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검란에서 공적에 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습니다.
심히 부끄러운 이야기이고 또한 무협 1세대인 본인과 관련된 세대인 만큼 뭐라고 말을 하기도 안 하기도 어려운 일이라 난감하기만 하다가 솔직히 제 심정입니다.
왜 좀 더 잘해줄 수 없었던가 하는 원망의 마음이 없다면 그건 정말 거짓말일 겁니다.
그러나 여기에 적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이론은 이곳에서, 무협시장에서도 정말 철저하게 통하는 이론이라고 저는 느낍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많이 계신 듯 합니다.
그 생각에 대해서, 무협시장의 현실을 적시(摘示)하고자 함이 바로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여기서 그 생각이란 바로 "왜 잘 된 글을 많이 써서 제대로 안된 글을 쓸어내지 못하느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1 무협시장의 특수성.
무협에 관하여 논한다면 <군협지>를 정점으로 했던 서점시장이 만화방으로 불리는 대본소로 후퇴한 이후, 무협시장은 대본소가 주축이 되어 왔고, 지금은 새롭게 생긴 대여점과 이젠 많이 줄어든 대본소가 그 시장의 축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것은 무협소설의 주 판매처가 일반독자가 아니라 빌려보는 독자들을 상대로 한 대여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근래에 들어서 일반 독자들의 구매가 늘어나고 있음은 작가나 출판사나 모두에게 매우 고무적이고 반가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잘 써도 팔리지 않는 책을 쓴다는 건 작가에게 매우 슬픈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현재 무협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주축은 대여점과 대본소로 대변되는 "대여시장"입니다.
2. 대여시장의 장점과 문제점.
장점은, 대여시장이 있음으로 인해서 후배들이 시장에 진입할 기회가 많아진다는데 있습니다.
일반 서점 시장만 있다면, 절대로 검증조차 되지 않은 글들이 마구 시장으로 쏟아져 나갈 수가 없습니다. 위험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기존 작가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일정수준 팔릴 수 있는 안전장치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출판사로서나, 작가는 광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대여시장은 매력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면에 책 하나로 10명~100명, 혹은 그 이상이 빌려보게 되니 시장이 협소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게 됩니다.
소위 말하는 일평생 한 번 노릴 수 있다는 "대박"은 없는 겁니다.
그게 대여시장이 가진 양날의 검입니다.
3. 악화가 양화를 구축할 수 있나?
정답은 물론 있다 입니다.
가능성은 몇%인가? 당연히 100%입니다.
☞왜 잘 쓴 글들이 못 쓸 글들에게 밀리는가?
잘 쓰기보다 못쓰기가 쉽습니다. 그러니 쉬운 글이 훨씬 양이 많게 되고 양에서 밀리는 건 당연합니다.
☞왜 잘 쓰는 글은 많이 못나오나?
설마 이런 생각을 하실 분은 안 계실 걸로 생각합니다. 글 쓰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런 글을 잘 쓰려면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고 또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걸 어떻게 한 달에 몇 권씩 써낼 수 있겠습니까?
설혹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람이 과연 전체를 통틀어서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창작무협 20년이래 그런 사람은 고 서효원군이 유일합니다.
그 말은 그런 속도를 가지면서 잘 쓰는 사람은 정말 어렵다는 것이고 잘 쓰는 사람보다 못쓰는 사람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다 잘 쓰는 가운데 잘 쓰면 그건 잘쓰는게 아니라 보통일거니까요.
4. 결론(結論)
잘 쓰는 사람들이 잘 못쓰는 사람보다 더 빨리 쓸 가능성은 적다. 그런데 그들보다는 잘 못쓰는 사람들의 숫자가 훨씬 많다.
답은 바로 거기서 나옵니다.
전체적인 서점시장 자체가 너무 나쁩니다.
우리나라 국민들 정말 책 안 읽고 안 사봅니다.(통계가 그렇습니다.)
해서 군소출판사들이(이름을 대면 안다는 출판사까지) 무협시장으로 전환을 하거나 할 예정이거나 혹은 했다가 망했습니다.
대충 지금 무협을 내는 출판사가 30개 전후이고 한 달에 나오는 권수가 110권에서 130권 정도 됩니다.
이게 서점으로 풀린다면 좀 수가 많군...
그렇게 치부하고 말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전부 대여시장으로 풀리고 그중 일부가 서점에 나갑니다.
대여시장에서 100권 이상 나오는 책을 전부 살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대여점에서는 책을 선택하게 됩니다.
(여기에서는 대여점 반품이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대여하던 책을 대여가 잘 안된다는 이유로 반품을 하는 겁니다. 그냥 반품이면 괜찮은데 몇 달이 지난 다음에, 책이 몇권이나 나온 다음에 중고가 된 책을 돌려보내는데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왜냐면 그 뒤로도 책이 나오니까 잘 안 빌려가는 책보다야 새로 책을 받는게 이득이라서... 라는게 현재 나온 가장 그럴듯한 분석입니다. 이로인해서 상당부분 작가들이 피해를 보고 있음이 현실이라 관계자들은 개선이 시급한 사안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대여점에서 100권이 넘는 책중에서 책을 선택하는데 그중에서 한 권도 안 팔리는 책이 있느냐? 한다면, 답은 그런 책은 없다입니다.
