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쪽에 초원만화방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올해 아흔이 넘으신 주인양반이 몇십 년째 해오던 곳인데, 작년 말에 문을 닫게 됐죠. 거기 있던 책을 고물상에 모두 넘긴다는 말을 우연히 듣게된 영언문화사(무협쪽으로는 ‘북소리’라는 이름으로 내고 있습니다만) 편집장이 그걸 모두 인수해서 저희 집에 보냈더군요. 박스무협들로 대충 6700권쯤 됩니다. 이래서 저희 집에 있는 무협소설이 만 권을 넘어가게 됐습니다.
원래 저희 집에 무협소설만 약 5천권 정도 있었지요. 소설 쓰기 시작하면서 공부 겸 해서 중국무협소설들을 사 모았는데, 출판사나 작가들이 기증한 한국무협소설들도 있고 해서 어느새 2~3천권이 되더군요. 그때쯤 이경상님이라고, 아시는 분은 다 아시는 무협 매니아 분이 집 정리를 하면서 소장하고 있던 무협소설을 모두 저한테 넘겼습니다. 그게 또 2~3천권 됐지요. 여기에 박스무협6천권이 더해졌으니 이제 만권 좀 넘게 된 셈입니다.
북소리의 편집장과 이경상님께 이 자리를 빌어서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일전에 그 책들을 풀어서 정리하는 자리에 여러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 분이 그러시더군요.
책을 갖게되면 의무가 생긴다. 책을 보관하고 활용해야 할 의무다.
중국무협 원본소설로만 몇천 권을 소장하고 있는 분이 한 말씀이라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습니다만, 그 이야기를 듣기 전부터도 저는 한 가지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협도서관을 설립하고 싶다는 소망이죠.
1961년에 무협이 소개된 이후 우리나라에 출간된 무협소설이 전부 몇 작품이나 될까요? 저희 집에는 중국무협사를 다룬 책이 네 권 있는데, 여기 올라가 있는 제목만 해도 2천 종이 넘는군요. 물론 이게 다 우리나라에 번역되진 않았을 겁니다. 우리나라에도 꽤나 유명한 작가로 생각되는 고룡만 해도 생애 총 70편의 소설을 썼지만 번역된 건 그중 절반인 35편에 불과합니다. 중국어로 된 전집을 샀는데 총 250여권이 되더군요.
중국무협을 빼고 한국무협만 치면?
무림향에 가보시면 거기 무협도서관이라고 있습니다. 카테고리에서 한국무협만 검색해보니까 1507 작품이 나오는군요. 1507권이 아니라 1507질입니다. 평균 3권만 쳐도 4521권이군요. 저기 있는 게 전부도 아니죠. 제가 알기로 사마달님의 이름으로 나온 책만 350질 정도 되는데, 무림향에서 검색해 봤더니 158개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200여질은 누락된 셈인데 뭐 좀 깎아서 절반이라 치면 대략 1만권 정도 되지 않을까요? 예전 박스무협 형태의 책을 포함하면 훨씬 늘어나겠지요.
저는 저 책들을 모두 모아서, 작가별 년도 별로 분류하고, 보관해서 기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협도서관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죠.
무협과 관련해서 또 한 가지 하고싶은 일은 한국무협사를 정리해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렸지만 저희 집엔 중국무협사만 네 종류, 네 권의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걸 볼 때마다 얼마나 부러운지 모릅니다. 사실 중국에서도 무협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국 평자나 작가들의 글을 읽어보면 문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무협 장르에 대한, 작가에 대한 자조적이고 열등감 묻어나는 이야기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무협에 대한 연구가 있고,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그런 시도도 없었고, 그럴 필요를 느끼는 사람도 그다지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작가들조차도 자기 작품 목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드뭅니다. 근래 몇 년 사이에 대중문학으로서의 무협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연구한 서적 몇 권이 나왔지만 제도권 문학의 틀로 평가하고 재단하려니 어쩐지 안 맞는 옷을 억지로 입혀놓은 듯한 느낌이 적지 않습니다. 그 이전에 연구의 전제로서 있어야 할 자료조차 없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예림문예학신서 16권으로 나온 대중문학연구회의 <무협소설이란 무엇인가>에서 육홍타씨가 쓴 ‘시장 측면에서 본 한국무협소설의 역사’는 이 분야에서 최초로 시도된, 그리고 인터뷰와 조사로 이루어져 상당한 신뢰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인정할 수 있겠습니다.
모아서 분류하고, 보관하고, 연구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왜 그걸 하려고 할까요? 당연한 대답이지만 저는 무협소설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저는 1976년에 처음으로 무협소설을 접한 이후 번역무협을 거쳐 80년대 창작무협, 80년대 말의 공장무협, 90년대 초의 영웅문으로 촉발된 제 2차 번역무협, 90년대 중반 신무협, 2천년대의 통신무협까지 거쳐오며 독자로 살았고, 또 직접 쓰기까지 했습니다. 제게 있어서 무협은 단순한 취미 이상의 어떤 것이고, 또 단순한 직업 이상의 어떤 것입니다. 그러니 다른 분에게는 몰라도 제게는 무협이란 충분히 보관하고, 기념할 가치가 있는 어떤 것입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것은 대단한 작업이 아닙니다. 시간과 관심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한 기초작업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기초작업이 없이는 그 이상의 무얼 하는 게 불가능할 것입니다.
