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의 장강을 보고.
윤하라는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다.
반응을 얻기에 아하, 라고 생각했다가 장강을 보았다.
그 글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따듯하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본 그의 나이는 결코 적지 않았다.
그런 나이로서 수십 년간 무협을 보았을 것인데도 콰콰쾅이 아니라,
그러한 무협을 쓸 수 있었음에 대하여 찬사를 보낸다.
장강은 기본적으로 장강의 도도함을 사람에 담아내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사람의 평생이 칠십을 가도 백년을 가도 그 도도한 강물의 흐름에 어찌
비견할 수 있을 것인가.
헷세의 실달다(석가모니)는 그 강물의 소리를 들으면서 각성한다.
세월을 읽고 세월을 느끼게 된다는 의미다.
윤하의 장강은 바로 그러한 흐름을 무협속에서 담아보고자 한다.
나타나는 인물들은 극악한 마인, 용서받지 못할 마두가 아니라 뭔가 의지가
있고, 또 다른 의미들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다.
주인공은 젊은 나이에 사부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면서 스스로 커나간다.
기연은 한 몸에 집중되고, 위기도 없다.
어떻게보면 참으로 밋밋한 스토리이고, 진행이다.
그런 글을 감칠맛 있게 포장해낸 것이 바로 윤하의 장강이다.
물론 이 글이 처음 쓰는 글이기에, 여러군데 미숙한 부분들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자면 시점의 처리들이 얽혀서 장소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던가,
혹은 명확하게 잡아 당겨서 긴장감을 높여야 할 부분이 고요하게 흘러간다
던가 하는.
신인작가들에게 자주 지적되는 무협에서의 한자쓰기도 거의 틀리지 않는 건,
연륜으로 보아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어린 독자들에게 한자에 대해 한가지만 이야기를 하자면,
지금은 동북아 시대이고, 그 중요한 역할을 중국이 하고 있다.
그렇기에 한자는 미리 많이 알아둠이 나쁠 이유가 없다.
무협을 보면서 얻는 한자의 지식은 결코 만만하지가 않다.
그러나, 한자만 보면 거부감을 느끼는 10대, 20대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본인도 전과 달리 한자의 사용을 한 페이지에 한 단어 이상은 잘
쓰지 않고자 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한자(漢字)라고 병기가 됨에도, 거기에 거부감을 느끼기보다는 후일을
위해서 무협을 보면서는 시간이 지나면 한자를 저절로 배우게 되는 부수입을
얻는다면 그도 좋은 일이 아닐까?
본인은 실제로 12살이 되면서부터 무협을 접하다가 14살부터 한자에 흥미가
생겨서 혼자 15살 때 논어를 보기 시작했었다.
그건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이야기가 잠시 옆길로 샜지만, 장점이 몇가지의 단점보다는 훨씬 큰 것이
바로 이 장강이다.
장강은 1세대의 무협도, 2세대의 무협도, 3세대의 무협도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중국무협풍을 가졌다.
그 흐름에 그 나이로서는 매우 특이하게도 3세대의 느낌들로 글을 썼다.
그래서 그 장강은 매우 편하다.
임준욱의 글을 처음보면서 따스함을 느꼈는데, 장강에서도 그런 따스함이
느껴졌다.
1,2권을 보고 바로 글을 쓰고 싶었다.
3권을 보고 또 쓰고자 했지만 여러 가지 일들이 겹쳐서 결국 지금에야
간략하게 글을 적고 말게 되었다.
그러나, 누구라도 한 번쯤 보고 그 무협에의 따듯함을, 작가의 품성을 느껴
볼 수 있는 것이 이 장강의 장점일 것이라고 여겨져 미흡하나마 우선 이 글을
올린다.
근일중 다시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많은 책을 보는데, 가능한한 자주.
추운 날씨 모두 건강하십시오.
새해 새벽을 바라보면서 연화정사에서 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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