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공주를 한마디로 평한다면, 실패한 글이다.
그렇다고 해서 표류공주가 못 쓴 글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표류공주는 정성들여서, 잘 쓴 글이다.
그럼에도 실패한 글임도 틀림이 없다.
매우 모순된 평이 나올 수밖에 없는 어떤 한계를 이 글이 가지고 있다는 것
이 바로 지금부터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다.
이제부터 그 잘잘못을 짚어보고자 한다.
표류공주는 나름대로의 충실한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
처절하기 조차한 한 인간의 삶.
그리고 사랑과 한이 어울어진 어떤 것들, 달과 해가 한꺼번에 떠오름을 보
기 위해서 항주를 찾는 두 사람의 남녀까지.
그 마지막을 보고 이건 쓰레기라고 할 사람은 없을 터이다.
가슴이 저리는 감동을 받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글이 실패한 글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몇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첫 번째의 글을 씀에 있어서 오버페이스를 했다.
그럼으로 자료를 쏟아붓되, 최소한의 자료로서 독자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물량공세를 투입하여 강의를 했다.
무협은 강의, 논설이 통용되기 어려운 분야다.
자료부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를 받는 설봉의 경우에도 늘 아킬레스건
으로 작용하는 것이 바로 그 자료의 처리문제였다. 본인도 그러한 평가를
의식하여 늘 고민하는 것이 자료를 어떻게 가장 효율적으로 본문속으로 녹
여 넣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표류공주는 너무 편하게 글을 썼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대강 스치고 지나면서 읽어내려갈 수도 있다. 독자가
흘겨보면서 흘려버릴 수 있다는 의미다. 지루하면 그 부분을 건너 뛰어도
전혀 내용 이해에는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자가 보지 않을 글을 쓴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보다 문제가 된 것은 주인공에게 퍼부어진 숱한 기연과 그 기연의 처리
다. 기연이라고 해서 무조건 절벽에서 떨어지고, 비급을 얻는게 기연은 아
니다. 절벽에서 떨어져도 그것이 그럴만한 당위성이 있거나, 독자에게 어필
이 된다면 무엇이 되건 상관이 없다.
그러나 표류공주는 그러지 못했다.
참혹할만큼 주인공에게 고난의 짐을 지우고, 그 고난의 짐을 덧붙이는 것으
로 전체를 끌고 나갔을 뿐 그것이 독자에게 공감을 얻는데는 실패했다.
그것이 시작된 것은 바로 살수로의 훈련부터다.
그전까지의 패턴으로 갔다면 표류공주는 잘쓴 글로서 매김할 수 있는 소지
가 충분했다.
살수의 훈련부분은 설봉의 수라마군의 형태와 매우 흡사했지만 그 완성도는
그보다 떨어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움직이는 사건의 흐름은 억지가 끼어들
기 시작했다.
희노애락 4형제의 등장에도 무리가 끼어들고 그 천지신공을 얻어 최상의 경
지에 이르렀음에도 늘 단서가 달린다. 신공은 얻었지만 발란스를 잡지 못해
서 능력발휘가 안된다.. 또 뭘 배우고.. 그때마다 주인공은 다시 3류로 전
락한다.
배워도 배워도 3류다.
싸움은 늘 시원하지 않다.
배워도 배워도 깨지는 주인공.
독자에게 공감을 줄 수 있을 리가 없다.
보면서 답답하고, 의혹이 이는데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현대시를 무공구결로 인용하는 것들은 하나의 시도는 될 수 있을지언정, 그
것이 플러스로서 작용하지는 않는다.
개연성이 주어지고,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원수와의 사랑을 그려내기 위해서 많은 지면을 할애했지만, 실제로는 그 내
용이 공감을 얻는데는 실패했다. 그처럼 착한 여자를 배신함에 전혀 망설임
이 없다가 그 다음, 그 여인을 향한 일편단심은 눈물겹다. 늘 그렇듯 중요
한 것은 그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개연성이다.
그런면에서 스스로가 추구했던 바를 그려내기에는 아직은 지닌바 글쓰기가
역부족이었다. 그건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어쩔수 없는 일이다. 첫 번째 글
이 걸작일 수는 없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그러기는
참으로 쉽지 않다.
좌백이란 한 신인이, 실제로 보자면 몇 질의 책을 쓰지 않은 그 신인이 중
견으로 자리매김하고 대우받게 된 이유는 바로 첫작품에서부터 반향을 불러
일으킬 글을 써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뒤를 따르는 후배들에게 그 일이
쉽지 않았던 것은 첫작품에서 반향을 불러 일으킬 글을 쓰는게 정말 쉽지
않은 까닭이다.
표류공주가 그나마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게 된 것은 너무 바보같은 주인공
의 사랑이 끝으로 가면서 조금씩 손질이 되었던 까닭이다. 손질이라기 보다
는 공감대가 생겼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최근 등장한 신인중 나이가 들었다는 말대로, 한문사용등에서 거의 무리가
없지만, 전혀 엉뚱한 부분에서 한문이 제법 틀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것은
먼저 이야기 했던 진가소전에서도 마찬가지로, 좀 더 세심히 걸러졌으면 좋
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론은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잘 쓴 글이되, 살펴봐야만 잘 쓴 글임을 알게 된다면 그 글은 문제가 된다.
표류공주가 통신이라는 바람을 타지 않고 그냥 대여점으로 나갔다면, 아니
…… 오래전에 무협이 쏟아져 나올 때 묻혀 나갔다면 그저 그렇게 묻히고
말았을 수도 있을 형태라고 할 수도 있다.
성장소설은 충분히 그 성장과정을 독자가 호흡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작가 스스로만 이해하고 즐긴다면 독자에게 보일 이유가 없다.
봄자락 끝, 연화정사에서 금강.
Comment ' 21