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군도를 읽고서……
박준서는 이미 금와라는 이름으로 몇 개의 책을 냈다.
초보작가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이번에 그의 글을 처음 읽어보았기에 그의 글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 싶어서 몇자를 적고자 한다.
근래에 보는 원고와 글이 너무 많아서(거의 살인적이군요^^;) 길게 적지 못함이 조금은 아쉬움이 있지만……
노예선.
흑인 하나가 탈출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발목을 속박하고 있는 철갑을 끊다가 안되자 아예 자신의 발목을 잘라버린다. 가히 엽기다. 더구나, 그 발목을 자르는 부분은 실로 끔찍하다. 뼈를 바각바각…… 긁어내다가 안되자 아예 분질러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는 자유를 찾아 외다리로 물 속으로 뛰어든다.
그가 가진 괴이한 돌 하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그 뒤로 어떻게 되는지는 굳이 세세히 적지 않겠다.
새로 읽는 분들의 궁금증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만행이니까.
어쨌든 그렇게 시작된 잔혹함은 일편 이편으로 가면서 계속해서 한편의 하드고어를 보는 느낌을 연상케 할 정도로 처절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주인공은 공연히 그 와중에 휘말려서 참혹한 고문과 고통을 당해야 한다.
여기서 의문이 남는다.
과연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가면서…… 과연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를 이처럼 시험해야만 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
그런 가운데 주인공은 화산군도로 가면서 무공을 배우고 전대의 전설을 찾아 인디아나 존스를 연상케 하는 탐험을 하면서 마침내 그가 원하던 것을 얻게 된다.
말은 간단하지만, 그 과정은 상당히 실감나게 그려진다.
그 과정이 어이없거나 아예 엉망이었다면 나는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고 또 3권까지 화산군도를 읽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3권까지를 읽어 본 지금, 그의 글에서 남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대감조차 그리 크지 않다.
이미 모든 것을 끝내고, 이제 강력해진 무공으로 일처리를 하고 나면 끝이다. 라는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 것인가?
아니면 그렇지 않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일 수도 있지만 독자의 호기심을 유지시켜 나간다는 면에서 작가는 초보적인 실수를 여기에서 범하고 있다고 보인다.
중간부분을 풀어가는 것을 보자면 그에게는 글을 풀어나갈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글의 시작에서 중간까지는 분명히 심각한 문제가 있다.
소위 말하는 B급 영화의 하드고어를 연상케 하는 장면의 연속은 처음에는 섬뜩했지만 나중에는 왜 이렇게 같은 충격을 주는 형태를 권 전체를 두고 끌고 나갔는가? 라는 의문이다.
굳이 그렇게 잔인해야만 했는가라는 말을 자꾸 하는 이유는 하나다.
충격은 평범한 가운데 튀어나와야 놀랍다.
인터넷을 서핑하는데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깔깔 거리는 귀여운 꼬마요정이 손짓을 한다. 꼬마요정은 손을 흔든다. 클릭!클릭...
무심코 그것을 클릭하자 튀어나오는 무서운 귀신의 얼굴과 소름끼치는 비명소리……
밤이라면 거의 기절직전이다.
(이런 경험들이 대부분 한번은 있을 것이다.)
계속해서 두들겨 맞게 되면 감각은 무뎌진다.
그리고는 작가는 어떻게 더 잔인할까 고민했겠지만 독자는 하품을 하면서 설렁설렁 그 장면을 넘겨간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류의 장면은 길게 가면 안된다. 다른 형태로 장면 전환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은 단순한 장면 전환이 아니라 스토리 자체의 진행으로 이어져야 독자는 숨돌릴 여가 없이 끊임없이 페이지를 넘기는 힘을 받게 된다.
그런 면에서 박준서의 화산군도는 1권을 실패했다.
1권을 보지 않는데, 2권이 아무리 재미 있더라도 의미가 있을리 없다. 더구나 요즘처럼 무거운 책이 잘 나가지 않는 바에야. 3권으로 갔을 때 4권을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흐름을 남겨줘야만 했다. 물론 본인은 그것을 남겨두었을 수도 있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복수 밖에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그걸로 마무리로 가면 되지…… 라고 한다면 이 글을 굳이 쓸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건 그냥 잘먹고 잘 살았다는 초보수준의 스토리라인이기 때문이다.
그 보다는 어떻게하면 모두 끝난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독자가 다음권을 초조하게 기다릴 수 있게 하는가? 라는 것이 바로 지금 박준서에게 던져진 화두(話頭)이다. 그것이 풀린다면 박준서는 일권을 지금처럼 하드고어 일변도로 쓰지 않을 것이고 좀 더 많은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끌고 나갈 능력이 된다면 그 다음에 남는 것은 바로 스토리라인의 구성이고 빠른 장면의 전환, 그리고 적절한 배치다.
단기 4335년 초겨울을 느끼며 연화정사에서 금강(金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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