저는 무협이 마땅히 찾아야 할 제자리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문학으로서 대우받기를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협은 이미 충분히 문학이기 때문에 굳이 이것도 문학이라고 소리질러 요구하거나 구걸할 이유가 없습니다. 만약 저 문학이란 용어로 고고한 어떤 예술을 생각하는 분에게는 제 말이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리겠지요. 하지만 문학은 ‘재미있는 이야기’에서 시작되었고, 거기 어떤 것이 더 부가되어도 근본은 아직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무협의 제자리는 통속적이며 천박해 보이는 저 ‘재미있는 이야기’로서의 소설이라는 자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름답게 조탁된 언어, 인생과 세계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탐색, 철학과 사상의 담론과 유희들도 있으면 물론 좋겠지요. 하지만 그런 게 있어도 근본이 되는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는 소설이라면 좋은 무협소설이 아니며, 좋은 소설도 아닐 것입니다.
역으로 이가 갈리게 못 쓴 문장에, 전후좌우가 전혀 맞지않는 엉망진창 개연성, 즉자적이고 즉물적인 충동과 치기로 가득찬 소설이라도 이야기가 있으면 일단 기본은 된 소설이라고, 적어도 기본은 된 무협소설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게 무협소설의 기본이니까요.
저는 그런 면에서 80년대 무협의 원시적인 상상력과 생명력, 90년대 신무협의 치열한 고민과 반성, 2천년대 통신무협의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아마추어리즘을 인정하고 사랑합니다. 차이는 있지만 그 모든 것이 다 ‘무협’이기 때문입니다.
3류라고 해도 좋습니다. 저열한 수준의 통속소설이라고 하면 또 어떻겠습니까. 3류에는 3류의 자존심이 있는 법이고, 3류의 법칙이 있는 것입니다. 읽어서 뭔가 건지는 게 있어야 하고, 감동과 여운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있으면 물론 좋지요. 하지만 없어도 상관은 없는 것입니다. 그게 없어도 소설은 소설이고, 읽어주는 독자가 있으면 가치는 있는 것이니까요.
저는 간혹 무협소설도 문학으로서의 품위와 격을 갖추어야 하며, 당당하게 들고다니며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을 봅니다. 아마도 그런 분들은 무협소설을 문학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는 걸 겁니다. 당당하게 들고 다니며 못 보고 남몰래 숨어서 보시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분들을 볼 때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무협은 이미 소설이고, 문학이며 문제는 당당하게 들고 다니며 보지 못하는 당신에게 있다고.
왜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왜 자신의 취미에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읽어서 재미를 느끼고, 위안을 얻는 독자가 있는 이상 그 책은 책으로서의 가치를 발현하고 있는 걸 겁니다. 쓰면서 재미를 느끼고, 보람을 찾는 작가가 있는 이상 그 장르에는 가치가 있습니다.
여기에 문학적 기준을 들이대고, 수준을 가르며 여기서 여기까진 어떻고 저 아래로는 쓰레기라고 말하는 무협독자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그 태도가 문학적 기준을 들이대어 무협이란 이름을 단 모든 것은 쓰레기에 불과하며 문학도 아니라고 하는 기존 문단의 몇몇 분들, 무협을 읽지도 않고 폄하하는 다른 분들과 어떻게 다른지 말입니다.
무협은 무협일 따름이며, 그 근본 토대는 즐거움에 있습니다. 읽는 즐거움과 쓰는 즐거움 말입니다. 독자는 보다 말초적이며 근원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려 무협을 보고, 작가는 고상하고 어려운 생각 이전에 단지 쓰는 행위의 즐거움에 천착해서 글을 씁니다. 본격문학에 비하면 보다 욕구에 충실한 글 읽기와 글 쓰기의 장이 무협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박해 보일 수 있지만 그래서 보다 원시적인 생명력이 발현하기 좋은 터전이며, 그래서 거칠고 엉망인 것이 나올 수 있지만 대신 자유롭고 인간의 감정에 충실한 작품이 나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제가 습작을 할 때, 용대운씨가 제게 항상 강조해 말씀해주신 게 있습니다.
"왜 무협에 반했는지 잊지마라. 어디가 어떻게 재미있었는지 항상 기억해라. 그게 네 기본이다."
대강 이런 말씀이었는데, 이 이야기가 저는 작가뿐만이 아니라 모든 독자들에게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중고독자가 되어 어렸을 적 읽은 무협소설의 유치함에 질린 분들에게도 말입니다. 그게 무협의 기본이고, 우리 취미의 기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무협을 보다 무협답게,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무협으로서 봐주기를 바라며, 적어도 저는 그렇게 보기 때문에 곰팡내 나는 박스무협을 모으고, 그것들을 분류 정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무협도서관을 만들 그 날을 위해. 언젠가 한국무협소설사를 쥐게 될 그 때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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