있는 물건이 있는데요 뭐...
영국 장궁병과 프랑스 군의 제노바 십자궁병이 붙은 사례가 있었는데, 제노바 십자궁병이 패배했습니다. 하필이면 비가 오고 습한 날씨에, 장궁병들은 가볍게 시위를 활에서 분리해 젖지 않게 보관했지만, 십자궁병은 그럴 방법이 없으니 고스란히 다 젖어버렸고, 십자궁의 장점인 긴 사거리가 무력화되니 신나게 털렸습니다. 장궁병들이 높은 위치에서 싸웠다는 것도 있고, 연사력으로 일종의 화살비를 만들어서 낮은 위치에 있어 몸을 숨기지 못한 십자궁병들을 그대로 화살비에 익사시켰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아참, 빼먹을 뻔 했는데 십자궁은 일반 화살이 아닌, 볼트, 혹은 쿼렐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십자궁 전용 화살을 씁니다. 특이하게 촉의 단면이 사각형이라 프랑스어로 사각형인 carré에서 왔다고 합니다. 발사한 순간부터, 볼트는 속도와 관계 없이 동일한 비율로 중력의 영향을 받으며 낙하합니다. 화살의 운동방식과는 많이 다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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