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임영기
작품명 : 독보군림
출판사 : 청어람
강호무림 삼천 중 중천의 절대자 설무검은 최측근들에게 배신을 당해 손의 힘줄이 끊기고 두 방법으로 단전이 파훼당합니다.
그리고 그의 동생 또한 그 여파에 휘말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합니다.
이 둘은 서로가 죽은 줄 알지만 각자의 길을 가며 복수를 꿈꿉니다.
강호무림의 절대자의 위치에서 순식간에 무공을 전폐당한 범부로 전락한 스물 아홉 설무검.
서책에만 빠져 한평생 고생을 모르고 살아오다 순식간에 처지가 뒤바뀌어 쫓겨다니게 된 열두살 설영.
너무도 완벽히 성공한 반란에 의해 지독히도 암울한 처지에 빠진 이 두사람이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소설은 한마디로 소름끼치도록 재미있습니다.
이건 사실 어떤 면에서 경악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한 소설에 두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양쪽 방향 모두로 재미를 주어야 하며 균형이 조금만 어긋나도 한 주인공이 다른 주인공의 재미까지 먹어치우게 됩니다.
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은데 다른 주인공의 이야기가 튀어나온다면 몰입도가 떨어지고 애가 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소설을 읽기 전 가장 부담스러웠던 것은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처음의 시선이 곧 뒤집어지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면에서 반전에 가까웠고 그만큼 충격적인 재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주인공이 두명이라는 것이 오히려 소설의 재미에 상승작용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두 주인공이 서로 다른 목적을 향해 가고 있고 충돌이 불가피하다면 독자로선 혼란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애증을 어떻게 분배해야 할지 어렵게 되고 부딪치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기 마련이니 한 주인공이 누려야 할 것을 다른 주인공이 뺏는 듯한 박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자고로 산 하나에 호랑이가 둘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선 두 주인공이 같은 길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형제지만 서로 많은 것이 다릅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재능도 다르며 용모도 다르고 나이대도 다르고 서로가 힘을 쌓는 위치마저 다릅니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니지만 공통의 목적을 지니고 있기에 이들은 둘이자 결국 하나입니다.
어린 동생은 도망치다 기루로 스며들어 여자 행세를 하며 성장하고, 형은 저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여 파훼당한 단전을 복구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합니다.
이 둘의 이야기는 양쪽모두 하나의 소설을 보는 듯 하며 서로 다른 매력으로 독자를 휘어잡습니다.
만약 단 하나의 주인공만 등장했다면 과거의 숱한 소설과 다를바 없는 편향된 재미를 주었겠지만 서로다른 매력의 두 주인공에게서 달리 충족되는 기대감과 만족감이 혼합하며 더욱 진화한 재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놀라운 점은 이젠 더이상 주인공의 무력상승 과정에 재미를 느끼는 시기가 지났는데도 그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과정에 흥미진진함이 항상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천하제일기재성향의 발전과정을 밟고 있는 동생 설영. 그의 능력은 거침없이 상승세지만 독자는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여자만이 발탁되고 여자만이 교육받는 그 곳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남자임을 숨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록 작가가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독자는 주지하고 있는 상황이며 이로인해 그가 겪는 모든 상황에는 흥미진진함이 함께합니다. 언제 들킬지 모르는 긴장감을 독자가 스스로 만들어 느끼게 됩니다.
이번엔 천하제일노력파의 발전과정을 밟고 있는 설무검. 그의 앞길은 너무 거칠게 많아서 탈입니다. 복잡한 관계와 안정치 못한 공간을 이리저리 헤매며 서둘러 무공을 회복해야 하는 그의 처지는 마찬가지로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결국 이들은 하나입니다. 때문에 하나의 목표를 두고 두마리의 용이 서로를 꼬아 지탱하며 저 위로 솟아오르는 듯한 묘한 일체감으로 어떠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든 곧바로 이 소설에 집중케 합니다.
이 둘은 비주류의 세계에서 모습을 감추고 숨을 죽이고 있으며 아직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있지만 이들은 각자의 길로 세상에 군림하여 그들의 복수를 이뤄낼 것이 분명합니다. 아픈 기억을 가졌지만 이들은 전혀 좌절하지 않고 파릇파릇하게 자신의 위치에서 펄떡이고 있습니다. 이 소설 분위기 시원하고 좋습니다.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재미는 매우 격동적이지만 소설의 내적 분위기는 너무도 안정적입니다. 역량있는 작가는 현실적인 사고방식과 인물의 진실된 감정을 존중하기에 비약적 상황이 없습니다.
이것에서 얻어지는 충족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무협적인 요소를 빼고도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될 수 있는 소설'
작가가 무협의 소설화를 지향하여 추구하는 것이지만 이로인해 오히려 무협이 더 무협답게 완성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은 비단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독보군림과 같은 작품에서 얻어지는 중후하고 실체감있는 분위기는 개인의 취향을 넘어 소설을 희노애락의 이야기로서 즐길 수 있게 만드는 하나의 커다란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다소 비현실적인 대화나 상황 전개를 통해 감각적인 재미를 이끌어내는 소설들을 폄하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 독창성과 자유성, 특유의 센스, 그리고 감각적인 사고력은 창조적인 세계관에 꼭 필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니까요.
전 해산물과 고기의 맛 중 어느게 뛰어나다고 비교하지 않습니다. 그 둘은 분야가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독보군림에서 얻어지는 것과 비견할만한 즐거움이 근래 드물었기에 전 오랫만에 구무협의 향취와 더불어 이룩되는 재미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해산물이고 고기고 간에 이건 그것을 넘어서 홀로 설만한 재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히 폭풍처럼 감정의 파도를 일으켜, 해일과도 같이 메말라버린 감각의 대지를 다시 젖어들게 만든 이 소설.
'내가 잠시 잊고 있었고 그리고 다시 읽고 싶었던 것이 이런 소설이었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소름끼치도록 재미있는 이 소설.. 일단 읽기 시작하면 절대 멈출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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