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본인의 게으름 때문에 참으로 오래 미루어져 왔습니다.
노트에 쓰기 시작한, 또 약속드린 비평 글들이 여러 개 앞부분만 시작하고 뒤를 쓰지 못하고 버려져 있습니다.
(노트가 아니라 파일이겠습니다만...)
비평에 대해 설왕설래가 있는 이 시점에 이런 부분을 한 번쯤 짚어 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시간을 짜내기로 했습니다.
훈영, 무무진경.
백연, 이원연공..
권용찬, 철중쟁쟁...
이 세 가지의 글을 모두 1-2권 혹은 3권까지 읽었습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다 그 글을 論하고 싶었습니다만, 결국 시간 관계상 4편으로 예상했던 글 중, 하나하나를 논하는 글은 쓰지 못하고 결어만 쓰게 되네요.
이 점 죄송하다는 말로 대신하고 넘어갑니다.
저 위에 있는 글 셋은 연재시 모두가 다 대단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나열 순서는 작가 나이순입니다^^
1. 들어가기 전에.
1)훈영 - 무무진경.
이 글은 산골소년 진명이 청운의 꿈을 품고 세상에 나오면서 시작합니다.
무무진경이란 글자가 없는 무자천서(無字天書)류가 아니라, 모든 것이 담겨있고 누구 나가 볼 수 있지만 玄妙하여 풀기가 어려운 책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무무진경을 남긴 무무란 노인은 후일을 위한 안배를.
소년 진명은 과거를 보기 위한 서원에서의 생활에서 이가장으로 옮기면서 전혀 다른 세상으로 자신의 바람을 바꾸어가게 됩니다.
세상의 누구보다 아끼던 연인의 죽음.
그로 인한 진명의 변신은 대폭풍을 예고합니다.
대충 그러한 줄거리로 흘러가는 이 글은 강렬함을 숨기고 있는 부드러운 글입니다.
따뜻한 글이라고 해야 맞을 겁니다.
2) 백연 - 이원연공.
이 글은 어줍잖은 사부 이원이 고아소년을 만나 연공이란 이름을 지어주면서 시작합니다.
능력부족의 사부가 뛰어난 오성을 지닌 소년을 가르치기 위해서 눈물겨운 노력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좀 언밸런스 한 여러 가지가 어우러져 있지만 그것들이 묘하게 경계를 지키면서 훈훈한 사제간의 정이 전편을 가득 메웁니다.
수없는 유혹들에 흔들리지 않는 연공과 그런 연공을 위해 침식을 잊어야 하는 사부 이원.
그 속에서 우리는 지금 세상에서 누구 나가 바라는 선생님의 그림자를 봅니다.
저런 선생님이 정말 우리 앞에 있다면...
3) 권용찬 - 철중쟁쟁.
권용찬의 이 글은 거대한 가문의 자제 조일관이 사이비 의원에게 감동하여 의생의 길로 나서면서 시작됩니다.
그를 가르치기 위해서 쩔쩔매는 부패한 의원들의 군상.
정말 둔하다 싶을 정도로 우직한 조일관.
그런 상황들이 3권까지 유려하게 펼쳐집니다.
철중쟁쟁이란 말 그대로 조일관은 끊임없는 노력으로 무공도 의술도 성취를 더해갑니다.
너무 우직하다.
바보스럽다라는 말도 있는 듯 하지만, 그 점이 이 철중쟁쟁의 시종일관 추구한 바의 장점일 것으로 3권까지는 보여집니다.
각 글에 대한 것은 아주 간단한 소개로 맺음 합니다.
그 글에 대해 좀 더 필요한 점, 또 모자란 것들에 대해서는 각자에게 전달하는 기회를 따로 갖기로 할 예정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이 자리는, 위 세 글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만, 그 의미가 글 자체를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위의 세 글이 누구 나가 한 번쯤은 봐도 될, 아니 봐야 할, 아주 좋은 글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2. 왜 이 세 글을 주목하는가.
위의 세 글은 현재까지 많은 분들이 봐왔고, 흥분시켰던 히트작들과는 전혀 다른 성향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소위 먼치킨의 형태를 지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이 극강하거나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수면서 가는 형태가 아닙니다.
힘이 아니라 도를 추구한다고 할까요?
두 번째는 이 글 모두가 훈훈한 인간의 정을 그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정보다는 야비함, 음모. 그리고 배신이 판을 치는 세상, 강호가 즐비한 마당에 이 글들은 우직할 만큼 착한... 소위 말하는 대협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이 글 모두가 유쾌,상쾌,통쾌 라는 소위 3快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히트를 쳤다는 공통점을 가진다는 점입니다.
장르들이 어떻게 나가는 것이 좋을까 라는 면에서 생각해보게 만드는 부분이겠지요.
요즘 트랜드라는 것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라도 모두가 다 압니다.
무조건 강해야만 본다.
1권. 그것도 초반에 때려넣지 않으면 아무도 안 본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이 전혀 다른 흐름의 글 3개.
이 세 가지 글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걸까요?
비평이 힘을 얻고, 강한 위세를 떨치던 시절, 고무판은 힘을 쓰지 못했었습니다.
여기서 히트를 쳐도 시장에서 그다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책이 제대로 팔리지 못했다는 의미인 거지요.
그런 예를 들자면 아주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고무판이 힘을 얻으면서, 독자가 불어나면서 시장성향과는 다른 글 셋이 나란히(시차는 조금 있었습니다만) 떠올랐습니다.
먼치킨도 아니고, 음모가 판을 치지도 않는 데도 말입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아주 큽니다.
深大하지요.
독자의 성향이 먼치킨 일색에서 이제 다른 방향도 인정을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거의 편집증적인 강박관념을 가지고 한 방향의 글을 쓰지 않아도 어떤 글이건, 글만 잘 쓰면 팔릴 수 있다는 의미라는 거지요.
현재 장르시장의 독자 구성원은, 대략 10_20대를 약 90% 가깝게 봅니다.
아마 이 수치를 보면 모두 믿기지 않는다고 하실 겁니다.
1년 전에 비해서 상위 연령 대가 거의 10% 가까이 줄었습니다.
(물론 약간의 오차가 있긴 할겁니다만, 경제의 어려움이 큰 영향을 미친 걸로 보고 있습니다. 성인들은 취직과 가족의 생계에 급해서 다른 걸 바라 볼 여가가 없다. 라는 의미입니다.)
현재와 같은 성향의 글만 계속 양산된다면...
그 글을 좋아하던 10대라 할지라도 20대가 되면 그 글에 대해 식상할 것이고 다시는 장르를 찾지 않게 될 겁니다.
그 옛날, 무협을 처음 본 세대가 60이 되어서도 고무판을 찾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지금까지의 전개였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변화를 여기서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진단이 바로 이 세 작품을 여러분 앞에 소개하는 제 느낌입니다.
먼치킨이 나쁘다는 말은 어떤 경우에도 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글이건 잘 썼다면 팔릴 수 있는 여건이 마련 되어야만 한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글이 다양해지고, 독자는 선택의 폭을 넓게 가져갈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싹을 보고 있는 듯 하다는 말로 제 글을 마감합니다.
단기 4338년 10월 새벽. 蓮花精舍에서 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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