아무리 쓰레기 같은 책이라도 한 권도 안 팔리는 책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한 달에 100여권이 넘게 나오는 책중(=물론 이 숫자는 무협과 판타지를 합한 숫자입니다.)에서 대여점은 일정분량의 책을 고르게 됩니다.
위에서 말한 형태가 있는 반면 일부 몰지각한 출판사에서 쏟아내는 저질의 책도 있습니다.
대여점에서 그 모두를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그중 일부 책은 아예 폐기된 원고로 만들어낸 것이라 책의 내용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책은 보통 책의 평균선인 3천부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1천부 정도를 기준으로 싸구려로 만들어냅니다.
대여시장에서는 그래도 그 책이 먹힙니다. 자신이 소장할 책을 정성껏 고르는 독자가 아니라 대여점이기 때문입니다.
천개만 팔리는 책은 그래서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천개 팔리는 것이 10번이면 만 부가 될 것이고, 100번이면 10만부가 됩니다.(그런 종류의 책은 대부분 소위 메이저가 아닌, 정해진 출판사 한 두군데에서 찍어내고 3권으로 길이가 한정되어 있습니다. 아마 이 글의 리플에 그 출판사 이름도 나올 듯 합니다만...)
그런 책들이 10만부, 100만부가 대여점에 꽂혀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새로 책을 보던, 시작하는 독자가, 아무 것도 모르는 독자가 그 책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 것인지……
무협은 쓰레기!라고 욕을 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새로운 독자가 유입되지 않는 시장은 죽어갑니다. 더 이상 발전도 유지도 힘듭니다.
바로 그러한 책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대여점에서 소리치고 있습니다.
"무협은 쓰레기야! 무협 보지마!!"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 쓰레기를 판 능력없는 작가를 욕해야 할까요?
물론, 욕을 먹어도 쌉니다. 하지만 폐기된 원고를 사주는 출판사가 없었다면 어떻게 그 책이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기에 이 문제의 책임은, 당장 쌀통에 쌀이 떨어져 생계를 걱정하던, 힘없는 작가가 아니라 그러한 책을 내면서라도 장사를 하겠다는 양식없는 출판사에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요즘 비난받는 지난날의 공장무협이라 할지라도 그 이름의 책임자가 이름에 걸맞는 책임만 지고 책을 낸다면 비난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그들이 비난받는 이유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을 내보내면서도 그 책을 아예 읽어보지도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최소한의 수준에라도 맞춰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책을 내보냅니다.
한 두 개 쯤이야……
그렇게 나온 책들이 개인당 백여질이 되면 비난을 면키 어렵습니다. 처음 읽는 독자들은 아니 이 작가거는 왜 이렇게 괜찮은거도 있고 개판도 많은 거야? 라고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꽂힌 저질의 책들은 새로 나오는 피땀흘린 책들을 거부합니다. 독자를 쫓아내고, 서가에 꽂혀 네가 꽂힐 자리가 없다고 손을 흔듭니다. 팔리지 않았던 저질의 책들은 곧장 덤핑이 되어 쓰레기값으로 총판등에서 새로 대여점을 차리는 곳으로 흘러들어가 그 서가를 메웁니다.
악순환이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
간단하게 지난 12월과 1월에 나온 책만 훑어보아도... 여러분은 아실 수가 있을 겁니다. 양서라고 불릴만한 책들이 몇 개나 나왔는지?
그게 백여권이 넘는 것중에서 몇%나 될 것인지.
물량에서 상대가 되질 않습니다.
제대로 되지 않은 책을 내는 출판사는 비난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출판사의 책은 팔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무협이 살고, 작가가 살고, 시장이 발전합니다.
그렇게 되면 독자는 제대로 된 책, 제대로 된 무협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게 제가 오늘 이 자리에다 굳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인터넷은 막강한 힘을 가졌습니다.
여러분들이 무협을 감시하고, 지켜주신다면 무협은 더 이상 언더그라운드가 아니고 더 이상 무너지는 시장을 보면서 개탄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며 늘 좋은 책을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인다면, 무협을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같이 보자는 명목으로 제발 작가들의 원고를 인터넷으로 유포시키지 말아주십시오.
저를 비롯한 후배작가들은 남들이 곤하게 자는 밤을 지새면서 생명을 갉아내어 글을 씁니다. 하루 한 매를 쓰기 위해서 며칠을 뒹굴면서 고뇌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만들어낸 분신을 아무렇게나 굴린다면 과연 십 년, 이십 년 뒤에 작가는 무엇이 될런지요?
무협시장은 작습니다.
영화나 기타 다른 것처럼 서점에서 안 팔려도 대여점에서 안 팔려도 다른 나라가서라도 팔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이 다르다는 점을 부디 감안하여 주시기를 바란다는 말씀으로 이 글을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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