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동은 애매한 작가이다.
나이로보나 글쓰기를 시작한 걸로 보나...
이미 중견이라 불러 부족함이 없다.
드래곤북스에서 시작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의 글은 너무 유했다.
부드럽고 선이 고와서 무협이란 틀에 안주하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해서 그의 글은 계속된 실험이었다.
그의 글은 이제 살아있다.
그러나 연속된, 계속된 글에서 그는 자신의 역량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 지식도, 능력도... 그 어미없을만큼 사람의 뒷통수를 치는 유머도 그의 글에서는 가진 만큼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
철사자나 그 뒤를 잇는 글.
모두가 잘 쓴 글임에도 묘하게 판매에서는 그다지 각광을 받지 못했다.
잘쓴 글과, 팔리는 글의 경계선에 있었다고나 할까.
진부동이 쓴 판타지는 과연 어떨까?
그의 이번 글은 잡탕이다.
단순히 판타지라고 하기는 애매하다.
총이 나오고 대포가 나온다.
이렇게 대놓고 나와도 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구 쏘아댄다.
수천의 기병이 대포에 몰살하고 구식소총에 피를 뿌린다.
마치 워털루나 남북전쟁의 장면, 혹은 그 보다 조금 더 이른 영국이나 스페인의 무적함대 시절을 보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아니 중세라기 보다는 그때가 배경이라고 함이 더 맞겠다.
무협에서 총 한 자루가 등장하면 그 순간, 소위 맛이 간다는 독자가 많다. 본인도 마찬가지다.
신기영에서 출동해서 화포를 쏘고 화승총에 무림고수가 죽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 참혹함을 말하기 힘들다.
무협의 상상, 그 낭만이 모조리 총 한 방에 날아가버렸다.
실제로 중국무술 고수들은 그렇게 아편전쟁 때 서양의 화포에 죽어갔다는 이야기도 무성하다.
그러나 꼬마가 쏘는 총 한 방에 평생을 바쳐 이룩한 무공이 쓸데없이 허무하게도 끝나버린다면 무공을 익혀 무엇하겠는가.
최소한 매트릭스보다는 나아야 하지 않겠나.
진부동은 여기에다 판타지의 미법과 무공을 섞어 버무렸다.
위에서 쓴 것처럼 잡탕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 기묘하다.
전혀 거부감 없이 읽힌다.
그렇게 쏴대는, 빗발치는 총탄 속을 뚫고 맨주먹으로 검 하나로 종횡하는 그를 보는 느낌은 시원하다.
앞을 가로막는 놈?
그냥 패고 본다.
단순히 패는 게 아니라 한 방이면 죽는다.
그래, 잔인하군...
그런데 이게 또 묘하게 잔인하기보다는 통쾌하다.
잔인을 표현하기보다는 스피드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스키퍼는 보기드문 해양판타지다.
독자는 참으로 변덕스럽다.
새로운 장르, 새로운 변화를 요구한다.
설문을 해도 질렸다! 제발 뭔가 다른 걸 써줘!!!!!!
하지만 막상 책을 낼 때 전혀 새로운, 지금까지 있던 형식을 파괴하거나 수용하더라도 지금까지 보던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를 그리면 심드렁해진다.
이건 전적으로 독자의 문제다.
독자가 새로운 글, 새로운 형식에 열광한다면...
독자들은 신나게 새로운 형식의 글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작가들은 거기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나가면 깨진다.
그런면에서 이 스키퍼도 예상보다 많이 팔렸다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글은 재미있다.
2권 후반에서 강렬한 포스가 살아나지 않아 아쉽고
3권에서 너무 전문적으로 나가서 작가들이 이건 자료의 보고로군! 하고 눈을 번쩍일 글이 되어 매우 난감했지만 4권에서 그는 그 부진을 신나게 만회하여 신바람나는 글을 썼다.
과연 그는 어떤 행로로 자신을 찾아갈까?
해적왕이 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 걸까?
이제 그걸 기다려도 괜찮을 듯 싶어 보인다.
덧말:
그의 이번 글은 철저히 즐거운 글이다.
가볍고 신나는 글이다.
더해서 사랑이 있고 훈훈한 사람이 보이면 더 좋겠지만..
현재는 즐거움에 중점을 둔 글이다.
연화정사에서 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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